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전재성 지음, 선재
몇 해 전 텔레비전을 통해 알려진 독일의 거지수행자 페터 노이야르. 원래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의 수행자들은 거지였지만, 거지인 수행자가 참으로 없어진 요즘 거지이며 동시에 수행자인 사람은 사실, 수행자라기보다 거지로서 대우받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눈 푸른 거지 수행자 페터 노이야르를 텔레비전에서 보고 신선한 충격과 묘한 의구심이 있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거지성자>라는 책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가 겉으로만 잰 체하는 거지수행자라는 분명 아니었다.
이 책은 며칠전 헌책방에서 만난 것이다. 속리산 쪽에 살고 계시는 지인을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모두 읽었다. 두껍지 않은 적당한 분량, 사진들, 그리고 간혹 삽입된 불경과 카비르의 눈부신 싯귀들이 가볍지만 낭낭하게 울리는 풍경소리처럼 좋은 느낌을 준다.
그가 방문한 한국절에서 여러 스님들이 많이 불어보는 질문은 역시, 수행을 위해 거지행각을 꼭 해야 하는가였다. 그는 부처님의 법을 따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전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한국스님들은 그처럼 출가하지 않았지만 원칙에선 오히려 출가한 스님들보다 더 철저히 무소유하며 구도의 길을 걷는 페터를 보는 게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스님들이 자가용 타고 다니고 무애행을 한다고 고기도 술도 먹는 모습을 더러 보는 터라 그의 근본주의적 태도는 그야말로 주장자로 얻어맞는 기분이 들 것이다. 더구나 일부 스님들은 출가한 것이 벼슬한 것 같이 속인과 구분하고 무의식 중에 자만하는 경우가 있어, 눈쌀이 찌푸러지는 때도 더러 있다.
그런 면에서 페터의 방식과 지향은 좋은 충고가 될 것이다. 초기 불교의 비파사나 명상을 홀로 실천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있는 페터의 삶 자체가 스스로 등불이 되어 걷는 구도자의 모습이었다.
그가 카비르의 열렬한 팬이라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우리가 도시에 적응하고 옷과 구두에 적응하여 사는 것처럼, 그는 영하의 날씨에도 맨발로 걷고 나무 밑에서 자고, 기운 옷에 적응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다르다하여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지만 정작 이상한 게 자신들이라는 걸 왜 모를까? 왜 자유롭고 진정 행복하게 살지 않고, 구속받고 긴장하며 사는가?
시내를 나가면 도처에서 거지를 만난다. 그들이야말로 언제나 시대의 수탉임에 틀림없다.
페터 노이야르
:1941년생. 68년 프랑스 5월 혁명에 참여했고 청년 시절 사랑했던 연인의 갑작스런 죽음과 서구 문명에 대한 회의로 방황과 여행을 거듭하던 중 동양 사상과 종교, 특히 불교에 심취하여 붓다가 살았던 방식인 아나가리카, 즉 집 없는 출가 수행자의 길을 독일 도시의 한 복판에서 걸어가고 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누더기와 작은 손수레, 보자기, 실과 바늘이 전부다. 그가 자는 곳은 숲 속의 나무 밑. 하루 한끼니 만 탁발로 해결한다. 망명을 온 이란인이나 외국인 유학생 들에게 훌륭한 카운슬러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동서양의 수많은 종교와 성현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시들이 줄줄 암송된다. 그러나 항상 그는 진실하고 온유하며 겸손하여 자신의 깨달음과 지식을 드러내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정한 친구처럼 대한다. 독일 슈타트안자이거(지역 일간지)에 '린덴탈(쾰른시내의 지역명)의 붓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 출판사 리뷰 -
맑고 향기로운 수행자의 삶에서 얻는 영혼의 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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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성자>와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독일인 수행자 페터 씨의 두 번째 이야기. 지난 해 12월 저자와 함께 한 우리 산천 만행기이다. 페터 씨는 독일 쾰른 대학 숲 속에서 누더기 한 벌만을 걸친 채 하루 한 끼만을 탁발하면서 20여 년을 살아 왔다. 그의 이러한 생활은 붓다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붓다는 그의 제자들에게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라'고 했다. 또한 '새가 제 날개의 무게로만 날 듯이' 누더기 옷만으로 살 것과 '담 벽에 남은 달빛만큼'의 음식만을 빌어 먹으라'고 했던 것이다. 최근 그는 양말까지도 벗어버렸다. 한겨울에도 맨발로 지내는 것이다. 페터 씨는 무소유행자이지만 이 책에는 풍요로운 그의 가르침이 가득하다. 그의 가르침은 우리가 문명화의 과정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삶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것만을 소유할 것을 가르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은 결국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이 들판이, 이 세상이 모두 나이다. 자연을 해치는 것은 곧 나를 해치는 것과 같다. 자연을 해치는 것은 곧 스스로 죽음의 길을 재촉하는 것이다. 지금 집이 불타고 있는데, 왜 태평하게 잠들어 있는가?' 수행의 본고장인 한국을 떠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두 개의 보물을 갖고 있다. 하나는 불법이요, 다른 하나는 숨쉴 수조차 없이 아름다운 자연이다.' 이 책은 서양의 수행자가 바라본 한국의 모습인 동시에, 깨달음의 본질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맑고 향기로운 수행자의 삶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속진에 오염된 마음의 거울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
- 목차 -
1.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2.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3. 꽃비는 묵은 가지에 붉도다 4. 허공에는 자취가 없고 사문에게는 딴 뜻이 없다 5. 번뇌의 화살을 뽑아라 6. 깨달음은 계율을 나루터로 하는 호수 7. 하늘의 멍에마저 내려놓은 자는 누구인가 8. 칼끝에 묻은 꿀 한 방울에 혀를 베이지 말라 9. 청정한 삶이야말로 물이 필요 없는 목욕이다 10. 달콤한 목소리를 지니니 새만이 새장에 갇힌다 11. 차나 한 잔 마시게 12. 마음의 연꽃 안에 그는 살고 있네 13. 가장 위대한 전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이다 14. 바람이 가고 가면 대숲은 소리를 내지 않고, 기러기가 15. 죽음은 그대를 낚는 낚시꾼 16. 얼마나 흐르고픈 심정이랴 17. 그대 발 밑에 묻힌 황금 보화를 보라 18. 깨달음으로 가는 오직 한 길 19. 가시를 뿌린 사람 앞에 꽃을 뿌려 주라 20. 새는 제 날개의 무게로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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