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9일, 일요일, Buenos Aires, Milhouse Youth Hostel (오늘의 경비 US $33: 숙박료 62, 버스 4, 점심 6, 축구경기 입장료 20, 기타 8, 환율 US $1 = 2.85 peso) 오늘은 아르헨티나의 최강 프로축구팀 Boca Junior의 경기가 있는 날이라 마침 잘 됐다 싶어서 구경을 갔는데 가방을 날치기 당할 뻔했다. 경기가 오후 4시에 시작이라 오전은 경기장이 있는 La Boca에서 보내기로 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느지막하게 숙소를 나왔다. 숙소 사무실에는 항상 직원 4, 5명이 일을 보고 있는데 들어오는 손님, 나가는 손님, 관광 문의하는 손님들을 상대하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고 항상 바쁘게 돌아간다. 모든 직원들은 영어가 유창하고 대부분 20대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20대라 손님들과 호흡이 잘 맞는다. 항상 친절하고 웃는 얼굴이고 모든 일을 척척 잘 처리한다. La Boca 가는 버스 번호와 타는 곳을 물어보니 금방 잘 가르쳐 준다. La Boca는 조그만 어항인데 이탈리아 Genoa 지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정착해서 세워진 곳인데 지금은 이름난 관광지로 바뀌어서 주말마다 관광객들로 붐빈다. 언젠가부터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서히 관광지역으로 바뀌었다. 제일 인기 있는 볼거리는 Caminito라 불리는 골목길인데 길 양쪽 건물들을 연극 무대같이 화려한 색깔로 꾸며놓고 건물 창문이나 지붕에는 화려한 색깔의 복장을 한 사람 크기의 인형들을 전시해놓았다. 꼭 연극 무대 같기도 하고 만화에 나오는 풍경 같기도 하다. 길에는 화가들이 파는 그림을 전시해 놓고 악사들과 탱고 댄서들이 음악과 춤을 선보인다. 음식점, 기념품 가게들도 즐비하다. 그러나 이곳은 Buenos Aires 제일의 빈민지역이고 우범지역이라 경찰들이 많이 보였다. La Boca에서 구경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다섯 블록 정도 떨어진 축구 경기장으로 걸어갔다. 아직 개장도 안 했는데 입장하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입장권을 사려고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떼를 지어서 다니면서 무슨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2 리터 코카콜라 병에 술을 채우고 마시고 있는 사람들, 정말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여기저기 기마경찰과 데모대 진압 무장을 한 경찰들이 보인다. 페스티벌 분위기 같기도 하고 꼭 금방 폭동이 일어날 분위기 같기도 하다. 운동 경기장 분위기가 이런 것은 처음이라 좀 얼떨떨해졌다. 매표소에 가서 입장권 가격을 보니 100 peso (35,000원), 60 peso, 35 peso, 10 peso (3,500원) 등이다. 처음에는 35 peso 짜리를 사려다 10 peso 짜리를 샀다. 남미 축구경기는 TV에서 자주 보니 경기장 분위기나 잠깐 느껴보고 나오는데 비싼 입장권을 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분위기를 느끼는 데는 비싼 좌석보다 싼 좌석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입장권을 사고 경기장으로 들어가려고 서있는 사람들의 줄이 한 10블록 길이는 되었다. 우리도 그 줄 맨 뒤에 서서 입장하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경찰 바리케이드 두 곳을 통과하는데 몸수색을 한다. 나는 두 군데 다 사람들 틈에 끼어서 몸수색을 당하지 않고 통과했다. 집사람은 여자 몸수색하는 줄에 섰다가 여자 경찰관에게 철저히 몸수색을 당해서 가지고 있던 마시는 물을 뺏겼다. 도대체 왜 물병을 뺐나하고 나중에 생각하니 술을 물로 가장해서 가지고 입장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경기장 내에서는 왜 맥주를 파는지 모르겠다. 결국 경기장 수입을 최대화하기 위한 장사 속 때문인가 아리송하다. 경기장 안팎이 쓰레기투성이고 오줌냄새가 진동한다. 어떤 곳은 소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줄지어있고 그 주위는 오줌 바다여서 지나가기조차 힘들었다. 경기장에 입장해서 간신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경기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보니 주위에는 벌써 술 취한 사람들이 아우성들을 친다. 어떤 사람들은 자리를 찾아가면서 술 때문인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내 어깨와 머리를 누르면서 지나가면서 미안하다는 소리 하나 없다. 분위기가 너무 엉망이어서 벌써 나가고 싶어졌다. 오후 4시가 되어서 경기가 시작하니 분위기가 더욱 엉망이 된다. 한 15분 구경하다가 더 이상 있고 싶지가 않아서 일어나서 나가기 시작했다. 경기장 입구에서 좌석으로 올라가는 계단식 통로에는 중간에 쇠줄을 쳐 놓고 한쪽은 입장 다른 쪽은 퇴장이었다. 퇴장하는 쪽에는 우리밖에 없었고 입장하는 쪽에는 늦게 입장하는 관객들로 꽉 차있었다. 퇴장하는 쪽 계단 통로로 걸어 내려가는데 우리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건장한 젊은이 두 명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큰소리로 무어라고 지껄인다. 시간을 물어보나 생각하고 대답하려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한 젊은이는 내 가방을, 또 한 젊은이는 집사람 가방을 잡아챈다. 집사람이 큰 소리로 외치니 집사람 가방을 잡아채려 하던 놈이 찔끔 놀라서 손을 놓는다. 나는 내 가방을 잡아당기는 놈과 줄다리기를 하는데 가방 한 쪽이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집사람은 이제는 내 가방을 잡은 놈을 향해서 소리를 지른다. 그러는 동안 우리 주위에 입장하고 있던 수백 명의 손님들은 멀거니 쳐다보기만 한다. 집사람은 계속 소리를 지르고 나는 내 가방을 꽉 잡고 안 놓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는지 두 놈은 우리 가방을 놓고 달아나 버린다. 어쩌면 집사람 지르는 소리를 듣고 근처에 있는 경비원들이 올라 올까봐 달아났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여자가 우리에게 내려가지 말고 올라가란다. 내려가다가 그 놈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으니 올라가는 것이 안전하다는 얘기다. 경기장으로 다시 올라갔더니 어떤 남자가 다른 출구를 가리키며 그리로 내려가면 안전하다고 한다. 우리가 당하고 있을 땐 처다 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도와주려고 한다. 어쨌든 고맙다. 그 쪽 출구로 나가니 경비원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경기장을 빠져나가서도 혹시 그놈들이나 다른 놈들에게 또 공격을 당할 것 같아서 경찰들이 보이는 길만 골라서 걸어서 큰길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방을 뺏기지 않아서 다행이었으나 (가방에는 돈은 없었고 카메라가 있었다)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큰 실수였다. 어찌 보면 우리가 호랑이 굴로 바보처럼 걸어 들어간 것이다. 배낭여행 처음 하는 사람이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배낭여행 베테랑이라고 자부하는 내가 저지른 것이다. 우선 남미에서는 축구 경기장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모른 것이 실수다. 알고 보니 아주 위험한 곳인데 왜 몰랐을까. Lonely Planet에 경고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 그것이 제일 큰 이유였다. 왜 경고가 없을까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 숙소에서 단체로 축구경기 간다는 광고가 있었다. 처음에는 거기에 끼어서 갈까하다가 비싸기도 하고 La Boca 구경도 겸하고 싶어서 우리만 따로 갔다. 제일 싼 입장권 대신 비싼 입장권을 사서 들어갔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입장권을 샀더라면 출입구도 안전했을 것이고 지정좌석에다가 관객의 질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10 peso 짜리가 아니고 35 peso 짜리만 샀더라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최악의 선택을 연거푸 해서 당한 것이다. 그러고도 그 정도로 끝난 것은 운이 참 좋았다 어찌 보면 돈 주고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을 한 것이다. 그동안 아르헨티나를 살기 좋은 나라로 무척이나 부럽게 생각했는데 오늘 생각이 싹 달라졌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을 수백 명이 보고 있었는데 도와주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니 한국 같으면 안 그랬을 것 같다. 여행지도 La Boca의 볼거리 Caminito 골목길 다 쓸어져 가는 건물을 관광 볼거리로 만들다니 기발한 착상이다 실물 크기의 인형도 볼거리가 된다니 그 역시 기발한 착상이다 하루 종일 탱고 춤을 추며 구경꾼들이 놓고 가는 돈으로 돈을 번다 우리는 탱고 춤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야외 parilla 음식점, 이 나라 사람들 고기 없으면 식사를 못하는 것 같다 공원에서 혼자 축구 연습을 하는 소년, La Boca는 아르헨티나 최강의 축구팀 Boca Junior의 홈그라운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