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용정
기차는 예정시간 보다 좀 늦게 6:32분에 연길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입니다. 전 같으면 연길에도
아는 이들이 많아 여기 저기를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으로 많이 가서 갈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87년도 부터 연길 청년 7-8명을 데려다 선배님과 함께 이들을 3개월정도 교육시킨 후 , 한국의 이곳 저곳을 구경시켜
보내기도 했었고, 92년도부터 연길사람들을 한국에 오게하여 공장에서 일하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부터는 연길만 오면 한국이나 다름없이 갈 곳이 많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용정을 들렸다가 화룡에 가서 며칠을 보내고 다시 제난으로 내려 가기로 했습니다.
1월 15일 연길 기차역에 내렸습니다.
4인실 침대칸입니다.
연길 기차역 출구
지금까지 6번 정도 드나 들었는데 출구는 여전했습니다.
우선 기차역 안에 새로 생긴 롯데리아로 들어가 버거로 식사를 대신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와이파이가 잘
되기에(중국여행에서는 호텔을 나오면 와아파이가 잘 안되기 때문에 KFC나 이런 롯데리아에 들어 가면
쉬기도하고, 식사도하고, 카톡도 할 수있는 1석 3조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많이 이용하기에 여기서도 그런
장소를 찾으니 바로 기차역 안에 롯데리아가 생겨 더 없이 반가웠습니다)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용정에는 12시까지 가기로 하고, 화룡은 4시쯤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한국에도 연길에 잘
왔다는 연락을 했습니다.
나 같은 여행객에겐 더 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세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9시 30분 용정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기차역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지만
용정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약 15분 정도 걸어서 가야했습니다. 길을 물을 때 마다 사람들은 친절히 가르
쳐 주었습니다. 40여분 후에 용정에 내렸습니다. 용정에는 독립운동가 윤동주 시인과 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대성중학교,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등 꼭 가보야 할 역사유적지가 있습니다. 나는 전에 이런 곳
들을 돌아 봤기에 오늘은 유치원 교사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가고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에 네이버에서
사진 몇장을 가져와 올리겠습니다.(내가 찍은 사진은 어딘엔가 있는데 오래되어 찾기가 번거로워 다른 이의
사진을 가져옵니다)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대성 중학교.
ㅡ 일송정 가는 길 ㅡ
내린 곳에서 젊은 부인에게 세무소 건너에 있는 유치원이 어디냐고 중국어로 물으니 이 여인은 단번에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고 우리 말로 "저 앞에 있는 새로지은 건물로 가서 오른편으로 가면 있다"고 해서 거리가
얼마 안 되는 줄 알고 배낭을 메고, 가방 하나는 끌고 가는데 가도 가도 유치원은 안 나왔습니다. 미끄러운 얼음
길입니다. 여러사람에게 물어(만나는 이들은 다 교포였습니다)꽤나 멀게 갔습니다.
이 빙판길을 걸어갑니다. 위 사진 다리를 거너기 까지ㅡ
강변 길로 들어 섰으니 택시도 없어, 힘은 들었지만 무조건 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리를 건너 세관까지
가니 바로 앞에 아담한 유치원 건물이 보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자치주일 경우
자기들 언어를 먼저 쓰게 되어있습니다.
세관 건물
관공서에 복무청 이란 단어를 잘 씁니다.
유치원 건물이 크고 예쁩니다. 조선족이 많이 살기 때문에 한국에서 많은 지원을 해서
지어졌다고 합니다. 중국의 유치원은 매우 큽니다. 교사도 30여명이 되고,...
경비원 실에서 잠시 기다리니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만나려는 교사가 나왔습니다. 반가히 인사를 나누고,
길 건너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한국식 음식점인데 손님이 많았고, 우리가 시킨 돌솥 비빔밥도 한국보다
더 푸짐하게 차려졌습니다. 이 쪽은 한국에서 배워 온 주방장들이 만든 음식에다 채소 값이 싸서 더 풍성
합니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교사는 언젠가 한국에 온 유학생 4명을 데리고 , 인천공항쪽 해변을 갔었는 데 그
때 왔던 학생이었습니다. 마침 화룡에 가려면 이곳을 거쳐가기 때문에 잠간 만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는
점심을 먹으면서 그 때 만났던 기억을 말했습니다. "그 날 목사님이 우리를 데리고, 먼 그 곳까지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 주고, 서울로 가 영화구경까지 시켜 주는 것을 보고, 나도 목사님 처럼 살아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여기에 와 살면서 그 때 처음으로 영화를 본 것이 잊혀지지 않아 가끔 연길로
나가 영화를 본다고 했습니다.그리고 나를 꼭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어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나는 이 쪽의 사람들과 많은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한국 나오기 어려울 때 여러사람
들에게 초청장을 보내 주었고, 그들이 오면 63빌딩, 올림픽 공원, 역사 유적지 등을 보여 줬습니다. 내가 여러
차례 초청해서 나온 여학생이 있는데 그는 지금 4년제 대학 기독교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야 작은 일에 불과했지만 본인은 이렇게 고마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습니다.
짧은 점심 시간이라서 더 긴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나는 화룡으로 출발했습니다. 은퇴 후
이렇게 만나는 일이 참으로 흐믓 했습니다.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삶의 모델로 삼는 젊은이
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화룡으로 가려는 이유도 이와같은 사연이 있어서 입니다.
첫댓글 롯데리아가 사람보다 더 반갑네요^^ㅎ
문열고 들어가면 동화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마치 꿈속처럼 유치원이 이쁘군요.
청해샘께서는..
스친 인연도 소중하게 관리하시는 것에 저하고 많이 다름에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며 매정하고 까칠한... 들고은입니다.
맞아요! 전에는 연길역에 롯데리아가 없었는데 최근에 생긴 것 같았어요.
마치 나를 위해 어젯밤에 시설해 놓은 듯, 그 이른 시간, 추운 날 어디서 세시간동안 편안히
있을 수 있었겠어요.
들고은님 까칠하다고 하셨는데 정 반대인 듯 합니다. . . .
여행기를 이어가려고 컴을 열었는데 TV에서 BJ이야기가 나와 그만 그곳에 시선을 뺏겨서
내일로 가야 겠네요. 요즘 내가 B(broadcasting) J(jockey)에 관심이 많거든요.
내 분야에서 BJ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려고요. . . 공부를 하고 있어요.
BJ라 함은, Broadcasting Jockey의 약자 즉 인터넷방송에서
방송활동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부르는 말인가요?
철없던 소시적 꿈은 기자, 아나운서 였는데.. 저도 청해님과 함께 그 분야를 좀 공부해 볼까요?
요즘 노후가 막막하여 diy 가구 공예를 남편과 함께 배워볼까?? 별별 생각을 다 하거든요.
공부 많이 하셔서 tip 을 주십시요^^ㅎㅎ
@들고은 BJ 맞습니다. 어제 보니까 유명 BJ들이 많더군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도 많구요.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준비도 엄청 많이 하고, 재치가 있어 보통 사람들은 따라가기가
힘들 것 같았습니다. 주로 아프리카 TV서 활동을 하는 것 같았어요.....
나는 그런 활동 보다, 내 분야(선교)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 보려고 해요.
돈은 하나도 안되겠죠. ㅎ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