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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
07:00~12:30 |
서울출발, 거제도 도착 |
12:30~14:00 |
중식. 장보기 | |
14:00~14:20 |
장승포 도착 | |
14:30~14:50 |
지심도 도착 | |
14:50~15:30 |
민박집 도착, 짐 정리 | |
15:30~18:00 |
지심도 관광 및 석양 촬영 | |
18:00~19:00 |
석식 ( 직접 밥하기) | |
2.27 |
06:30~08:00 |
일출촬영 및 새벽 등산 (일출 06:50~07:00) |
08:20~08:40 |
장승포 도착 | |
08:40~09:00 |
장승포~자연휴양림 | |
09:00~11:00 |
노루귀 및 변산바람꽃 촬영 | |
11:00~12:20 |
자연휴양림-홍포여차 (풍경 촬영)및 바람의 언덕 | |
12:30~13:30 |
홍포에서 중식 | |
13:30~16:30 |
홍포 망산 등산 (경관 및 상록활엽수림 관찰) | |
16:30~17:10 |
통영 청소년수련원 도착 (7인실 2개, 4인실 1개) | |
17:10~18:00 |
휴식 | |
18:30~19:30 |
석식( 통영의 다찌) | |
6.28 |
06:30~07:30 |
아침 산책 |
07:30~08:30 |
조식 | |
09:00~12:00 |
미륵산 야생화 촬영 (노루귀 변산바람꽃) | |
12:00~13:00 |
중식 | |
13:00~14:00 |
경남수목원 도착 | |
14:00~16:00 |
경남수목원 관람 | |
16:00~20:00 |
서울로 이동 |
거제도 생태 기행 자료
일시: 2010. 2. 26~28
장소: 거제도 (지심도, 휴양림, 망산)
주최: 한국교사식물연구회
해설: flower & photo holic 옥건수
거제도 역사
구석기시대(BC약 1만년전) |
수월리 석기재료산지 발굴로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 |
신석기시대(BC약5천년전) |
주로 섬지방으로 패총이 발견되어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다. |
청동기시대(BC약2천년전) |
엄청난 양은 지석묘와 유물산포지로 보아 사람이 많이 살게 되었다. |
삼한시대(BC 1세기경) |
삼한시대 변한 12개국 중 독로국(도로국)이라 칭하고 왕도지는 사등 임. |
AD 520 |
신라 법흥왕 7년 소가야국으로 개칭 |
AD 532년 |
신라 법흥왕 19년 금관가야국의 일부 |
AD 677년 |
신라 30대 문무왕 17년 상군이라 칭함 |
AD 757년 |
신라 35대 경덕왕 16년 거제군으로 고침 |
AD 983년 |
고려 6대 성종 2년 기성현이라 칭함 |
1414년 |
조선 3대 태종 14년 거창군에 피난 가서 제창군이라 칭함 |
1422년 |
조선 4대 세종 4년 왜구의 침범이 종식되어 환군 |
1592년 |
임진왜란 때 고현성이 함락되어 1663년 조선 18대 현종 4년 현아를 거제로 이전함 |
1895년 |
조선 26대 고종 3년 거제군으로 승격 |
1910년 |
조선 28대 순종 4년 한일합방 후 1914년 3월 18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남군, 진남군, 거제군이 폐합되어 통영군이라 칭함 |
1953년 |
1월 1일 장승포 임시청사에서 복군 개청함 |
1989년 |
1월 1일 법률 제 4050호로 장승포읍이 거제군에서 분리되어 장승포시로 승격 |
1995년 |
1월 1일 법률 제 4775호로 도농통합형태의 시 설치로 장승포시와 거제군 통합으로 거제시 설치 |
2010년 |
9읍10개동으로 인구 22만 여명 |
1. 거제,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다.
언제부터 거제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지, 또 어디에서 주로 모여 살았을까?
그 해답은 몇몇 유물이나 유적지에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거제유적분포지도’에 보면 수월리 산43번지에 석기재료산지가 있다.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데 연대로 계산해 보면 약 1만년전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섬주변으로 하여 패총(貝塚, 조개무덤)이나 토기(흙으로 구운 것)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그후 신석기 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여러 사람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는 곳에서 독립적인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힘의 증거물은 고인돌(지석묘)로 표현되었다. 거제에는 전 지역에서 고인돌을 찾아 볼 수 있다. 거제 전역에 고인돌은 67곳이며 그 외 토기산포지나 유물산포지가 22곳이나 된다.
이러한 유물이 많은 이유는 기온이 온난하고 바다와 인접해 있어 많은 물고기들이 있어 자연물을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청동기 시대를 넘어 삼한시대로 접어들면서 거제는 변한 12국 중 두로국( 독로국)이라고 하였지만 정확하지 않다. 거제는 통일신라시대 전후 문무왕 때 처음으로 상군을 설치하였으며, 부속된 3 영현(領縣)으로 아주현(본래 거로현, 지금의 아주동 일대, 다스렸던 지역은 옛 장승포시), 명진현(본래 매진이현, 지금의 거제면 명진 일대), 송변현(본래 남수현, 지금의 남부면 다대리 일대) 등이 있었다.
2. 고려시대 그리고 의종
거제는 1018년(현종 9)에 현령을 두고 거제현으로 승격되었다. 거제현령은 가까운 통영․고성 지역까지 다스렸다. 또한 신라 때부터 3영현도 속현(지방관리가 파견되지 않던 곳)으로 그대로 두었다. 1170년(의종 24) 9월에 정중부의 무신난으로 의종은 거제로 폐위되어 오게 되었다. 의종은 3년 간 둔덕면 거림리의 기성을 거주하다가, 1173년(명종 3) 8월 경주로 옮겨가서 이의민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고려 중기 이후 거제는 해적의 활동지, 삼별초의 항쟁지, 왜구(또는 해적)의 침입지, 변방의 유배지 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려사』「인종」편을 보면, 1128년(인종 6) 10월에 아주․명진․송변현 등지에 해적들이 본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었다. 이에 중앙정부는 선문사를 파견하여 6개월 이상 싸우다가 해적들을 투항시켰다고 한다.
1226년(고종 12) 1월부터 고려 말까지 거제에는 삼별초와 왜구들이 들어왔다. 삼별초는 진도에서 제주도까지 항쟁하면서 중간 거점지로 거제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특히 1172년(원종 13) 11월에는 거제현령까지 잡아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으로 왜구의 첫 침입은 1226년(고종 13) 1월 거제의 사등면 사도에서 노락질하는 것을 보고 진용갑 현령이 수군을 이끌고 나가 싸워 물리쳤다고 한다. 그 이후 1350년 충정왕 때부터 1369년 우왕 때까지 왜구들이 침범하였다. 이에 왜구의 침범이 자주 일어나자 거제 사람들은 1271년(원종 13) 거창현으로 피난 가야 했다. 사람들은 152년 후인 1422년(세종 4)에 거제로 돌아올 수 있었다.
3. 조선시대, 시련과 발전
조선의 건국은 거제의 새로운 희망이 시작된 시기였고, 또 하나의 시련기에 속한다. 먼저 1292년 7월부터 고려 왕실의 사람들은 거제로 대부분 귀양오면서 시작되었다. 거제는 주민들이 없고 수호군만 지키고 있었다. 거제는 거창과 합해지면서 제창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앞서 명진현은 진주목 강성군에 합하면서 진성현으로 소속되었다.
1422년 거제 사람들은 원래 땅으로 돌아오고, 4품 이상의 지현사를 두게 하였다. 거제의 치소지(지금의 시청)는 사월포(沙月浦, 지금의 신현읍 수월리)에다 목책을 설치하고 임시 거처로 삼았다. 1426년~1448거제의 중심지는 수월에서 사등리로 옮겨 관사 및 사등성 등을 설치하였다가, 1451년~1455거제 중심지는 사등에서 고정리(古丁里, 지금의 고현)로 옮겨 거제읍성을 쌓았다.
임진왜란 이후 1711년거제현는 거제부로 승격하면서 군사도시 혹은 유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임진왜란 전후로 거제의 군사 도시는 영등포․옥포․지세포․조라포(현 구조라)․오아포(현 가배)․율포보(진)․장목 등지에 진을 설치했다.
또한 고려시대부터 거제에는 칠천도(흑소․말 176필), 가조도(말), 산달도(소 89두․말), 구천동(말 1,115필) 목장이 있었고, 봉수는 가라산~계룡산으로 이어졌고, 육로교통은 오양역과 신역이 있었고, 해상교통은 오아포․영등포․옥포로 하였다. 거제의 군사적 방어용 성터는 가배량성을 비롯하여 23곳이 남아 있다.
4. 대한제국과 일제식민지 시대
1876년 조선은 개항과 더불어 외세의 침입을 받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일본 등은 마산을 비롯한 거제도를 주둔하려고 하였다. 이에 정부는 거제 등지에 포군을 설치하였고, 또 3군부, 密陽․巨濟․安義에 포군 배치를 요청하게 되었고, 1899년 거제는 장승포와 성포항 등이 일본에 의하여 강제로 개항장이 되었다.
1896년 전후로 일본인들은 지세포를 비롯한 장승포, 구조라, 성포, 농소, 궁농, 옥포, 칠천도 등지에 어업 이주민들을 보내어 어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1900년 11월 29일 정부에서는 거제 등지의 일본인 어로행위 금지요청 대해 일본공사가 부산 감리의 교섭사항이라고 거부하였다.
거제의 어부들은 일본인 어선과 어로 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요구를 계속적으로 요청하였으나, 1903년 일제는 거제도에 침입하여 무력으로 어장 강탈하였다. 또한 1904년 10월 11일 일본은 거제도에 일본병참부 및 송진포방비대를 설치하게 되었고, 그 외 지역인 천장산, 노자산, 탑포, 지심도 등지에 일본해군 군사 시설들로 만들어졌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로 바뀌면서 거제는 용남군과 통폐합되면서 ‘통영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거제 사람들은 1919년 4월 3일 윤택근 등 주도로 거제군 이운면 아주리에서 농․어민 2,500여명이 저항하였고, 같은 날 주종찬 등이 거제군 이운면 옥포리 시장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고, 그 영향으로 거제의 사람들은 3․1운동 이후 지역별 청년회를 조직하여 민족교육과 농민․노동․어민 운동을 펼쳤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통하여 전 세계를 점령하려는 야욕을 보였다. 거제의 각종 단체나 일부 지역 유지들은 일제에 협조하면서 재산이나 명예를 얻는데 충실하였다. 특히 몇몇 인사들은 신사참배나 비행기 헌납, 군수 물자 등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역내 인사들은 창씨개명과 스스로 전쟁에 나가서 목숨을 바치게 선전하기도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5.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과 동시에 우리나라는 해방되었지만, 북으로 소련군과 남으로 미군 등이 점령하면서 분단국가로 되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남쪽에는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군정이 실시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은 단독으로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고, 2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1950년 11월 이후 거제에는 전쟁포로들이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주로 인민군, 중국군, 민간인, 여자 등 약 17만 명이 수월 고현 등지에 분산되어 수용되었다. 수용소 내에서 같은 포로들과 싸움을 벌여 죽거나 혹은 미군이나 한국경비대에 의하여 희생된 포로들도 많았다고 한다. (1950년 당시 거제 인구, 토박이 10만여명, 피난민 10만여명, 포로 17만명)
6. 지금의 거제는
1953년 1월 22일 거제는 통영군에서 거제군으로 개칭되면서 청사를 옛 장승포읍사무소에다 설치하였다가, 1956년 10월 30일 지금의 고현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거제는 5,60년대 농지개량이나 토지 개량 등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쳤고, 1971년 4월 8일 거제대교 개통과 동시에 중공업 산업이 들어서면서 대우조선(73. 10. 11)과 삼성중공업(77. 4) 등이 설치되었다. 거제는 수산업 외 큰 산업이 없어 발전할 수 없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중공업 산업의 발전은 아름다운 산이나 바다 등이 훼손되는 악영향도 불러왔다.
양대조선소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 잘사는 도시로 바뀌어져 가고 있으며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사람은 찾기 힘 든다. 2010년 거가대교 개통(거제와 부산), 2017년 이순신대교 개통(거제와 마산), 통영 대전 고속도로의 연장, 철도 거제까지의 연장으로 이제는 섬이 아닌 육지로 제주 다음가는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지심도
지심도의 지명유래는 문헌상으로 지사도(知士島, 1469년 경상도속찬지리지)로 알려졌다가, 1760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지삼도(只森島)로 적고 있다. 그 외 東國與地勝覽 및 巨濟邑誌․巨濟府誌에는 지삼도(知森島) 혹은 지심도(只心島)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지삼도나 지심도는 한자마다 읽는 과정에서 바뀌었다고 보기엔 힘들고 섬의 자연적 변화에 따라 불렀다고 하겠다. 이전부터 지심도에는 각종 나무들이 울창하게 심어져 있었다고 했어 지삼도라고 불렀고, 이후 섬이 마음 심(心)처럼 생겼다고 지심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1912년 일제시대 거제 지역의 섬들을 조사결과를 보면, 지심도(只心島)는 해안선 연장 32리, 면적 38kn 섬의 최고 높이 97m로 조사되었다. 섬에는 10세대 20여명이 거주했으며 생계유지는 반농반어로 대부분 밭농사에 치중했다. 1982년 지심도의 현황을 보면, 면적 0.36㎢, 인구 69명, 경지 4ha, 임야 20ha, 견업 가구 17, 기타 2호, 학교 1개교(학생수 35명)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인구 및 마을 구성은 가구 14호 인구 25명(남 9명 여 15명)으로 주택 2곳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있다.
1945년 9월 이후 일본군이 떠나면서 이전의 주민들이 들어와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으며, 주로 생활경제는 밭농사, 유자 재배 정도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낚시꾼들의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 섬의 첫 도선(渡船)은 ‘안예호’(1960년)→대신호(1970년)→고려호(현재)로 바뀌었다. 안예호는 마을 청년회에서 구입한 목선으로 20여 명 정도 승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민가구조 및 형태는 대부분 현대식으로 개조했지만, 1937년 일본 해군기지 때 건축된 주택도 다수 있다. 특히 일본식 주택구조는 방 2개, 욕탕,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다다미방 형식을 띄고 있다. 민간신앙 및 종교생활은 조선시대 때부터 당산제를 지냈고, 현재는 천주교인과 무신자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은 민간신앙에 의존하고 있다.
지심도의 그 외 지명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동쪽 끝 벌여, 동섬(떨어진 섬), 대패너를, 굴강여(굴이 있는데 뽈락이 잘 잡히는 곳), 높은 돌(바위 둥근 모양), 논밑, 굴밑(방공호 자리), 애물깨, 만여, 만여육지, 노랑바위, 솔랑끝(끝에 소나무가 자람), 무광밭밀, 짤라광여, 새논개, 남쪽끝, 말뚝밑(일제 때 화물을 운반할 때 나무말뚝을 박아 놓고 하며 도르래식이었다고 함), 새끝질미, 허만강여, 볼락자리 등이다.
'지심도 포대' 설치과정
지심도, 지금도 일제식민지 시대의 유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곳이다. 예전과 달리 전국 여러 곳에서 찾아오는 관광지로 변모하였지만, 70여 전 이전만 해도 일본 해군의 방어전진 기지로 요새(要塞)로 민간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현재 섬에는 울창한 동백숲과 낚시꾼으로 번잡한 곳으로, 일상에서 탈출하여 한가로이 여행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하였고, 영화나 방송 소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예전이나 현재에도 소유는 국방부 소유로 가치적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70여 전, 지심도에는 '진해만요새사령부(鎭海灣要塞司令部)' 소유의 해군군사작전지역이자 일본의 태평양전쟁으로 최후 방어진지로 활용되었다. 특히 섬 전체는 방어진지와 포대 등이 건설되었고, 여러 부속건물들이 건설됨에 따라 군사요새였다. 이 과정에서 예전부터 살아오던 주민들은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다.
당시 지심도의 군사기지화로 변천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숨겨진 포대설치 배경 등을 일본비밀문서를 통하여 재조명하고자 한다.
'지심도 요새'
1904년 송진포방비대 설치 이후 거제 전역은 해군작전 지역으로 선포하였으며,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요새화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거제도의 지리적 조건과 육지와 연결되는 중요한 수용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1912년 진해만요세사령부 설치에 따라 거제 전역에 '군용지'로 지정되면서 주요 섬 지역도 군사기지로 바뀌었다. 이때 지심도는 주요한 군사요새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때 지심도와 함께 중요한 군사요새는 일본 쓰시마(對馬島)도 포함되었다. 두 섬은 위치상으로 가까운 곳이었다. 쓰시마는 대륙침략의 군사요새로 각광받게 되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일본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 아시아로 확장하는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을 본격화하였다. 1931년 9월 18일에 일어난 만주사변(滿洲事變)도 일본이 중국의 동북지방을 군사적으로 제패하고 이 지역을 '만주국'이라 하여 그들의 식민지로 만든 것이니, 당연히 '전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나, 일본은 이를 '사변'이라 하였고 당시 선전포고도 하지 않았다.
이 전쟁의 계기로 우리나라는 전시체제(戰時體制)로 전환되면서 여러 곳에 군사요새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본격적인 전쟁에 나선 일본은 한반도 전역에 포대나 진지를 구축하면서 일전(一戰)에 대비하기 시작하였다.
1936년 중일전쟁 1년 전 지심도는 일본 육군대신과 진해만요세 사령부 등이 나서 '지심도 포대설치'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 요구는 중요한 군사요충지로 알려진 거제를 비롯한 쓰시마 등지도 함께 적용되었다.
지심도에는 군사 방어기지를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각종 부속건물도 함께 건설하게 되었다. 주로 부속건물들은 군사 병사, 전등소, 방공호 등이다. 공사시작은 1936년 7월 10일 포대 신축 공사를 시작으로 각종 부속건물도 함께 이루어졌다. 모든 건물과 무기 인수 작업은 1938년 7월 31일부로 완료되었다. 그때 주요 건물과 내역을 보면, 진해만요기 지심도포대, 지심도 전등소(電燈所), 경계표찰(지심도 지구) 등이다. 현재 3곳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표찰 즉 표지석은 지심도 옛 발전소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그 표지석에는 "진해만요새사령부기지(鎭海灣要塞司令部基地)" 라고 표시되어 있다.
지심도 벙어건설과 주민소계 계획
1937년 9월 30일 지심도에는 45식 15개조 고정식 포대를 완공하고 안쪽에 문이 한 곳이 있으며, 포는 육군병기본부와 육군축성부 본부에 직접 수령받았다고 한다. 또한 지심도 포대에서 이용하는 전령선(傳令船)을 1,600원을 들여 운반 및 여객선으로 이용하였다.
1938년 4월 13일 육군축성본부는 지심도 방어시설 준공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하였다. 이 보고서에는 공사명과 준공 일자, 실경비 금액을 상세히 적고 있다. 지심도의 방어시설은 1938년 1월 27일 준공하고 1,465,000원을 들여 포대, 전등소, 군 막사, 초소, 방위표지석 등을 건설하였다.
1936년 4월 23일 육군축성부 본부는 지심대 일대의 국방용 토지매입과 주민 소계령을 내리게 된다. 목적은 지심도 국방시설 및 요새화 확장을 의미하지만 실제 전쟁을 위한 군사시설 확충에서 나온 것이다. 지심도 주민 모두 일운면 지세포와 장승포쪽으로 이주함과 동시에 주민 접근을 제한하게 되었다. 오래 동안 살아 온 주민들은 생업의 터전을 빼앗겨 설움을 당해야 했고 해방되기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1945년 12월 이후에야 주민 몇 명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군사기지
일제는 지심도 군사기지 설치는 최후 방어 목적으로 건설하여 운영하였다. 그들은 거제도를 비롯한 통영과 고성 그리고 진해요새기지를 이어주는 군사방어선을 구축하였고, 쓰시마와 일본 본토로 연결되는 전시체제 군사방어선을 완전히 구축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이른 것이다.
1945년 8월초에 미군은 지심도 인근에 기관총 난사와 폭탄을 투여한 사실만 보아도 중요한 군사시설임을 확인시켜 준다.
지금도 마을 뒤편에는 국방과학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고 일반인은 통제가 되는 곳이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해군과 관계되는 연구소인 것 같다.
지심도 식물상
거제도 지역은 식물구계의 범주에 따르면 남해안아구에 속한다. 이 지역은 북위 34°40‘ ~ 35°05’ , 동경 128° 27‘ ~ 128° 52’ 사
이에 걸친 지역이다. 거제도 지역도 크게 세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대금산과 앵산지역으로 엮어 북부지방, 계룡산과 옥녀봉을
역은 중부지방, 노자산과 가라산 엮은 남부지방 그리고 홍포망산 내도 지심도 해금강 등을 묶은 난대지방의 기후대이다. 거제
도에는 학동 해안가의 주변을 묶어 동백림과 팔색조 번식지로 알려진 천연기념물 제233호(1971년.9.13일지정)로 지정되어 널
리 알려지고 있으나 요 근래에 와서는 이곳보다는 내도나 지심도에의 동백이 더 아름다우며 팔색조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앞으로 학계나 환경부에서 집중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거제도의 자연환경조사는 1997년 환경부에서 조사한 제2차 자연환경조사 중 거제도의 자연환경이 전부이다. 일부 교수들이
남해안 자연환경 조시를 실시한바 있으나 그 내용이 빈약하여 자연생태나 식물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조사
가 되겠지마는 그 동안에 자연환경이 많이 파손될 염려가 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거제도의 식물상은 총651(임 등 1997)종
류로 확인되었고 또 다른 조사에 의하면 총661종류(또는 764종)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심도 지역의 상록활엽수림은
31종(김 등1984)의 보고가 있다.
지심도 북쪽사면은 곰솔림으로 교목층을 이루는 가운데 동백나무 굴피나무, 나도밤나무, 굴참나무, 대나무, 예덕나무 등이 아
교목층을 이루며 청미래덩굴, 초피나무, 산철쭉, 팔손이 등이 관목층을 보춘화 갯취,구절초, 부처손일엽초, 참나리, 원추리, 콩
짜개덩굴, 세뿔석위, 봉의고리,도깨비고비, 천남성, 맥문아재비, 풍란, 번행초, 둥근바위솔, 섬기린초, 바위채송화, 갯방풍, 섬
바디, 갯까치수영, 해국, 왕해국, 은대난초, 금난초, 술패랭이꽃 등이 초본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대표적인 귀화종
인 방가지동, 돼지풀, 개망초, 서양민들레 등도 여러곳에서 다수 발견되엇다.
지심도 남족사면은 동백나무가 우점하고 있는 가운데 천성과나무, 예덕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돈나무, 까마귀족나무, 참식
나무, 사스레피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 구실잣밤나무, 대나무 등이 교목층과 아교목층을 이루며 칡덩굴, 마삭줄, 송악, 남오미
자, 다래, 박주가리, 개머루, 멀꿀, 으름 등 덩글성 식물들이 상록수림을 감아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국방과학연구원 부
근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실거리나무 군락지가 있어 5월의 산야를 노오랗게 물들이고 있다.
지심도를 지키는 새는 바닷가 해변가를 수놓는 갈매기, 아비 그리고 들과 숲에 서식하는 조류는 참새, 붉은머리 오목눈이, 제
비, 직박구리, 방울새, 까치, 까마귀, 박새, 휘바람새, 동박새, 솔개 등이 서식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 특이한 점은 다른 지역에서
는 그리 흔치 않는 동박새와 솔개이다. 몇 년전 조류학자 윤무부교수가 솔개조사를 하기 위해 다녀간 후로 조류학자들이 가끔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심도에 뿌리를 박고 살고 있는 토종 식물 중 대표적인 것 >
1.동백꽃
동백은 추운 겨울에 빠알간 탐스러운 꽃을 품어 내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신비를 간직한 꽃'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서식지가 극동지방의 해안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대청도 동백나무 자생지는 북한 한계지로 유명하다. 동백은 난대성 상록 활엽수로 산다화라고도 불리며 반짝이는 잎과 화려한 꽃은 수 많은 시인들의 노랫말로 사용되어 왔다.특히 일본 교토 쓰바키사(春寺)의 오색동백은 임란 때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가 울산에서 가져간 것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헌화한 나무이나 현재는 고사하고 그 2세가 1988년 한국에 다시와 전남 완도군 푸른농원에서 키우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잘 자라고 있는지---? 그리고 동백은 그 모양이 절경이라 고창 선운사, 강진의 백련사, 무안, 완도 죽정리, 경기 대청도, 충남 마양리등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거제, 통영, 여수, 삼천포 등지에는 동백군락지를 자주 볼 수가 있다. 특히 거제 학동의 동백군락지는 천연기념물 제233호로 지정되어 있으나 실제는 지심도나 내도의 동백이 장관을 이룬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겨울에 피면 동백, 봄에 피면 춘백이라 하였다. 지심도는 사계절 중 특히 겨울에 정취를 느낄 수 있으니 난대상록수림 공부를 겸해서 겨울의 낭만에 취해보는 것도 또 다른 맛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강희안: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까지 지냈으며 그가 집필한 양화소록(養花少錄)은 화훼원예 서적으로는 최고의 가치 있는 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재는 詩, 書, 畵에 능하여 三絶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史家 徐居正은 아아! 인재의 덕과 재주를 가지고 오래 살지 못했고 벼슬 또한 그 은력에 따르지 못했으니 이 어찌 조물주의 슬픔이 아니랴. 라고 크게 한탄하였다.
2.애기동백(산다화)
본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원예용으로 개발한 종을 가져 들어와 일반 가정에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꽃은 10∼12월에 흰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와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원예품종에는 붉은 색·엷은 붉은 색 또는 붉은 무늬가 있거나 겹꽃이 있다. 종자에서 기름을 짜는데, 이 기름을 한방에서 옴 치료제로 쓴다. 동백나무와 비슷하지만 어린 가지와 잎의 뒷면 맥 위, 그리고 씨방에 털이 있는 것이 다르다. 일본의 중부 지방 이남에서 자라며,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3.후박나무
우리나라 남부 바닷가에 나는 상록활엽교목으로 거제도의 가로수로 심겨져 있다. 공고지에 가면 약 300년 묶은 후박나무가 농장안에 자라고 있다. 높이 20m, 지름 1m에 달하고 나무껍질은 회황색이며 비늘처럼 떨어진다. 잎은 가지 끝에 모여서 어긋나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타원형 또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털이 없다. 또한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우상맥이 있다. 잎 뒷면은 회록색이다. 꽃은 5∼6월에 피고 황록색이며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수술은 12개 암술은 1개
4. 참식나무
거제도에 자라는 난대성상록활엽수 중 후박나무 다음으로 가는 나무이다. 거제도에서도 계룡산을 중심으로 해서 남부지방에 자라며 특히 봄에 새싻이 나올 때 바람이 불면 은빛색의 물결은 정말 장관이다. 해금강 입구 골짜기 매점 있는 곳에서 산을 처다 보면 알 수 있다.
해변 모래밭에서 자란다. 높이 10m에 달하고 작은가지는 녹색이며 처음에 털이 있으나 없어진다. 새잎은 4월에 밑으로 처지고 황갈색 털이 밀생하지만 곧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고 두꺼우며 긴타원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3개의 맥이 뚜렷하게 있으며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흰빛이다.
5.생달나무
한국, 중국, 일본의 따뜻한 지방에 자생하며 후박나무와 비슷하나 잎이 후박나무보다 부드럽고 잎맥이 뚜렷하다. 나무 껍질은 검은 색이며 작은 가지는 녹색이고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6∼15cm의 긴 타원 모양이며 양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3개의 맥이 있다. 잎 표면은 광택이 있고, 뒷면은 분처럼 흰색이며, 잎자루는 털이 없고 길이가 8∼20mm이다. 꽃은 6월에 노란 색을 띤 연한 녹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긴 꽃대에 산형꽃차례 모양의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6.돈나무
돈하고 관계되는 이름일까?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돈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똥과 관련이 있다고 하며 이유미박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 나무를 똥나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열매가 가을에서 겨우 내내 끈적끈적하고 달큼한 액체를 분비하므로 각종 곤충과 파리 떼가 날아와서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똥나무가 왜 돈나무로 변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 나무를 처음 본 일본인이 똥의 발음을 돈으로 들어 돈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어차피 돈이나 똥이나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이니 꼭히 좋은 이름만은 아닌 것 같다.
남부 해안 및 도서 지방에 자라는 상록활엽수 관목으로 높이 2∼3m정도이다. 가지는 줄기 밑둥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모여나기하고 수관은 반원형이다. 잎은 긴 타원형이며 두껍고 광택이 있어 반들반들하고 짙은 초록빛으로 가지 끝에 모여 돌려나기 한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으며 5∼6월경 흰색의 향기로운 꽃이 취산화서로 가지 끝에 모여 핀다. 10월에 1cm정도 크기의 동그란 삭과가 누렇게 익으며 두터운 껍질이 셋으로 갈라져 붉은 점액에 쌓인 종자가 여러 개 들어있다.
7,까마귀쪽나무
까마귀의 사랑이 너무 진하여 입맞춤에 쪽 쪽 소리가 났다나?. 그러나 그렇게 생긴 이름은 아니고 잎이 두껍고 광택이 있어서 색깔이 쪽빛이고 새까만 까마귀 날개처럼 반질반질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추정해 본다.
남해안 및 섬 지방에 주로 자라는 상록활엽수 소교목으로 나무높이 7∼10m, 지름 30cm에 이른다. 나무 껍질은 갈색으로 매끈하다. 잎은 긴 타원형이고 양끝이 좁고 매우 두껍다. 표면은 진한 초록빛이며 뒷면에는 갈색 흰털이 촘촘하고 가장자리가 뒤로 약간 말린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연한 노랑 빛으로 10월에 피고, 열매는 핵과로 타원형이며 이듬해 10월에 보라 빛으로 익는다.
8.구실잣밤나무
구실잣밤나무와 모밀잣밤나무가 있으며 육지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는 남쪽 난대림에 자라는 나무이다. 잣밤은 도토리보다 작고 약간 길쭉한 열매인데 밤나무처럼 식용할 수 있으나 밤나무에 비하여는 훨씬 격이 떨어지니 잡(雜)밤나무가 잣밤나무로 된 것 같다.
제주도, 완도 등 남쪽 섬에 분포하는 상록활엽수. 잎 표면은 초록빛으로 윤기가 있고 뒷면은 털로 덮여 있으며 연한 은갈색이다. 꽃은 암수 한 나무로 6월에 피며 다음 해 10월에 익는다. 거제도에서는 짝밤나무라고도 하며 고현 시외버스 터미널 도로변에 심겨져 있다.
9.육박나무
남부해안과 제주도를 비롯한 섬지방에 주로 자라는 상록활엽수 교목으로 수고 15m, 직경 1m에 이른다. 나무껍질은 매끄럽고 연한 자흑색인데 큰비늘처럼 떨어져서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의 껍질처럼 얼룩이 특징이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긴 타원형이고 길이 7∼8cm정도이며 둔두, 예저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윤기가 있고 뒷면은 회녹색으로서 잔털이 밀생하여 희게 보인다. 7∼10쌍의 우상맥이 있다. 암수가 다른 나무이고 열매는 둥글며 지름 1cm정도로서 다음해 7∼8월에 적색으로 익는다.
10.예덕나무
거제도 전역에 분포하며 새순은 붉은색을 띤다. 남해안 및 섬 지방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소교목으로 나무높이 10m에 이른다. 나무껍질은 세로로 갈라지며 어린 가지는 회색의 털이 촘촘하고 붉은빛이 돌지만 점차 연한 잿빛으로 된다.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3개 정도로 약간 갈라지고 잎자루가 매우 길다. 꽃은 암 수 딴나무로 6∼7월에 가지 끝의 원추화서에 달리고 열매는 삭과로서 삼각형 비슷한 원형이고 10월에 익으며 황갈색 선점과 털이 촘촘하다.
11,순비기나무
동의보감에 보면 <순비기의 열매는 만형실(蔓荊實) 혹은 만형자(蔓荊子)이라고 하는데 성질은 약간 차며 맛이 쓰고 매우며 독이 없다. 풍으로 머리가 아프며 골속이 울 리는 것, 눈물이 나는 것을 낫게하며 눈을 맑게하고 이빨을 든든히 하며 몸에 있는 9개의 구멍을 잘 통하게 하고 수염과 머리털을 잘 자라게 한다. 피부감각이 둔해지는 습비로 살이 오그라드는 것을 낫게하며 촌충과 회충을 없앤다. 술에 축여서 찌고 햇빛에 말린 다음 짓찧어서 쓴다>고 하였다. 중.남부 지방의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상록활엽수 관목으로 길이 수십m까지 옆으로 뻗어 자라서 덩굴처럼 보인다. 열매를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 다음 베개에 넣어 두면 두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잎과 가지에는 향기가 있어 목욕탕 물에 넣어 향료로도 쓴다. 어느 해인가 남해안에 채집을 간 김에 순비기나무의 잎과 열매를 따다 열심히 말려서 가끔 편두통을 호소하는 집 사람의 베개에 넣어 준 적이 있다. 그러나 전혀 효과가 없다나!. 병이란 마음가짐도 대단히 중요한데 낫는다는 믿음이 없었던 탓이라고 핀잔만 주었다.
잎은 마주나기하고 둥글며 톱니가 없고 혁질이며 뒷면에 흰빛 털이 촘촘하다. 꽃은 7∼9월에 보라빛으로 피고 원추화서는 가지 끝에 달리며 꽃자루가 짧은 꽃이 많이 달린다. 열매는 핵과이고 구형이며 9∼10월에 흑자색으로 익는다.
( 거제도 공고지의 순비기나무. 나무의 길이 약50m이며 배 아픈데 특효약임)
12. 사철나무
漢名은 冬靑으로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은 많은 상록수가 있지만 유별나게 이 나무만 사철 내내 푸르다는 의미로 사철나무가 되었다. 정원수로 심고 있는 상록활엽수 관목으로 높이 3m까지가 보통이나 때로는 직경10cm, 높이 4∼5m의 소교목정도 크기로 자라기도 한다. 줄기는 직립하지만 가지가 굵게 많이 나서 수관이 퍼지며 어린 가지는 초록빛이다. 잎은 마주나기하고 긴 타원형으로 윤기가 있고 짙은 초록빛이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잎겨드랑이에 나는 취산화서에 달려 6∼7월에 녹백색 꽃이 피며 열매는 지름 8∼9mm로서 둥글고 10월에 엷은 홍색으로 익는다.
13. 팔손이나무
잎은 어긋나기하며 8개로 갈라져 손바닥모양으로 달리므로 팔손이란 이름이 생겼다. 남해 및 거제도에 자라는 상록활엽수 관목으로 높이 1∼2m정도이다. 잎 양면에는 털이 없고 표면은 짙은 초록빛으로 광택이 나고 뒷면은 황록색이다. 잎자루는 둥글고 길이 30cm이상으로 길다. 꽃은 흰빛으로 피고 열매는 이듬 해 5월에 검게 익으며 지름 3mm내외의 장과이다. 정원수로 심는다.
특징:겨울에 꽃이 피며 꽃이 화려하다. 잎이 여덟 개라고 팔손이라고 하나 실제는 팔손이가 많다. 가지 끝에 자잘한 흰색 꽃이 공처럼 둥글게 모여 달린 산형꽃차례가 모여서 커다란 원추꽃차례를 이룬다.
14.우묵사스레피
(박상진교수)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남해바다, 그 서남쪽 완도와 진도사이에 배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보길도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윤선도가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가 섬의 경치에 반하여 여기에 정착하고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길쭉하게 생긴 보길 섬의 서쪽 끝에 선창리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다. 10여호 남짓한 한가한 어촌이나 앞에는 1km 가까이 잘 가꾸어진 상록수 방풍림이 황해의 억센 바닷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 주었다. 바닷가에는 보길도 특유의 잘 다듬어진 까만색 차돌과 썰물 때만 나타나는 맑은 샘물이 있어서 보길도 수목채집을 가면 항상 선창리에서 점심을 먹도록 계획을 세웠다. 방풍림의 수종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까마귀쪽나무, 감탕나무, 보리밥나무, 천선과, 머귀나무 등 남쪽의 대표수종들이다. 사스레피나무와 생김새가 비슷하나 잎 끝이 뒤로 말리어 우묵하게 들어가서 우묵사스레피나무라고 한다. 또 열매가 쥐똥 같고 해안과 섬에 주로 자란다하여 섬쥐똥나무라 불리워지기도 한다.
*특징: 해변가 사람이 센곳에 주로 자라며 바다 바람에 견디느라 대부분 일자형으로 누어 있다.
15.사스레피
꽃다발을 만들 때 바탕으로 깔아두는 잎이 작은 상록수가 대부분 사스레피나무이다. 이름의 연유를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남부 지방에 자라는 상록활엽수 관목으로 높이 3m이다. 어린 가지는 갈색으로 털이 거의 없고 잎은 어긋나기하며 긴 타원형이고 길이 3∼8cm, 너비 1∼3cm로서 두껍다, 표면은 짙은 초록빛으로 광택이 있고 뒷면은 황록색으로 양면에 털이 없으며 잎자루는 길이 1∼5mm이다. 꽃은 전년 가지 잎의 겨드랑이에 1∼2개씩 달리며 암수 딴 나무로서 지름 5∼6mm의 연한 황록색 꽃이 4월에 개화한다. 장과는 10∼12월에 검은빛으로 익으며 둥글고 지름 5∼6mm이다.
*특징:거제도 전역에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거제도에서는 개동백이라고 한다.
16.천성과나무
하늘의 신선이 먹는 과일이란 뜻의 천선과(天仙果)에서 온 이름이다. 무화과처럼 꽃이 보이지 않은 채 열매가 달리고 익으면 진한 자주빛이 된다. 크기는 손톱 굵기 정도로 젖먹이 애기를 둔 잘 발달한 엄마의 젖꼭지와 모양이나 색깔이 아주 흡사하여 전라남도 일부 지방에서는 아예 젖꼭지나무라고도 한다. 신선이 먹는 과일이니 얼마나 맛있겠는가고 생각하였다면 한번 맛보고 크게 실망할 것이다. 무화과와 같이 육질이 부드럽고 작은 씨앗이 씹히는 맛까지 있으나 무화과에 비하여는 훨씬 달지 않다. 설탕 맛에 찌들어 버린 요즈음의 우리 혀끝에 천선과의 맛 정도로는 무슨 맛으로 조상님들이 이런 싱거운 과일을 잡수셨는지 의심이 간다. 아마 천선과란 이름은 맛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열매의 크기나 모양에서 찾는 것이 아닐지? 천선과의 잘 익은 열매로 연상되는 엄마의 젖꼭지는 유년시절의 포근함과 나긋함을 연상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신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열매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창원시 동읍 다호리 일대(사적 제327호)의 초기 가야시대 고분에서 천선과나무로 추정되는 열매가 나온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식용하였던 과일나무인 것 같다.
*특징: 겨울에는 잎은 없고 열매만 달려 섬을 지키고 있다.
17. 작살나무
무슨 일이 잘못되어 크게 낭패를 당하면 속된 표현으로 '작살'난다고 한다. 이 나무는 가지가 마주나기로 달리면서 굵고 단단하여 고기를 잡을 때 쓰는 작살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므로 작살나무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작살나무의 특징은 독특한 열매에 있다. 가을부터 초겨울에 걸쳐 가지에 달려 있는 작고 앙증맞은 자주색 열매는 색깔의 해맑음이 우리나라의 유난히 푸른 가을 하늘과 어울러져 자연색의 신비함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자로도 보라빛 구슬이라는 의미의 자주(紫珠)라 하고 일본 말 이름에도 보라빛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다. 자그마하게 자라는 나무이니 정원의 한구석에 심어 볼 만한 대표적인 우리 나무이다.
열매의 자주빛은 맑은 자수정을 연상할 만큼 아름답고 겨울 내내 달려있다. 작살나무속에는 작살나무이외에 좀작살나무(C. dichotoma)와 새비나무(C. mollis)가 있는데 다음과 같이 식별한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1/2이상에만 톱니가가 있고 열매는 지름이 2∼3mm정도이면 좀작살나무, 잎 밑 부분 까지 톱니가 있으며 열매는 지름이 4∼5mm정도이면서 잎의 표면에 털이 없고 뒷면에는 선점이 있고 어디에서나 자라는 것이 작살나무, 작살나무와 거의 같으나 잎의 표면에 털이 있고 뒷면에 선점이 없으며 주로 남해안의 섬 지방에 자라는 것이 새비나무이다.
18.동박새
몸길이 약 11.5cm이다. 몸의 윗면은 녹색이고 날개와 꽁지는 녹색을 띤 갈색이다. 턱밑과 멱 및 아래꽁지덮깃은 노란색 또는 녹색을 띤 노란색이다. 가슴 아랫면은 흰색이다. 부리와 다리는 검고 흰색 눈 둘레가 돋보인다. 나뭇가지에 둥지를 늘어지게 짓고 5∼6월에 한배에 4∼5개의 알을 낳아 암수 함께 품고 기른다. 먹이는 거미나 곤충 같은 동물성 먹이도 먹지만 주로 꽃의 꿀을 따먹는다. 그 중에서도 동백꽃의 꿀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중부이남, 특히 제주도와 울릉도 등 섬 지방에 흔한 텃새이다.
*특징:겨울 동백꽃이 피면 지심도는 동박새의 천국이다. 봄에 먹을 것이 없어 비파나무를 주로 먹고 있다.
*특징:우리나라 산과들의 무법자이며 거제도에서는 삐익 삐익 운다고 박새라고도 한다.
19.콩짜개덩굴
해안지대와 섬의 바위 또는 노목 겉에 붙어서 자란다. 가는 뿌리줄기가 옆으로 벋으면서 잎이 군데군데 돋는다. 잎은 포자낭군이 달리는 포자엽과 달리지 않는 영양엽이 있다. 영양엽은 둥글거나 넓은 타원형이고 육질이며 겉은 윤기가 있다. 포자엽은 선형이고 길이 2∼4cm, 나비 3∼4mm이며 주맥 양쪽에 포자낭군이 밀생한다. 한국 ·일본 ·타이완 및 중국 남쪽에 분포한다.
*특징: 거제도 남쪽 따뜻하고 습기가 있는 곳은 바위나 나무줄기를 감고 살아가며 화원에서는 분재작 구성 시 첨가 재료로 쓴다.
20.땅채송화
갯채송화 또는 각시기린초라고도 한다. 바닷가의 바위 겉에서 자란다. 높이는 10cm 정도이며 모여 산다. 줄기는 옆으로 뻗어 많은 가지를 내며 원줄기 윗부분과 가지가 모여 곧게 선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는 없다. 꽃은 노란색으로 6∼7월에 피며, 꽃이삭은 흔히 3개로 갈라진다. 꽃잎은 5개이고 넓은 바소꼴로 끝이 날카로우며 뾰족하다. 관상용, 약용으로 쓰이며 어린 순은 먹기도 한다.
*특징: 남해안 따뜻한 해안가 절벽에 주로 생활하며 추위에 약하다. 사촌으로 바위채송화가 있다.(주로 산지) 사진에 보이는 것은 갯사초 , 갯고들빼기이다.
21.멀꿀나무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아 흔히 남쪽 섬 지방의 담장에 올려놓은 덩굴로 심는다. 겨울에는 담장을 푸르게 덮어주고 가을이면 맛있는 열매를 먹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이다. 남부 해안 지방의 계곡이나 숲 속에 자라는 상록활엽수 덩굴이다.
*특징:거제도에서도 남부 따뜻한 곳에 자라며 등나무와 함께 여름 차양용으로 이용된다. 일본군 발전소가 있던 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키운 멀꿀(거제도 사투리 먹나무)
22.골잎원추리·
골잎넘나물이라고도 한다.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50∼80cm이다. 뿌리는 끈 모양이고 사방으로 퍼지며 꽃줄기는 곧게 선다. 잎은 마주나고 겉에 깊은 골이 지며 끝이 뒤로 젖혀진다. 6∼8월에 노란색 꽃이 2∼6송이 총상꽃차례로 달리는데, 꽃줄기는 50~80cm이고 꽃 안쪽에는 짙은 붉은색 반점이 있다. 포는 길이 1∼3.5cm로 달걀 모양 바소꼴이고 꽃 지름은 4cm 정도이다. *거제도에서는 바닷가 절벽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피고 있다.
23,도깨비고비
도깨비쇠고비라고도 한다. 바닷가와 섬의 바위틈에서 자란다. 뿌리줄기는 굵고 짧으며 옆으로 뻗고 끝에서 잎이 뭉쳐 나온다. 잎자루는 길이가 15∼40cm이고 비늘조각이 붙는데 특히 밑 부분에 많다. 비늘조각은 달걀 모양 또는 바소꼴이고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며 갈색 또는 검은빛을 띤 갈색이고 끝이 뾰족하다.
*특징:겨울철 바닷가의 해변을 가노라면 진한 녹색의 양치식물을 만날 수가 있다. 겨울철에 색깔이 더 이름다우며 가정 정원의 암벽화원의 첨경재료로 쓰인다.
24. 송악
담장나무라고도 한다. 해안과 도서지방의 숲속에서 자란다. 길이 10m 이상 자라고 가지와 원줄기에서 기근이 자라면서 다른 물체에 붙어 올라간다. 꽃은 10∼11월에 양성화로 피고 녹색빛을 띤 노란색이며 산형꽃차례에 많은 꽃이 모여 달린다. 남쪽 지방에서는 소가 잘 먹는다고 소밥나무라고도 한다. 잎과 열매가 아름답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어 지피식물로 심는다.
*고창 선운사의 송악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 330㎡이고 수령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노거수이다. 송악은 상록활엽수로 보통 따뜻한 곳에서 자라나, 이 나무는 내륙의 분포 상 북한지대에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된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있다. 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 주변의 절벽에 뿌리를 내렸는데, 덩굴줄기가 암벽을 따라 위로 많은 가지를 낸 신기한 모습이다.
25.갯사초
바닷가에서 무더기로 자란다. 높이는 30∼50cm이고 잎은 단단하고 윤이 나며, 가장자리는 뒤로 젖혀진다. 4∼6월에 꽃이 피는데, 작은
이삭은 3∼6개이고 꼭대기의 것은 수꽃이삭이며 퉁퉁한 원통형이고 길이는 3∼6cm로 조밀하게 꽃이 붙는다. 암꽃이삭은 짧은 원통형이
며 수꽃이삭의 밑에 붙는다. 가끔 암꽃이삭의 위쪽 끝에 수꽃이 있는 경우가 있다. 꽃이삭 밑에 있는 포는 잎집 모양이고, 암꽃의 비늘조
각은 타원형이며 황갈색이고 까락이 있다. 해변가의 사방공사용으로 쓸 수 있는 풀이다. 한국 남부지방에 분포한다.
*특징:해안가 바위 부근에 자라며 여름보다 겨울에 진한 색깔을 볼 수 있다.
26. 자귀나무
자귀나무는 미모사(Mimosa, 신경초)와 모양이 비슷하며 밤이 되면 증산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소엽이 서로 마주보기로 붙어 버린다. 재미있는 것은 50-80개나 되는 소엽이 항상 짝수가 되어 서로 붙었을 때 짝이 없는 소엽이 남지 않은다. 따라서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뜻으로 심기도하며 합환수(合歡樹)라고도 한다. 또 콩꼬투리처럼 생긴 긴 열매는 겨울에 바람이 불면 서로 부딪쳐서 꽤나 시끄러우므로 옛 사람들은 여설수(女舌樹)란 이름도 붙여 두었다. 자귀나무 껍질은 합환피(合歡皮)라 하여 동의보감에 보면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근심을 없애서 만사를 즐겁게 한다>고 한다.
황해도 이남에 주로 자라는 낙엽활엽수 소교목으로 높이 3∼5m에 달한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짝수2회 우상복엽이며 소엽은 길이 1cm, 너비 3∼4mm정도에 불과하여 매우 작다. 작은 가지 끝에서 5cm 정도의 꽃자루가 자라서 15∼20개의 꽃이 우산모양으로 달리며 연분홍빛으로 아름답다. 흰 꽃도 있다. 9∼10월에 콩깍지 같은 긴 열매가 익으며 길이 15cm정도의 편평한 꼬투리에 5∼6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줄기가 굽거나 약간 드러눕는 모양이어서 목재로서의 큰 가치는 없고 나무껍질은 한약재로 이용된다. 관상수로서 정원, 공원에 적당하고 콩과식물이므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27.다정큼나무
장미목 매나무과의 상록관목. 높이는 2∼4m이고 작은 가지는 돌려난다. 처음에는 솜털로 덮이지만 곧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지만 가지 끝에 뭉쳐난 것처럼 보이고, 긴타원형으로 길이 3∼10㎝, 나비 2∼4㎝이다. 잎의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은 흰빛이 도는 연한 녹색으로서 그물맥이 뚜렷하고 밑부분이 좁아져서 길이 5∼20㎜의 잎자루와 연결되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원뿔꽃차례는 가지 끝에 달리며 갈색털이 있으나 점차 없어지고 꽃받침통은 갈색털이 빽빽이 난다. 꽃잎은 길이 10∼13㎜로서 끝이 둥글며 흔히 이[齒(치)] 모양 톱니가 있다. 열매는 둥글고 지름 7∼10㎜로서 윤기가 돈다. 한국·일본 등지에서 자란다.
28. 갯취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m. 밑 부분의 지름이 1㎝ 정도이며 가지가 없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는 길이 25∼50㎝이다. 잎 몸은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고 길이 15∼25㎝, 나비 12∼15㎝이다. 잎 몸의 밑 부분이 흘러서 잎자루의 날개로 되고, 회청색이며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으로서 밋밋하다. 줄기에 난 잎은 5개 정도로서 위로 올라갈수록 잎자루가 짧아져 없어지며 잎도 작아진다. 6∼7월에 황색의 꽃이 피며 끝부분의 꽃은 길이 4∼9㎜의 꽃자루 끝에 달리고 꽃턱잎은 바소꼴로서 길이 2∼3㎜이다. 총포(總苞)는 밑에 꽃턱잎이 없고 통 모양이며 길이 10∼11㎜, 지름 6㎜ 정도로 꽃턱잎조각은 5개가 서로 포개진다. 작은 꽃은 8개이며 길이 22∼24㎜이고 통부분은 길이 6∼8㎜, 설상부(舌狀部)는 나비 4∼5㎜이다. 열매는 수과(瘦果)로 원뿔 모양이고 관모는 붉은 빛이 돈다. 양(羊)의 옴 치료제로 쓰인다. 해안에서 자라며, 한국(제주·경남·거제)에 분포한다.
29. 갯까치수영
앵초목 앵초과의 쌍떡잎식물. 높이는 10∼40㎝. 두해살이풀로 전체에 털이 없고 줄기는 곧게 서며 밑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육질(肉質)이며 주걱 같은 거꿀바소꼴로 길이 2∼5㎝, 나비 1∼2㎝로서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끝이 둔하거나 둥글며 잎밑이 좁고 톱니가 없으며 잎에 광택이 있다. 꽃은 흰색으로 7∼8월에 피며 총상꽃차례로 가지 끝에 촘촘히 달리고 꽃자루가 짧으며 꽃부리는 5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5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꽃받침은 종 모양으로 5갈래이며 끝이 뭉뚝하다. 열매는 삭과로 둥글며 지름 4∼6㎜로 겉껍질은 단단하며 끝에서 작은 구멍이 뚫려 씨가 나온다. 한국(제주·전남·경북)·일본·중국·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30. 번행초
중심자목 번행과의 여러해살이풀. 풀 전체에 털은 없고 다육질(多肉質)이며, 빽빽하게 낟알모양의 돌기가 있다. 줄기는 밑에서 많이 갈라져 비스듬히 서거나 옆으로 뻗으며 길이 40∼80㎝이다. 잎은 1∼2㎝의 자루가 있고 어긋나며, 달걀모양의 삼각형이고 두껍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잎겨드랑이에 꽃자루가 매우 짧은 1∼2개의 꽃이 핀다. 꽃덮이조각은 4∼5장이며 황색이다. 꽃턱은 통모양으로 씨방과 함께 붙는데, 씨방은 반하위(半下位)이다. 열매는 견과(堅果)이고 거꿀달걀모양이며 윗부분에 4∼5개의 돌기가 있고, 속에 여러 개의 씨를 가지고 있으나 벌어지지 않는다. 어린 눈은 식용으로 쓴다. 동남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남아메리카에 분포한다.
거제도 특산 및 보호식물
수목 |
야생화 |
난종류 |
양치식물, 기타 |
황칠나무 |
야고 |
은난초 |
넉줄고사리 |
굴거리나무 |
애기송이풀 |
은대난초 |
봉의꼬리 |
단풍박쥐나무 |
복수초 |
금난초 |
부처손 |
거제딸기 |
산작약 |
약난초, 두입약난초 |
바위손 |
팔손이나무 |
백양꽃 |
풍란 |
구실사리 |
긴잎산딸기나무 |
갯취 |
석곡 |
단풍고사리삼 |
털덜꿩나무 |
거제물봉선(처진물봉선) |
솔잎란 |
산고사리삼 |
백서향 |
옥녀꽃대 |
병아리란 |
고비 |
줄사철나무 |
새끼노루귀 |
대흥란 |
발풀고사리 |
순비기나무 |
천남성종류 |
타래란 |
넉줄고사리 |
멀꿀 |
대반하 |
천마 |
부싯깃고사리 |
감탕나무 |
모람 |
새우란 |
도깨비고비 |
먼나무 |
송악 |
꼬마은난초 |
우단일엽 |
왕마삭줄 |
털머위 |
잠자리난초 |
석위 |
백,오색동백 |
곤달피 |
옥잠난초 |
세뿔석위 |
참회나무 |
해국 |
산제비란 |
애기석위 |
섬향나무 |
두루미천남성 |
개불알꽃 |
산일엽초 |
함박꽃나무 |
개승마 |
방울새란 |
애기일엽초 |
머귀나무 |
은꿩의다리 |
지네발란 |
버들일엽초 |
왕개서어나무 |
비진도콩 |
해오라비난초 |
우단일엽 |
비슬나무 |
큰앵초 |
흰제비란 |
양하 |
좀,왕마삭덩굴 |
동의나물 |
사철란 |
천문동 |
백리향 |
나도수정초 |
닭의 난초 |
끈끈이주걱 |
뻐국나리 |
이삭귀개 | ||
이기등나무 |
쑥방망이 |
땅귀개 | |
애기앉은부채 |
|||
난쟁이바위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