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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傳燈으로 繼承되는 傳法의 세계
박희
타 종교와 다른 불교의 특성
이 세상에는 각 지역마다 여러 종교들이 있다. 각각의 교조敎祖들이 제시해 놓은 각자의 독특한 교리를 펼쳐 포교하며 신자들은 거기에 맞게 신앙생활을 수행하고 있다. 각 종교마다 교리에 다양성은 있을지라도 그 추구하는 바는 신자信者 개인의 수신修身, 효도와 동질감을 바탕으로 하는 화목한 가정생활, 명랑하고 밝은 건전한 사회구현, 국가의 은혜를 중시重視하며 국가에는 충성, 세계 인류 평화에 기여를 목표로 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하고 다시 태어나는 내생에는 좋은 곳에서 태어나길 기원한다. 그 곳의 명칭이야 천당이든 저승이든 영계靈界이든 상관이 없다. 다만 고통이 부과되는 지옥만은 아니어야 한다. 불교에서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이 다음 생에 가는 세계를 극락極樂, 피안彼岸, 안양安養, 낙생樂生, 생극生極, 천안天安 등 여러 가지 이름이 붙여져 있으나 문패門牌만 다를 뿐이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지점은 한 가지이다.
이러한 여러 종교들은 자기네 종교의 교리를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일상생활의 매사를 교리에 바탕을 둔 성실한 실천적 삶을 요구하고 있고, 신자들 또한 거기에 맞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교리를 믿고 따르는 데에는 그 믿음이 절대적이어야 하며 추호의 의심도 용납되지 않는다. 일반 대인관계의 믿음이 신의, 신뢰, 신용이라면 종교의 절대자에 대한 신자의 믿음은 자세는 우러러 믿는 신앙이다.
그런데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으니 교조인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도 무조건 믿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그 가르침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의심을 품어 보라는 것이다. 가르침의 진리 모든 것을 송두리째 다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 자신과의 신앙 관계설정에서 일말의 의심을 품고 나서 더 큰 긍정을 찾으라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언감생심의 무엄한 경지이다. 그러나 불교는 이것을 용납도 하고 높은 경지에서는 오히려 권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의심을 품는 씨앗 그 덩어리를 의단疑團이라 한다. 의심의 덩어리는 자신의 근기根器에 맞아야하나,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그 깨달음의 경지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대의지하필유대오大疑之下必有大悟). 의단의 생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념념불리念念不離) 계속 용맹정진(용맹정진勇猛精進)하면 확철대오(廓徹大悟:확연히 꿰뚫어 크게 깨우침)의 희열의 경지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의 역대 선사들은 각자 나름의 법기法器속에서 정진수행한 결과 확철대오한 분이 무수히 많다. 법기란 법의 그릇이 큰 사람, 즉 불법의 가르침을 받기에 족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법의 그릇이 크다는 것은 법의 근기가 높고, 대도大道수행을 할 수 있는 바탕과 소질이 큰 사람을 가리킨다.
확철대오에 대한 선하자禪荷子 스님의 설화 하나를 소개해 본다.
선하자스님은 조선 중엽 벽송碧松스님의 제자다. 유명한 서산西山대사에게는 사숙이 되는 분이다. 경상도 울산사람인데 선조때 조실부모하고 16세 때 출가하였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다가 한번 마음을 밝혀 보리라는 생각을 크게 먹고 24세가 되던 해 평안도 묘향산 문수암으로 올라갔다. 묘향산 문수암은 예로부터 많은 성현들의 영적이 나타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비로암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이르러 산책을 하고 있다가 건너편 선령대仙靈臺에서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거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무리 보아도 인간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쫓아갔다. 그러나 그 노인은 부지불각 간에 홀연히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눈을 씻고 닦고 좌고우면左顧右眄으로 사방을 거듭거듭 살펴보아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성현의 화신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 없다 생각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기도하여 기필코 그를 직접 만나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백일동안 기도드리며 먹고 지낼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안주 땅에 내려가서 탁발을 하였다. 선하자 스님은 탁발하면서도 그러하였지만 탁발한 식량을 등에 지고 묘향산 비로암으로 올라오면서도 한 발짝 떼고 절 한 번 하는 일보일례一步一禮를 하였다. 비지땀을 흘리며 산 중턱쯤 올라가니 조그마한 아이들이 열대여섯 명이 놀고 있다가.
「저희들이 올려다 드리겠습니다.」하고 스님의 짐을 받아 절에까지 들어다 주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아이들은 세속 사람이 아니라 선하자의 정성에 감동하여 나타난 문수암의 나한님들이었다.
선하자 스님은 절에 이르러 성심성의로 직접 마지를 지어 올리며 백일기도를 시작하였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수를 헤아릴 수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낮의 구분 없이 관세음(觀世音)을 염창念唱하였다.
쉬는 시간이라고는 겨우 마지摩旨를 지어 올리는 시간인데 이 시간에도 짊어지고 법당에까지 올라가거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에 가거나 계속해서 관세음을 염창하였다. 그리하여 그 스님은 기도를 시작한 지 어언간 1백일이 다 되어 회향날 마지불기摩旨佛器를 들고 법당으로 올라가며 큰 소리로 관세음을 염창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망태기를 짊어진 사냥꾼이 나타나서 애원하였다.
「스님, 나는 여러 날 동안 굶어 배가 고파죽겠으니 그 밥을 나에게 주십시오.」
선하자 스님은 딱한 사정은 능히 그 밥을 주고도 남음이 있으나 매일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도리어 사정하였다.
「포수 영감님, 사정으로 보아서는 먼저 공양을 올려야 하오나 내가 지금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이니 잠깐만 기다리면 기도를 마치고 공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포수는 강경하였다.
「스님께서 마지를 올리는 순간이면 나는 이미 배가 고파 죽고 맙니다. 자비로써 이 불쌍한 중생을 위한 것 아닙니까?」
「하기야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가 마음에 약속한 바가 있어 그러니 죄송합니다.」
하고 선하자스님이 백배 사정하였다. 그러나 포수는 길을 막고 당당히 화를 냈다.
「정히 그러시다면 내가 이 총으로 스님을 죽이고 이 밥을 빼앗아 먹겠습니다.」
「여지껏도 굶었는데 잠깐 사이를 참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하고 선하자스님은 그를 떨치고 길을 올라갔다.
그때 포수는 갑자기 실탄을 장진하여 스님의 가슴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꽝-」하고 터진 총소리는 온 세계에 메아리쳤다.
순간 선하자 스님은 그 총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마음이 툭 터져버렸다. 너무도 기뻐 한참 가가대소呵呵大笑를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포수는 간곳이 없었다.
아니 그것은 포수가 아니라 선하자 스님의 정성에 감동된 문수보살이 나타나 그의 정성을 실험하였던 것이다. 문수의 대기大機에는 보현의 대행大行이 따르지 아니하면 구조가 어렵고, 관세음의 자비는 대세지보살의 대희大喜가 아니면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다.
생사일념生死一念, 죽고 사는 것에 관계없이 뜻한바 마음에 계약을 맺고 기도하는 사람이 어찌 사사로운 정에 팔려 인심을 팔고 사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托鉢精誠感羅漢 탁발정성감나한
供養什物上般來 공양집물상반래
祈禱一念化文殊 기도일념화문수
一發銃聲通大道 일발총성통대도
탁발정성이 나한님을 감동시켜
공양집물을 절로 올라오게 하더니
한 생각 빈 마음에 문수보살 나타나
한발의 총성으로 대도를 성취케 하였도다.
<韓國侍刹史料集, 安德菴著 佛敎信仰의 바른길>
선하자 스님이 일념으로 정진하여 문수보살을 친견한 법열의 오도경지悟道境地를 칠언절구형식의 게송으로 표현하였다. 게송偈頌은 선가禪家의 시게詩偈, 송고頌古, 가송歌頌 등을 통칭하는 용어로, 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漢詩의 한 형식이다. 형태만 한시일 뿐이지 한시가 갖고 있는 압운과 평측은 구애받지 않는다. 이때 일개 사문沙門에서 해탈득도解脫得道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다른 종교는 신앙적 절대자에게 추호의 의심도 없는 의지依支 속에서 구원을 받는 신앙구조라면, 불교는 철저하고도 거대한 의심의 큰 덩어리를 자력으로 사유思惟하고 정진하여 자신만이 터득한 대만족의 법열(法悅 :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와 같은 묘미와 쾌감에 마음이 쏠리어 취하다시피 되는 기쁨)의 경지를 이루는데 있다. 그래서 불교는 철저한 자력自力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자각自覺의 종교이며 이 깨우침을 다른 이에게도 전파하는 각타覺他의 대승大乘정신의 종교이다.
자각득도自覺得道의 경지
출가수행하는 사문沙門들이 참선수행의 과정에서 자신의 무명無明과 무지無智를 깨닫고 불타佛陀와 역대 선사禪師들의 깨달음의 경지를 배워 자신이 터득한 경지를 이루는데, 여기에는 자신의 무명무지無明無智한 등燈에 법열의 밝은 등불을 밝혀야 한다.
금년의 부처님 오신 날도 얼마 전에 지났다. 불교에서는 오랜 역사 동안 등에 불을 밝히는 연등과 제등提燈행사가 계속이어 지고 있다. 연등이란 등불을 달아 불을 밝힘으로 자신의 무명을 깨치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무량한 큰 공덕을 찬탄하고 귀의한다는 의미의 불 밝힘이다. 불교에서 등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가르침에서 시작된다. 어리석음과 어둠을 밝히는 의미는 지혜에 비유되면서 큰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이런 의식을 등공양燈供養이라 하며 향공양香供養 등 여러 공양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밝게 켜진 연등을 우러러 보면서 무명의 마음에 자각의 법등을 밝히는 것은 관등觀燈이라고 한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서는 한량없는 공덕의 등공양을 제시하였고,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는 법등명 자등명의 등공양을 소개한 설화가 많이 있다.
김양경金良鏡은 선경전도량음찬시응제宣慶殿道場音讚詩應製라는 제목의 시에서 ‘효전일고경각조 야감등철아선심(曉殿日高驚覺照 夜龕燈徹訝禪心 ; 새벽에 전각으로 솟아오르는 해는 깨달음이 아닌가 하고 놀라고, 불전佛殿 닫집의 밤새도록 켜 둔 등불은 불심을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전등傳燈이 아닌지.)’라고 노래했다.
원래 자등명 법등명은 석가세존께서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으로, 노년에 아난다의 청을 받아들여 설한 가르침이다. 석가가 죽림촌竹林村에 안거할 때 병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자 아난이 마지막 설법을 청하였다. 그러자 세존은 ‘너희는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라고 설파하였다. 이것이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다. 원래는 등燈이 아니라 섬〔島]이었다고 한다. 즉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라고 하였는데 한역漢譯되면서 섬이 등불로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왕릉이나 사찰에는 불을 밝히는 도구인 돌로 만들어진 석등石燈이 있다. 왕릉의 등은 장명등長明燈이라 하여 유계(幽界 : 영혼의 세계)의 혼령魂靈이 나와 편히 쉬게 하기 위한 등이다. 사찰의 석등은 밤에 도량을 밝게 밝히는 의미도 있으려니와 더 큰 의미는 부처님의 가르침, 어둠을 밝히는 등불에 비유하여 설치된 신앙적 의미가 강하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법,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라는 뜻으로 불법자체이니 미망迷妄한 세계의 무명심無明心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다. 부처님의 지혜와 가르침은 사바법계裟婆法界를 두루 비추는(편조 : 遍照) 등불이요 캄캄한 밤중에 대해를 항해하는 배들의 등대燈臺같은 존재이다. 등불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듯 진리를 깨달은 성자들의 가르침은 어리석은 중생들을 지혜의 길로 인도하고,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힌다. 등불이 다음 등불로 이어져 세상을 밝히듯이 정법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을 법등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사찰에서는 부처오심을 불 밝혀 환영하고 찬탄하며 초파일 법요식法要式을 마치고 어두움이 깃들면 가람에 달려있던 법등에 불을 밝혀 들고 재가신도들이 살고 있는 가로(街路 : 큰길)와 여항(閭巷 : 동네 골목골목)을 두루 돌며 무명을 깨치고 성불成佛할 것을 축원해 준다. 기독교가 성탄전야에 불을 밝히고 신도들의 집을 심방하며 구주의 탄신을 축복 드리는 것과 그 맥)이 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선사禪師는 수행정진하여 개오득도開悟得道를 하게 된다. 개오와 득도는 그 의미가 같은 말이다. 이상옥은 ‘고역古譯 및 구역舊譯 불경에 나타난 ‘오悟’의 연원규명’에서 선종禪宗문헌에는 ‘오悟’가 득도得道, 득불得佛, 대오大悟, 돈오頓悟, 득도得悟, 미오迷悟, 개오開悟, 각오覺悟, 해오解悟, 심오深悟, 성오醒悟, 계오契悟, 증오證悟, 묘오妙悟, 성오省悟 정각正覺, 각지覺知, 수증修證, 증명證明, 오도悟道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고찰하였다.
아무튼 득도의 경지는 법法을 이룬 것이니, 부처님의 일체의 가르침 즉 법을 이해하고 자신이 깨우친 하나의 영역이 설정되었음을 의미하며 그 법열의 희열喜悅을 글로 나타내는 이것이 게揭요 법게法揭이다. 게란 그 뜻이 매우 다양하며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덮어씌우거나 가로막았던 것을) 벗기다. 열다. 혹은 폭로하다. 공개하다. 들추어내다. 봉인을 뜯다. 나아가 높이 들다. 추켜들다. 쳐들다. 받쳐 들다. 게양하다. 불교의 세계에서 말한다면 수행자가 나름대로 한 전문적인 경지인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득도한 자신의 법은 법통을 이루며 사자상승(師資相承 :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법이 이어져 전해 감)의 법가문法家門이 형성되어 간다. 이렇게 법을 전하는 것을 전법傳法이라하며 법등法燈이 전해진다 하여 전등傳燈이라고도 한다. 이 전등은 부처님 이래 지금까지 대를 이어 끝없이 전해지고 있다. 사찰에서 조석으로 예불을 드릴 때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 지극한 마음으로 돌아가 목숨 바쳐 귀의합니다)를 염송하며 기도드린다.
이 염송 중에 ‘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제대 아라한 무량자비성중(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정법을 부촉 받으신 십대제자와 십육성과 오백성 아라한 등 무량한 자비스러운 성인들께 정성 다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예 올립니다)’과 ‘지심귀명례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 일체미진수 제대선지식(인도, 중국, 우리나라의 역대로 부처님 법을 전승하여 법을 펴신 조사님과 종사님과 선지식께 정성 다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예 올립니다.)’의 두 가지 귀의처를 말하고 있다.
두보杜甫는 일찍이 망우두사望牛頭寺라는 시에서 전등무백일 포지유황금(傳燈無白日 布地有黃金 ; 등불을 전함을 낮 없이 하니, 땅에는 황금이 펴 있도다.)라고 읊었다.
전법은 자신의 법을 시봉侍奉한 상좌上座들에게 일과로 전하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스승이 한 제자에게만 법을 전하는 것 즉 법통을 사자상승師資相承할 때 공고하게 유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널리 전하지 못하고, 의발衣鉢등 신표信標를 통해 한 제자에게만 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제자들 사이에 전법傳法에 따른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를 단전單傳이라고 한다.
전법에 관한 특기할만한 역사적 사례를 어느 큰 스님의 설법을 인용하여 소개해 본다.
중국 당나라 때에 석상石霜선사라는 아주 훌륭한 도인이 계셨는데, 전법하여 후사를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열반에 드셨다. 그러고 나니 회중會中에서는 뒤를 이을 분을 모시기 위한 대중공사大衆公事가 크게 벌어졌다. 법가문의 법통의 문제이니 대중들의 중차대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많은 제자들 가운데 대중을 지도할 수 있는 도안道眼이 밝고 덕망이 높은 훌륭한 큰스님을 모셔야 되겠는데, 어느 누가 도道가 가장 훌륭한지 서로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도인이라야 능히 도인을 안다' 고, 지혜의 눈을 갖춘 이가 있을 것 같으면 안목자眼目者를 바로 알아, 금방 모셨을 것이다. 그러나 점검해 주실主室 스승이 계시지 않는 상태에서 조실祖室 스님을 한 분 추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의견이 분분하다가, 그 회상(會上 : 불교에서 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석가세존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던 모임을 영산회상이라 한다.)에서 다년간 입승立繩도 보고 대중의 경도 받아오던 노장 스님을 조실에 모시기로 대중의 공론이 모아졌다.
입승은 절에서 기강紀綱을 맡은 소임으로 대중의 진퇴와 동작을 지시하는 소임을 맡는다. 유나維那와 비슷하다. 유나의 기원은 승단의 사무적 관장자를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의 갈마타나이다. 중국에서는 승중僧衆을 관리하는 의미에서 강유綱維의 유維와 갈마타나의 나那를 따서 유나維那라는 역직을 만들었다.
그런데 석상 선사의 시자侍子였던 나이 어린 구봉九峰스님이 완강히 반대하면서, “그렇다면 제가 열반하신 선사의 법문을 들어서 묻겠사오니, 만일 선사의 뜻에 맞게 답하신다면 그 때는 조실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하고는 물음을 던졌다.
“석상 선사께서는 항상 법문하시기를, ‘쉬어가고 쉬어가되 한 생각이 만 년을 가게하고, 찬 재와 마른 나무같이 가며, 옛 사당의 향로와 같이 차게 가고, 한 필의 흰 비단과 같이 이어가라.’ 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을 밝히신 것입니까?”
조실로 추대받던 노장스님이, “그 법문은 일색변사一色邊事를 밝힌 것이다.”라고 말하니, 시자가 듣고는 긍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석상 선사의 뜻을 모르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 노장스님이, “그러면 내가 향에 불을 붙여서 향 연기가 피어오를 동안에 이 몸뚱이를 벗어 보이겠다. 만약 내가 석상 선사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가 일어날 때 좌탈(坐脫 : 좌선한 채로 죽음)하지 못할 것이다.”하고는 향에 불을 붙여 한 줄기 향연香煙이 피어오르자 그만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 이에 구봉스님이 다가가서 그 스님의 등을 툭툭 치면서, “앉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 몸뚱이를 벗는 일은 없지 아니하나, 석상 선사의 근본 뜻은 꿈에도 보지 못하셨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앉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몸뚱이를 벗는 이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장한 일이다. 그러나 조사祖師스님들께서 법문하신 구절구절을 꿰뚫는, 그러한 심오한 진리의 눈이 열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후세에 천동각天童覺선사께서 이 법문에 대해서 멋지게 식파(識破 : 간파하다. 꿰뚫어 보다.)하신 대문이 있다.
月巢鶴作千年夢 월소학작천년몽
雪屋人迷一色空 설옥인미일색공
坐斷十方猶點額 좌단시방유점액
密移一步看飛龍 밀이일보간비룡
어스름 달빛 속에 학이 천 년의 꿈을 꿈이요
눈집의 사람이 백색의 공적에 미혹함이니
앉아서 시방을 끊는다 해도 아직은 점액일세.
한 걸음 더 슬쩍 나아가야 훨훨 나는 용을 보리라.
일색변사一色邊事의 대답으로는 잉어가 못둑에 이마를 박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석상 선사께서 하신 법문의 심오한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棒下無生印 봉하무생인
臨機不讓師 임기불사양
이 주장자 아래 남이 없는 진리는
기틀에 다다라 스승에게 사양하지 않음이로다.
천동각선사의 식파의 경지도 대단하지만 큰스님의 핵심요약은 요의(了義 : 명백하게 풀이된 궁극의 참뜻.)의 경지 또한 대단하다.
오묘奧妙한 전법 전등의 세계
석가세존께서 이 땅에 정법을 설하신이래 3천년의 세월동안 역대전등의 제대조사, 종사, 선지식들의 득도한 법과 이 법의 전법이 전등되는 그 오묘한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전법의 세계를 다룬 책으로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 가장 유명하다. 필자는 4십 년 전 동국대 재학시절 동국역경원에서 번역하던 경덕전등록의 교정을 보았다. 경덕전등록은 1006년 송나라의 고승 도원道源이 편찬한 역대 부처와 조사祖師들의 어록으로 한국불교 소의경전(所依經典 : 불교의 각 종단에서 신행을 비롯하여 교의적敎義的으로 의거하는 근본 경전)의 하나이다.
총 3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과거칠불로부터 역대 선종의 조사들, 오가五家 52세(世)에 이르기까지 법등法燈을 전한 법계法系를 차례로 기록한 책이다.
제1권에서 제26권까지는 7불을 비롯하여 가섭에서 행사行思 아래의 제11세에 해당하는 법제法齊까지 1,727명을 기록하였는데, 그 중 998명은 기록이 나타나 있고 나머지 729명은 이름만 있을 뿐 전등에 관한 사항은 전하지 않는다.
제27권에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존경받고 있는 보지寶誌 ‧ 선혜善慧 ‧ 혜사慧思 ‧ 지의智顗 ‧ 승가僧伽 ‧ 법운法雲 ‧ 풍간豐干 ‧ 한산寒山 ‧ 습득拾得 ‧ 포대布袋 등 10명의 응화(應化 :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한 현성賢聖에 관한 전기와 함께 여러 선문禪門에서 중요시했던 말들을 수록하였다.
제28권에는 혜충慧忠 등 12명의 광어(廣語 : 거침없이 주고받는 말)를 실었고, 제29권에는 지공화상대승찬誌公和尙大乘讚 10수 등 찬讚 ‧ 송頌 ‧ 게偈 ‧ 시詩를 적었으며, 제30권에는 신심명信心銘을 비롯하여 중국 및 우리나라 선승들의 귀감이 되었던 명銘 ‧ 기記 ‧ 잠箴 ‧가歌 24편을 수록하고 있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선승들의 전등에 관한 기록이 있어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권별로 살펴보면 제9권에는 신라의 도의道義 ‧ 혜철慧徹 ‧ 홍척洪陟 ‧ 무염無染 ‧ 현욱玄昱 ‧ 각체覺體 등 6명, 제10권에는 도균道均 ‧ 품일品日 ‧ 가지迦智 ‧ 충언忠彦 ‧ 대모大茅 등 5명이 실려 있다. 그리고 제11권에는 언충彦忠, 제12권에는 순지順支, 제16권에는 흠충欽忠 ‧ 행적行寂 ‧ 낭朗 ‧ 청허淸虛 등 4명, 제17권에는 금장金藏 ‧ 청원淸院 ‧ 서암瑞巖 ‧ 백암伯巖 ‧ 대령大嶺 등 5명, 제19권에는 무위無爲, 제20권에는 운주雲住 ‧ 경유慶猷 ‧ 혜慧 등 3명, 제26권에는 고려의 영감靈鑒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선문염송과 함께 고려 및 조선시대의 승과僧科, 선종선禪宗選 시험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선승들은 이 책의 내용을 문답식 공개시험에서 해독해야만 대선大選의 법계法階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 선원에서의 선문답도 이 책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고려 중기에 혜심慧諶이 선문염송을 찬술할 때 중요한 저본이 되었다.
이 책의 고간본古刊本으로는 1550년(명종 5)에 평안도의 화장사華藏寺에서 간행하여 표훈사表訓寺로 옮긴 표훈사판 일부와 1614년(광해군 6)에 충청남도 논산시 쌍계사에서 개판改版한 쌍계사판이 있는데, 쌍계사판은 언제 이장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그 완판이 해인사 사간판각寺刊板閣에 보관되어 있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실린 재미있는 내용 하나를 소개해 본다. 최상공이 사찰에서 불상佛像의 머리에 붙어 있는 새똥을 보고 승려에게 참새들에게도 불성이 있는지 물었더니 승려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가 “참새들에게 불성이 있으면 왜 부처님 머리에 똥을 쌉니까?” 하고 묻자, 승려는 “그 까닭은 자비로운 부처는 살생을 하지 않기 때문인데, 새들이 솔개 머리에는 왜 똥을 싸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매우 착한 사람이 경멸이나 모욕을 당하거나 신성하고 깨끗한 물건이 지저분하게 더럽혀졌을 때 쓰이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 도원은 송나라 때 법안종法眼宗 승려이다. 천태덕소국사天台德韶國師의 법을 이어 남악南嶽의 제10세世가 되고, 소주蘇州, 江蘇 승천영안원承天永安院에 머물렀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지어 진종眞宗 경덕景德 원년(1004)에 바치니 황제가 칙령으로 보관하게 했다고 전한다. 흥미를 끄는 전설에 이 책이 본래는 호주湖州 철관음원鐵觀音院의 스님 공진拱辰이 지은 것인데, 완성한 뒤 경사京師에 가서 바치려고 가는 도중 한 승려와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보여주니 밤에 그 승려가 가지고 가버렸다. 공진이 경사에 도착하니 도원道原이란 사람이 벌써 진상하여 상을 받은 뒤였다. 때문에 경덕전등록은 사문沙門 도원이 지은 것이라지만 진위는 판별하기 어렵다.
또 오등회원五燈會元이라는 책이 있다. 송나라 때 1253년 혜명慧明 등이 편찬한 불교서적이다. 경덕전등록 등 송대에 발간된 다섯 가지 선종사서禪宗史書를 압축한 선종의 통사通史이다. 책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다섯 가지의 등사燈史를 회통會通하여 하나로 엮었다’는 뜻이다. 다섯 가지 책은 ① 도원道原이 1004년에 지은 경덕전등록(전30권), ② 이준욱李遵勖이 1036년에 지은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전30권), ③ 불국유백佛國惟白이 1101년에 지은 건중정국속등록建重靖國續燈錄(전30권), ④ 오명悟明이 1183년에 지은연등회요聯燈會要(전30권), ⑤ 정수正受가 1201∼1204년 간행한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전30권)을 말한다. 이를 모두 합하면 150권이나 되는 거질巨帙이다. 이를 20권으로 축약하여 선의 대의를 밝힌 입문서로 평가된다. 저자는 혜명으로 되어 있으나, 보우본寶祐本 오등회원의 서문에 따르면 항저우[杭州] 영은사의 대천보제(大川普濟 : 1179∼1253)가 혜명 등 여러 제자에게 명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선종의 법맥을 중심으로 다루지 않고 선종의 오가칠종五家七宗을 권별로 분류한 점이 특색이다. 본래는 중국 선종의 각 분파와 법계를 자세히 서술할 예정이었으나, 종문이 많이 나뉘고 또 파도 복잡해지자 오가칠종으로 나누었다. 종파별로 분류되어 있어 열람하기 쉬운 탓에 선종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읽혔다.
오가칠종을 중심으로 각 종파별 선사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기연奇緣과 법어法語 ‧ 게송을 서술한 것이 주를 이룬다. 제1권은 과거칠불過去七佛에서 동토東土 6조祖까지를 소개하고, 제2권은 동토 제4∼7조의 법맥을 이은 선사들과 응화성현應化聖賢을 소개한다. 응화성현이란 중생들에게 홀연히 나타나 선의 대의를 깨우쳐 준 이들을 말한다. 제3∼4권은 남악 문하 제5대 선사까지를 소개하고, 제5∼6권은 행사 문하 제7대 선사들과 법계가 자세하지 않은 선사들의 행적을 소개한다. 제7∼8권은 행사 문하 제2∼9대, 제9권은 위앙종의 선사들, 제10권은 법안종의 선사들, 제11∼12권은 임제종의 선사들, 제13∼14권은 조동종의 선사들, 제15∼16권은 운문종의 선사들, 제17∼18권은 임제종 황룡파의 선사들, 제19∼20권은 임제종 양기파의 선사들을 소개한다.
오가칠종 중 가장 늦게 성립한 법안종을 앞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분류에 대하여 청淸의 영각원현永覺元賢은 1651년 발간된 계등록繼燈錄에서 대천 보제가 자신의 사당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가칠종의 사상체계를 알기 쉽게 분류하고, 화제話題가 뛰어난 까닭에 선종 승려들뿐만 아니라 사대부와 문인들에게 선을 이해하는 데 좋은 지침서가 되었다. 이 책의 영향을 받아 명의 남석 문수(南石文璲: 1354∼1418)가 오등회원보유五燈會元補遺를 펴내고, 청의 원문정주遠門淨柱가 1648년에 오등회원속략五燈會元續略을 펴냈다.
오가칠종이란 당송대唐宋代에 형성된 선종禪宗의 일곱 종파를 말한다. 무종(武宗)의 폐불사건(廢佛事件, 845-846) 이후, 석두(石頭)와 마조(馬祖)의 문하에서 갈라진 위앙종(潙仰宗)·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을 오가(五家)라 하고, 여기에 송대(宋代)에 이르러 임제종에서 갈라져 나온 황룡파(黃龍派)· 양기파(楊岐派)를 합하여 칠종(七宗)이라 한다. 이 가운데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와 그의 제자 앙산 혜적(仰山慧寂, 807-883)에 의해 비롯된 위앙종은 가장 먼저 쇠퇴하여 송초(宋初)에 이미 소식이 끊어졌고,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40-901)에 의해 형성된 조동종 가운데 동산의 제자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 문하는 남송 때까지 번성했으나 조산 문하는 4대만 전해졌고,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에 의해 비롯된 운문종의 선사들은 북방에서 활약하였는데, 비교적 인재가 많아 3대 제자인 설두 중현(雪竇重顯, 980-1052)이 운문종을 중흥시켜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나 남송에 이르러서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또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에 의해 형성된 법안종의 천태 덕소(天台德韶, 891-972)는 법안의 선법을 이어받은 후, 천태산에 머물면서 선(禪)과 천태학(天台學)의 융합을 시도하였고, 덕소의 제자에 영명 연수(永明延壽, 904-975)와 승천 도원(承天道原)이 있는데, 연수는 종경록(宗鏡錄) 100권을 저술하여 선교일치(禪敎一致)의 체계를 세웠고, 선(禪)과 염불을 함께 닦을 것을 권장한 그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은 송(宋) 이후의 염불선(念佛禪)의 터전을 확립하는 데 기틀이 되었다. 도원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30권은 중국 선사들의 계보와 전기, 깨달음에 대한 문답을 집대성한 것으로, 조사들의 말이나 문답의 의문을 좌선의 대상으로 하는 간화선(看話禪)의 발전을 가져왔다.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에 의해 비롯된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석상 초원(石霜楚圓, 986-1039)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 992-1049)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 1002-1069)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하였다.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불교의 특질과 법열경지의 게송 그리고 조사, 종사들의 득도와 전법의 형식 그리고 그 문헌적 증거 자료들을 열거하였다. 앞으로 다루어 지게 될 여러 조사, 선사들의 전법게를 쉽게 접근하기 위하여 도입 부분이 상당히 길어진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설명이 좀 장황한듯하여 읽기에 지루한 감이 있었겠으나 본론으로 진입하기위한 필요한 점이니 독자의 인내를 요요망하며 또 이해를 바란다.
이제 세존과 제대 조사, 선사들의 사자상승의 모습들을 개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전법(傳法)
말 그대로 지난 세상에 출현했던 일곱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법계보(法系譜)에 석가세존 이전에 이미 일곱 분의 부처님이 계셨다. 비바시불(毘婆尸佛), 시기불(尸棄佛), 비사부불(毘舍浮佛),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등이다. 앞의 세 부처님은 과거 장엄겁에 나신 부처님, 뒤의 네 부처님은 현재의 현겁(賢劫)에 나신 부처님으로 본다. 과거 ‘비바시’ 부처님으로부터 ‘석가모니불’에 이르기까지의 일곱 부처님은 불교의 진리에 대해 똑같은 가르침을 말을 한다고 하여 이를 칠불통게(七佛通偈)라 한다. 이 칠불통게의 게송은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자정기의(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이니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불자(佛子)라면 익히 잘 알고 있는 게송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불국토설(新羅佛國土說)과 관련하여 과거칠불에 대한 신앙이 전개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에 불교를 전래한 아도(我道)는 고구려인인 그 어머니로부터 신라의 서울에는 전불(前佛)시대의 일곱 개의 가람터가 있으며, 앞으로 3,000개월이 지나면 성왕(聖王)이 나와 크게 불교를 일으키게 될 것이니 그곳에 가서 불교를 전파하라는 당부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불국토설(新羅佛國土說)과 관련하여 과거칠불에 대한 신앙이 전개되었다. 삼국유사에 신라에 불교를 전래한 아도(我道)는 고구려인인 그 어머니로부터 신라의 서울에는 전불(前佛)시대의 일곱 개의 가람 터가 있으며, 앞으로 3,000개월이 지나면 성왕(聖王)이 나와 크게 불교를 일으키게 될 것이니 그곳에 가서 불교를 전파하라는 당부를 받는다. 그 일곱 곳은 ① 금교(金橋) 동쪽 천경림(天鏡林:지금의 흥륜사(興輪寺)), ② 삼천기(三川岐:지금의 영흥사(永興寺)), ③ 용궁(龍宮)의 남쪽(지금의 황룡사(皇龍寺)), ④ 용궁의 북쪽(지금의 분황사(芬皇寺)), ⑤ 사천(沙川)의 끝(지금의 영묘사(靈妙寺)), ⑥ 신유림(神遊林:지금의 천왕사(天王寺)), ⑦ 서청전(婿請田:지금의 담엄사(曇嚴寺))이다. 이 설은 16세 때 위나라로 가서 현창화상(玄彰和尙)의 밑에서 공부하고 온 아도(阿道)에게 그 어머니가 이야기한 것으로, 신라인들이 염원하던 불국토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이 과거의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곳임을 상기시켜, 그들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그곳에 새로운 불국토를 재현하도록 하려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부처님을 뜻하는 불(佛)은 불타(佛陀)의 줄인 말로 각자(覺者), 즉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의미한다.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라는 뜻이다. 불타(佛陀)는 범어 buddha의 음역으로 불타(佛陀)이외에도 불타(佛馱), 부타(浮陀), 부도(浮屠), 부도(浮圖), 부두(浮頭) 등 다양하게 음역된다. 한자 佛은 붓다에 가까운 발음인 弗에 '사람 인' 변을 더했다. 원래의 한국 한자음은 '붓'이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불'로 음운 변화했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는 분명히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있으며, 비로자나불은 진리 그 자체이다.
부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산스크리트어: बुद्ध, Buddha)가 중국어 “佛體”를 거쳐서 들어온 말이다. 부처님을 일반적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한정해, 불교의 창시자요, 신앙의 대상인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다양한 의미 가운데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둘째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격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다는 부처님이다. 과거에는 유명한 일곱 부처님이 있었다고 한다.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등이다. 미래의 내세불(來世佛) 미륵불(彌勒佛)이 있다. 기독교가 주(主)의 재림(再臨)을 믿듯이 불교에서도 부처의 재림을 믿고 있다. 이 부처님은 불멸(佛滅)후 56억7,000만 년 후에 나타난다고 한다. 셋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이다. 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이 될 수 있다(成佛)고 믿고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바시불(毘婆尸佛)
과거 일곱 부처 가운데 우선 비바시불의 전법을 살펴보자.
이 부처님은 인욕(忍辱)하는 일이 첫째가는 진리라고 설하였다. 비록 출가는 하였지만 남을 괴롭히면 사문이라 할 수 없다.
비바시불의 명호는 산스크리트에서 명은 '보다', '분별하다'라는 뜻의 비파스(vipas)에서 파생된 비파신 붓다(Vipasyin Buddha)로 승관불(勝觀佛), 정관불(淨觀佛), 변견불(遍見佛), 종종견불(種種見佛)로 의역(意譯)된다. 모든 사태를 구석구석 잘 본다는 뜻이다. 팔정도에도 정견(正見)이라는 말이 있다. 옳게 보고 잘 볼 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견(見)이 아니라 정견(正見) 내지 변견(遍見)이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치를 꿰뚫는 관(觀)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조촐한 본연의 체를 관한 부처님으로서 과거 장엄겁 998존이시다. 이 비바시불은 과거 91겁 전에 출현하였으며 이때의 인간의 수명은 8만 세(일설에는 8만4천 세라함)였다 한다. 반두바제성에서 태어났으며 찰제리(刹帝利) 출신으로서 성은 구담(瞿曇), 부친은 반두(般頭), 모친은 반두바제(般頭婆提)이다.
파파라수(波波羅樹) 아래서 성도한 뒤 널리 중생을 제도하였다.
이 나무 아래에서 도를 깨닫고 1회 설법에 16만 8천명을, 2회 설법에서는 10만명을 그리고 3회 설법에서는 8만명을 제도했다. 그 가운데 칸다와 티싸를 상족으로 집사제자에게는 아쇼카를 두었다. 빠알리본 마하밤사 제1권에서는 연등불을 필두로 하여 24불이 있는데 그 중 제19불에 해당한다.
비바시여래(毘婆尸如來), 비발시불(毘鉢尸佛), 미발시불(微鉢尸佛), 승관불(勝觀佛), 승관여래(勝觀如來), 정견불(淨見佛), 광견불(廣見佛), 종종관불(種種觀佛)의 명호로도 불린다.
과거 제1부처인 비바시불은 과거장엄겁불(過去莊嚴劫佛)로 게송을 말씀하셨다.
身從無相中受生 신종무상중수생
猶如幻出諸形像 유여환출제형상
幻人心識本來無 환인심식본래무
罪福皆空無所住 죄복개공무소주
몸은 형상이 없는 곳으로부터 받아 난 것이
마치 환술로 온갖 형상들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환술로 생긴 사람의 의식은 본래 없으니
죄도 복도 모두 텅 비어 머무는 바가 없다.
인간 육신(肉身)의 실체(實體)를 구명한 심오한 가르침이다.
우리들의 이 육신과 그 외 모든 유형의 존재들은 이렇게 보는 바와 같이 형상이 있지만 그 근본은 형상이 없는 곳으로부터 받아 생겨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모든 유형의 존재들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런 저런 인연과 조건들이 만나고 모이면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비바시불은 모든 존재의 근본인 인간의 몸의 실재여부를 거론한 것이다. 비바시불은 그 먼 옛날에도 이미 실(實)과 환(幻)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불교의 가르침은 유형의 세계와 무형의 세계에 대해서 밝힌 내용이 대단히 많다. 비바시 부처님은 무한한 유형의 세계에서 인간의 몸이 가장 근본이 된다고 보고 몸의 실체에 대하여 깨달음의 눈으로 밝힌 내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돌아보자. 학자들은 지구의 역사를 46억년으로 보고 있다. 우리들이 의지할 곳인 이 지구가 그렇게 장구하다면,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의 세계는 더욱 오래일 것이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과 광물이 다 수 십 억년을 두고 이루어진 생성물이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물상(物象)은 영원불멸(永遠不滅)한 것은 없다. 모든 물상들은 성(成) 주(住) 괴(壞) 공(空)과 생(生) 주(住) 이(移) 멸(滅)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겨났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난다. 이와 같은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러므로 지금 존재한다고 해서 있다고 볼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없다고도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있음과 없음을 통시(通視)하는 중도적 안목을 가지라는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문제시되는 죄와 복이란 본래 없는 이 몸을 확고하게 존재한다고 여기는 데서 문제가 되었다. 오늘날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데 비바시불은 일찍 우리에게 큰 숙제를 먼저 제시했다는 점이 대단할 따름이다.
※ 본 연재는 깊은 학술적 혹은 신앙적 영역을 다루었기 보다는 불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법게와 전등의 세계를 가볍게 다루면서 새로운 의견 제시보다 여러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수준으로 쓰고 있다. 따라서 여러 분들의 의견을 인용하고 전재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박희 | <<자유문학>>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전통문학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