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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박성선
그녀가 사는 동네에서 서울 방향으로 가려면 갈림 길이 나온다. 한 쪽은 잠실 방향이고 다른 쪽은 양재 방향이다. 송정 댁은 자신이 갈림 길 동네에 사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오늘처럼 딸을 배웅하는 경우는 더 그렇다. 딸이 손자를 안고 버스에 올라서는 것을 힘들겠구나하고 바라본다. 손을 흔들어 주고 딸을 태운 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망연자실 서 있다.
‘ 바보같은 계집애 계산도 못하지. 엄마랑 한동네 사는 애들도 좀 많아 ’
먼데로 시집 간 딸을 탓하다가도 이내 맘을 바꾼다.
‘엄마보다 신랑이 더 좋은 걸 어떻게 해, 저 좋아 그런 걸 잘 살기나 바래야지. 그리고 그게 억지로 되나? 다 못난 나 닮아 그런 걸’
TV에 나오는 선전문구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말이 요즘 늘 따라다닌다. 참 그 말은 꼭 나한테 하는 말같아.
이윽고 돌아서 걷기 시작하면서 눈물이 나온다. 마치 처음 딸을 보내는 것처럼. 사랑하는, 소중한 딸과 꼭 떨어져 살아야 하나? 딸은 과연 이런 엄마 맘을 알기나 할까. 모퉁이를 돌아서 집이보이는 곳에 이를 때까지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걸음에 힘이 없다. 옆 집 할머니가 헌재엄마 딸 배웅하고 오는구려, 말을 건넨다. 억지로 웃음을 보인다. 이럴 땐 친정어머니가 생각난다. 내 엄마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어쩌다 한 번 다녀가던 어머니. 건강이 허락지 않아 그나마 딸네 집 걸음을 못 한지 벌써 일년 남짓 되었다. 얼마 전 모처럼 전화를 넣고 분이야 분이야 몇 번 딸 이름만 부르고는 말을 못 잇던 어머니. 돌아가시면 기별은 올까? 기별이 오면 가도 되려나? 무언가 가슴을 짓누른다. 그렇게 어머니와 딸 못지않게 그리운 또 하나의 이름이 떠오르기 전 그 녀는 발길을 옮기며 눈물을 참아 보려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집에 들어서서 뒤 곁으로 걸어간다.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자리 보존한지 이태 된 남편은 몸은 맘대로 못해도 혀는 시들지 않았다. 보면 또 들들 볶을 것이다. 살뜰한 적이 별로 없던 사람과 평생을 함께 했다는 것이 지겨우면서도 꿈같다. 정말 하루도 같이 살 수 없다고 진저리를 친 날이 좋은 날 보다 아마 많을 것이다. 뒤 곁 밭에는 봄에 심은 옥수수가 아직 큰 키를 자랑하고 파도 실하게 자라 보기 좋고, 얼마 전 모종한 배추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 일 할 때가 좋다. 잡념도 없어지고 그리움도 잠시 묻어 둘 수 있어서. 남편의 기저귀를 방금 갈아 주었으니 조금은 여유가 있다. 문득 딸을 주려고 캐 놓은 고구마가 그냥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다시 가슴 한 쪽이 뭉클하면서 아프다. 딸은 고구마가 무겁다고 그냥 갔다. 아들이 차 좀 태워다 주면 이것 저것 좀 가져 갈 수 있으련만. 아들은 바쁘다고 아침 먹고 휙 가버렸다. 제 동생에게 별로 애착이 없는 것일까. 조카애를 무척 귀애 하는 걸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자랄 땐 우애가 좋았는데. 아들 애 한테 슬그머니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 버린다. 미안해서, 정말이지 아들한테 미안해서 그녀는 아들이 아무리 서운하게 해도 조금도 아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아들 헌재는 효자이다. 어려서부터 엄마를 지극히 챙겨온 자상한 아들이다.
남편 생일은 하필 추석이다. 며느리는 물김치며 배추김치며 미리해서 바리바리 싸 들고 수시로 시댁을 들락거렸다. 초등학교 교사인 애가 어떻게 살림 솜씨도 야무진지 살림으로 늙은 시어머니 송정 댁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결혼하고 이번까지 네 번째의 추석인데 언제나 추석차림을 추석 전날까지 완벽하게 준비한다. 친정어머니가 돌보고 있는 손자 세 살배기 일수도 함께 아들 가족은 추석 전 날 와서 두 밤 자고, 오늘은 출근해야 한다며 아침 일찍 갔다.
추석 날 온 가족이 다 모여야 아픈 남편과 아들 며느리 손자 송정 댁까지 다섯 식구다. 딸 가족은 추석 오후에 왔다가 사위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밥 한번 먹고 돌아가고 딸과 손자는 하룻밤 자고 이제 막 간 것이다. 모두 제집으로 돌아가니 집안이 텅 빈다. 쓸쓸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둘만 더 낳을 것을. 송정 댁은 생각한다. 그러다가 또 고개를 흔든다. 당치 않은 하고 스스로를 나무라며. 쭈그리고 앉아 고구마를 캐는데 안에서 남편 목소리가 부른다. 가요오- 소리치며 일어서니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 허리를 두어번 굽혔다 폈다 하다가 잰 걸음으로 뛰어 간다.
“목말라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든다. 남편이 손을 젓는다.
“수민이 갔어?”
참 내....... 제 애비에게 간다고 인사하고, 애비는 끄덕이고, 시간이나 오래 됐나 방금 전 이별 인사를 나누었건만....... 그거 물어보려고 줄달음질 시켰단 말인가?
“갔구먼요”
남편은 멍해진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더니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게 중얼 거린다. 뭐요? 하고 물으려다 송정 댁은 입을 다문다. 남편의 아들 딸 차별은 대단해서 아들 헌재는 대학을 나와 교편을 잡았지만 딸 수민은 여고 졸업 후 취업을 했다. 공부도 잘하고 장래희망도 뚜렷해 진학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라고 여고 은사가 일부러 가정방문까지 왔었다.
“불쌍한 것”
한숨과 함께 토해낸 한마디에 송정 댁은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절대로 남편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뿐이랴,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고 있다. 이이가 죽으려나? 웬 당치도 않은 부성애를 보인담? 아들이라면 또 몰라. 혹시 착각을 하나싶어
“헌재가 아니고 수민이가 갔어요.”
하고 다시 일깨운다. 남편은 그런 송정 댁을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바라 보더니 덜덜 떨리는 손을 내민다.
“일어나실라우?”
남편을 부축한다. 남편이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중얼거린다.
“임자도 그간 고생 많았어. 나 같은 놈 만나서 험한 세월 보냈지”
“여보?”
남편의 말이 전달되자 송정 댁의 눈이 둥그레진다. 생각 밖의 말을 듣자 가슴이 덜컥한다. 왜 그래요 어울리지도 않게 별안간? 남편은 머리맡 문갑 안에 자신이 작성한 유언장이 있으니 만일 내가 죽으면 읽어보고 그대로 하라고 일러준다. 송정 댁은 이이가 죽으려나? 싶자 눈물부터 앞을 가린다. 만일 죽는다면 그보다 더 시원할 수 없을 만큼 미운사람이건만. 남편은 송정 댁이 주는 물을 마시고 사과를 긁어 몇 번 먹더니 다시 눕는다. 평소 안하던 언동에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 해 그 곁에 주저앉은 송정 댁은 저녁도 걸렀다. 남편이 처음 쓰러졌을 때도 식음을 전폐했었다. 결국 병 수발을 하려면 자신이라도 건강해야겠다, 고 마음을 고쳐 먹었지만. 송정 댁을 안절부절 하게 해 놓고 막상 남편은 다른 때보다 죽도 많이 먹고 편하게 잠이 들었다. 그런 남편 곁에서 걸레질을 치고 바느질감을 찾아 앉는둥 이일 저일을 하며 남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남편이 무어라 잠결에 응얼거린다. 어눌해진 말투 때문에 잠꼬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묘한 소리를 낸다. 그런 남편이 안타깝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하다. 험한 꿈이라도 꾸나싶어 잠이라도 깨우면 언제나 몹시 화를 내곤 하는 것이다. 하긴 아까 봐선 오늘은 좀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잠꼬대하는 남편을 깨우려다가 송정 댁은 진저리를 치며 그 곁에서 조금 물러앉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하루가 천년 같다던 말을 어릴 때 라디오 연속극에서 듣기는 들었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들었다. 그 하루가 천년 같은 세월을 자신이 살아 온 것이다.
송정 댁이 어릴 때는 라디오도 귀해서 송정 댁의 집에는 라디오가 없었다. 다리 건너 웃 말에 사는 송정 댁의 큰 집은 부자여서 라디오가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저녁 때면 큰집 대청에 모여 라디오를 듣곤 했다. 어린 송정 댁도 큰 집에 가서 라디오를 듣다가 아침에 서너 살 위인 사촌 언니 방에서 눈을 뜨곤 했다. 송정 댁과 사촌 언니는 우애가 친 자매나 다름없었다. 송정 댁이 초등학교를 마쳤을 때, 언니는 어엿이 교복을 입고 여학교에 다녔지만 송정 댁은 언니처럼 그러지 못 했다. 그런 탓인가 송정 댁의 속에는 언니를 시새워하는 무언가가 언제부터인지 웅크리고 있었다. 그래도 언니가 시집가는 날 송정 댁은 울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언니가 가까운 이웃이 아닌 서울 천호동으로 시집을 간다는 것이 너무 서운했다. 큰어머니도 송정 댁의 어머니도 그런 송정 댁을 측은히 여겼다. 송정 댁은 큰어머니와 어머니가 처음 언니 집에 갈 때 따라 갔다. 언니는 시집살이를 하지 않고 경찰인 남편의 직장 근처에서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처음 가 본 언니의 신혼집을 본 송정 댁은 눈이 휘둥그레 졌다. 자개장롱과 화장대 그리고 은수저며 향기로운 신접살림은 송정 댁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언니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신혼살림이 눈앞에 아른아른한다. 또 보고 싶다. 송정 댁은 언니가 첫 애를 낳았을 때 자진해서 큰어머니를 따라갔다. 그리고 굳이 큰 어머니를 돌려보내고 언니 집에 남아 수발을 들었다. 그 것 뿐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 간 한 방에서 형부와 언니 그리고 아기와 송정 댁은 함께 잤다. 어느 날 언니가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사실은 송정 댁이 일어나야했으나 자는척했다. 조심스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언니가 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앙큼한 그 녀는 못 들은 척 했다. 이제 세이레 지났으니 언니도 웬 만큼은 움직여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리고 잠결인양 다리 한 짝을 이불 밖으로 슬쩍 내밀었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여름에 개울에서 빨래 하다가 발을 물에 담그며, 젖을까 봐 치마를 슬쩍 걷으면 남자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 하필 언니 집에서 그런 짓을 했을까? 화냥기? 혹은 언니에 대한 시새움? 그 생각만 나면 송정 댁은 몇 번이고 자신에게 묻는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뼈가 저리도록 후회스러워서. 다리를 내민 채 설핏 잠이 들었던 모양인데 어떤 무게 때문에 눈을 뜨자 놀랍게도 형부가 그 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형부는 차라리 짐승이었다. 거친 행위의 낌새 때문이었을까 방에 들어 온 언니가 비명을 질렀다. 언니는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가 버렸다. 겨우 열아홉 살이었던 송정 댁은 형부에게 붙잡혀 핏덩이를 키웠다. 몇 번 도망치려고 기회를 엿보았으나 막상 어디로 갈 것인가? 면목이 없어 집에도 갈 수 없고. 그래도 행여 언니가 돌아오지 않을까 돌아와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두들겨 패지 않을까 그녀는 기다렸다. 언니가 돌아오면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생각하면서. 그러나 언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평생을 언니만 생각하면 죄스럽고 그리워 눈물이 나는 송정 댁이다. 고향집에 못 가는 것뿐 아니라 당장 사는 동네에서도 모두들 수군거리고 비쭉거리고 눈을 흘겨댄다. 남편은 전근을 했다. 그 김에 아무도 그들이 형부와 처제라는 것을 모르는 타 동네로 떠났다. 불륜으로 맺어졌어도 남편은 처음 얼마간은 송정 댁을 꽤 위해 주었다. 그 기간이 길지 못 하긴 했지만. 언제 부터인가 그의 입에서는 철면피한 욕설이 튀어 나왔다. 나중 알고 보니 시댁 에서도 발을 끊었을 뿐 아니라 송정 댁과 헤어지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했다. 시댁과 다시 발걸음을 하게 되자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남편은 송정 댁을 내 쫒지는 않았으나, 술만 마시면 으레 형부 붙어먹은 년이라고 욕을 퍼붓기 시작하는데 그건 양질의 욕이다. 너 때문에 내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길길이 날뛰고 말대꾸라도 하면 두들겨 팼다. 그의 매질은 잔인했다. 매에 못 이긴 송정 댁은 남편만 보면 벌벌 떨었다. 헌재 아래도 두 살 터울의 딸 수민을 낳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죄는 혼자 지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아침 슬쩍 다리를 내민 죄 때문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은 듯 살아왔다. 아들 헌재는 언니의 소생이다. 언니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듯 송정 댁은 아들에게 지성을 다했다. 헌재는 말 수가 적고 온유한 성품으로 외할아버지인 송정 댁의 큰아버지를 빼 닮았다.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고향 집, 철없는 딸 때문에 불편 해졌을 큰 집과, 친정부모의 한을 생각하면 언제나 땅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노인들은 죄 없이 딸을 잃었을 뿐 아니라 주변에 얼마나 부끄러웠을 것인가. 법 없이도 살 후덕하고 좋은 인품의 그 어른들이.
처음엔 발을 끊고 살았으나 딸을 저버리지 못 한 친정어머니는 가뭄에 콩 나듯 다녀갔다. 올 때마다 어머니는 언제나 헌재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꼭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그 다음에야 정작 수민을 안아 주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심정이 느껴지면 송정 댁은 방문을 소리없이 닫고 밖으로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언니 미안해 중얼거리며.
헌재를 두고 가 버린 언니는 몇 년 후 재령 한씨 가문에 다시 출가를 했다고 한다. 송정 댁은 언니 생각만 하면 너무 그리워 눈물이 나지만 언니도 그럴 것인가? 동생 생각이 나면 진저리를 치지 않을까?
“분이야!”
바느질을 붙들고 잠 들었던 송정댁은 누군가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깼다. 분이는 송정 댁의 아명이다. 남편은 자고 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누가 불렀단 말인가. 분이를 부른 그 목소리는 얼핏 언니의 목소리인 것도 같은데. 어릴 때 수없이 듣던 언니의 목소리! 못 들은지 삼십년도 더 되는 그 목소리. 내가 아마 꿈을 꾸었나 싶은 송정 댁은 남편을 위해 이번에는 무슨 죽을 쑬까 생각한다. 환자는 하루 종일 자다 깨다 한다. 한 밤중 두 세시에도 눈을 뜨면 시장기를 느끼는 모양이다. 고작 두어 수저 뜨지만 그래도 한 입이라도 더 먹게 해 주려고 무던히 애써온 것이 벌써 이태 째다.
“분이야”
순간 송정 댁은 소스라친다. 남편이 송정 댁을 부른다.
“헌재 아버지 나를 불렀어요?”
남편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던가? 언제나 입에 못 담을 욕지거리나 하던 사람이? 새삼 송정 댁은 남편을 살핀다. 얼마나 지쳤으면 목소리가 그리 가냘퍼 여자가 부른 것으로 들렸단 말인가.
“헌재엄마가 분이라고 불렀지”
색색 가쁜 숨을 참으며 말한다. 헌재엄마! 수십년 송정 댁의 또 다른 이름이건만 남편은 지금 송정 댁 앞에서 헌재엄마를 추억한다.
“보고싶어요?”
송정 댁은 남편에게 묻는다. 일 년 남짓 같이 살고 아들도 낳았으니 애틋함이 없으랴 더욱이 그들은 서로 첫사랑일텐데. 남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우물거리며 말을 하려 애쓴다. 아니 안 보고 싶어 분명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헌재만 보면 미칠 것 같았어 미안해 내가 나쁜 놈인데 임자만 탓하고 못되게 굴었지, 이이가 죽기는 죽을 모양이다.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믿기지 않는 송정 댁이다.
“헌재 엄마는 잘 살고 있겠지?”
송정 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요 우리 언니가 왜 못 살겠어요. 우리들도 살았는데. 잘 살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사람도 늙었겠지.”
송정 댁은 남편의 손을 잡는다. 그를 다독이는 심정으로 다시 나지막히 묻는다.
“보고 싶어요?”
남편은 또 고개를 젓는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혹시 돌아 와 주려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 다시는 볼 수 없다고 단념 하게 되자 모든 것이 임자 탓인 것 같아서 임자한테 많이 못 되게 굴었어. 내가 못 난 탓이야 미안해”
남편의 손은 말 그대로 뼈와 가죽이다. 근육은 하나도 없다. 건강 할 때는 트집 끝에 손찌검이고 자리 보존 한 후로는 수틀리면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집어 던지던 그 손. 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클수록 송정 댁이 미웠겠지. 입 밖에 내서 말로 하지 않아도 어떻게 그걸 모를까
“임자 나를 버리지 않고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임자가 없었으면 아마 난 이 나이까지 살지도 못했을 거야”
근육질의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던 젊은 날의 남편은 술과 무질서한 생활 속에서도 끄덕없이 언제까지나 젊음을 지킬 것 같았다. 특유의 차고 매서운 눈초리와 깔끔하다 못해 냉정한 말투는 그 사람 자체였다. 그러나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는 법. 나이를 먹어가며 초라해져가는 남편이 때로 안타깝고 안쓰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포악한 언사가 튀어 나오면 마음으로부터 귀를 막고 이놈의 세월 얼른 갔으면! 아! 나는 왜 이렇게 오래 사나 자신이 밉고 싫었던 세월.......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진저리났던 그 세월.
다시 자리에 남편을 누이고 송정 댁은 밭에 나갈까하다가 남편 옆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남편이 더 나빠진 것 같지는 않지만 내내 너그러운 말을 하는 것이 걸려 아이들에게 연락을 할까 망설인다. 차라리 포악을 떨어야 남편다운데.
“나 밭에 나갔다 와도 괜찮지요?”
들었나 못 들었나 남편은 대꾸가 없다. 송정 댁은 슬그머니 일어난다. 막 걸음을 내 딛으려는데 남편이 마치 한숨처럼 말한다.
“나가지마. 내 옆에 있어”
송정 댁은 잠시 멍하니 서있다. 이 사람과 몇 년을 살았더라. 열아홉 철없는 나이에 멋모르고 주저앉아 아들 딸을 키우다 보니 가 버린 한 세월. 아들 헌재를 위해 딸 수민이를 위해 자신은 없는 존재처럼 여겨왔다. 남편의 사랑이나 정은 아예 단념하고 또 단념하지 않았던가, 얼마나 많이 약해지려는 자신의 마음을 이를 악물고 다잡았던가. 그 이유가 오직 이 사람의 악한 말투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탓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내 옆에 있어라니 꿈에서도 들어 볼 수 없는 말이 아닌가.
“이리 와”
목소리에 이끌리듯 송정 댁은 남편 곁에 앉는다. 나가지 말고 내 곁에 있으라고 말 해 놓고 남편은 또 잠이 든 모양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자니 처음 그가 쓰러졌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 남편은 식사하다 말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가고 송정 댁이 그를 바라보자 이미 화가 치밀어 주체를 못 하며 다음 말을 잇지 못한다.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하고.
“왜 그래요?”
송정 댁이 묻자 그는 수저를 집어 던졌으나 힘없이 중간에 떨어졌다.
“기, 김치가 싱거워.......”
평소 잘 먹던 김치가 별안간 왜 싱겁담 송정 댁도 슬그머니 화가 치솟았다. 나이를 더 해 가며 참을성도 없어져 가는지 남편에게 불끈 화가 날 때가 있다. 대부분 절대로 내색 않고 혼자 입술을 짓씹으며 견디지만. 말은 왜 더듬느냐고 쏘아부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목구멍까지 치민 질문을 꿀꺽 삼키는 순간 남편이 스르르 쓰러지는 것이다. 119를 불러 응급실로 뛰었다. 말로만 듣던 뇌졸중. 처음에는 위중한 듯 했으나 차츰 회복했다. 퇴원하고 어느 정도 거동을 하는 둥 조금 마음을 놓으려 하자 다시 쓰러졌다. 자신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어지간히 분했던지 손에 집히는대로 던지고 악을 쓰던 그의 행패는 참 대단했다.
요란하게 전화벨이 운다. 송정 댁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뜬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단 말인가. 전화기를 막 집으려는데 신호가 뚝 끊긴다. 남편이 깨지 않을까 바라보는데 웬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남편의 얼굴에서 어떤 느낌이 오는 것이다. 다가가 그의 손을 잡으니 힘없이 늘어진다.
“여보! 헌재아버지!”
대꾸가 없다. 허둥대며 119를 부른다. 머리 속이 하얘지는 것 같다. 급히 달려온 119 대원이 이런저런 응급조치를 한다. 산소호흡기를 연결하면서 무겁게 중얼거린다.
“이런! 아무래도 늦은 것 같아”
정말 믿어지지 않게 남편은 갔다.
3일의 장례 일정을 마치고 남편은 성남 장제장으로 실려갔다. 그날따라 세상을 떠난 사람이 많은지 한참을 기다려야한단다. 생각해 보면 고인과의 마지막 시간인데도 몸이 지친 탓에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
차안에서 대기 하다가 마침내 남편의 관이 옮겨진다. 그 뒤를 따르며 송정 댁은 마음속으로 남편에게 작별을 고한다.
잘가요, 헌재 아버지. 미안해요. 나 아니었으면 울언니하고 잘 살았을 텐데.......
헌재 역시 지쳐보이지만 무던한 얼굴로 송정 댁 앞에서 아버지 영정을 들고 간다. 수민이도 어린 것을 들쳐 업고 그 뒤를 따른다.
관이 순번대로 들어간다.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의 길이 이윽고 나뉜다. 화구가 보이는 유리 간막이 앞에 산자들이 서서 죽은 자의 화장 되는 것을 바라본다. 아들이 자리를 지키마고 다른 이들은 가서 좀 앉으라고 한다.
“내가 있으마.”
아들이 안되어서 송정댁은 말했으나 아들은 어머니를 염려한다.
“엄마! 대기실에 가면 의자있으니까 거기 가서 좀 앉아요. 여보! 엄마 좀 모시고 가.”
인정머리 없는 남편에게서 어떻게 헌재같은 아들이 나왔을까. 매에 못 이겨 몇 번이나 도망치려고 했었다. 그러나 헌재 때문에 못 갔다. 누워있는 송정댁에게 헌재는 고사리 손으로 물을 떠다 주었다. 동생 수민이를 다독여 가면서. 그게 왜 그렇게 눈물겨웠는지.
“엄마! 많이 아파? 응? ”
울먹이던 헌재. 그 얼굴 위에 언니의 얼굴이 겹치면 송정 댁은 헌재를 끌어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아가야! 엄마가 우리 아가 때문에 참아야지 그렇지?”
헌재에게서 엄마를 떠나게 한 자신이 아닌가. 자신마저 떠나면 헌재에게 너무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모니터 화면에 고인의 이름과 순서를 알리는 자막이 뜬다. 화장의 진행도 알린다. 남편의 이름이 떠오르고 있다.
‘잘 가요 헌재 아버지 ’
송정 댁은 다시 남편에게 작별을 고한다. 지겨웠던 삶. 그러나 이제 막상 남편 없이 어떻게 살 건가. 막막하다. 어쩐지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이 모양으로 난 얼마나 살까. 나도 좀 있으면 이 세상에 없겠지. 우리 아이들만 남겨 두고서. 그렇지만 헌재 아버지 저 세상에 가도 난 다신 당신 곁으로 안 갈래요.
두서없이 생각을 굴리는 그 녀의 시야에 문득 어떤 이름이 보인다.
고인 안희순 화장 중
무심코 글짜가 읽히는 순간 송정댁의 눈이 커진다.
설마! 몸이 하르르 떤다. 바로 남편 옆 자리이다. 고인의 영정과 가족의 얼굴을 확인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오른다. 송정 댁은 정신없이 종종 걸음을 친다.
막상 가보니 웬 할머니의 사진이 무표정하게 놓여있다.
언니 얼굴이 아니다. 그럼 그렇지. 아무렴 그럴 수가 있어? 언니의 나이를 계산해 본다. 아직 저렇게 늙을 나이가 아냐.
다시 자리로 돌아가며 아들이 있는 곳을 살핀다. 아들은 여전히 무던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만일 아까 그 이름대로 남편 옆에서 화장 중인 사람이 언니라면? 만일 그렇다면.......
송정 댁은 주저앉는다. 이생의 갈림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모자 상봉이 이렇게 엇갈리고 있다면? 이 사실을 아들에게 일깨워야할까? 언니가 아닌데 뭐. 그러나 언니 얼굴을 본 것이 삼십 년도 넘는다. 자신이 없다.
마지막 남은 힘마저 빠져버린 송정 댁은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한가닥을 부여잡는다. 평생을 버티게 한 힘줄.
헌재는 내 아들이야! 내 아들이야! 송정 댁의 몸이 의자에 스르르 쓰러진다.
약력
소설가. '한국작가'로 등단
광주문예연구회 총무
동화집 '퉁방울 솔랑 졸랑'
1969~1970년 극동방송에서 어린이 드라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