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상주에서 우리김씨와 더불어 명문가문을 꼽는다면
광주노씨, 장수황씨, 진주정씨 등이 있습니다.
광주노씨는.......
이번에 낙성군 김선치 할아버지를 찾아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낙성군 할아버지 사위가 영의정까지 오른 노숭이고 상주시 화서면 옥연사에 제향되었다고 합니다.
노숭은 서울 금천구에서 대를 이어 살아왔고 후손 부터는 살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럼 노수신이 노숭 후손인가? 찾아 봤더니 역시 노숭의 후손이네요.
광주노씨가 상주에 들어와 살게 된 것도 낙성군 할아버지 사위로부터
시작했군요. 광주노씨 집성촌이 화서면(화령)이라고 합니다. 상주 출신으로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은 노수신 외에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수황씨는......
황희 큰며느리 상산김씨 묘라는 글을 보고 황희정승
큰며느리가 상산김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황희정승 장남은 황치신[黃致身]으로 과거에 급제하지 않고도 정승까지 오른
몇 안 되는 인물이랍니다. 황치신[黃致身]의 첫 번째 부인이 상주김씨 종부판사 김기(金淇)의 딸이라고
나와서 김기 할아버지에 관한 자료를 찾아 봤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김씨 급제자 명부에도 올라와 있지 않더군요.
구글 까지 뒤지니까 다행하게도 우리김씨 족보 사진에 나왔습니다.
김기(金淇) 할아버지는 전서공파 13세 할아버지로 직급이 판사(조선시대 판사는 1~3품까지)까지 올랐다는데,
자료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황희정승과 사돈을 맺을 정도면 그 당시 권세가 대단했을 것 같습니다.
황치신 후손들이 상주 모동면에 옥동서원을 짓고 살게 된 것도 역시
외척을 따라서 정착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김기(金淇) 할아버지에 관한 자료는 좀 더 찾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족보에도 산소사진 한 장과 간단한 글밖에 없습니다. 물론 황희와 사돈이란 글도 없는 것 같고요.
잠시 찾아보니 3등 공신에 올랐다는 글이 있습니다.
진주정씨는.......
진주정씨가 상주에 번성하게 된 이유는 아래에 한 번 올렸었지만
상산군 김득제 할아버지 사위인 정의생이 상주에 정착하며 후손이 번성하게 되었답니다.
유명한 후손으로 대제학까지 오른 정경세가 있습니다.
이상 우리선조님들 때문에 상주에 정착해서 명문가문으로 성장한 성씨를 살펴봤습니다.
하나같이 고관대작을 배출한 명문가문입니다. 상산김씨는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더 훌륭하셨나 봅니다. 인터넷 검색해도 배상주김씨로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훌륭한 집안으로 시집을 갔거나, 훌륭한 자식을 낳았다는 증거겠지요. ㅎㅎㅎ
첫댓글 광주노씨는 광산노씨로, 진주정씨는 진양정씨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황치신의 형제 황수신도 고관을 지냈습니다. 황희의 후손으로는 선조 때 황정욱, 황윤길이 있었습니다.
공부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