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隱修者의 삶이여!
"인생 참 허무하네."
선생님께서 병상에서 하신 말씀이라 하니 가슴에 사무칩니다.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신비한 우리들의 인생이지만
한 해도 저물고, 삶도 저물어 섣달 그믐 날에 그 寂寂한 길 어디로가시온 것입니까?
우리는 길 위에서 태어나서, 길 위에서 살고, 만남의 인연을 맺고, 길 위에서 시나브로 죽음으로 이르는 길 없는 길임을 절실히 느끼는 요즈음입니다.
선생님 가시온지 어언 일 년 또 다시 가을도 저물어 갑니다.
가을 하늘에는 맑은 홍시가 아슬하여 자연의 慈悲만을 우러러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밤 창밖에 별을 우러러보며 망막한 無念處에서 혹여, 석가여래 손가락에 낙서하고 돌아섰던 손오공처럼 푸른 밤 바다에 海印의 도장 하나 찍고,
박정만 시인의 주검의 절규처럼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 가겠다시던 천상병 시인처럼, '저승길에 주막도 없다'고 탄식하던 성삼문처럼, 그 길이 어느 길인지요?
너무도 급하게 황망하게 가신 쓸쓸한 하늘 길 아니옵니까!
선생님께서 이맘 때 어느 가을 날 제가 살고 있는 산사가 만산홍엽으로 가을이 깊어갈 때 홀연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 저 사하 촌에 내려가 마걸리 한잔하세, 내 삼년을 끊은 술인데 당신하고 술 한 번 하고 싶구 먼, 절 생활이지만 괜찮으시겠는가?
괜찮다, 마다요. 나는 황송하기도 하지만 반가움과 놀라움에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흔쾌히 사하 촌을 내려갔다.
그동안 선생님의 근황을 가끔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발걸음 하신 것에 내심 호기심도 동하고 있었다.
평상시 절에 오르내리며 가끔 들리게 되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당신이 언젠가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을 권해서 읽었는데 경허 스님의 노래한 이 시 기억하지.
"아는 것 없이 이름만 높아졌구나./ 세상은 또한 어지럽고 위험만 하구나,/
어느 곳에 이 몸을 감출까./ 고기 팔고 술 먹는 마을마다 어찌 숨을 곳이 없으리오마는/ 자못 이름은 숨기면 숨길수록 이름이 더욱 새로워질까 그를 두려워하노라."
십 몇 년 전에 중앙일보에 한국 불교의 선풍의 종지를 되살려 오늘에 흐르게 한 경허스님과, 제자 만공스님의 행장기를 연재 했던 소설로 단행본으로 읽으셨다는 그 소설에서 경허 스님의 노래를 음유하시며 가을 저무는 허공으로 눈을 돌리신다.
서양 속담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했네만 이 격언은 내가 평생 공부한 서양 학문의 功利主義가 빚어낸 덧없는 말일 뿐일세.
진심으로 참 우정이라든가, 참 사랑이라면,'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욱 가까워지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의 눈에 띄어야만 유명해지고, 끊임없이 나타나 보이는 것은 결국 쇼윈도에 서 있는 마네킹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당신은 부처가 누구를 위해서라든가, 무엇을 위해서라든가, 하는 모든 욕망과 집착, 분별심을 버리라 하시며 '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한 금강경의 이 대목정도는 요달했을 걸세.
실은 오늘 동국대학교 역경원에 불교 경전을 비롯한 몇 가지 책을 주문했더니 책이 왔는데 한 트럭은 된다시며 이걸 다 보자면 몇 년은 보아야 할 것 같다고 신중한 표정이 엊그제 인데 정말 그 많은 경전을 다 독파하신 것일까? 능히 그러하셨을 것이다.
하긴 나도 선생님이 권하는 책은 다음에 만나서 숙제를 화답하듯 꼭 읽었다.
그때 라즈니쉬를 만나서'선으로 보는 눈, 티벳 死者의 書, 를 비롯하여 감명깊게 만났던 한국 수필의 정수리를 엮은 '조그만 가슴으로 큰 행복' 등 선생님이 권하는 책을 읽으며 가슴이 뜨거웠다.
그 날 우리는 짧은 가을해가 꼬리를 감추고 어둠이 깊도록 끝없는 대화를 이어가며 대취했다.
삼 년 만에 다시 마셔본다는 술에 마음도 도도해졌다, 선생님이 간절히 청하는 대로 좋아하는 노래 '찔레꽃'을 각기 다른 네 명의 가수가 부른 찔레꽃을 모처럼 젓 가락 장단에 흥도 도도하게 깊었었다. 가끔 일상에서 일탈하듯 술 속에 취한다는 것, 참 술꾼은 취한다는 것이 거룩함일 수 있는 날이었다.
첫 시집을 낸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연수동으로 나갔다.
'당신이 제일 행복한 날이 마음에 드는 사람과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는 날이라 했지' 하시며 최근 개업 한 시청 앞 조용하고 깨끗한 삼겹살집으로 갔다.
‘좋은 시는 당신의 삶과 당신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술 권하며, '당신 시 참 좋네' 하면 되는 겨. 하시며 대개 첫 번째 시집보다 두 번 째 시집이 실망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며 두 번째 시집은 신중하게 준비하시길 당부하셨다.
선생님도 나도 차가 없는, 아니 당신은 三無(운전면허. 자가용. 핸드폰)의 일생을 사셨으며, 우리는 현대판 뚜벅이로 느닷없이 길을 나서 기차로, 버스로, 택시로, 때론 길을 나서서 하염없이 말도 없이 걷기만 했던 살구꽃이 가로수로 환하던 소수에서 원남 보천으로 가는 호젓기만 하던 봄 날, 가을 단풍이 좋다며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으로,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으로, 돌아쳐 오며 주천장에서 막걸리로 멍하게 취하여 돌아오던 길 위에 날들 그립기만 합니다.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은 일 년에 한번 개방 한다는 문경 희양산 봉암사를 갔다가 희양산 그 깊은 계곡에서 알몸으로 玉水의 계곡에 몸을 담구고 부처님 보다 우리가 해탈한 탈속한 물건이 아니겠냐고,우리는 박장대소하며 통쾌해하던 그 봄 하늘이 정말 어제 속에 흘러간 꿈속에 꿈이었나 합니다.
충주 문협이 출발하고 중원문학이 창립될 초창기에 가장 젊은 문학청년으로 충주의 척박한 문학 토양을 활성시키기 위해 충주 문인협회 사무국장을 맡아 뜨거웠던 열정을 기억합니다.
문학인으로 마지막 중원문학회장을 삶의 한 과정으로 운명처럼 받아드리며 직책에 대해서 부담스러 하시며 겸손으로 3년을 마치자 홀가분 하신 듯 산사를 찾아온 가을 그 술자리가 제게 絶筆을 마음에 품은 자리였음을 저는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그 직책이 끝나자 당신은 오직 학교만 오가며 일체 사회생활도 대인 관계도, 수필도 스스로 감추었고 隱修者의 삶으로 일관하시어 우리는 문학의 道伴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은 없었으니 참으로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기에 애석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삶에 반듯한 예의로 아버지를 무려 7회에 걸쳐 면환(免鰥)* 시켜드리며 허허 하시던 모습과, 아들이 천주교 신부가 되기위해 떠나셨다는 날과. 갑작스런 아우의 주검으로 애통해 하시던 그 눈시울에 새삼 가슴 먹먹해 옵니다.
현대문학에 초회 추천을 마친 전도양양한 당신을 수필가 협회 회장이셨던 조경희 님께서 당신의 재능을 기억하시고 충주에 오시면 당신을 찾으시던 그 때도 당신은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삼십년 넘게 수필을 써 오셨으면서도 수필집 한 권 없이 홀연히 떠나셨어도
당신께서 남기신 珠玉같은 수필은 오롯이 남아 당신을 기릴 것입니다.
한줌의 흙이 얼마나 신비한지요. 한줌의 흙속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아무것도 없는 흙 속에서 풀이 나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고 우리도 그 한줌의 흙에서 태어나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2010년이 저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는 부푼 가슴에 상상할 수 없는 당신의 비보는 얼마 삶을 허망하게 하는지...
그때 문득 무슨 영감처럼 선생님이 궁금해 며칠 수소문하니 병원에 계신다 하고 며칠 있으면 퇴원하신다며 면회를 사양한다는 가족의 말만 믿고 그래도 한번 병문안이라도 가야지하다가 연락 다은지 사흘만에 당신의 부고를 접할 때 그 황망함과 망극함이 두고 두고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아물지 않는 상처는 어찌 합니까?
한줌의 흙이 얼마나 신비한지요 한줌의 흙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아무것도 없는 흙 속에서 풀이나고 나무가 자라고 풀꽃이 때 맞추어 찾아옵니다.
우리도 그 한줌의 흙에서 태어나 한줌의 흙으로 돌아 갑니다.
당신이 하늘공원 삭막한 겨울 바람속에 한줌의 재로 하늘로 가시던 그 날.
신년의 서설이 풀풀 나릴 때 하늘공원에서, 그 가을 산중에서 당신께서 읊으시던 또 한편의 경허스님 시가 절절합니다.
"산도 절로 푸르고 물도 절로 푸른데
맑은 바람 떨치니 흰 구름 돌아가네.
종일토록 바위 위에 노나니
내 세상을 버렸거니 다시 무엇을 바라리오."
경허의 제자이셨던 만공 스님이 다음과 같은 심사를 달랬던 시가 있습니다.
'송백은 다만 푸르고 꽃은 스스로 붉은데
기러기는 이미 가고 나만 홀로 남아 울고 있구나." .
금강경 사구게에 이르기를 범소유상은 개시허망이라, 약견제상이면 즉견여래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則見如來) 하였으니 저 광활한 우주에 손오공이 부처님의 손가락에 일원상 하나로 해인의 도장을 찍고 돌아 서듯 툴툴 털으소서.
이제 후일 다시 선생님을 회고하는 문집이라도 엮어서 편찬할 일은 후학의 몫으로 남아 아득하기만 하기에 이 글을 놓는 순간 저도 술집으로 걸음을 옮겨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천상에서 부디 평안하소서....
신묘년 낙엽지는 가을에 임 연 규 합 장
* 免鰥 : 예로 부터 내 아버지의 새 장가를 차마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