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진솔한 사랑을 베푸는 고을, 음성/ 전 성훈
귀에 익은 지명이지만 그 지방의 역사적 유물과 문화유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찾아갈 때는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6월 도봉문화원 인문학기행 장소인 충청북도 음성(陰城)도 그런 곳의 하나다. ‘음성꽃동네’와 ‘감곡매괴성당’을 제외하고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음성은 일찍이 진국(辰國) 땅으로 삼한시대에는 마한 54국 중 지침국에 속했다. 이곳에 전해 내려오는 솟대는 마한시대의 국가 풍속인 소도(蘇塗)에서 연유되었다. 삼국시대는 백제, 고구려의 지배를 받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음성현으로 개칭되었다.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음성군으로 바뀌었다.
행정구역 명칭인 음성군의 이름이 음기(陰氣)가 세다고 하여 이 고장 사람들은 구전으로 부르던 옛 지명인 설성(雪城)을 좋아하여 설성공원을 비롯하여 점포나 가게이름에 ‘설성’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고 한다.
음성으로 내려가는 길, 하늘이 쾌청하여 마치 청명한 가을 같았다. 하늘에서 내려 쏟아지는 햇볕이 길 떠나는 나그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하지만 기분 좋은 느낌도 잠시, 곧바로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인 즉, 탐방순서를 이야기하는 해설사가 한국동란 당시 ‘감우재’전승기념관을 소개하며 국군을 ‘남한군’이라고 여러 차례 말하는 것이었다. 최전방 철책선에서 군대생활을 한 나는 국군을 ‘남한군’이라고 부르는 게 매우 불쾌하여 언짢은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6.25 전쟁 중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던 ‘남부군’에 빗대어 국군을 ‘남한군’이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도 이상하게 변해가는 세상이라 남과 북의 호칭에 대해 우리사회 일부사람들의 의식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음성에 도착하여 처음 찾은 곳은 무극전적국민광광지이다. 울창한 소나무와 잣나무 숲에 둘러싸인 충혼탑, ‘감우재’ 전승기념관, 무공수훈자 공적비 등을 둘러보았다. 전승기념관 벽면에는 6.25전쟁 중 산화한 733위 영현의 이름과 “ 이곳은 6.25 전쟁 첫 전승지다. 우국충정의 투사들이여, 조국의 이름으로 태극기 총 끝에 매고 우리는 싸워서 이겼다. .... 무궁화 향기 속에 이곳에 모였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두 번째 찾은 곳은 UN사무총장을 지냈던 반기문 생가로, 반기문 기념관과 반기문 평화기념관으로 나뉘어있었다. 나라를 빛낸 인물을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알리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나 인위적이고 자연스럽지 못 한 것 같았다. 00기념관, 00평화기념관 식으로 중복하여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은 커다란 단지를 조성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단지 안에 있는 ‘반씨 세계도’, 반 사무총장 직계조상의 세계도(世系圖)를 커다란 벽을 세워 앞면에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뒷면에는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회반죽의 흔적과 철근조각이 삐죽하게 나와 있어 참으로 볼썽사나웠다. 문중이나 공사 관계자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안타까웠다.
반기문 생가단지를 벗어나 음성향교를 찾아가니 향교 교장(典敎)직무를 맡고 있는 분과 담당자 분이 유림 전통 복장 차림으로 나와 설명해주었다. 그분들의 모습에서 근본에 충실하고 손님을 배려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가섭산(迦葉山) 미타사(彌陀寺)를 찾았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울창한 숲길이라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미타사는 아미타여래를 본존불(本尊佛)로 모시어 극락전이 다른 절들의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다.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모두 구제하고 최후에 극락으로 올라가겠다는 지장보살, 절 아래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지장보살입상(41m)이 있다. 지장보살 입상 있는 곳 아래에는 불자들의 공동묘지인 납골당을 조성해 놓았다.
절집을 나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감곡매괘성당이다. 제대 위에 모신 성모상, 성모님 발위에 붉은 장미가 있어, 장미 꽃다발이란 의미의 매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성당이다.
6.25 전승관, 반기문 기념관, 음성향교 그리고 미타사와 성당을 차례로 찾은 음성으로 떠난 인문학 기행, 음성 출신으로 ‘거지 성자’로 불렸던 고 최기동 스테파노 할아버지가 말씀하였던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축복이다.”라는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6월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숭고한 계절이다. 지금 이 순간 자유를 만끽하며 제멋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먼저 가신 ‘님’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이다.
단 한 번이라도 그분들을 기억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는지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작은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고 어렵고 힘든 역경에 빠진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살아간다면 먼저가신 6월의 영령들을 기억하는 길이 될 수 있을는지. (2019년 6월)
미타사 극락전에서
속세의 인연을 끊고 부처를 만나러 가는 길
절집을 찾아 깊은 산골 소나무 숲길을 걸으니
하늘은 높고 구름은 보일 듯 말 듯하네.
부처의 첫 제자 마하가섭을 기려
가섭산이라 부르는 깊은 산속
중생의 극랑왕생을 위해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팔백년 고찰 미타사
부처님 말씀 한 마디 마음의 양식 삼아
극락전 앞뜰 중생의 발걸음은 분주하고
구름 위 하늘로 날아가는 이름 모를 산새처럼
내 마음 훨훨 날아 극락전 지붕위에 앉고 싶어라.
미타사 마애여래입상
억겁의 세월 모진 풍파 속에
말없이 서 있는 마애여래여!
우는 듯 웃는 듯 미소 띤 그 얼굴
높은 콧대는 세월 따라 비바람에 깎여
천형을 받은 사람처럼 뭉뚱그려진 콧등이 되고
가사 입은 손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네
철없는 무지렁이 중생은 동전을 바위에 붙여
소원을 빌며 마애여래의 염력을 시험하니
무수한 세월 여래의 뜻을 깨닫기 기원하는
중생에게 빛을 내려주고 길을 밝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