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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 : ㅊ, ㅋ, ㅌ, ㅍ, ㅎ
ㅊ
찰떡도 한 두끼
좋은 음식도 한 두끼지, 계속 같은 음식을 먹으면 싫증이 난다.
어떤 마누라가 어느 날 아침 남편에게 떡국을 끓여 주었다.
남편이 오랫만에 먹는 별식이라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니까 그 후 내리 보름 동안 떡국만 끓여주더란다.
찰떡에 조청 궁합
옛날엔 찰떡도 귀한 음식인데 거기에 달달한 조청(곡류를 엿기름으로 당화시킨 후에 오랫동안 고아서 걸쭉하게 만든 묽은 엿)까지 찍어서 먹는다면 최고라 하겠다.
남녀가 사주나 성격, 그리고 잠자리에 이르기 까지 이심전심으로 통하면서 호흡과 손발이 척척 맞아서 잘 어우러진다면 그야말로 일심동체다. 찰떡에 조청은 어느 하나도 부족하지 않고 맛있는데, 이 둘이 같이 있는 것처럼 모든 궁합이 딱 들어맞아서, 맛있는 찰떡에 맛있는 조청이 딱 달라붙은 것 같이 아주 기막히게 좋다는 뜻이다.
참새 굴레 씌우겠다.
얼마나 약은지 날아다니는 참새를 꾀어서 굴레를 씌우겠다.
김선달에 대한 평안도 사람의 평은 나쁜 놈이긴 해도 재간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루는 김선달이 여러 사람과 길을 가는 중인데 동행 하나가 물었다.
"임자, 저기 가는 저 여자 물건을 볼 수 있겠는가?"
김선달은 "거야 쉽지."하며, 그 여자한테로 달려가서 팔을 잡으며 "가자."고 했다.
여자가 왜 이러느냐고 하자 김선달이 말했다.
"당신 물건이 두 개 있다고 해서 관에서 잡아 오라구 해서 잡아 갈라고 그런다."
여자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야요, 난 하나밖에 없어요."
"두 개라는 말을 듣고 왔는데 왜 안 가겠다는 거야? 가자."
"자, 보라우요. 두 갠가?"
여자는 급해서 치마를 걷어 보이려 했다. 그러나 김선달은 말렸다.
"나 혼자 보면 증거가 안 되니 저기 있는 사람들 앞에서 보여야 한다."
여자는 결국 여러 사람 앞에 가서 치마를 걷으며 "자, 보라구요. 두 갠가 한 갠가?" 하더란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파한다.
세 번만 참으면 살인도 피할 수 있다.
옛날에 어떤 가난한 사람이 부지런히 일해서 부자가 되었으나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뒤 늦게 글을 배웠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앞에 배운 글을 자꾸 까먹어서 선생은 인지위덕(忍之爲德) ; 참는 것이 큰 덕이다)이라는 글만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마실을 가서 밤새도록 놀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마누라가 웬 사내 녀석을 끼고 자고 있었다.
이 사람은 화가 나서 칼을 꺼내 연놈을 찔러 죽일까 하다가 인지위덕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꾹 참고, 자는 마누라를 깨워 저 사내는 누군가 하고 물었다.
마누라가 "야야, 일어나. 네 형부 오셨다." 하며, 깨우는데 보니까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
사촌 처제가 다니러 왔다가 날이 더워서 머리를 감고, 풀 상투처럼 머리를 올리고 잤는데, 얼른 보기에는 남자처럼 보인 것이었다.
이 사람은 그 제서야 인지위덕이란 글 때문에 생사람을 안 죽이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선생님에게 감사하다며 쌀 열 가마를 보냈다고 한다.
처가살이가 굶는 내 집만 못하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안하는 것이 처가살이로, 도무지 할 짓이 아니라는 말이다.
옛날에 한 사내가 처가살이를 하는데 장인 장모가 미워해서 별난 음식을 해먹어도 사위 모르게 해먹곤 했다.
어느 날 장인 장모는 떡을 해먹고 싶으니까 사위더러 사냥이나 다녀오라고 했다.
이 사위가 사냥을 막 나가는데 색시가 가만히 제 서방을 불러 "당신 몰래 떡 해먹으려고 사냥을 보내는 것이니 사냥 다 하지 말고 좀 일찍 들어오시오." 하고 귀띔을 해줬다.
사위는 사냥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왈칵 열었다.
갑자기 사위가 들어오니까 장인은 떡을 선반에 감추고 장모는 떡 함지를 치마 밑에 감추었다.
장인이 무안해서 "벌써 갔다 오나? 그래 사냥은 어떻게 됐어?" 하고 묻자, 사위는 "사냥 말입니까? 예, 말씀드리지요. 매가 꿩을 쫓아가니까 꿩은 장모님 치마 밑으로 떡 함지 들어가듯이 숨고, 매는 장인이 선반에 떡 올려놓듯이 나무에 올라가 앉습디다." 하더란다.
처녀 젖가슴 만지듯 한다.
남자 경험이 전혀 없는 처녀와 관계를 맺으려면 부드럽고 아주 조심스럽게 만져야 하듯이, 여자를 대할 때는 조심스럽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해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평범한 여자에게 정력을 자랑하려고 우악스럽게 덤비면 관계가 깨어지거나 될 일도 그르친다.
* 여자와 묵은 살살 다뤄라.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아무리 큰일도 작은 한 걸음으로 시작된다.
개성상인이 후배 상인들을 기르는 방법은 아주 독특했다고 한다.
거상 앞으로 장사꾼이 될 희망자가 오면 삼사 년 동안 숙식만 제공하고 무보수로 방 청소, 마당 쓸기, 담배 불 심부름 등, 각종 잔심부름만 시키고 상품 교육이나 상술 같은 것은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다가 몇 년 부려보는 동안에 상인으로서 대성할 재질이 보이면 돈 약간을 빌려주어 황해도 금천의 시벌리 장에 가서 장사를 시킨다.
금천의 시벌리는 수안 곡산 등지에서 나오는 곡물의 집산지이고, 사람들이 순박해서 이해관계를 심하게 따지지 않는 고장이다.
그래서 개성상인의 풋내기가 상품 선별과 상술을 익히는데 아주 적절한 고장이었다.
이렇게 해서 상인다운 재질을 발휘하면 비로소 큰돈을 내주고 도회지로 보내 큰 장사를 시켰다고 한다.
첫날밤 신랑을 배 위에도 못 올려놓겠다.
여자가 무척 수줍음을 타는 것을 두고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배 위에 못 올려놓은 것은 여자가 약하디 약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실상 여자가 올려놓은 것이 아니라 남자가 올라가는 것이겠지만, 그것도 못 받아들일 여자가 얼마나 될까. 그런 여자가 있다고 해도 처음이니까 그러려니 하겠다.
청기와 장수
일을 저 혼자만 독차지하려고 남한테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옛날에 어느 욕심쟁이가 청기와 굽는 비법을 발견했는데, 그 비법을 저 혼자만 알고 아들한테도 알려주지 않아서 결국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촌닭이 관청닭 눈 빼먹는다.
어수룩해 보이는 시골 사람이 뺀질뺀질한 도시 사람을 속일 때 쓰는 말이다.
옛날에 서울 사람이 두메산골에 사는 사돈을 찾아갔다.
시골 사돈은 서울 사돈이 살이 팅팅하게 찐 것을 보고 같이 사냥 가자고 했다.
서울 사돈은 멋도 모르고 따라갔다.
시골 사돈은 첩첩 산중으로 들어가더니 가죽망태기를 내려놓고 서울 사돈더러 이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서울 사돈이 망태기에 들어가 앉자 시골 사돈은 망태기를 높은 소나무에 추켜 매달더니 땅에다 끝이 뾰족한 말뚝을 무수히 박아 놓고 집으로 가버렸다.
날이 어두워지자 서울 사돈은 무서워 떨며 "사람 살려!" 하고 악을 썼다.
사람 소리가 나자 늑대, 살쾡이, 호랑이 등 산짐승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사람을 잡아먹겠다고 뛰어 오르고 뛰어 오르고 하다가 말뚝에 꽂히고 바위에 부딪쳐 죽었다.
다음날 아침 시골 사돈이 와서 죽은 짐승을 보고 좋아라 하며 서울 사돈을 내려놓고 "우리 사돈 수고했소." 하더란다.
치고 보니 삼촌이라.
심한 짓을 하고 보니 그럴 수 없는 사이처럼, 본의 아니게 실례했다는 말이다.
수호지에 보면 사람을 죽여 그 고기를 파는 십자파 주점 얘기가 나온다.
하루는 주점 주인이 살찐 중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술에다 몽혼약을 타서 먹였다.
그런데 쓰러진 중을 잡으려고 옷을 벗겨보니 등에 꽃무늬가 새겨 있거든, ‘아, 이 사람이 그 유명한 화화상 노지심이로구나.’ 하고 주인은 해독약을 먹여 노지심을 살려 놓고 사과를 했다.
침 먹은 지네
지네는 담배 피우는 사람의 침을 먹으면 힘을 못 쓰는 것처럼, 기운을 못 쓰고 빌빌거리는 사람을 말한다.
옛날에 평양 연광정 밑에 한 홀아비가 살았는데, 집이 가난해서 신을 삼아 겨우겨우 먹고 살았다.
어느 날 밤에 신을 삼다가 밖을 내다보니 웬 고운 색시가 연광정을 들여다보고 갔다.
그런데 그 색시는 다음날 밤에도 오고 또 그 다음날 밤에도 왔다.
이거 무슨 사연이 있구나 하고 홀아비는 뒤를 밟았다.
색시는 외딴 골짜기 속의 조그만 집으로 들어갔다.
홀아비는 하룻밤 묵어가자고 말을 붙여서 그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색시가 마침 혼자 사는 여자여서 이후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같이 살았다.
그런데 하루는 홀아비가 사랑방에 있느라니, 홀아비의 아버지가 찾아와서는 그 색시는 사람이 아니라 지네이니 담배 먹은 침을 요강에 모아 놓았다가 색시 얼굴에 부으라고 말했다.
홀아비는 담배 먹은 침을 모아 두었다가 색시에게 끼얹으려고 했다.
그러나 같이 산 정 때문에 차마 끼얹지를 못하고 오히려 아버지가 죽이라고 하더라는 얘기를 다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색시는 자기 사정 이야기를 했다.
"나는 지네가 맞아요. 그렇지만 여기 왔던 영감도 당신 아버지가 아니고 연광정에 사는 구렁이랍니다. 구렁이와 나는 둘 중에 하나가 사람이 되면 나머지 하나는 죽는데 내가 당신하고 살아서 사람이 될 것 같으니까 나를 죽이려고 매일 찾아오는 거랍니다."
홀아비는 그럼 왜 매일 밤 연광정에 왔었느냐고 물으니까 색시는 구렁이가 죽었나 살았나 보느라 갔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음날 연광정에 가보니 구렁이는 죽어 있었다.
이에 신랑은 비로소 안심하고 고운 색시하고 일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ㅋ
코 막고 답답하단다.
제가 일을 그르쳐 놓고 답답하단다.
옛날에 소금장수 하나가 산골에 가서 소금을 파고 나머지는 어느 집에 맡겨두었다.
그러나 다음날 가보니 사람들이 소금을 다 훔쳐가고 빈 가마니만 남아 있었다.
소금장수는 ‘야, 이거 남한테 맡기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고 그날 팔고 남은 소금을 개울물 깊은 곳에 담가 두었다.
다음날 가보니 소금은 하나도 없고 물 위에 빈 가마니만 둥둥 떠 있거든, 그러니까 소금장수는, ‘산골놈들 참 무섭다. 물속에 감춰둔 소금을 어떻게 알고 다 채가고 빈 가마니만 내치고 갔지?’ 하더란다.
코 아래 진상이 제일
코 아래 입으로, 즉 먹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이다.
옛날에 한 나무에 사는 꾀꼬리와 뻐꾸기와 따오기가 서로 노래를 제일 잘 부른다고 다투다가 두루미에게 판정을 받기로 했다.
따오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가장 노래를 못 부르는 것 같아서 징금치라는 물고기를 구해 가지고 몰래 두루미에게 바쳤다.
노래자랑 하는 날이 되었다.
맨 먼저 꾀꼬리가 부르자 두루미는 "네 노래가 듣기는 좋다마는 어째 기생 소리 같다." 고 했다.
그 다음에 뻐꾸기가 부르자 두루미는 "네 소리는 작아서 안 되겠다." 고 했다.
마지막에 따오기가 부르자 두루미는 "야야, 네 소리는 남자답게 씩씩하다." 하며 제일 잘했다고 칭찬하더란다.
콩 볶은 것과 기생첩은 옆에 두고는 못 견딘다.
숱한 음식에 입이 버려진 요즈음 사람이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옛날에 가장 좋은 간식거리는 볶은 콩이었다. 그 고소한 맛이란 곁에 두고 어찌 안 먹고 배기랴. 남자가 좋아하는 온갖 교태와 성교의 기술을 가진 기생첩도 마찬가지여서 곁에 있는데 어찌 치근덕거리지 않을 수 있으랴.
볶은 콩 주어먹듯 하고야 말 것이 기생첩이라는 말이다.
큰 도둑이 좀도둑 잡는 시늉한다.
큰 도둑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피라미 도둑 잡는 시늉을 한다.
옛날에 한 관리가 도둑을 심문했다.
"네가 도둑질 하던 일을 말해 보라."
도둑은 짐짓 모르는 체하면서 물었다.
"무엇을 도둑이라 합니까?"
"네가 도둑인데 그것도 모르느냐? 궤짝을 열어 재물을 훔치는 것을 도둑이라 한다."
도둑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제가 어찌 도둑일 수 있겠습니까? 당신 같은 관리가 진짜 도둑입니다.
유생이 첩괄을 읽으면서 일찍이 고금을 상고하거나 천인의 이치를 연구하여 국토를 경영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베풀 것은 생각도 않고, 밤낮으로 정치권력과 손잡아 일확천금할 것만 바랍니다.
아비와 스승이 가르치는 것과 친구들에게 배우는 것도 도둑질을 익히는 것뿐입니다. 관복을 입고 홀을 잡고 높은 자리에 당당히 앉으며, 아전들이 옆에 늘어서고 하인들이 아래에서 옹위하여 존엄이 마치 천제와 같습니다.
벼슬은 이를 따라 나오고 인사는 뇌물로써 이루어집니다. 거호가 한낮에 살인을 하여도 뇌물꾸러미가 한번 들어가면 법이 어찌 있으며, 황금에 권력이 있으니 백일도 빛을 잃게 마련, 다시 나와서 의기양양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입니다.
마을의 천한 백성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벌을 돈으로 속죄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가난의 고초를
겪어서, 머리는 흩어지고 살갗은 깎여서 집칸도 유지하지 못하고 처자를 팔 지경에 이르러 바다에 빠지고 구렁에 묻힙니다. 그래도 당신들은 살피고 근신할 줄 모르니 신이 노하고 사람이 원망하여도 돈의 신령스러움이 하늘에 통하여 그 벼슬의 명예가 크게 일어나고, 큰 저택은 구름처럼 이어 있고, 노래와 풍악 소리는 땅을 울리고, 종들은 벌떼 같고 계집들은 방에 가득하니, 이것이 참으로 천하의 큰 도둑입니다.
땅을 파고 지붕을 뚫어 남의 돈 한푼을 훔치면 곧 도둑으로 논죄합니다. 그러나 관리들은 팔짱을 끼고 높이 앉아 수만금을 긁어모으면서도 오히려 벼슬의 명예는 잃지 않으니, 큰 도둑은 못 본 체하고 민간의 거지들과 좀도둑만 문죄하시는 것입니까?"
관리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 즉시 도둑을 석방했다고 한다.
* 첩괄 : 과거시험의 문제집
ㅌ
터진 꽈리 보듯 한다.
사람이나 물건을 아주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 중요시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꽈리 : [비슷한 말] 고랑채ㆍ등롱초ㆍ산장(酸漿)ㆍ왕모주ㆍ홍고랑ㆍ홍낭자.
가짓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집 근처 마당에 관상용으로 심어서 기르는 꽈리의 키 높이는 40~90cm며, 여름이 되면 하얗고 작은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붉은 주황빛의 주머니가 달리는데, 속을 헤집어보면 윤기가 흐르는 작고 단단한 빨간색 열매가 들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껍질은 점차 쪼글쪼글해지다가 꽃대가 남고 열매만 보이게 된다. 잎과 뿌리, 열매는 약용으로 쓰인다.
꽈리 열매의 맛은 시큼하면서 달짝하여 예전엔 어린 아이들이 꽈리를 갖고 놀다가 열매는 먹고 껍질은 피리로 썼다. 하지만 줄기와 잎은 쓴맛이 나며, 특히 잎은 아무런 처리 없이 먹으면 설사와 배탈을 유발할 수 있는 독초이다.
나이가 든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에겐 주황색 껍질로 둘러싸인 꽈리 열매에서 씨를 빼내고 껍질을 잘근 깨문 뒤, 후~ 불면 “꽈악, 꽈아악” 하는 소리를 내던 놀잇감으로 기억할 것이다.
옛날 마당 근처에 피어난 꽈리를 갖고 피리 소리를 내면서 놀던 추억이 담긴 열매가 꽈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꽈리는 주로 어른들이 관상용으로 심는 편인데, 꽃과 열매 껍질이 크고 아름다우며 윤기가 흐르는 열매가 몹시 예뻐서 심어 놓으면 보기가 좋다.
이런 꽈리는 등불을 닮았다 해서 ‘등롱초’라고도 불렀다.
꽈리와 관련된 전설도 있다.
옛날에 꽈리라는 소녀가 살았는데, 노래를 아주 잘 불러서 온 마을에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소녀는 늘 노래를 마치고서 아주 수줍어하여 칭찬하는 말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곤 했다.
그렇지만 그 소문은 고을 원님의 귀에까지 들어갈 정도였는데, 어느 부잣집의 처녀가 이 소문을 듣고 소녀를 크게 질투하였는데, 어느 날 꽈리는 마을의 커다란 잔치에 초대 받아 원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부잣집 처녀는 질투심에 부들부들 떨면서 고을의 불량배들을 모아 노래 부르길 방해할 것을 주문했다.
꽈리가 잔치에서 노래를 부르려는 찰나, 불량배 몇몇이 끼어들어 큰 목소리로 “어휴, 저 얼굴 좀 봐라, 노래도 못 부르는 것이 낯짝도 저 모양이라니, 쯧쯧쯧...” 하며, 그녀에게 무안을 주었다.
꽈리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땅만 쳐다보다가 도망을 쳤고, 그날 이후로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다.
소녀가 죽고 얼마 안 가서 소녀의 무덤가엔 빨간 주머니가 달린 풀이 자라났다.
열매 껍질의 모양이 점점 빨개지는 것이 수줍어하던 꽈리를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풀을 꽈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에는 이것을 불면 꽈리처럼 노래를 잘 부르게 된다는 소문이 돌아서 그때부터 마을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이것을 입에 물고 불어서 소리가 나게 했다.또한 꽈리와 관련된 '꽈리 속파기 노래' 가 있는데, 꽈리 껍질의 속을 파내는 데서 유래한 노래라고 하며, 꽈리는 뱀이 개구리를 먹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아이들이 불고 있으면 뱀이 나타나서 위험하다며, 어른들이 나서서 그만두게도 하였다.
꽈리 모양을 닮은 것에 '꽈리'를 붙여서 그 모양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의학에서는 허파꽈리라는 말이 쓰이며, 꽈리를 닮아 쭈글쭈글한 풋고추를 꽈리고추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툭 내민 입을 놀리는 투로 꽈리주둥이라고 하기도 한다.
토끼도 세 개의 굴을 판다.
토끼도 자신을 위해 굴을 셋이나 파듯이, 사람은 만일을 대비해서 미리 방도를 세워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맹상군의 식객이었던 풍환은 맹상군을 위하여 세 개의 굴을 팠다고 한다.
첫째는 맹상군의 식읍인 설 땅에 있는 채무자들과 소작인들의 빚을 과감하게 탕감해준 것이다.
맹상군은 화를 냈지만 백성들은 감격하여 나중에 맹상군이 제나라 왕에게 쫓겨났을 때 그들 일행을 보호해 주었다.
둘째는 위나라에 찾아가 천하 인재인 맹상군을 중용하라고 권한 것이다.
위나라에서 맹상군을 쓰려고 하자 제나라 왕은 두려움을 느끼고 맹상군을 다시 불러들여서 재상으로 앉혔다.
셋째는 설 땅에 선대의 종묘를 세우도록 한 것이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식읍에 있는 이상 제나라 왕(맹상군의 형)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풍환은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방도를 맹상군은 재상의 자리에 있는 수십년 동안 전혀 화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마련하였으므로
토끼를 다 사냥개를 삶는다(토사구팽 兎死狗烹).
필요할 때는 잡으면 중히 쓰다가 볼장 다 보면 버린다는 말이다.
유방은 항우와 싸울 때 한신을 중히 썼지만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는 한신을 죽였다.
한신은 죽으면서 바로 이 말을 남겼다.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통부처도 첩이라면 등을 돌린다.
통부처란 품질이 낮은 놋쇠로 만든 부처로서 가치 없는 존재로 생명도 없고 볼품도 없는 통부처 조차 첩이라면 외면해 버린다는 정서를 말하고 있다.
세련되게 만들지 않고 거칠고 투박하게 만들어진 면에서 통부처와 돌부처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통부처건 돌부처건 첩이라면 모두가 외면한다니 그야말로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
* 시앗(남편의 첩)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눕는다.
투기 없는 아내
질투를 안 하는 아내는 이 세상에 없다는 말로서, 이 세상엔 없는 것이 없이 다 있다는 말이다.
당태종 때 사공 벼슬에 있던 방현령의 부인이 투기가 심했다.
방현령이 부인에게 쩔쩔매는 것을 보고 늘 안타까워하던 태종은 하루는 그 부인을 불러 "내가 지금 네 남편한테 첩을 하나 내려주겠다. 자, 네가 첩을 받아들일래, 아니면 이 독주를 마실래?" 하고 가짜 독주를 내밀었다.
그러자 부인은 "저는 죽으면 죽었지 첩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며 서슴없이 독주를 마셔 버렸다.
태종은 나중에 방현령을 보고 "야,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너는 얼마나 무섭겠냐?" 하더란다.
타는 닭이 꼬꾜하고 그슬린 돼지가 달음질친다.
타죽은 닭이 살아나 꼬꾜 하며 울 수도 있고 목을 따서 불에 그슬린 돼지가 달음박질을 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수도 있으니 마음을 너무 놓지 말고 조심하라는 말이다.
ㅍ
파총(把摠)벼슬에 감투 걱정한다.
중요하지 않은 파총을 하는데 감투 걱정을 한다는 말이니, 필요 없는 걱정을 한다는 뜻.
이처럼 파총 노릇하라는 말만 듣고 진작 감투 걱정부터 한다는 말이니, 하잘 것 없는 일을 하는 데 필요 없는 과분한 걱정을 한다는 뜻이라며 파총의 직급을 비교적 하급 관리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면 파총이 어떤 직급일까?
파총은 군영의 종4품 무관직으로 종4품이면 요즘의 4급 공무원 정도로 결코 하위직이 아니다.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했던 직급이 정3품 당상관이었으며, 그 전에 지냈던 직급이 발포만호로서, 그 만호(萬戶)의 급수가 종4품 무관직이었다.
그리고 만호(萬戶)는 말 그대로 한 고을의 집이 1만호쯤 되는 규모로, 1호에 가족이 5명이면 5만 명이 사는 큰 고을을 권역으로 하는 상당히 높은 대단한 직급이다. 따라서 만호 급의 종4품 벼슬이 다스리는 규모를 보잘것없는 하급 관리라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해석이다.
그래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이니 만큼 그런 높은 벼슬인 파총으로 임명되니 능력이 있어도 걱정되기 마련인데, 만약에 능력이 없다면 얼마나 걱정이 되겠는가?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높은 벼슬을 맡게 되니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말로 보는 게 올바른 해석이 될 것이다.
아니면 벌써부터 더 높은 벼슬을 탐낸다는 말로 해석이 될 수도 있겠다.
팔장끼는 여자는 색정이 강하다
인간의 행동 중에 팔장을 끼는 것은 심리적으로 권위 표현의 몸짓이다. 따라서 여자가 팔장을 끼는 것은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로 사랑에도 적극적일 것이므로 색정이 강할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관상학에서는 여자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대부분 색정으로 몰고 간다.
팔준마라도 주인을 못 만나면 삯마로 늙는다.
팔준마는 중국 송나라 때의 여덟 마리 명마인데, 이처럼 천하의 인재도 주인을 못 만나면 평범하게 늙는다는 말이다.
옛날에 백리해란 사람이 초나라에서 말을 키우며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이때 진나라 임금이 백리해가 인재라는 것을 알고 신하에게 물었다.
"과인이 많은 폐백을 초나라에게 주고 백리해를 보내 달라고 하면 초나라가 보내줄까?"
"그러면 백리해는 영영 오지 못합니다."
"어째서 안 올까?"
"초나라가 백리해에게 말을 기르게 한 것을 보면 아직도 백리해가 인재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만일 주공께서 많은 폐백을 주고 백리해를 보내달라고 하면 그들은 백리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초나라가 백리해를 쓰면 썼지, 우리에게 넘겨줄 리 있겠습니까?"
진나라 임금은 그 말을 옳게 여겨 초나라에 염소가죽 다섯 장만 주고 백리해를 데려왔다.
이때 백리해의 나이가 벌써 칠십이었다.
그 동안 백리해는 주인을 못 만나 나이 칠십이 되도록 썩고 있었던 것이다.
* 백리해 : 춘추시대 진나라를 크게 부흥시킨 명재상이다.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는다.
남의 말을 지나치게 잘 믿는 것을 말한다.
까치가 나무 위에다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고 있는데 옆 나무에 소리개가 앉았다.
까치는 소리개가 제 새끼를 잡아먹을까봐 나가지도 못하고 소리개의 동정만 살피고 있었다.
하루는 보니까 소리개가 졸고 있어서 까치가 물었다.
"너 지금 뭣하냐?"
소리개가 대답했다.
"나는 지금 학을 하고 있다."
"학이란 게 뭔데?"
"응, 학이란 건 해물지심이 없어지는 법이여."
까치는 그 말을 곧이듣고 소리개가 학을 하고 있는 이상, 남을 해치지 않을 테지 하고 밥을 구하러 나갔다.
얼마 후에 까치가 돌아와서 보니까 소리개가 새끼를 다 잡아먹고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거든, 까 치가 황당해서 "학을 하면 해물지심이 없어진다더니 어째서 내 새끼를 다 잡아먹었냐?" 하고 따졌더니 소리개는 점잖게 "학도 먹어야 하는 게다." 하더란다.
팥잎 고깃국은 샛서방 주고 콩잎 고깃국은 본서방 준다.
본서방 보다는 샛서방에게 더 좋은 음식을 준다는 말로서, 샛서방의 맛을 안 여자는 본서방을 원수처럼 여겨서 고깃국을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렇지만 남들 눈에 띄게 차별하면 곤란함으로 팥잎국에 고기를 넣으면 팥잎에 고기가 싸여 보이지 않게 되니 샛서방 주기에 좋고, 콩잎 국에는 고기가 잘 보이므로 본서방에게 잘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즉, 이중적인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진짜 잘해주고 싶은데 남의 눈을 피해야 될 사정이 있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평생 수절하겠다고 삼일장에 목쉰 년이 가지 밭에 먼저 간다.
우리나라의 옛날 여인이 자위행위의 도구로 가장 쉽게 쓰인 것이 가지였다. 따라서 신랑이 죽자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하면서 목이 쉬도록 통곡을 한 과부가 삼일도 지나지 않아서 가지 밭에 가지를 따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처럼, 겉으로는 바르게 사는 것 같이 내세우면서 뒤로는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더 먼저 한다는 말이다.
풍경이 있으면 맑은 소리 울려나고 궁노루가 있으면 향내가 풍긴다.
훌륭한 인물이 있으면 향내가 풍기듯 인품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삼대 악성 중의 하나인 박연 선생은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사회 등 여러 면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다.
이 분이 부모의 산소를 영동 심천 마곡리에다 모시고 시묘살이를 할 때 얘기다.
선생은 음악의 천재였으며 그중 장기는 대금이었다.
선생이 산에서 대금을 불면 날짐승이고 길짐승이고 모두 모여 와서 춤을 추었는데, 그 짐승들 중에 호랑이 한 마리는 삼년 동안 하룻밤도 빠지지 않고 묘막 옆에서 같이 밤을 새며 선생을 지켜주었다.
시묘살이가 끝나갈 무렵이다.
어느 날 밤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선생은 깜빡 잠이 들었다가 호랑이를 꿈에 보았다.
호랑이는 꿈속에서 "선생님, 저는 지금 당재에서 덫에 걸려 죽게 되었으니 빨리 살려주십시오."하고 호소하고 있었다.
선생은 잠을 깨자마자 거기서 이십리나 떨어진 당재로 달려갔다.
날이 히뿌염하게 샐 무렵 당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하옇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선생은 눈물을 흘리며 이 호랑이가 밤마다 자기를 지켜주었다는 얘기를 했다.
사람들은 그 제서야 사연을 이해하고 호랑이를 내주었다.
선생은 호랑이를 아버지 산소 밑에다 정중히 장사지내 주고 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는 호랑이 무덤에도 꼭 제사를 지내 주었다.
이 무덤을 호총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박연 선생의 후손들은 조상 제사를 지낼 때 호총에 대한 제사도 빼놓지 않고 드린다고 한다.
박연은 사람 뿐 아니라 미물에게까지 덕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ㅎ
하루 죽을 줄은 모르고 열흘 살줄만 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줄은 모르고 영원히 살 것처럼 인심 사납게 구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수확을 거두고 "이 많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혼자 궁리하다가 "옳지! 좋은 수가 있다. 곳간을 헐고 거기다 더 큰 곳간을 지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넣어두어야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제 영혼에게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 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먹고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자." 하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놈아. 오늘밤 네 영혼이 떠나 갈텐데 그러면 내가 쌓아둔 재물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철모르는 놈은 호랑이가 무서운 줄 모르듯이 실력자를 몰라본다.
명종 때 윤원형의 세도가 얼마나 세었던지 그 집 하인은 시골 사또 정도는 우습게 알아서 대놓고 면박을 주어도 사또가 말 한마디 못했다고 한다.
하루는 윤원형 집의 하인이 동작이 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가다가 자리를 비키라며 시골 양반 하나를 떠다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골 양반한테 오히려 호통을 당하고, 배에서 내려서는 시골 양반의 하인에게 상투를 붙잡혀서 무작스럽게 매 세례를 당했다.
망신을 당한 하인은 분해서 윤원형에게 가서 일렀다.
윤원형이 화가 나서 물었다.
"내 집 하인을 욕보인 양반 놈이 누구란 말이냐?"
"네, 영남 사는 조판관이라고 하옵디다."
하인이 대답하자 윤원형은 갑자기 기세가 죽으며 "조식이로구나. 네가 잘못 걸렸다. 아무 소리 마라. 그자는 나도 꺼리는 바이다." 라고 하더란다.
* 조식 : 영남이 낳은 이름 높은 선비로 호는 남명이고, 세상에 나오지 않고 지리산 밑의 산청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학질을 뗀다.
얼마나 무서운지 학질이 다 떨어진다.
정조 때 김서구란 사람은 평생 검소한 것을 좋아하여 거친 베 도포 위에 양 갖옷을 걸치고 다녀서 거리의 아이들한테 놀림을 당하곤 했다.
그러나 그가 해남 현감이 되자 백성들은 좋아하고 아전들은 설설 기었다.
그가 어찌나 무섭던지 학질 환자들은 일부러 사또를 찾아가 그 얼굴을 보고 학질을 떼었다 한다.
향기 나는 미끼 아래 반드시 죽는 고기가 있다.
유혹에 넘어가지 마라. 향기 나는 미끼는 반드시 노리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월나라 왕은 오나라 왕에게 미녀 서시를 바쳤다.
오나라 왕은 서시에게 흠뻑 빠져서 고소대에 가서 놀기만 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오나라는 그때부터 급격하게 쇠약해졌는데 결국 월나라의 공격을 받자 왕도 죽고 나라도 망했다.
한 날 한 시에 난 손가락도 길고 짧은 것이 있다.
하물며 다른 날 다른 시에 태어난 형제야 다른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중종 때의 대신 심정은 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등 많은 인재를 죽인 간교한 인물이지만, 그 아우 심의는 심지가 정직하고 소탈한 사람이었으니 형제간에 다르기가 이렇게 다를 것이 없을 정도였다.
심의는 형의 옳지 못한 행동 때문에 장차 화가 가문에 미칠 것을 짐작하고, 미친 사람 행세를 해서 나중에 화를 피했다고 한다.
심정이 한참 세도를 휘두르던 시절에 있었던 얘기다.
하루는 심의가 형을 찾아가 엉엉 울면서 울음 반 말 반으로, "형님, 엊그제 밤 꿈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었어요." 하고 계속 울었다.
심정이 놀라서 "야, 울지 말고 자세히 말해 보거라." 하니까, 심의는 "아버지 어머니가 오셔서 나를 보시고 너희 형은 땅도 사고 집도 사고 자꾸 사는데, 너는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산단 말이냐? 양주 골에 있는 땅 이십석 짜리와 광주 너더리 땅 오십석 짜리와 왕십리 미나리 논 열 마지기와 방아다리 배추밭 사흘갈이와 천 쇠 어미와 상길이 내외는 너희 형더러 달라고 말을 해라. 하고 말씀을 하시더니 어젯밤 꿈에 또 두 분이 같이 오셔서 형 더러 말하라니까 왜 말을 아니 하느냐고 꾸중하십디다." 하고는 다시 울 것 같이 입을 비출거렸다.
그러자 형제간의 우애만은 무던했던 형 심정이 "네가 말해도 내가 줄 터인데 꿈에라도 부모가 말씀하신 것을 주다 뿐이겠느냐. 지금이라도 문서를 써주마." 하고 문서를 쓰고 수결을 두어서 아우를 줬다.
십여일 후 심정이 아우의 하는 꼴을 보려고 "엊그제 밤 꿈에 아버님 어머님이 내게 오셔서 내가 네게 넘겨준 땅과 천쇠 어미는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야하는 큰아들인 네가 가질 것이요. 너의 아우를 줄 것이 아니니 도로 찾으라고 말씀하시더라." 하고 우는 시늉을 하려고 하자, 심의는 서슴치 않고 "형님, 어찌 봄철에 꾸는 허튼 꿈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는 껄껄 웃더란다.
한번 보면 초면이요, 두 번 보면 구면이라.
부침성이 기막히게 좋다는 말이다.
옛날에 임꺽정이 영평 도덕 여울을 지나는데 웬 애꾸가 칼을 들고 쫓아 나와 "이놈들, 짐 벗어놓고 가거라. 나는 임짜 꺽짜 정짜이시다." 하고 큰소리를 쳤다.
임꺽정이가 가소로워서 "이놈아, 내가 임꺽정이다." 했더니 그놈은 살살 웃으며 "에이, 거짓말이지? 저것 봐. 웃는 걸 보니까 거짓말이야." 하고 어린애 응석하듯 말하다가 갑자기 들고 튀었다.
그러나 도망가다가 꺽정이에게 잡힐 듯 하니까 이번에는 꿇어앉아서 "잘못했으니 용서합시요." 하고 싹싹 빌었다.
꺽정이가 "이놈아, 네가 사내답게 항거했으면 용서해줬을지 몰라도 칼을 가지고도 쓰지 못하고 날 잡아 잡수하는 못난 놈이니 용서해줄 수 없다." 하고 호령했더니 이놈은 "그런 말씀을 진작 해주시지!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항거해 보이겠습니다." 하고 새삼스럽게 일어나서 칼을 잡으려고 했다.
꺽정이가 "별 우서운 놈 다 보겠다." 하며 발로 걷어차니까 이놈은 죽겠다고 갖은 엄살을 다 피우는데 하는 짓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마침내 꺽정이도 빙긋이 웃고 말았다.
애꾸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꺽정이에게 문안을 드리고 그 다음 부터는 꺽정이의 심복으로 행세했다. 또한 그는 갖은 흉물스러운 짓을 다 했지만 어찌나 반죽이 좋은지 꺽정이가 미워 할래야 미워할 수 없었다고 한다.
흰 죽에 코 빠진 것
구별이 안 된다는 말이다.
옛날에 어떤 양반이 하인에게 콩죽을 사오라고 시켰다.
하인은 콩죽을 사가지고 손가락으로 휘휘 저으면서 왔다.
양반이 너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하인은 콧물이 빠져서 건져내려고 그런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입맛이 떨어진 양반이 손을 내젖자, 결국 콩죽은 꾀 많은 하인이 먹었다.
한 일을 보면 열일을 안다.
한 가지 행동만 보면 다 안다는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제나라의 임금이 안영의 집에 행차하여, 임금이 안영의 아내를 보고 "저 여인이 경의 아내인가?" 하고 물었다.
안영이 대답했다.
"네, 그러하옵니다."
"너무나 늙고 못났도다. 과인의 딸이 젊고 아름다우니 그대에게 주리라."
그러나 안영은 "여자가 시집가서 남자를 섬기는 마음은 다음날 늙고 보기 싫어질지라도 버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믿음입니다. 신의 아내가 비록 늙고 보기 싫으나 이미 신은 아내에게 그런 믿음과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제 와서 어찌 동고동락한 아내를 저버릴 수 있습니까?" 하며 거절했다.
임금은 "경은 아내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그러니 어찌 임금을 저버릴 리 있으리오." 하고 감탄하며 안영을 더욱 신망했다고 한다.
한편 말 듣고 송사 못한다.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안다.
옛날에 한 영감이 논두렁길을 가는데 큰 구렁이가 조그만 가물치하고 교미를 하고 있었다.
영감이 이걸 보고 아무리 미물이라 해도 제 짝이 있는 법인데 큰 놈이 작은 놈하고 상간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옳지 않은 일 같아서 긴 담뱃대로 구렁이의 눈퉁이를 내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구렁이는 제 집에 가서 서방한테 어떤 영감이 담뱃대로 내 눈을 내리쳐서 이렇게 상채기를 내놨다고 고자질했다.
이 말을 듣고 숫구렁이는 원수를 갚아 주겠다고 암구렁이를 앞세우고 영감의 집으로 갔다.
그때 마침 영감은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난 오늘 낮에 별난 거를 다 봤어. 큰 구렁이하고 작은 가물치가 상간을 하고 있어서 괘씸해서
눈퉁이를 담뱃대로 내리 쳤다우." 이 말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우당탕하며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밖에 나가보니 큰 구렁이가 갈기갈기 찢겨서 죽어 있었다.
죽은 구렁이를 보니 낮에 담뱃대로 눈퉁이를 얻어맞은 그 구렁이였다.
숫구렁이는 암구렁이 말만 듣고 원수를 갚으러 왔다가 제 색시가 화냥질하다 얻어맞은 것을 알고는 오히려 화가 나서 암구렁이를 죽인 것이다.
혀 밑에 죽을 말 있다.
새치 혀를 함부로 놀리면 죽는 수가 있다. 혀 아래 도끼가 들었다고도 한다.
중국의 춘추시대 진나라에 강충이란 내시가 있었다.
임금이 위독해서 그는 밤낮으로 간호를 하다가 피곤해서 깜박 졸았는데 그때 꿈을 꾸었다.
자기가 임금을 업고 하늘로 오르는 꿈이었다.
그는 꿈 얘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했다.
임금이 앓다가 죽자 대신들은 "강충이 임금을 업고 하늘로 오른 꿈이 이제야 맞았다." 하며 강충을 임금과 함께 순장을 했다.
꿈 얘기만 안했더라도 강충은 산 채로 매장 당하지는 않았을 것을 보면 아는 것이 병이라고도 하겠다.
호랑이도 제 새끼가 곱다고 하면 물지 않는다.
부모 앞에서 자식 칭찬을 해줘 봐라. 대접이 달라진다.
옛날에 나물 캐는 처녀들이 산에 갔다가 탐스런 고양이 새끼들을 만났다.
처녀들은 이것이 호랑이 새끼인 줄도 모르고 이쁘다며 쓰다듬어 주었다.
이때 호랑이가 나타나 어흥 했다.
처녀들은 나물바구니를 내팽개치고 도망갔다.
다음날 호랑이는 처녀들 집에다 나물이 가득 든 바구니를 갖다 주더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사람은 일생을 살다간 흔적을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겨야 한다.
성삼문이 아직 벼슬에 나가지 않았을 때에 누이를 시집보내야 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혼수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때 마침 성삼문의 집에서 도망친 종이 황해도에서 부자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삼문의 아버지는 그 종에게서 혼수비용을 뜯어내리라 작정하고 삼문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삼문은 내키지 않았으나 아비의 명이라 하는 수 없이 길을 떠났다.
그러나 어느 산중에서 이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 이인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해줬다.
"사람은 의로서 이름을 남겨야지, 종을 붙잡아 돈을 뜯어내는 그런 구차한 짓을 해선 안됩니다."
삼문은 크게 깨달아 가던 길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왔고 이 말을 평생 명심하고 있다가 나중에 의로운 죽음을 함으로써 천추에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이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출세해서 묘비명에 아무개 판서 누구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의로써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활을 당겨 콧물을 씻는다.
다른 일을 핑계 삼아 하고 싶은 짓을 한다는 말이다.
옛날에 머리 헌 놈과 코흘리개와 눈이 짓무른 놈이 있었는데, 하루는 떡 한 시루를 쪄놓고 내기를 했다.
머리가 헌 놈은 머리를 긁지 않고, 코흘리개는 코를 씻지 않고, 눈이 짓무른 놈은 파리를 쫓지 않고 견뎌서 가장 오래 견디는 놈이 떡을 다 먹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가려운 걸 어찌 견디랴.
오래 견딜 수가 없어서 먼저 머리 헌 놈이 "어제 산에 갔더니 노루 한 마리가 튀는데 여기도 뿔이 돋고 또 여기도 뿔이 돋아 있더라." 하며 머리 가려운 데를 주먹으로 탁탁 치니까, 코흘리개가 "나한테 활이 있었으면 이렇게 쏘았지." 하며 옷소매로 코를 슬쩍 씻었다.
그러자 눈이 짓무른 놈이 양 손을 눈앞에서 흔들며 "아니, 아니, 나도 그 얘기 다 안다 말이여.” 하며 손바람을 일으켜 파리를 쫓더란다.
힘센 아이 낳지 말고 말 잘하는 아이 낳아라.
힘이 센 것보다 말을 잘하는 것이 사회생활에 절대적으로 낫다는 말이다.
옛날에 힘센 사람과, 글 잘하는 사람과, 말 잘하는 사람, 셋이 도둑떼에게 잡혀 토굴에 갇히게 되었다.
도둑들은 세 사람을 죽이려고 칼을 갈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각기 토굴을 벗어날 꾀를 생각했다.
먼저 힘센 사람이 문을 힘껏 찼다.
그러나 제 몸만 나가 떨어졌지 문은 끄떡도 안했다.
그 다음에 글 잘하는 사람이 만리장서를 써서 문틈으로 내보냈으나, 도둑들은 읽어볼 생각도 안했다.
마지막으로 말 잘하는 사람이 크게 웃다가 울다가 하자, 도둑들은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말 잘하는 사람은 "우리는 나라의 역적인데 웃는 것은 의금부에 잡혀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당신들 손에 죽는 것이 다행이라 웃는 것이고, 우는 것은 막상 죽으려고 생각하니 청춘이 아까워 우는 거요." 하고 말했다.
도둑들은 이 말을 듣고 나라의 역적이라니 이놈들을 잡아다 바치면 큰 상금을 타겠다 싶어서 세 사람을 꽁꽁 묶어 의금부로 끌고 갔다.
그러나 말 잘하는 사람이 우리는 어디어디 사는 사람인데, 도둑떼를 잡으러 갔다가 여차여차해서 꾀를 내어 도둑들을 유인해왔다고 조리 있게 말하자, 나라에서는 도둑들을 잡고 세 사람에게 큰 상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