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축제 시화전 참가회원 작품 / 2024년 제8회 겸제예술제 시화전 15인 15편
2024년 겸제예술제 시화전 시 15편
1 . 강영덕 / 안현석봉(鞍峴夕烽)
2 . 권옥희 / 종해청조(宗海廳潮)
3 . 김혜령 / 소악후월(小岳候月)
4 . 김화순 / 양천현아(陽川懸衙)
5 . 김희진 / 박연폭포 (朴淵暴布)
6 . 백상봉 / 어초문답(漁樵問答)
7 . 송현국 / 행호관어 (杏湖觀漁)
8 . 신낙형 / 개화사(開花寺)
9 . 신두업 / 동작진(銅雀津)
10. 신재미 / 목멱조돈(木覓朝暾)
11. 悟仙丈이계향 / 설평기려(雪坪騎驢)
12. 오승영 / 양화환도(楊花喚渡)
13. 이헤너 / 공암층탑(孔岩層塔)
14. 정성영 / 독서여가(讀書餘暇)
15. 홍재숙 /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
안현석봉(鞍峴夕烽)
蓮峯 강영덕
말안장처럼 품어진
어미의 가슴
계절마다 수목은 울창하고
산새는 평화롭게 누리하고
하루의 여유를 낚는 뱃사공
한강의 물결도 잔잔히 흐르네
산들산들 무르익은
봉수대 불빛
기름진 양천의
구수한 밥 냄새 풍기고 있구나
----------------------------------------------------------------------
종해청조(宗海廳潮)
권옥희
무모하게 막아버린 강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곪아간다는 걸
그때는 알았을까?
훌쩍 날아올라 돛폭을 때리는 거센 강물소리가
귀가 먹먹하게 종해헌 누마루까지 기어오를 때
현령은 민생을 챙기는 일보다 평화로운 그림 한 폭을 떠올렸다
바다로 가기 위해 숱한 도움닫기를 하던 강물이
양천현에서 숨 고르기를 하며
겸재의 귓속을 휘돌아나갔을 테고
옹이 박힌 물결을 바라보는 반 토막의 가슴을 가진 우리는
하나가 되길 염원하는 물방울을 문질러가며
퍼렇게 멍이 든 강물을 눈에 담는다
생의 결이 다른 바닷물에 더 갈 곳 없는 머리를 들이밀며
죽어라 싸워야 했던 강물의 아우성을
붓끝에 붙들어두고 귀를 씻던 이여
참다못해 터트린 눈물 같은 강물로 먹을 갈아
동헌까지 밀려들던 그때 그 강물 소리로
우리 귀도 열어주게
한 자루 붓으로 막힌 물꼬를 터주게.
----------------------------------------------------------------------
소악후월(小岳候月)
김혜령
달은 홍살문을
걸어 들어와
연못의 연꽃을 지나
초가집 안 사람들의
얼굴을 만져주다
소악루 난간머리에 비친다
일렁이는 물결에
살랑이는 능수버들의 머리채
거문고 소리, 풍류를 읊던
선비들의 웃음소리 들려온다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에
더욱 평온해지는 마음
달을 품고
난간에 기대어 앉으니
벼슬이 부럽지 않고
강산의 주인이 된다
----------------------------------------------------------------------
양천현아(陽川縣衙)
정봉 김화순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라
인자는 산을 탐하고 지자는 물을 즐긴다지
그 옛날 어질고 지혜로운 겸재 정선이
양천고을 목민관으로 고을을 다스리면서
빼어난 파릉팔경(巴陵八景)을 화폭에 담아내어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산실이 된 양천현아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월 속에서도
겸재의 그림에 사천이 글을 쓴 양천현아(陽川縣衙)는
한 폭 그림으로 남아 옛일을 말합니다.
陽川縣衙(양천현아) ; 겸재 정선이 현령으로 있던 관아
巴陵八景(파릉팔경) ; 옛 강서의 빼어난 경치 여덟 가지.
----------------------------------------------------------------------
박연폭포(朴淵暴布)
김희진
겸재정선의 진경산수화
흰빛 물줄기 쏴 하고 꽂히는 우렛소리
웅장한 바윗덩이 검은빛과 흰빛을 띠고
기묘한 송림 사이로 흩날리는 하얀 물보라
온몸 함뿍 휘감아 축축해지네
폭포 아래 정자는 조각배 인양 흔들리고
개미만한 사람의 형체
신의 화폭에 감전된 경이로운 자연의 풍광
찜통더위가 근접할 수 없는 박연폭포
올 여름도 많은 사람 모여들겠네
----------------------------------------------------------------------
어초문답(漁樵問答)
백상봉
반백의 낚시꾼과 나무꾼이 만난 자리
멱라수汨羅水 몸을 던진 굴원屈原은 아닐 터고
위수渭水에 낚시하던 강태공도 아닐진대
태 없이 앉은 모습은 첫 만남이 아닌 듯.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이 취했는데 저 혼자 안 취했다
옛일을 자랑삼아 주고받고 하는 건지
시냇물 쏟는 소리에 들리지를 않구나.
세워둔 나뭇지게 방갓과 작은 어롱魚籠
그걸로 먹고살기 어려운 처지지만
오지에 숨어 살며 귀인 오길 기다린 몸
무엇이 부끄러워서 얼굴 돌려 앉았나.
----------------------------------------------------------------------
행호관어 (杏湖觀漁)
-어기야디야
송현국
영조 때 양천현령 겸재 정선
궁산 소악루에 올라서 보니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
노를 저으라 노를 저어라
웅어는 석양빛에 팔딱팔딱
연한 초록빛 산 연둣빛 행호
웅어 잡은 어부들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
노를 저으라 노를 저어라
늘어진 버드나무는 봄바람이랑
봄 산길에 핀 황매화
바위 틈새에 핀 민들레꽃
수라상 웅어는 온데간데없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
늦은 봄 연초록 산들 닿은 하늘이랑
----------------------------------------------------------------------
개화사(開花寺)
월랑 신낙형
새벽 여명을 여는 개화사 종소리
공명의 숨결은 염불을 타고 달려
짙은 아리수의 연무를 걷어 내니
어부는 바삐 그물을 끌어 내리고
농부는 고랑타고 씨뿌리기 바쁘다
외롭고 힘들고 병들어 아픈 노인
실패와 낙심에 희망 잃은 민초들
꿈과 소망 갈구한 삶에 지친 중생
배고픔 고통 쓸쓸한 사연을 품고
개화사 목탁소리 희망을 울려준다
온유한 자비로움 온 누리 비출 때
부처님 은총으로 고통을 씻어내길
유유히 흐르는 아리수 돛단배에서
백성들의 행복을 절절히 기원하며
겸재는 진경산수화 나래를 펼친다
----------------------------------------------------------------------
동작진(銅雀津)
신두업
재강굴 산자락 상록수 어우러진 아담한 마을
수양버들 푸르른 강변에 닻을 내린 어선들
동재기나루터에 당도한 수원성 선비 일행
강 건너 모래톱에도 말 타신 나리님
바빠지는 나룻배 서두르는 뱃사공
상앗대 힘차게 밀면서 손님들 마중하네
세월은 강물 따라 유유히 흘러가고
조선국 한양이 대한민국 서울로 변모하니
나룻배나 어선 백사장도 간 곳 없구려
다만 동작역 2번 출구 모퉁이 ‘동작진’ 표지석 하나
전電철교 양옆으로 3차선 동작대교 차량들 숨 가쁘다
아담했던 옛 마을, 배산임수 지형 때문이었을까!
십육만여 영령들의 유택으로 국립 현충원이 차지했네
----------------------------------------------------------------------
목멱조돈(木覓朝暾)
신재미
생명의 기운 흐르는 목멱산
연둣빛 명암 위로
찬란한 아침 해 솟아오르니
광명 펼쳐진 세상 평화롭다
고요히 산을 안고 흐르는 물 위로
나룻배 저어가는 사공
능수버들가지 살랑이듯
희망 실은 노랫가락
물안개 위로 피어오른다
산아, 산아 금수강산아
겸재선생 손끝에서 피어난 산수화
수백 년이 흐른 지금
민족의 자랑이 되었듯이
배달민족의 기상
서해로 가는 물처럼
흐르고 흘러
세계를 품자 꾸나
----------------------------------------------------------------------
설평기려(雪坪騎驢)
悟仙丈이계향
세세년년 눈 오건만
겸재의 설평기려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
무엇이 같고 다를까
조선의 화가와 고승의 고뇌
눈의 상징과 뜻이란
눈 속을 처음 걸었다는
겸재가 바라는 화풍
서산이 바라던 승풍
첫 길에 대한 환희와 두려움
그림으로 전해지고
혼으로 살아 숨 쉬니
따라가며 띄운 시인의 詩香
무지갯빛 따라 솟네
----------------------------------------------------------------------
양화환도(楊花喚渡)
오승영
바람 한 점 없는 강에 하늘이 담겨 있고
물 위에 떠있는 조각구름 몇 개 손을 넣어 잡아본다
양화진 포구를 건너야 하는 선비는
말을 타고 왔지만 거룻배는 강 건너에 쉬고 있다
뱃사공 부르는 하인의 목청 터지는 소리
평온한 적막을 깨고 강물이 튀어오른다
뱃사공을 부르는 하인의 손짓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거룻배의 숙명이다
배를 탄 선비는 허허 웃고
하인들은 소임을 다해 흐뭇하리라
양화환도의 여백에는 내가 있다
선비와 하인이 있고 내가 있다
뱃사공과 거룻배가 있고 내가 있다
----------------------------------------------------------------------
공암층탑(孔岩層塔)
이혜너
안개 두른 아리수 강기슭에
수많은 전설을 품고
세월을 조아리던 공암층탑
구멍 뚫린 가슴으로
구암공원 못에 자리 잡은 작금
왜소하게 틀고 앉아 바람을 세는가
깊은 뜻을 담은 선인들
투금*으로 마음을 다스리던 공암나루엔
쪽배하나 노을 속에 세월을 낚는가
비우기 위한 시간을 낚는가
유유히 흐르는 아리수 바라보며
탁해진 마음 헹구어 봄이 어떠한가
*투금:형제가 주은 금덩이를 들고
욕심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강물에 금을 투척했다는 전설
----------------------------------------------------------------------
독서여가(讀書餘暇)
-겸재 정선의 풍속화에 부쳐
정성영
말씀과 진리가
높다랗게 가득 쌓인 서재書齋
가야 할 군자君子의 길
성현의 발자취를 찾아서
한평생 책을 읽고 묻는다
바람이 자유로운
툇마루 앞마당에 화분을 두고
난초와 작약을 심어
세속의 헛된 탐욕을 살펴
부귀영화를 경계 한다
갈등의 불꽃이 일어도
꼬장꼬장한 선비의 자존심
대쪽 같은 양반의 체통은
단정한 의관衣冠 합죽선 하나로
여가餘暇의 풍류를 즐긴다
----------------------------------------------------------------------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홍재숙
조선 초엔 서산이라 불렸던 것이지만
천하 성군 세종께서 인왕이라 하신 것은
인왕은 불법 수호의 금강신의 이름이라
겸재의 붓끝에서 환생한 인왕재색
만화방창 봄이면 바위로 눈을 뜨고
봉우리 안개구름은 감겼다가 풀리지
정선 나이 75세 일필휘지 힘찬 붓질에
거대한 바위도 크고 작은 나무도
활달한 운필 스치면 살아서 꿈틀댔지
인왕산 아랫동네에서 평생을 둥지 틀고
호연지기 키웠던 조선조 최고 화가
완숙한 진경산수화에 인왕 풍경 가득 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