외압이란 무엇인가? 외부의 압력이 감각의 주체인 어떤 인간에게 포착됐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외부의 압력이 그 형체를 가졌을 때는 전형적인 외압으로서 물리적 외압이다.
이른바 채상병 관련 수사 외압의 그 외압은 무엇일까?
그것은 위의 물리적 외압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무엇이다. 즉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왜 심리적 외압을 느낄까?
감정 혹은 정서를 가진 주체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을 때 지각하는 그 무엇이 심리적 외압이다. 감내 한계를 감정의 소유자인 주체 스스로 형성한다. 형성요인에는 많은 요소들이 관여할 것이다. 유전적 요인, 환경적(성장환경, 지연, 학연, 혈연), 생물학적 요인, 심리적 요인, 문화적 요인 등... 겹치는 영역들도 존재할 것이며 그 만큼 감내한계가 다양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글에서 거론하는 심리적 외압은 해병대수사단의 단장 박정훈대령이 7월 31일 즈음 받았다는 그것과 해병대수사관들 그리고 군검사의 그것이다.
수사관으로서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감내한계가 평균적인 일반인의 그것보다 단단하고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균인의 그것보다 외압을 느끼는 한계가 작거나 무르다면 경찰로서의 직무수행에 심각한 결함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1광수대장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에 관해 옆에서 혹은 계선상 상관인 박정훈대령이 가타부타 뭐라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그냥 할 일을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외압으로 느낀다는 것은 그 외압만이 아니라 다른 외압을 받거나 더 큰 외압을 받는다면 흔들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다 더 큰 외압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작은 외압을 폭로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어떤 외압을 기사화할 때 기사로서의 가치를 지니려면 적어도 그 외압의 실체가 진정한 외압으로서 평가될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그런 연후 그 외압으로 외압의 촉수에 걸린 그것이 정상적인 반응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외압이 또한 정당성을 갖춘 외압인지를 식별해야 할 것이다.
유재은 법무관리관(변호사)이 법학박사인 박정훈대령보다 못할 것도 나을 것도 없다. 직속 상사도 아니다. 그렇다면 열등의식이나 자격지심이 앞서지 않았다면 법리 논박을 펼쳐 왜 혐의사실과 혐의자를 모두 빼라는 것인지를 캐물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아니하였다. 박정훈대령 스스로 행한 직무가 100%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병대 군검사에게 포항의 어느 검사가 전화해서 수사기록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는데,
우선 필자는 채상병사건의 경우 군사법체계의 관여를 배제했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군사법체계로는 검시처분과 기초 조사 아닌 실질적 수사는 불법임을 여러 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이들 검사는 실질적 수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과연 검사로서 제대로 관련 조항들을 들여다 봤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른바 공익의 대변자로서 법조항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심각한 직무유기라 아니할 수 없다.
아무튼 포항의 그 검사들의 수사기록 열람에 대한 의견은 권리가 아닌 요청이다. 듣는 군검사가 거절하면 그만이다. 그것을 외압으로 느꼈다면, 그리하여 그런 류의 외압에 대한 감각이라면, 더 큰 외압이 가해진다면 그 군검사는 자신의 태도가 더 큰 외압에 영향을 받을 게 틀림없다.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굳건한 기본을 유지할 수 없음의 자백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박정훈대령이나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관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취하는 입장이 대통령과 여당보다 더 큰 외압(거대 야당과 든든하게 그 뒷배인 JTBC나 한겨레 경향 군인권센터 등)의 영향하에 놓였기 때문에 취하는 입장이라는 것일까?
아니라면 외압이라는 느끼는 상황마다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촉수이므로 사건별로 제각각이라는 것일까
읽는 독자에게 뭔가 부하를 가하는 기사는 요즘처럼 초스피드시대에선 인기를 얻기 힘들다. 필자의 글이 널리 소비되지 않는 까닭 중 하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