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土姓)은 고려시대 이래로 과거(科擧) 또는 서리직(胥吏職)을 거친 벼슬 품관(品官 : 품계(品階)이라고 하는데 어느 한 지방에서 행세(行勢)하는 성입니다. 오늘날 울산광역시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당시 울산군의 토성(土姓)으로 박(朴).김(金).이(李).목(睦).전(全).오(吳).윤(尹).문(文).임(林) 등의 9성이었습니다.
내성(來姓)이란 원래부터 살았던 그 고장의 토착성씨(土着姓氏)가 아닌, 타관(他關)에서 들어온 의래성씨(外來姓氏)를 말합니다.
오늘날 울산광역시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당시 경내성(京來姓) 즉 서울에서 내려온 성씨는 황(黃).허(許) 등 2성이었습니다.
인리성(人吏姓)은 인리(人吏) 즉 서리(胥吏)의 성으로 고려시대에는 향리(鄕吏)의 성씨입니다. 인리(人吏)란 중앙과 지방 관아(官衙 : 官員이 모여 나라일을 처리하던 곳)에 속하여 말단의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하급 관리로, 고려시대에는 중앙의 각 관아에 속한 말단 행정요원만을 지칭했으나, 조선시대에는 경향(京鄕 : 서울과 시골)의 모든 이직(吏職) 관리(官吏)를 뜻합니다.
백성성(百姓姓)은 고려시대의 백성 집단의 성씨로「세종실록지리지」에 5본관(五本貫), 19성(姓)이 보입니다.
입진성(入鎭姓)은 조선 초기 세종때 북방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평안북도 압록강 상류에 설치한 서북 사군(四郡 : 즉 여연(閭延).자성(慈城).무창(茂昌).우예(優芮)의 녜 군)과 함경북도 북변(北邊 : 북쪽 변방)에 설치한 동북 육진(六鎭 : 즉 경원(慶源).경흥(慶興).부령(富寧).회령(會寧).온성(穩城).종성(鍾城)의 여섯 진)을 개척한 후 사민정책(徙民政策)에 의 해 새로 북계지방(北界地方)에 들어간 사람들의 성씨입니다.
오늘날 평안북도 박천군의 경우,「세종실록지리지」(1454)에 당시 입진성(入鎭姓)은 남해南海 김씨, 김포金浦 김씨, 두원荳原 김씨, 나주羅州 강씨이고 토착성씨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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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적어도 평북 박천군에 살던 저희 해주 오씨 집성촌사람들은 15세기까지는 박천군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5세기 당시 박천군에는 599호의 총 1035명이 살고 있었고, 그중 군인이 253명이었습니다.
당시 박천군은 토착세력이 거의 없었고 세종때 북방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서북 사군 근처에 있었기에 사민정책의 일환으로 입진성씨가 많이 유입이 되었던 지역입니다. 15세기의 평북 박천군의 입진 성씨는 남해 김씨, 김포 김씨, 두원 김씨, 나주 강씨이군요.
저희 집안의 경우도 16세기 이후에 박천군으로 입진된 성씨가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저희 오씨와 함께 집성촌을 이루었던 성씨들은 할머니쪽의 박남 박씨, 고모부쪽의 전주 이씨, 증조할머니쪽의 성주 이씨, 강릉 유씨, 여산 송씨 등이 있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으로는 해방 전후로 비슷한 시기에 내려오셨다고 하시더군요.
이러한 현상은 조선시대 평안도의 생원 진사시 합격자 실태라는 한국학 중앙 연구원 최진옥씨의 논문에 의하면 더 잘 알수 있습니다. 이 논문을 보면 평안도의 생원, 진사 합격자가 다른 도에 비해 소수로 배출되다가, 18세기 이후에 2배 이상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표 1> 평안도 군현의 세기별 생원 진사 배출 실태(명)
군현
15C
16C전
16C후
17C전
17C후
18C전
18C후
19C전
19C후
합계
평양
5
8
34
42
53
35
57
83
215
532
중화
2
1
5
5
2
6
19
14
45
99
정주
1
1
5
34
20
12
23
96
성천
4
3
10
21
16
30
84
영변
1
4
2
13
7
14
33
74
안주
4
9
11
8
9
18
59
의주
2
5
8
16
27
58
강동
1
1
3
21
31
57
박천
10
10
11
22
53
숙천
2
1
3
10
18
15
49
상원
2
1
3
4
10
28
48
영유
1
1
11
13
20
46
강서
1
1
12
10
18
42
용강
1
1
3
2
2
6
26
41
선천
1
3
2
2
8
6
14
36
태천
5
2
3
5
20
35
은산
1
1
3
6
11
10
32
순안
2
1
1
9
7
12
32
삼화
2
1
3
4
21
31
철산
1
1
4
1
3
10
10
30
개천
3
1
1
4
11
10
30
가산
1
1
2
4
8
13
29
곽산
2
2
4
4
3
13
28
용천
1
1
1
3
3
17
26
함종
3
1
2
4
4
10
24
순천
1
1
4
10
8
24
구성
1
3
1
1
4
8
18
희천
3
2
3
9
17
자산
4
3
2
1
5
15
삼등
3
1
3
7
14
강계
1
5
7
13
삭주
2
3
4
3
12
양덕
1
2
6
9
창성
1
1
1
6
9
덕천
2
2
2
3
9
운산
1
1
1
1
1
3
8
벽동
4
4
영원
3
3
증산
1
2
3
맹산
1
2
3
초산
1
1
2
위원
2
2
자성
1
1
후창
1
1
합계
7
23
54
82
100
168
260
375
769
1,838
최진옥씨는 이러한 현상을 평안도 자체에 토착세력이 거의 없다가(심지어는 가장 평안도의 가장 큰 도시인 평양에도 토착 성씨가 없었다고 함.) 입진성씨, 즉 북방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종대왕이 추진한 사민정책으로 입진성씨들이 사족으로 성장하면서 18세기에는 평안도 전지역에 입진성씨의 사족화가 광범위화가 일어나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보고 있습니다.
거희 고조부께서 진사출신이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19세기 후반의 22명중에 한분이셨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