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바람쐬고 왔습니다.
누구든지 '친구' 하면 먼저 떠 오르는 친구가 있을 겁니다.저도 그렇습니다.멀쩡하다가도 삶에 지친다는 생각이 엄습 해 오면 마냥 만나서 수다떨고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개운해지는 만남이 있지요. 몇 달 전부터 미루다가 담주에 휴가 다녀오면 한동안 친구를 못 볼거 같고 뇌경색으로 고생하신 친구 아버님 병문안을 못했기에 오늘 안가면 계속 후회하겠다 싶어서 갑자기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남편은 피곤하니 무조건 쉬라는 주문입니다.
예순 살을 눈 앞에 둔 저의 큰오라버니가 작년봄, 정년 퇴직 때 까지, 도시에서 사그라진 몸을 휴양 시키기 위해 공기 좋은 고향시골에서 생활하며 취미로 한 봉 벌통을 늘려서 진짜 꿀을 치고 있습니다. 제 어릴적 추억은 그 한봉 벌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한봉 벌꿀은 목으로 넘어 갈 때 부터, 느낌이 싸 해 집니다. 양봉 벌꿀 삼켰을 때 와는 사뭇 다릅니다. 요즘은 진짜 꿀 찾는다는게 아주 많이 어렵습니다.
암튼,어디서 돈 주고도 구하기가 힘듭니다. 설령 백화점일지라도요. 어쨌든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야말로 백화점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진짜 꿀을 오라버니한테 높은 값에 구입 했습니다. 원래 늦가을에 꿀을 채취하는데, 요즘은 시골도 농약으로 인해 꽃이 많이 부족합니다. 하여, 가을까지 두면 봄부터 열심히 꿀사냥을 해서 쌓다가 장마철에 벌들이 지들 집인 벌집안에 아주 상주하면서 다 먹어 치우기 땜에 작년부터 본격적인 장마철이 되기 전에 수고한 벌들의 꿀을 인간으로서 훔치는 겁니다.
그후, 화난 벌들이 멀리 나가 버리든지 아니면 열심히 꿀사냥을 해서 내년 봄까지 인내하다가 봄에 분봉을 하면 그 새끼벌로 천연꿀을 채집하기 위해 천적인 대추벌이나 말벌들의 공격을 막는데 최선을 다 해 줍니다.
올해는 천연꿀이 총 20근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제가 10근을 매점매석 했습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아들녀석 건강식 하려구요.
아무튼, 오리지널 한봉 꿀(친구가 부탁함) 몇근과, 매실장아찌를 아직 안먹어 봤다는 친구 말에 올해 처음으로 시도했던 매실장아찌에 직접 담은 고추장과 참기름, 깨소금 송송 뿌려 버무러서 작은통에 담고 아침에 청주를 향하여 갑자기 집을 나섰습니다.
작년에 대장암 수술을 하신 어머니, 뇌경색으로 한달을 입원하셨던 아버님을 모시려고 산새 좋고, 공기좋고, 물 맑고 경관 좋고 무엇보다 접근성 좋은 곳을 몇 달을 심사숙고하여 택한 곳에 청주시내에서 자가용으로 20분 거리에 청원군 미원면에 아담하게 목조건물로 펜션처럼 집을 지었습니다. 부모님께 선물을 한 셈이지요.
하루를 한 달 처럼, 한 달을 일 년처럼, 일 년을 10년 처럼만 웃음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사시다가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는 길에서 여한이라도 없으시기를 아들 딸 모두 기원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영암에 두고 온 논은 처분했고, 밭 열마지기와 농가는 그대로 두고 올라 오셨습니다.
친구 부모님-. 당신들 삶에서 처음으로 집을 성주함에 그토록 좋아 하시더랍니다.
*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에 내려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정류소에 내려서 전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던 차에 바로 옆에 서 계시던 할아버지가 환하게 활짝 웃으며 " 누구 찾아 오셨소?" 하시는 겁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두번 밖에 뵙지 못한 친구 아버님 이시지만 바로 알아볼수 있었습니다. 친구와 똑 같이 생기셨거든요. " 어머, 아부지~! " 넘 반가워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난듯 덥썩 안아 버렸습니다. 두리번 거려도 마트가 보이지 않아서 이거 큰 실례를 하겠구나 싶었는데, 그때 친구 선희는 다른 식품 살거 사러 갔다고 하더군요. 뒤로 돌아가니 면소재지지만 중대형 매장이 보이더군요.
여느 아부지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 머슬 살라고..? 집에 창고에 가보믄 꽉~찼어. 암끗도 필요 없승께 그냥가면 되아부러~"
집들이 휴지는 너무 많다는 친구 말에 관두고, 진하다는 삼육검은깨두유 큰걸로 한 박스 사고 다시 나오니, 친구 아버님께서는 뭐하러 샀냐고 하시면서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십니다. 뇌경색을 앓으시고도 직접 지프차를 운전하고 마중 나오신 겁니다. 뒤는 짐칸이고 앞좌석 2인용 코란도 같았습니다. 친구와 둘이서 한 좌석에 쭈그려 타고 새로 지은 집에 도착해 보니, 과연 농사짓는 부부답게, 작은 텃밭엔 과연 농사짓는 우리네 부모님답게 완전 무공해로 정성껏 키운 고추가 튼실하게 주렁주렁입니다. 토끼 두마리. 아주 귀엽게 생긴 강아지 한마리, 그리고 숫닭 한 마리에 암닭 5마리가 한 우리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일부다처제를 실시하고 있는 숫닭은 행복할거라 친구 엄마가 농담을 하십니다. 계란은 충분히 넘치겠더군요. 하루에 4~5개는 수확하니 말입니다.
점심상을 차렸는데, 이거저거 시골반찬들이 상에 그득합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작은 개울과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느낀건 '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기계처럼 일하는 삶이 많이 불쌍하다.삶을 순식간에 보내지 말고 여유롭게 길게 살아야하는게 신의 선물이구나.' 였습니다. 즉 세월을 의미없이 빨리 보내지 말고 유유자적으로 세월을 길게 보내는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얼마나 현명한 삶인지 가슴 깊게 느끼게 되더군요, 열심히 내 가족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면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잘 잡아 부모님께 선물하고 본인한테도 스스로 잘 선물을 한 내 친구가 한 없이 현명하고 예쁘게 보이더군요. 늘 칙칙한 도시생활을 지겨워 하면서도 선뜻 내치지 못하는 현실이 얼마나 가소롭고 작게 느껴지는지 이번에 더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자고 가라는 부모님 말씀에 담에 찾아 뵙겠다고 인사드리고 친구랑 나서는데(친구는 청주로, 저는 부천으로) 손수 만드신 마늘쫑 장아찌를 한 봉지와 애호박 커다란거 한 개와 무농약으로 키운 맵지 않는 청고추를 한 봉투 싸서 주시는 겁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전혀 변함이 없으십니다. 다섯자녀를 잘 키우시고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살아 가는 연세이니 만큼, 항상 건강하시고 만수무강을 빕니다
2009.8.5.
첫댓글 신선한 뉴스에 감동 받았습니다. ㅋㅎ 시골풍경속에 잘 어우러져 헐리우드스타 별장보다 더 멎져 보입니다. 크
야트막한 산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별장촌이 되어 있고, 산새와 동네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