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시리즈
VII. 경외의 결과/축복 (Results/Blessings of Awe)
1) 경외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긍휼
시 103: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
핵심 : 경외하는 자에게 한없는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
서론: ‘두려움’이 ‘안식’이 되는 신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경외'를 계속 묵상해오면서 혹시 마음 한구석에 피로감이 있지는 않으셨나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거룩해야 한다", "절제해야 한다"는 말씀들이 마치 엄격한 율법처럼 우리를 짓누르지는 않았나요?
그런데 오늘 시편 103편은 우리에게 반전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심판의 매’가 아니라 ‘한량없는 긍휼’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를 가져옵니다. 바로 하늘과 땅의 거리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도리어 하나님의 가장 따뜻한 품에 안기게 되는 이 복음의 역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압도적인 거리, 더 압도적인 인자하심
1) 원어 분석: 측량할 수 없는 ‘헤세드’의 위엄
다윗은 하나님의 속성을 노래하며 아주 장엄한 비교를 시도합니다.
인자하심 (חֶסֶד, 헤세드): 이 단어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언약에 기초한 변함없는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기분에 따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맺은 약속 때문에, 우리가 연약할 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높음 같이 (כִּגְבֹהַּ, 키그보하):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높다는 뜻을 넘어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격차’를 의미합니다.
크심이로다 (גָּבַר, 가바르): 이 단어는 ‘강하다’, ‘압도하다’, ‘승리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능히 덮고도 남을 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신의 작음을 알기에 하나님의 크심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고개를 들어 저 높은 하늘을 볼 때 느끼는 그 경외감이, 곧 우리를 덮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임을 성경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2) ‘벌받을까 무서운 마음’ vs ‘사랑해서 떠는 마음’
현실 속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긍휼을 오해합니다.
우리는 내가 무언가 잘해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제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실까?"라는 의심에 빠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하늘의 높이'가 아닌 '내 수준의 높이'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아이를 볼 때, 아이가 실수하고 넘어졌다고 해서 사랑을 거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연약함 때문에 마음이 더 쓰이고 긍휼히 여기게 되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신의 완벽함을 내세우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는 자입니다.
3)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긍휼 (Solus Christus)
하늘과 땅의 그 먼 거리를 메우신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만큼 높은 당신의 공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땅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심으로, 그 측량할 수 없는 거리를 사랑의 다리로 연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무서워하며 도망가길 원치 않으십니다. 거룩한 두려움(경외)을 가지고 당신께 더 가까이 나아와, 그 무한한 긍휼의 바다에 흠뻑 젖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삶의 적용: 은혜의 높이를 회복하는 회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인본주의적 생각들, 하나님의 사랑을 내 수준으로 제한한 죄를을 회개합시다.
인색한 하나님으로 오해한 죄 회개:
하나님을 조금만 잘못하면 벌을 주시는 분, 혹은 내 행위에 따라 사랑을 주었다 뺏었다 하시는 분으로 오해했던 ‘빈약한 신앙’을 회개합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내 좁은 가슴의 크기로 가두어 두었던 무례함을 고백합시다.
긍휼 없는 경외 회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분이 베푸신 용서와 자비를 누리지 못하고 늘 죄책감 속에 자학하며 살았던 ‘불신앙적 공포’를 내려놓읍시다.
경외는 ‘용서받은 자’의 가장 깊은 반응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께 야단맞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에게 베푸신 하늘 같은 사랑에 압도되어 그분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경외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긍휼은 끝이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의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옮기셨다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지 않으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보십니다. 이것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누리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결론: 가장 높은 사랑의 품에 안기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고개를 들어 영적인 하늘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실패보다, 여러분의 수치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훨씬 더 높고 큽니다.
경외함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채찍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가장 깊은 속살로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여러분을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강한 팔 안에서의 떨림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여러분을 덮고 있는 그 거대한 긍휼을 묵상하십시오. 그 사랑에 압도되어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경외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