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프랑스계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피에르 가르뎅(피에르 카르뎅, Pierre Cardin, 1922~)은 어릴 적부터 무대 의상 디자인과 건축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들의 적성을 발견한 부모는 아들을 위해 프랑스로 다시 돌아갔고, 피에르 가르뎅은 디자인과 건축을 공부할 수 있었다. 피에르 가르뎅은 14세에 수습생으로 패션계에 입문하여, 자신의 이름을 건 상표를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지해왔다. 극적이고 표현적인 무대 의상과 3차원적인 디자인의 요소가 강한 건축에 큰 매력을 느꼈던 피에르 가르뎅의 미학은 1960년대 스타일의 전성기를 누리며,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우주시대 룩(Space age look)의 대표 주자로서 패션의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대중을 향해 다가가는 디자이너
파리에서 일하기를 염원했던 피에르 가르뎅은 1945년 2차대전 이후, 파리가 독립하면서 당대 최고의 쿠튀리에였던 파퀸(Jeanne Paquin)과 스키아파렐리 하우스에서 일했고, 파퀸과 장식 미술가 크리스티앙 베라르(Christian Bérard)와 일하면서 영화 의상 제작에 활약을 보였다. 장 콕토(Jean Cocteau) 감독의 1946년작 [미녀와 야수]를 보면 파퀸 하우스 시절 피에르 가르뎅이 디자인한 영화 의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후 디오르의 뉴룩 작업을 도우며 디오르 하우스에서 테일러로 3년을 일했다. 디오르 하우스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디오르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대중의 관심도 있었지만, 피에르 가르뎅은 1950년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독립했다.
1953년 가르뎅 하우스(House of Cardin)를 열고, 1954년 이브(Eve)라는 이름의 여성복 부티크를, 1957년에는 아담(Adam)이라는 이름의 남성복 부티크를 열었다. 이 부티크에서 아방가르드한 넥타이나 스웨터, 슈트, 재킷 등을 판매하며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 피에르 가르뎅은 쿠튀르 하우스에서의 훈련된 탄탄한 테일러링 실력과 극적인 표현력이라는 자신의 개성을 살려 무대 의상과 슈트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만들었다. 무대나 영화 의상, 연회 가운은 수요가 비정규적이므로 피에르 가르뎅은 슈트와 코트를 디자인하여 사업을 이끌어갔다. 그의 초기 디자인은 우주시대 룩으로 알려진 그의 대표적인 스타일보다는 훨씬 더 1950년대 모드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해석한 디자인들이었다. 일상복으로 입는 스커트 정장 슈트와 멋스러운 롤 칼라나 거대한 칼라에 몸판이 날렵하게 떨어지는 디자인의 코트 등을 만들었고, 1954년에는 버블 드레스를 발표했다고 알려져있다.
쿠튀리에로서 이름을 얻기 위해 피에르 가르뎅은 1957년 120벌로 구성된 대망의 첫 쿠튀르 컬렉션을 열었고, 이 컬렉션은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켜 그 즉시 오트 쿠튀르 의상 조합(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전반기 디자인들은 직물로 만든 미니멀리즘 조각품이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조형 감각과 테일러링 기술이 돋보이는 작품을 보여주었다.
쿠튀리에로서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피에르 가르뎅은 1959년 오 프랭탕(쁘렝땅) 백화점에 기성복 라인을 판매하여 또 한 번의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파리의 백화점에 기성복 코너를 오픈한 첫 쿠튀리에였지만, 쿠튀르의 명성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오트 쿠튀르 의상 조합에서 잠시 제명되었었다. 그의 과감한 시도는 많은 사람에게 하이패션을 입을 기회를 준다는 평등주의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으며, 또한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보여준 것 같이 패션산업에서의 수익성을 감지하는 탁월한 사업적 감각이라고도 볼 수 있다.
1963년 칼라리스 재킷을 입고 있는 비틀스(밀랍인형 박물관의 모습) <출처: Ronnie Liew at commons.wikimedia.org> 자세히 보기
피에르 가르뎅은 여성복뿐 아니라 1960년 250명의 학생 모델을 이용하여 첫 남성복 컬렉션을 발표했고, 이듬해 남성복 기성복 라인으로 확대해 나갔다. 1966년에는 아동복으로 확대해 나갔다. 1966년 아동복 컬렉션은 파리의 세쌍둥이가 참가한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그의 첫 남성복 컬렉션은 실린더(Cylinder, 원기둥) 라인이라 불렸는데, 이름에서 보이듯이 거추장스러운 패드나 라펠을 없애고, 슬림한 맞음새에 칼라와 라펠이 없는 칼라리스 재킷과 슬림한 바지로 60년대 남성복에 청년문화의 젊은 미학을 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실린더 라인은 비틀스(비틀즈)가 입은 칼라리스 재킷 디자인의 원형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