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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적 사진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지양해야 하는가
회화성·회화주의·사진의 고유성에 관한 종합적 검토
[1] 먼저 내려야 할 결론
1. 회화적 사진은 그 자체로 잘못된 사진이 아니다
(1) 사진에 회화적 성격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진의 고유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① 회화의 구도·색채·명암·서사를 이용하면서도 현실에서 온 빛, 실제 대상의 흔적, 촬영 순간, 우연한 세부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② 회화성과 사진성은 서로 배타적인 속성이 아니다.
③ 한 작품은 구성에서는 회화적이고, 조명에서는 영화적이며, 생성 방식에서는 사진적일 수 있다.
④ 동시대예술에서는 여러 매체의 성격이 한 작품 안에서 함께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지양해야 하는 것은 회화성 자체가 아니라, 사진을 예술처럼 보이게 하려고 회화의 겉모습을 별다른 이유 없이 모방하는 태도이다. (Rosalind Krauss, “Reinventing the Medium,” 1999; George Baker, “Photography’s Expanded Field”, 2005)
2. 판단의 핵심
(1) 회화적 사진을 판단할 때는 다음을 물어야 한다.
① 어떤 회화적 요소를 사용했는가.
② 그 요소가 작품의 주제에 왜 필요한가.
③ 회화의 단순한 모방인가, 사진과 회화의 차이를 이용한 것인가.
④ 회화적 형식이 사진의 현실성·시간성·우연성과 어떤 관계를 만드는가.
⑤ 회화적 표현을 제거하면 작업의 의미가 약해지는가.
회화적이어서 나쁜 것이 아니라, 회화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림처럼 꾸미는 것이 문제이다.
[2] ‘회화적’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
1. ‘회화적’은 하나로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1) 사진비평에서 ‘회화적(painterly·pictorial)’은 대체로 다음 의미로 사용된다.
① 사진의 구도와 공간 배치가 회화를 닮았다는 뜻
② 색채와 명암이 회화의 표현방식을 따른다는 뜻
③ 사진의 표면과 질감이 붓질·목탄화·판화처럼 보인다는 뜻
④ 실제 장면을 회화처럼 치밀하게 연출했다는 뜻
⑤ 사실 전달보다 분위기·감정·상징을 강조한다는 뜻
⑥ 역사적 사진운동인 회화주의(Pictorialism)에 속하거나 그 전통을 계승한다는 뜻
따라서 “이 사진은 회화적이다”라고만 말하면 불명확하다. 회화적 구도, 회화적 색채, 회화적 명암, 회화적 표면, 회화적 서사처럼 무엇이 회화적인지를 밝혀야 한다.
2. ‘회화적’은 ‘아름답다’와 같은 말이 아니다
(1) 다음 표현들은 서로 구별해야 한다.
① 아름다운 사진
② 구도가 안정된 사진
③ 색채가 풍부한 사진
④ 분위기 있는 사진
⑤ 회화적인 사진
⑥ 회화주의 사진
사진이 아름답거나 색이 풍부하다는 이유만으로 회화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진 자체의 프레임, 렌즈, 순간성, 세부와 빛을 통해서도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회화적이라는 표현에는 단순한 호감 이상의 근거가 필요하다. 그 사진이 회화가 발전시켜 온 화면 구성과 표현 원리를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3] 회화적인 사진의 구체적인 형식
1. 구도와 공간이 회화적인 경우
(1) 다음과 같은 화면구성을 뜻한다.
① 인물과 사물을 삼각형이나 대각선 구조로 배치한다.
② 화면에 앞·중간·뒤 공간을 단계적으로 조직한다.
③ 여러 인물의 자세와 시선을 서로 연결한다.
④ 우연히 포착한 것처럼 보이기보다 전체 장면이 완결되도록 구성한다.
⑤ 르네상스·바로크·낭만주의·역사화의 화면구조를 의식적으로 차용한다.
예를 들어 “인물들이 삼각형 구조로 배치되어 고전 역사화와 같은 회화적 구성을 이룬다”라고 써야 정확하다. 단순히 “구도가 좋으므로 회화적이다”라는 표현은 충분하지 않다.
2. 빛과 명암이 회화적인 경우
(1) 회화적 조명은 빛이 단순히 대상을 밝히는 기능을 넘어 화면과 감정을 조직할 때 사용한다.
① 어두운 배경에서 인물만 강하게 드러낸다.
② 명암 대비를 이용해 시선을 특정 지점으로 유도한다.
③ 빛을 사실적 환경광보다 상징적·극적인 장치로 사용한다.
④ 카라바조(Caravaggio)나 렘브란트(Rembrandt)의 명암법을 연상시킨다.
“인물만 강하게 떠오르는 조명이 바로크 회화의 명암법을 연상시킨다”는 구체적 표현이 “빛이 회화적이다”보다 정확하다.
3. 색채가 회화적인 경우
(1) 현실의 고유색을 정확하게 재현하기보다 색채 관계를 중심으로 화면을 만들 때 사용한다.
① 제한된 색상만 반복한다.
② 보색을 강하게 대비한다.
③ 특정 색을 화면 전체에 지배적으로 사용한다.
④ 색을 사물의 설명보다 감정과 분위기의 표현으로 사용한다.
⑤ 사진을 색면회화처럼 큰 색 덩어리로 조직한다.
그러나 단순히 채도가 높거나 색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회화적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색채가 화면의 구조와 의미를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해야 한다.
4. 표면과 질감이 회화적인 경우
(1) 사진이 기계적으로 선명한 표면보다 수공적이거나 그림 같은 표면을 보일 때 사용한다.
① 부드러운 초점
② 흐릿한 윤곽
③ 안개와 역광
④ 거친 입자
⑤ 질감이 강한 인화지
⑥ 붓·안료·잉크를 사용한 표면 개입
⑦ 수채화·유화·석판화처럼 보이는 인화 효과
이때 회화적이라는 말은 작품의 내용보다 사진 표면의 물질적·시각적 성질을 설명한다.
5. 장면과 서사가 회화적인 경우
(1) 사진가가 화면 전체를 그림처럼 설계하는 경우이다.
① 인물의 자세와 표정을 지시한다.
② 사물의 위치를 치밀하게 조정한다.
③ 여러 인물이 하나의 사건을 이루도록 구성한다.
④ 실제 순간을 우연히 포착하기보다 촬영을 위해 장면을 제작한다.
⑤ 한 화면 안에 과거·현재·상징·서사를 압축한다.
그러나 연출사진이라고 모두 회화적인 것은 아니다. 연출된 장면은 영화적·연극적·광고적일 수도 있다. 회화의 구도와 도상, 화면 전통을 실제로 사용해야 ‘회화적 연출’이라는 표현이 성립한다.
[4] 회화적 사진과 회화주의 사진의 차이
1. 회화적 사진
(1) 회화의 일부 특징을 가진 사진을 넓게 부르는 일반적 표현이다.
①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② 현대사진과 디지털사진에도 사용할 수 있다.
③ 하나의 역사적 운동에 소속될 필요가 없다.
④ 구도·색채·표면·서사 가운데 일부만 회화적일 수도 있다.
2. 회화주의 사진
(1) 회화주의(Pictorialism)는 19세기 말에 형성되어 20세기 초 국제적으로 확산된 역사적 사진운동이다.
① 사진을 단순한 기계적 기록이 아니라 예술적 표현수단으로 인정받게 하려 했다.
② 낭만적·이상적·상징적인 주제를 선호했다.
③ 부드러운 초점과 분위기 있는 빛을 사용했다.
④ 장면을 연출하거나 여러 네거티브를 결합했다.
⑤ 검 바이크로메이트, 브로모일, 포토그라비어 등의 인화법을 활용했다.
⑥ 인화면에 손으로 개입하여 작가의 개성과 수공성을 강조했다.
회화주의가 가장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시기는 대체로 188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이지만 지역에 따라 훨씬 오래 지속되었다. 따라서 회화주의를 정확히 1914년에 종료된 운동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MoMA, “Pictorialis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nternational Pictorialis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Pictorialism”)
3. 모든 회화적인 사진이 회화주의 사진은 아니다
(1) 두 개념을 동일시하면 오류가 생긴다.
① 제프 월(Jeff Wall)의 사진은 역사화 같은 구성을 사용하지만 역사적 회화주의 사진은 아니다.
② 디지털 사진이 유화처럼 보이더라도 회화주의의 예술관과 제작방식을 계승하지 않을 수 있다.
③ 단순한 소프트 필터나 흐린 초점만으로 회화주의 사진이 되지 않는다.
④ 역사적 회화주의는 시각적 스타일뿐 아니라 사진을 순수예술로 인정받게 하려는 운동과 담론을 포함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회화적 특성을 말할 때는 ‘회화적 사진’, 역사적 운동과 직접 연결할 때는 ‘회화주의적 사진’이라고 구분해야 한다.
[5] 회화주의는 왜 등장했는가
1. 사진을 예술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1) 초기 사진은 흔히 기계가 현실을 자동으로 복사하는 기술로 평가되었다.
① 카메라가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작가의 창조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② 회화처럼 손으로 직접 형상을 만드는 행위가 없다고 비판받았다.
③ 기록·과학·상업에는 유용하지만 순수예술은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회화주의 사진가들은 이러한 평가에 맞서 사진가도 장면·초점·인화·표면을 조절하여 자신의 감정과 해석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회화를 닮는 것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사진의 예술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역사적 전략이었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ictorialism in America”; “Faking It: Manipulated Photography Before Photoshop”)
2. 대표적인 작가와 방법
(1) 주요 작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회화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①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는 포토세세션과 『Camera Work』를 통해 사진의 예술적 지위를 주장하였다.
②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은 안료와 감광성 검을 여러 겹 칠해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의 야상곡을 연상시키는 색채효과를 만들었다.
③ 로베르 드마시(Robert Demachy)는 검 프린트와 브로모일 인화의 수공적 표면을 강조하였다.
④ 거트루드 케제비어(Gertrude Käsebier)는 인물과 가족을 상징적이고 이상화된 장면으로 구성하였다.
⑤ 헨리 피치 로빈슨(Henry Peach Robinson)은 여러 네거티브를 결합해 회화 같은 서사적 장면을 만들었다.
스타이켄의 《The Flatiron》 변형 인화들은 하나의 네거티브에서 서로 다른 색채와 분위기를 만들어 사진 인화가 단순 복제가 아니라 개별적인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Stieglitz, Steichen, Stran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Faking It”)
[6] 회화주의가 비판받은 이유
1. 사진이 회화를 모방해야만 예술이 된다는 생각
(1) 회화주의에는 역사적 공헌과 함께 한계도 있었다.
① 사진의 예술성을 회화와 얼마나 닮았는가로 증명하려 했다.
② 회화를 예술의 기준으로 놓고 사진을 그 기준에 맞추었다.
③ 사진의 선명한 세부, 광학적 기록과 즉각성을 부차적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④ 사진이 독립된 매체라기보다 회화의 낮은 단계처럼 보일 위험이 있었다.
⑤ 낭만적 분위기와 이상화가 현실의 구체성을 약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회화주의자가 동일한 태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회화주의 내부에도 세밀한 카메라 묘사를 중시한 입장과 수공적 개입을 중시한 입장이 공존하였다. 회화주의 전체를 단순히 ‘사진답지 못한 사진’으로 축소하는 것도 부정확하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nternational Pictorialism”)
2.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의 등장
(1) 1910년대 이후에는 사진이 회화를 닮지 않고도 독자적인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태도가 강해졌다.
① 선명한 초점
② 풍부한 세부와 계조
③ 사진적 프레임
④ 실제 사물의 형태와 구조
⑤ 과도한 수공적 조작을 줄인 인화
⑥ 현대 도시·기계·일상에 대한 직접적인 시선
폴 스트랜드(Paul Strand)는 포토세세션의 부드러운 초점과 회화적 인화에서 벗어나 그래픽 구조와 카메라의 묘사력을 강조하는 사진으로 이동하였다. 그의 작업은 회화주의에서 사진적 모더니즘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ree Masters of 20th-Century Photography”)
3.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도 중립적인 현실 복사는 아니다
(1) ‘스트레이트’라는 말을 아무런 선택과 조작이 없는 객관적 사진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① 사진가는 대상을 선택한다.
② 촬영 위치와 프레임을 결정한다.
③ 렌즈·초점·노출·인화지를 선택한다.
④ 현실을 기하학적 구조로 단순화할 수 있다.
⑤ 후반 조작을 줄였더라도 촬영 이전의 선택과 형식화는 남는다.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는 조작이 전혀 없는 자연적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의 광학적 묘사와 사진적 선명성을 미학적 가치로 삼은 하나의 역사적 양식이다. 따라서 회화주의는 인위적이고 스트레이트 사진은 완전히 객관적이라는 이분법도 잘못이다. (Susan Sontag, 『On Photography』, 1977; John Tagg, 『The Burden of Representation』, 1988)
[7] ‘사진의 고유성’은 무엇인가
1. 사진의 고유성을 선명함 하나로 한정할 수 없다
(1) 사진적인 특성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① 실제 대상에서 온 빛이나 물리적 신호의 등록
②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인과적 관계
③ 연속된 시간에서 특정 순간을 선택하는 절단
④ 넓은 공간에서 프레임 안쪽만 선택하는 배제
⑤ 촬영자가 알아차리지 못한 세부의 기록
⑥ 같은 이미지의 복제와 반복
⑦ 과거에 존재했던 대상이 현재 나타나는 시간성
⑧ 촬영자·피촬영자·관객 사이의 관계
따라서 흐릿한 사진이라고 사진성이 약한 것은 아니다. 움직임으로 생긴 흐림은 촬영 당시의 시간과 신체가 남긴 강한 사진적 흔적일 수 있다. 반대로 모든 것이 선명하더라도 사진의 조건을 아무런 질문 없이 관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1980; Philippe Dubois, 『L’Acte photographique』, 1983; Dawn M. Wilson, “Photography and Causation,” 2009)
2. 사진의 고유성은 하나의 외형이 아니다
(1) 다음과 같은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① 선명하면 사진적이고 흐리면 회화적이다.
② 순간 포착은 사진적이고 연출은 회화적이다.
③ 보정하지 않으면 사진이고 보정하면 회화에 가깝다.
④ 사실적으로 보이면 사진적이고 추상적이면 사진답지 않다.
⑤ 흑백은 사진적이고 컬러는 회화적이다.
사진성은 특정한 스타일이 아니라 실제 세계와의 접촉, 시간의 기록, 프레임, 장치, 우연, 복제가 작동하는 복합적인 방식이다.
[8] 회화적 사진은 언제 사진의 고유성을 약화하는가
1. 회화를 단순히 모방할 때이다
(1)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사진의 가능성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할 수 있다.
① 사진을 그림처럼 고급스럽게 보이게 하는 데만 집중한다.
② 흐림·안개·노을·색보정을 장식적으로 반복한다.
③ 회화적 분위기가 작업의 주제보다 앞선다.
④ 사진의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지워 막연한 아름다움만 남긴다.
⑤ 사진의 우연한 세부를 모두 제거하고 익숙한 미적 공식만 적용한다.
⑥ 회화와 닮았다는 사실만으로 예술성을 주장한다.
⑦ 왜 사진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 경우 사진은 회화가 이미 해온 것을 불완전하게 흉내 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회화적 효과가 작업의 의미를 만들지 못하고 예술적으로 보이게 하는 포장으로 남기 때문이다.
2. 그러나 반드시 사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 회화적 표현이 강하더라도 다음의 사진적 조건이 남을 수 있다.
① 실제 인물이 특정 장소에 서 있었다.
② 장면을 실제 공간에 제작하고 촬영했다.
③ 렌즈가 작가도 예상하지 못한 세부를 기록했다.
④ 연출된 장면과 현실적 흔적 사이에 긴장이 생겼다.
⑤ 촬영된 시간과 현재의 감상 시간 사이에 차이가 발생했다.
따라서 회화적 외양만 보고 사진의 고유성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작품의 생성 과정과 의미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9] 회화성이 사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경우
1. 회화와 사진의 차이를 이용할 때이다
(1) 회화적 형식은 다음과 같이 사진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① 고전회화의 이상적인 구도를 실제 인물과 공간으로 재연한다.
② 완벽하게 통제된 장면 안에 카메라가 기록한 우연한 세부를 남긴다.
③ 회화의 신화적 장면을 현실의 사회적 조건과 충돌시킨다.
④ 역사화에 나타난 계급·권력·성별의 시선을 현재의 사진으로 다시 검토한다.
⑤ 회화의 허구성과 사진의 사실성을 한 화면 안에서 충돌시킨다.
⑥ 그림처럼 보이는 장면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불편한 감각을 만든다.
이 경우 회화성은 사진을 회화로 위장하는 장식이 아니라 두 매체의 차이를 드러내는 비평적 장치가 된다.
2. 제프 월(Jeff Wall)의 사례
(1) 제프 월은 대형 사진을 회화처럼 벽에 제시하고 장면을 세밀하게 연출하였다.
① 역사화와 풍속화의 화면구성을 참고했다.
② 영화 제작처럼 배우·세트·조명을 조직했다.
③ 실제 촬영과 디지털 합성을 사용했다.
④ 일상처럼 보이는 장면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⑤ 현실과 허구, 우연과 연출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테이트(Tate)가 설명하는 타블로(tableau) 사진은 회화처럼 벽을 점유하도록 대형으로 제작되고 전체 장면이 하나의 자족적 화면으로 구성되는 사진이다. 이는 회화를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전시 규모와 서사구조를 사진으로 변형한 형식이다. (Tate, “Tableau”; Tate, “Capturing the Moment”; MoMA, “Jeff Wall”)
[10] 동시대예술에서 회화성과 사진성의 관계
1. 포스트미디엄은 매체 차이의 소멸이 아니다
(1)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포스트미디엄론은 아무 재료나 구별 없이 사용해도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① 회화·조각·사진의 순수한 경계는 약해졌다.
② 그러나 작품이 사용하는 장치와 관습의 차이는 여전히 중요하다.
③ 작가는 여러 매체를 결합하면서도 각 매체가 가진 역사적 기억과 기술적 조건을 의식해야 한다.
④ 매체는 하나의 재료가 아니라 기술·규칙·관습·전시방식이 결합한 체계이다. (Rosalind Krauss, “Reinventing the Medium,” 1999; 『A Voyage on the North Sea』, 1999)
2. 회화와 사진의 관계도 일방적인 모방이 아니다
(1) 동시대에는 두 매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① 사진은 회화의 구도·색채·타블로 형식을 사용한다.
② 회화는 사진의 잘린 프레임·흐림·순간성·스냅숏 구도를 사용한다.
③ 디지털 이미지는 회화·사진·영화의 특징을 동시에 결합한다.
④ 작품의 정체성은 한 매체의 순수성보다 서로 다른 매체를 어떻게 연결하는가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회화적 사진을 과거 회화주의의 반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같은 회화적 형식도 시대와 작업의 문제의식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11] 회화적 사진에 관한 대표적인 혼동
1. “초점이 흐리면 회화적이다”
(1) 반드시 그렇지 않다.
① 흐림은 회화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② 동시에 카메라의 움직임·노출시간·피사체의 이동이 남긴 사진적 흔적일 수도 있다.
③ 단순한 촬영 실패일 수도 있다.
④ 흐림이 어떤 원인과 의미를 갖는지 따져야 한다.
2. “연출했으므로 회화적이다”
(1) 연출과 회화성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① 영화도 장면을 연출한다.
② 연극도 인물과 공간을 연출한다.
③ 광고도 조명과 사물을 배치한다.
④ 회화적이라고 부르려면 회화의 구도·도상·색채·명암과의 관계가 있어야 한다.
3. “색이 아름다우므로 회화적이다”
(1) 아름다운 색과 회화적 색채는 다르다.
① 어떤 색면 관계를 구성하는지
② 특정 회화 사조를 연상시키는지
③ 색이 대상의 설명보다 감정과 구조를 만드는지
④ 작업의 주제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4. “보정하거나 합성했으므로 회화적이다”
(1) 보정과 합성만으로 회화성이 생기지 않는다.
① 초기 사진에서도 합성과 수작업은 존재했다.
② 보정은 사진의 기술적 한계를 교정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③ 정치적 선전이나 상업적 목적의 합성은 회화성과 다른 문제이다.
④ 결과가 회화의 형식과 의미체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Faking It”)
5. “회화적이면 사진답지 않다”
(1) 회화성과 사진성은 서로 다른 판단 축이다.
① 회화성은 화면을 조직하는 형식에 관한 판단이다.
② 사진성은 이미지의 발생, 시간, 흔적, 장치와 작동방식에 관한 판단이다.
③ 하나의 사진이 두 특성을 동시에 강하게 가질 수 있다.
6. “사진적이면 회화적이지 않아야 한다”
(1) 이것 역시 잘못된 이분법이다.
① 현실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사진도 회화적 구도를 가질 수 있다.
② 연출된 사진도 촬영 순간의 실제 흔적을 담는다.
③ 사진의 고유성은 다른 매체의 영향을 차단할 때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12] 비평문에서 ‘회화적’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방법
1. 모호한 표현
(1) 다음과 같은 문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① “이 사진은 회화적이다.”
② “색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③ “구도가 회화 같다.”
④ “분위기가 예술적이다.”
2. 구체적인 표현
(1) 다음과 같이 무엇이 회화적인지 밝혀야 한다.
① “인물들을 삼각형 구조로 배치하여 르네상스 제단화와 같은 안정된 구성을 만든다.”
② “어두운 배경에서 인물만 강하게 드러내는 명암법이 바로크 회화를 연상시킨다.”
③ “현실의 고유색보다 제한된 색면의 관계를 강조하여 회화적 화면을 구성한다.”
④ “부드러운 초점과 검 프린트의 수공적 흔적이 사진의 기계적 선명성을 약화한다.”
⑤ “여러 인물의 자세와 시선을 치밀하게 연결하여 역사화와 같은 서사를 만든다.”
⑥ “회화의 이상적 구도와 카메라가 기록한 현실적 세부가 충돌한다.”
3. 가치판단까지 나아갈 때
(1) 다음 단계의 질문이 필요하다.
① 회화적 형식이 작품의 주제와 연결되는가.
② 단순한 장식인가, 의미를 만드는 구조인가.
③ 사진의 현실성과 시간성을 강화하는가, 감추는가.
④ 이미 존재하는 회화의 관습을 반복하는가, 비판적으로 변형하는가.
⑤ 사진으로 제작해야 할 필연성을 만드는가.
[13] 실제 작업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1. 주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1) 다음과 같은 작업이라면 회화적 형식이 유효할 수 있다.
① 기억이 현실을 아름답게 바꾸는 과정을 다룬다.
② 가족의 역할과 관계를 하나의 무대처럼 보여준다.
③ 권력·계급·성별이 역사적으로 재현된 방식을 비판한다.
④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⑤ 일상의 장면을 역사화처럼 확대하여 의미를 부여한다.
⑥ 이상적인 이미지와 실제 삶의 차이를 드러낸다.
2. 다음과 같은 작업이라면 회화성을 줄이는 편이 나을 수 있다
(1) 사진의 직접성과 구체성이 중요한 경우이다.
① 사회적 현실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려는 작업
② 장소에 남은 흔적과 세부가 중요한 작업
③ 우연히 발생한 사건과 순간이 중요한 작업
④ 반복·유형학·아카이브의 객관적 형식이 중요한 작업
⑤ 감정적 분위기보다 관찰과 비교가 중요한 작업
그러나 이것도 절대적인 규칙은 아니다. 다큐멘터리 사진도 회화적 구성을 사용할 수 있으며, 연출사진도 현실에 대한 비판적 기록이 될 수 있다.
[14] 이론적으로 재검증한 최종 판단
1. “회화적 사진은 사진의 고유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는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1) 맞는 경우
① 사진이 회화의 겉모습만 모방한다.
② 회화와 닮았다는 사실을 예술성의 근거로 삼는다.
③ 사진의 시간·현실·우연·세부를 불필요하게 지운다.
④ 작업의 주제와 관계없는 아름다운 효과만 반복한다.
(2) 맞지 않는 경우
① 회화의 구성과 사진의 현실성을 의도적으로 충돌시킨다.
② 회화의 역사적 재현방식을 사진으로 비판한다.
③ 실제 장면을 연출하여 허구가 현실로 존재했던 순간을 기록한다.
④ 회화적 형식이 사진의 시간성과 존재감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2. “사진가는 사진적인 사진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절대적 원칙이 아니다
(1)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사진적인 것이 무엇인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② 선명함·직접성도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진 미학이다.
③ 흐림·연출·합성도 사진의 장치와 시간성을 탐구할 수 있다.
④ 동시대예술은 매체의 순수성보다 매체가 어떻게 선택되고 작동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⑤ 작품의 가치는 사진성을 얼마나 많이 포함했는가가 아니라 형식과 의미가 얼마나 필연적으로 연결되는가에 달려 있다.
[15] 최종 결론
1. 회화적 사진은 지양해야 하는가
(1) 회화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양할 필요는 없다.
① 회화성은 사진의 결함이 아니라 하나의 표현 자원이다.
② 다만 회화의 외관을 예술적 권위처럼 빌려오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③ 사진이 회화보다 부족해서 회화를 닮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④ 사진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회화와의 관계를 모두 끊어야 한다는 순수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2. 가장 중요한 기준
회화적 사진의 가치는 회화와 얼마나 닮았는가가 아니라, 회화적 형식이 사진의 현실·시간·흔적·우연성과 만나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회화적 구도와 색채가 단지 사진을 고급스럽고 예술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식이라면 줄이는 편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사진과 회화의 차이를 드러내고, 현실과 허구·순간과 연출·기록과 상상 사이의 긴장을 만든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가 물어야 할 것은 “회화적 사진을 버리고 사진적인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가 아니다.
“내가 사용한 회화적 형식은 왜 필요하며, 그것이 사진만의 현실성·시간성·우연성과 어떤 관계를 만드는가?”
이 질문에 작품의 형식과 내용으로 답할 수 있다면, 회화적 사진도 사진의 고유성을 충분히 살리는 동시대적 사진작업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