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요한 복음서
1. 저자
요한 복음의 저자는 팔레스티나의 지리(地理)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있는 베타니아(1,28)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타니아를 구별하고 있다(11,18). 여러 사도들의 고향인 벳사이다(1,44), 살림 근처 애논(3,23),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 지방 시카르(4,5), 그리짐 산(‘이 산’4,20), 에프라임(11,54) 등을 열거하고 있다. 또한 장소뿐 아니라 유다인들의 풍습과 경축일을 자세히 알고 있다.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따라 둔 여섯 돌항하리(2,6), 초막절 축제(7,14), 성전봉헌 축제(10,22), 유월절 등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팔레스티나의 유다인이고, 요한 복음서에 언급된 ‘예수가 사랑하던 제자’로 본다. 그리고 이 사랑받은 제자는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를 따라 다니던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 사도로부터 유래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 복음의 유래는 요한이 친히 저술했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고, 요한의 가르침과 그 자신이 남긴 문헌들을 기초로 요한의 제자 중 어느 분이 요한 복음서를 저술했다고도 볼 수 있다. 동시에 요한 복음은 애제자 중 익명의 두 사람이 집필한 것인데 1장부터 20장까지의 필자를 복음 저자 A로, 21장을 추가한 필자를 복음 저자 B로 구분하기도 한다.
2. 저술 연대 및 장소
초대 교회 전승에 의하면 요한 복음은 1세기 말경 소아시아 지방의 수도 에페소에서 저술되었다고 본다. 이 시대는 초대 교회가 헬레니즘 문화권 내에서 교회 외부의 몰이해와 산발적인 박해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던 시기였다. 동시에 교회 내부에서는 유다인과 이방인 개종자 사이에 할례, 안식일 등의 율법 준수 여부에 관한 논쟁이 심할 때였다.
그리고 요한 복음이 집필된 1세기 말, 2세기 초의 환경은 ‘영지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던 시기였다. 영지주의란 인간이 ‘지식’에 의해서 구원된다고 주장하며 정신 세계와 물질 세계를 화합할 수 없는 상극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을 내세우는 사상이다. 그들은 인간의 구원도 영혼의 감옥인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참 지식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 이 사상에는 두 가지 상반되는 행동 규범이 나오는데, 그 하나는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신 극기로 극단적인 금욕 생활을 강요한 것이다. 반대로 최상의 ‘지식’을 감지할 수 있는 영혼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육체는 아무래도 괜찮다고 하면서 윤리적으로 퇴폐적인 생활을 옹호하는 부류가 있었다.
그리스도교 내에도 그러한 시대 사조의 영향을 받은 이단설이 심각한 위험을 야기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리스도는 높은 세계로부터 오신 빛이며 육체는 허울만 지녔다는 이설이다. 이에 대항하여 복음 저자는 말씀이 사람이 되셨음(1,14)과 하느님 아버지께 보냄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참 구원자가 곧 인간 예수라고 규명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영지주의의 중심 개념들을 이루고 있는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진리와 거짓, 위와 아래 등의 상대적 개념들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이로써 요한 복음은 변천하는 세계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쓰고 있던 용어와 개념들을 활용하여 그들의 오류를 타파하고 그리스도교 교의를 쉽게 이해 시킨 좋은 예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요한 복음은 그와 같은 시대적 환경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복음에서 사용된 상징이나 표상들은 당시의 사람들은 쉽게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표상들을 통해서 신앙과 사상이 탄압되던 시기의 역사적 배후에 숨어 있던 그 시대인의 신앙과 감정이 표출되고 있다.
3. 신학적 특징
1) 요한은 예수의 역사적 업적을 서술하되 단순히 역사상의 예수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는 동시에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아들임을 말하려고 했다. 따라서 요한 복음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언급하는 사기(史記)가 아니고 신앙 고백서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비에 깊은 영상과 그 보완적인 측면을 기억에서 되살리려고 애썼다. 그러므로 어느 면에서는 요한 복음이 공관 복음을 보완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볼 수 있다. 그 증거로는 다음 사실들을 들 수 있다.
① 예수의 공생활의 기간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요한 복음뿐이다. 요한은 세 번의 과월절(2,13; 6,4; 13,1)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예수의 공생활이 적어도 만 2년 이상임을 단정할 수 있다.
② 예수께서 대축일 때마다 예루살람에 올라가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도 요한 복음 뿐이다(2,13; 5,1; 7,10; 12,12).
③ 예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에서 상당히 긴 시일 체류하였다는 사실들도 요한 복음에만 나온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이 당신 생애의 마지막 과월절만은 아니었다.
2) 요한 복음은 예수의 인품에 대한 진리를 심화시키고 보완한다. 요한 복음에 실린 설교들은 모두가 그분이 누구시냐는 설교들이다. 이 설교는 청중을 앞에 두고 공적으로 행한 설교든, 대담 형식으로 행한 설교든 간에 그분이 누구신가를 계시하는 설교들이다.
3) 요한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일치와 형제애에 못지 않게 ‘이웃 사랑’을 강조한다. 예수의 대사제 기도(17,1-26)를 보면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을 당신께 결합시키고 또 아들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당신께 결합시키는 일치에 관한 말이 나온다. 아버지와 아들과 신앙인들을 한데 묶는 사랑의 일치 속에서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실현된다(16,27).
4)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 계심으로써 인간들의 양심은 필연적으로 혼란을 빚고 ‘근본 결단의 기준’이 서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말씀 앞에서는 중립이란 있을 수 없으며 어느 부분을 보류하거나 배척할 수 없으며 전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하간 관습, 사고 방식, 학문, 심지어 모세 율법까지도 그분을 받아들이는 데 지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는 심판을 하러 오셨다(9,39). 그 심판은 일종의 구분이다. 그러나 의인과 죄인의 구분이 아니라 만인은 죄인이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모두가 “다시 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다. 당신 아들의 인품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모셔 들이는 이들과 배척하는 자들을 갈라놓는 구분이다.
5) 요한 복음은 상당히 인격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인간 각자가 그리스도 앞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요한은 예수를 하느님의 계시자로, 보이지 않는 분의 증인으로 제시한다. 또 모든 신앙인이 그런 것처럼, 요한도 예수에게서 하느님의 아들의 영광(1,14)을 보았다. 예수의 언행은 바로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하느님 아들의 언행이었다. 요한은 예수께 대한 신앙으로 조명된 자신의 체험을 우리에게 적어 보인 것이다.
4. 주제
요한 복음의 주제는 ‘생명과 빛과 사랑이신 그리스도’이다. 즉, 사람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러 오신 그리스도,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신 그리스도,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으로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이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요한 복음에 나오는 7가지의 기적들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구원이 성취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빵의 기적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경의 치유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등, 각 기적들은 이 복음서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해 주는 상징이기고 하다. 상징은 요한 복음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핵심이다.
5. 요한 복음과 공관 복음의 관계
1) 예수의 공생활의 과정 및 기간
공관 복음은 예수가 주로 갈릴래아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마지막 일 주일을 예루살렘에서 체류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요한 복음은 최소한 세 번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대부분이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예수에 대해서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공관 복음은 예수의 공생활을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끝맺도록 서술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것을 생략했고, 요한 복음은 예수의 활동 과정을 충실히 기술한 것 같다.
2) 기적 사화
요한 복음에는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이 전혀 없는 대신 공관 복음에 언급되지 않은 기적들이 있다. 물이 술로 변한 기적, 38년 동안 반신불수로 고생한 사람의 치유,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이 보게 되는 것(9,1-34)이다. 이와 같이 요한 복음 저자는 공관 복음에서 취급되지 않은 기적들을 기록함으로써 공관 복음을 보충하려 했던 것이다.
3) 예수의 말씀
공관 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말들은 쉽게 식별할 수도 있고 일정한 유형을 지닌 짧은 말들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요한 복음에 실린 예수의 말들은 공관 복음에서 별로 큰 뜻을 지니지 않은 개념 및 용어를 중심으로 짜여진 긴 설교이다. 또한 공관 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예수의 설교에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요한 복음에는 그것이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동시에 하느님 나라와 관련된 ‘사람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언제나 지상의 예수에게 적용될 뿐이다.
4) 예수의 메시아관
공관 복음에는 예수가 메시아임을 점진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는 데 반하여, 요한 복음은 예수를 단번에 메시아로 알리고 있다. 따라서 공관복음은 역사적으로 계시의 발달 과정을 서술하였고, 요한 복음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교회의 신앙을 예수의 공생활 시초에까지 소급 연장시키고 있다.
요한 복음의 그리스도 역시 참된 인간으로서 육체적 조건, 정신적 감정을 구비하셨고, 아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여행하시는 중 피로하셨고(4,6),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는 충격을 받아 울었으며(11,3), 죽음을 앞두고 공포도 느끼셨다(12,27). 동시에 요한 복음에서 예수는 성부의 아드님으로서의 신(神)이다. 성부는 전지 전능하고 그의 아들 그리스도는 성부의 전지 전능을 물려받았다. 따라서 아들 그리스도가 하는 일은 곧 성부의 일이다(5,19이하; 11,41; 14,10). 이처럼 요한 복음 사가는 예수의 신성(神性)을 공관 복음 사가들보다 더욱 명백히 서술하고 있다.
6. 내용
1) 사람이 되신 말씀(1,1-18)
2) 새로운 창조와 새 생명(1,19-4,54)
3) 안식일에 예수의 행적과 생명의 빵(5,1-6,71)
4) 생명이며 빛이신 예수(7,1-8,59)
5) 세상의 빛이며 착한 목자인 예수(9,1-10,42)
6) 예루살렘을 행해 가시는 예수(11,1-12,50)
7) 최후 만찬과 예수의 고별 말씀(13,1-14,31)
8) 당부의 말씀과 예수의 기도(15,1-17,26)
9) 예수의 수난(18,1-19,42)
10) 예수 부활(20,1-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