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61)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라스베가스엔 가본 적도 없지만 이제사 라스베가스를 떠납니다
선인장으로 만든 술을 마시며 화려한 꿈속에서 생을 탕진하려 했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곳은 먼지들 가득한 사막 속 메마른 슬픔의 고장
슬픔의 감정마저 몰락해가는 석양의 라스베가스
이제사 라스베가스를 떠납니다
두고 온 것도 없지만 가져갈 것도 없는 라스베가스를 거기에 두고
나의 혁명을 찾아 떠납니다
나의 혁명은 진정한 적멸에 드는 것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몰락하겠습니다
슬픔도 음악도 없이 고요히 소멸하겠습니다
라스베가스엔 가본 적도 없지만 이제사 환락과 허영의 도시를 떠납니다
안녕,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내 어설픈 사랑이여
- 박정대(1965- ),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달아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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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혁명의 시인이자, 제게 시를 쓰게 하는 시인 중의 한 시인인 박정대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의 시를 읽었습니다. “촛불을 켠다/바라본다/고요한 혁명을”(「촛불의 미학」전문, 『단편들』, 문학동네포에지, 2020, 이 시 외 이하 인용하는 시는 오늘 소개하는 열한 번째 시집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에서 인용 ). 1997년에 낸 첫 시집 『단편들』에 첫 시로 실은 앞의 시 「촛불의 미학」에서부터 시인은 꾸준하게 혁명을 노래해 왔습니다. “한때 모든 노래는 사랑이었다/한때 모든 노래는 혁명이었다//모든 노래는 사랑에서 발원하여 혁명으로 가는 급행열차였다”(「안녕, 낭만적으로 인사하고 우리는 고전적으로 헤어진다」 부분). 시인의 시의 행보가 특이하여 시인의 시를 초현실이나 탈현실의 관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시적 현실의 관점에서 이즘-ism으로 시를 보는 시선을 버린 요즘의 제게 시인의 시는 늘 현실입니다. 시인의 시를 현실로 보는 관점이 지나치다면 혹 반半현실로 볼 수도 있습니다. 반은 이 거대한 지구에서의 경계 지어진 국가라는 수렁의 현실, 나머지 반은 시인이 가끔 들르고 머무는 세계에서의 시적 현실. “꿈꾸니까 일어나는 게 혁명”(「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혁명!」 부분)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늘 꿈꾸었으니, 혁명을 꿈꾸며 혁명 뒤에 올 어떤 “라스베가스”를 떠올렸습니다. 이러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나는 이제 이 별에서의 혁명을 꿈꾸지 않는”(「안녕, 낭만적으로 인사하고 우리는 고전적으로 헤어진다」 부분) 답니다. “그날 밤 선술집 밖으로는 밤새 눈이 내렸다//그날 밤 선술집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그날 밤 선술집 밖으로는 밤새 눈이 내렸다”(「혁명의 모든 기록」 전문). 정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에게도 분명 혁명의 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늘 실패로 끝났습니다. 돌아보건대 혁명은 있었지만 혁명의 뒤끝이 씁쓸했던 건 어쩌면 그 뒤끝이 “인민의 저의가 누락” 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인민의 저의가 누락된 곳에/인민의 사랑은 없”고 “인민의 사랑이 결여된 곳에 더 이상의 시는 없”(「기분전환용 가정기도서」 부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인이 진짜로 혁명을 버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대여, 이제는 본질적인 것을 꿈꾸어야 하리/우리는 계속 혁명을 향해 나아가고/혁명은 여전히 우리의 뒤를 따르리니”(「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부분). 혁명은 일회성이 아닙니다. 혁명은 끝이 없습니다. “본질”을 저 밖의 “가본 적도 없”는 “라스베가스”의 “환락과 허영”에만 두었다가 시인은 이제 이 안의 “나의 혁명”을 찾기로 했으니까요. “나의 혁명은 진정한 적멸에 두는 것”. 저 밖의 혁명과 이 안의 “나의 혁명”은 함께 가야 하는 혁명의 두 모습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 저 밖의 혁명과 동시에 나아가야 하는 이 안의 “나의 혁명”을 배제했습니다. 이 시들을 읽는 중에 공부 모임에 갔다가 “내외교치內外交致”(『심경부주心經附註』제17장의 부주)를 배웠습니다. 공부든 혁명이든 세상 모든 이치가 안팎의 조화에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음에도 우리는 종종 이것을 간과합니다. 서로 힘쓰되 안팎은 동시에 가야 합니다. 시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봅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유월에 시작되어 구월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끝까지 무탈하시고 오는 추석 명절 잘 쇠시기를 빕니다. (20240911)
첫댓글 나의 혁명은 진정한 적멸에 드는 것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몰락하겠습니다
슬픔도 음악도 없이 고요히 소멸하겠습니다
그대여, 이제는 본질적인 것을 꿈꾸어야 하리
우리는 계속 혁명을 향해 나아가고
혁명은 여전히 우리의 뒤를 따르리니
이 시들을 읽는 중에 공부 모임에 갔다가 “내외교치內外交致”(『심경부주心經附註』제17장의 부주)를 배웠습니다. 공부든 혁명이든 세상 모든 이치가 안팎의 조화에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음에도 우리는 종종 이것을 간과합니다. 서로 힘쓰되 안팎은 동시에 가야 합니다.
* 감사합니다. 시와 시 산책 잘 읽었습니다. 추석 잘 쇠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