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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소개코너 스크랩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저자 권태훈.
天風道人 추천 0 조회 88 13.08.21 02: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중 체술편.

제1장 체술요강(體術要綱)

(1)체술의 연원

체술(體術)이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몸을 놀려 행할 수 있는 체력 단련 술법을 의미한다. 체술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고대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을 무렵의 상고(上古) 시대에 사람들이 수렵 활동을 하면서 자연 발생되었다. 고대인의 일상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분인 수렵에 보다 나은 수확을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짐승을 잡는 사람의 몸이 민첩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몸을 재빨리 놀릴 수 있는 여러 요령들을 스스로 터득하기도 하고 짐승들로부터 배우기도 하며 지내던 것이, 시대를 내려가며 여러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출현하면서 이 체술의 기능들은 하나 둘씩 추가되고 보충되었다.

이것이 삼국 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로 정립(鼎立)하면서 각 나라마다 독특한 성격을 지닌 완연한 무예(武藝)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무술로서의 체술(體術)이 일부 병학(兵學)의 전문가들인 무사(武士) 계층에게만 전래되어 왔으나, 삼국 시대에 와서는 빈번한 국가간의 전쟁과 외세(外勢, 주로 중국)로부터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전국민적 국방 개념의 확립이 절실하였으므로 민족 고유의 전문 무예인(武藝人)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통하여 국책(國策)으로써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국민 모두에게 보급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가 역사상 가장 상무(尙武) 정신이 제고(提高)되었던 시기였다. 또한 중국이 우리 나라를 명실상부한 강국(强國)으로 지칭한 사실이 역사적으로 기록된 유일한 시대였다.

즉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군이 몇 차에 걸쳐 고구려를 침입하고도 완전한 패배를 당한 사실은, 당시 우리 민족이 군사면에 있어서 참모진의 우수성 뿐만 아니라 각 병사들의 무술 수준 역시 중국보다 우월하였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반민족적인 통일을 이룩한 뒤부터 국책상으로 무술을 존중하지 않는 경향으로 흘러 사회 분위기는 점점 문약해져 갔던 것이다. 삼국 시대에 민족 고유의 무술 체계로서 정립되고 흥성했던 체술은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겨레의 얼이 사대 지향적으로 나약해짐에 따라 점점 그 실체를 상실하고 현대에 와서는 산간 벽지에서 간간이 나오는 야담(野談)에서나 그 자취를 살펴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체술의 특성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 내가 일본 동경의 시바하라 공원에서 목격한 일이다. 무도장(武道場) 강무자(强武者) 수십 명이 같이 가다가 조선 청년 한 사람과 시비가 나서, 비록 밤중이었으나 전등이 대낮 같은 곳에서 수십 명의 유단자들이 땅에서 일어날 새가 없었다. 당시 그중 최고단자가 5단이요, 3단이상이 8명이나 되었는데도 그 조선 청년 한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 마치 호입양군(호랑이가 양떼 속으로 들어감)의 형세와 같았던 것이다.

또 한가지는 오사까의 기면공원을 갔을 때 겪은 일이다. 그날 공원 안에서 유도와 검도 시합이 벌어져 80~90명의 일본인 청년 무사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들이 한국인 부인을 희롱하는 것이 발단이 되어 한 중년의 한국인 남자가 분연히 나와 이들과 시비가 붙은 것이었다. 결국은 90명이나 되는 일본 청년 무사들이 이 한 명의 중년 한국인을 대적하지 못하고 아주 참패를 당하여 도주하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경상도 출신이었는데 역시 앞서 시바하라 공원에서의 조선 청년과 같이 어느 계통으로서든지 고래(古來) 체술을 습득한 사람이라고 나는 인정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내가 목격한 바로도 수십 건이 더 된다. 그들의 체술은 거의 동일한 형태의 기본적 특징이 있었다. 현대의 각종 무술보다는 습득하기 용이하고 효과적이다. 고대 체술은 다른 무술과 달리 정신수련으로서의 호흡(呼吸. 調息)을 중시하며, 신체 각 관절(關節)의 구분(區分) 훈련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기술 습득으로 들어가는데, 기술 습득 이전에 기본적인 준비 체술로서의 신체 구분 훈련을 완전히 습득하지 않으면 다른 기예(技藝)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충분한 준비 체술을 가지고 바로 기본기의 하나하나를 배움으로써 학습 즉시 실전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특징이 있다. 또한 고대 체술에서는 급소타를 병행하는 관계로 일반 무술과 달리 방어면에서 어려운 점이 많으므로, 기술을 가르치기 전에 아주 민첩한 신체 사용법을 터득해야만 상대방의 급소타(소위 점혈법, 급소가 되는 혈(穴)을 가격하는 법)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준비체술인 민속법인데 삼국 시대부터 전래하는 비법의 일종으로서 현재 약 30여 가지가 남아 있다.

이 민속법만 습득해도 보통의 무술인에게 능히 대항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법들은 글로 설명되어진 것은 없고 모두 구전심수로 그 맥을 이어 내려왔다.

(3) 체술의 전승 의의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한 지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토호인 강무자들이, 지나가는 묘소년 일행에게 폭행하다가 도리어 패배를 당했다는 등의 야담들이 많았다. 이것이 고대로부터 체력 증진과 더불어 체술을 병행한 인사들의 소행이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조선 시대부터는 지방 인사가 보통 수준에서 조금이라도 우수한 인재가 있으면 이 인재를 기용하기보다 먼저 모해하는 관계로, 고래의 체력 증진법이나 체술을 통한 인재 양성을 표면적으로 드러내기가 어려웠고, 어느 국한된 사람만 택해서 대대로 그 제자나 자손들에게만 형식을 알게 할 정도였다. 완전무결한 비법은 스승을 통한 구전심수를 받는 외에는 다른 법이 없었다.

조선 시대 단종 당시의 김종서 부자나, 세조대왕이나 홍윤성이나 모두 초인간적 체력과 체술이 있었던 것이요, 임진란 당시 김덕령, 정기룡, 곽재우, 권율, 이순신 장군 같은 분들이 모두 지모장략(지혜로운 머리씀과 장수로서의 전략)과 무예가 출중하였고 그 후 인조 시대에도 임경업장군과 박엽 같은 분들이 모두 일세명장이었고 무술이 절륜하였다. 또한 임진란 당시 명나라의 명장 이여송이 우리 나라에 와서 전심전력을 다하여 싸우지 않은 관계로 어느 노인이 이여송을 유인하여 자기집 서당의 어린 아이와 시합을 시킨 결과, 이 아이가 맨주먹으로 쾌승하였다는 것으로 그 뒤 이여송이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고 귀국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전래하는 체술이 없으면 무엇으로 이런 분들이 이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래 체술을 근본적으로 연구해서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보급시킨다면 유도나 태권도, 공수도, 레슬링, 합기도, 권투 등의 기존 격투기 종목과 동일한 훈련 기간내에 이들 종목보다 아주 월등한 실력으로 용이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비록 체계가 서지 못하였으나 이 고대 체술 기본만은 여러 사람에게서 구하고 조정하고 연구함으로써 다시금 완성된 형태로 전승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 화랑의 무리들이 산중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는데, 그들이 어떻게 신체를 단련하였는지 편모도 볼 수 없으니 무엇으로 그들의 전모를 더듬어 볼 것인가.

다만 한조각씩이라도 민간에 흩어져 전해오는 야담과 일화 속에서 걷어내어 심사숙고 하는 도리 밖에 없고, 또는 정신수련으로 회광반조해서 고대를 추상하는 데에서 비로소 그들의 전모가 비쳐나오는 것이다. 간간이 흩어진 책속에서 고인들의 진의를 엿볼 수 있고 글자 몇 마디에서 옛 조상들의 진제(참진리)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니 중국의 십팔반무예나 일본의 무사도 전통만 배우지 말고, 우리 고대 문화 속의 체술을 돌이켜 생각하여 거기에 깃들어 있는 선인들의 정신을 다시 살려서 백두산족 고유의 무예로 계승, 활용해 주기 바란다.

(4) 체술의 실제

체술의 습득을 위한 실제적인 훈련 내용은 첫째 정신수련, 둘째 준비체술로서의 신체 민속법 훈련, 셋째 기예 훈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은 보통 6개월에서 1년까지 정신수련과 준비 체술을 병행한다.

1. 정신수련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호흡수련, 즉 조식(調息)을 행하는 것으로서 입식면면(실타래처럼 끊이지 않고 들이마심)하고 출식미미(가늘게 서서히 내쉰다)하여 항상 정신과 기운이 배꼽 세치 밑의 단전이라는 부위에 머물도록 하는 것을 그 요체로 삼는다. 체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4시간 이상은 필히 호흡 수련을 하여야 한다.

이 조식(調息)을 통하여 정신이 맑아지고 신체내의 혈액 순환이 고르게 되어 심신의 조화를 이루게 되고 무엇보다도 매사에 집중력과 인내력이 강화된다. 똑같은 기량과 힘을 지닌 무예인이라면 그중 호흡이 긴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무술의 달인이나 명인이 되려거든 반드시 호흡수련에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 신체 민속법

본격적인 체술의 기예를 터득하기 위한 준비 훈련인 신체 민속법에는 대략 30여종이 있는데, 신체를 아주 민첩하게 놀리면서 또한 힘도 기르는 방법들로서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남녀노소 공통으로 즐겨가며 행하는 유희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일제 시대만 하더라도 함경도의 주먹치기, 평안도의 박치기, 서울의 발차기와 전라도의 물어뜯기(깨물기) 등등이 유명하였는데, 이것만 보아도 각 지방마다 나름대로 신체의 각 부위를 이용한 체술 훈련법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 신체 민속법을 습득한 사람이라면 몸의 어느 부분이든지 유사시에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어느 무술에서도 볼 수 없는 전천후적 특장이 여기에 있다. 이것을 일정한 순서 없이 기록해 나가기로 한다.

씨름

씨름도 민속 놀이의 하나로서 계승되어 오고 있는 것으로, 상대방의 다리 놀림?? 잘 살펴야 하므로 적의 움직임의 기미를 알아채는 눈이 밝아짐과 동시에 몸도 기민해진다. 전신운동으로서 팔과 다리, 허리등 신체 각 부위의 힘을 고루 길러 준다.

공치기(일명 난장치기)

예전에는 산에서 나무꾼들이 많이 하던 놀이로서 나무로 공을 깎아서 작대기로 치는 것이다. 요즘의 필드 하키와 비슷하게 서로 편을 짜서 동네 대항 시합도 벌이곤 하였는데, 지는 편이 상대방 마을의 부역을 치르는 것이다.

작대기로 나무공을 치면 '핑'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치솟아 날아가는데, 상대편에서도 작대기로 그 날아오는 공을 후려치며 서로 주고 받는다. 양쪽에 골문을 만들어 놓고 나무공을 작대기로 쳐서 골 안으로 집어 넣으면 득점을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는 쉽지 않아서 몸도 민첩해야 하고 공을 보는 눈이 익지 않으면 안 된다.

민속 놀이의 한 형태이므로 재미있게 즐기는 가운데 기본 체력 단련과 눈이 밝아지는 방법이라 하겠다. 실제 대련에서 주먹 들어오는 것을 방어하는데 아주 유용한 훈련이다.

줄넘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조중봉(조헌 선생님)은 평소 자신을 찾아오는 선비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전에 항상 줄넘기를 삼천 번씩 시켰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 둔한 선비들이 줄넘기를 하느라 빨라졌다고 한다. 이것은 전신 운동의 하나로서, 제자리 넘기와 뛰면서 넘기를 병행한다. 또한 여자 아이들은 동요를 불러가며 줄을 넘는 놀이를 하였는데 이도 역시 몸의 민첩함을 기르는 준비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중(中)방울 받기

중방울이란 장고같이 가운데가 잘록하게 들어간 모양인데 나무를 깎아 만든다. 이것의 가운데에 실을 걸쳐서 실의 양쪽 끝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며 이 중방울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쓰는 실은 가는 실에 초칠한 것을 쓴다.

양쪽으로 실을 잡아당기며 중방울이 실 위에서 움직이게 하다가 실을 빨리 움직여 가며 공중으로 중방울을 솟구쳐 보내기도 한다. 그 방울이 하늘로 까맣게 보일 정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데, 밑에서 올려 보낸 사람이 낙하 지점을 미리 찾아가서 다시 실로 받아낸 후 계속한다.

여러 명씩 편을 갈라 하는데 중방울을 먼저 떨어뜨리는 편이 지는 것이다. 중방울은 천부공식 원리를 나타낸다.

처음 연습할 때에는 5 ~ 10cm짜리 방울을 사용하는데 작은 방울을 실로 움직이며 중심 잡는 것이 더 어려우므로 어려운 것부터 먼저 시작하고 이것이 능숙해지면 15 ~ 20cm짜리 큰 것으로 사용한다.

안력(眼力)을 기르고, 양손의 민첩한 놀림도 배양된다.

제기차기

이 방법 역시 민속 놀이의 하나이며 대여섯 명씩 편을 짜서 제기를 차되, 아침부터 같이 차기 시작하여 먼저 제기를 땅에 떨어뜨리는 편이 지는 놀이다. 한 사람이 제기를 차다가 지치면 '넘어간다'하며 소리를 지르고 옆사람에게 넘겨 준다. 이렇게 받아서 발로 제기를 돌리는 것인데, 발 안쪽으로도 차고, 옆으로, 뒷꿈치로, 발등으로 등 발의 모든 면을 사용해가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나절 이상 차는 것이 보통이다. 다리의 힘을 기르고 민첩함을 길러주며 눈도 밝아진다.

수박(手博)

수박이란 손을 사용하여 상대방이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는 타격을 방어하기 위해 연습하는 방법이다. 손은 주먹을 쥐는 것이 아니라 편 상태로 상대편 손쪽으로 재빨리 뻗으며 상대방 역시 최대한 빨리 손을 내밀어 부딪치는 식으로 훈련한다. 흔히 곡조를 띤 소리를 질러가며, 박수도 쳐가며 행한다. 점혈법의 급소타에 대비한 훈련방법이다. 두 사람이 서로 손바닥을 부딪쳐가며 노는 놀이의 한 형태로서 민간에 전해 내려온다.

박치기

이것은 원래 평안도 지방에서 널리 유행하던 준비 체술의 하나로서 머리를 중심으로 하여 몸 전체의 민첩함을 키우는 훈련이다. 내가 젊었을 적에 평양에 갔다가 그 '평양 박치기'에 한번 당한 적이 있어서 이 법의 진수에 접할 기회가 있었다.

보통의 박치기 실력이면 옛날 한옥의 대문짝이 뻥하고 떨어져 나갈 정도는 되었는데, 그렇다고 머리에서 피 흘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들이받는 머리의 부위는 소위 '뿔다귀'나는 자리가 주(主)이고, 이마는 부수적인 위치이다.

실제적 훈련에서는 보통 모래를 담는 자루를 나무에 매달아 놓고 머리로 받는 부위를 솜을 넣은 후 헝겊으로 대서 약간 말랑말랑하게 해놓고 몸 전체로 들이받는 연습을 한다. 처음에는 100근(60kg)짜리부터 시작해서 200근, 500근, 1000근 하는 식으로 무게를 늘려 간다. 손을 사용하지 않고 몸 전체의 기운을 머리의 뿔다귀 자리로 집중해서 순간적으로 목표부위를 겨냥해 받고 나오는 것이다. 즉 일종의 기합술인데, 이 연습을 한다고 해서 사용 부위가 쇳덩이처럼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몸 전체의 기력을 머리로 이동시켜 막강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일반 무술에서 손으로 벽돌이나 바위를 격파한다고 해서 그 손이 바위처럼 단단한 상태는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박치기의 파괴력 역시 가공할 만한 것이어서 되게 받으면 아주 치명적이다. 상대방을 약간만 받아도 뻥하고 나가떨어지는데 한번의 충격이면 보통 기절한다. 일반적으로 한 1년 연습하면 대문짝 정도는 떨어져 나가는데, 목표물을 제대로 받으려면 속도가 빨라야지 빠르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다. 왕년의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가 하는 식으로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받다가는 늘 상대방에게 맞다가 볼장 다 보게 된다. 즉 내 몸 전체가 재빨리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연습할 때에는 늘 배에 힘을 주고 순간적으로 탁 치고 나오는 식으로 한다. 100근, 200근 해서 500근짜리만 머리로 탁 받아서 휭하고 튕겨나갈 정도가 되면, 사람의 무게가 보통 100근 안팎이므로 보통 이상의 파괴력은 되는 것이다.

팔매[신탄]

이것은 돌던지기인데 수호지에 나오는 장청의 몰우전(날개 없는 화살, 즉 돌팔매)이 그것이고, 또한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도 이 팔매를 잘하는 등장 인물이 있어서 그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민간에서는 돈치기 - 엽전을 사용하여 일정 거리 밖의 엽전을 쳐서 따먹는 놀이 - 라든가 구슬치기 - 아이들이 많이 하는 놀이로 금을 그어 놓고 금에서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 구슬을 모아두고 구슬을 던져서 흩어지게 하는 것을 맞힌 사람이 갖는 놀이 - 의 형태로 남아 있다. 또한 동네 대항으로 편을 짜서 벌이는 석전 놀이도 포함된다.

팔매의 효력은 가까운 것은 몇 십미터부터 멀리는 몇 킬로미터 밖까지 돌을 던져 목표물을 맞히는데, 체력양성법을 통한 득력이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연습 방법은 간단해서 처음에는 가까운 사정 거리부터 시작하여 차츰 거리르 넓혀간다. 목표를 맞출 수 있는 사정거리는 제한이 없으며, 전적으로 던지는 본인의 능력에 달려 있는데, 그 능력이란 바로 원근법의 터득에 달려 있다.

문수암이란 사람은 나에게서 차력과 체술을 약 3년간 수련하였는데, 힘이 난 다음 이 팔매를 연습하여 1년 만에 10리의 사정 거리는 백발 백중이었다. 일제 때 금강 부근을 나와 동행하다가 5리 밖의 큰 다리 위로 일본군의 부대 이동이 있었는데, 그 이동하는 트럭들의 앞 좌석을 겨냥하여 돌을 날리는 것을 옆에서 목격하였다. 나중에 소문을 통해 그 결과를 알아보니, 던진 돌이 앞 좌석의 유리창을 깨고 운정병을 맞힌 후, 그 깨진 부분으로 연달아 돌이 들어와 옆 자리의 일본군 장교 역시 그 돌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다리 부근의 마을 청년 수십 명이 용의자로 연행되어 며칠 곤욕을 치루었는데 결국 무혐의로 모두 풀려났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이 바로 원근법을 터득한 사람의 팔매 실력이라 할 수 있다. 무슨 전설 속의 이야기 같지만 전해 오는 야담 속에서도 간간이 진실이 숨겨져 잇는 것이다. 천 걸음 밖의 버들잎을 맞혔다는 이야기도 바로 이것인데, 일명 관슬(이를 꿰뚫음) 공부라 해서 굉장한 정신 집중 훈련을 통해야만 트득할 수 있다. 즉 조식을 통한 호흡의 길이를 2분 이상은 돌파해야 원근법의 효능을 체험할 수 있다.

이 법의 기본 방법은 멀리 있는 목표물을 아주 눈앞에 있는 것처럼 심안으로 끌어당겨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3간(약 10미터) 밖에다 백지 위에 붓끝으로 한 점을 찍어 놓고 가만히 앉아서 눈을 내리 감고 백지 위의 한 점만을 생각하는 것인데, 하루에 몇 시간씩 계속 연습하여 시일이 경과하면, 호흡이 짧은 사람은 좀 오래 걸리고 호흡이 긴 사람은 속(速)한 차이는 있겠지만 그 3간 밖의 한 점이 점점 커지면서 나중에는 큰 쟁반만하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후에는 눈을 뜨고 응시해도 역시 그 목표물은 크게 보이는 것이어서 돌을 던지든, 활을 쏘든 백발백중으로 나타나는것이다. 이와 같이 10간의 사정 거리를 마음대로 맞히는 사람이면 100간 밖의 명중이 용이해진다. 이 원근법을 확대법이라고도 한다.

걸치기

걸치기란 상대방이 발로 공격해 올 때 내 발을 먼저 내밀어 상대방의 다른 발에 걸치는 방법이다. 즉 상대방 발이 내 발쪽에 닿기 전에 먼저 상대편 다리의 무릎 아래 부분을 걸쳐 막는 것으로 역시 다리의 민첩함을 기르는 연습이다.

제 발붙이기

이것은 왼쪽 발을 높이 쳐들고 동시에 오른손으로 그 발바닥을 치고, 그 다음에는 오른발을 쳐들고 동시에 왼손으로 발바닥을 치면서 이렇게 계속 양발과 양손을 번갈아 놀리며 뛰어가는 방법인데, 좀 숙달되면 마치 날아가는 듯이 보일 정도로 양 손발이 민활해진다.

택견

일명 '탁견'이라는 것으로 손과 발을 사용하나 주로 발을 쓴다. 여기서는 제일 먼저 줄넘기를 아침에 삼천 번, 저녁에 삼천 번씩 하는 것부터 하라고 시킨다. 팔다리가 빨라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조선 말?굻〈? 서울의 배화 여고 자리인 '필운대'가 서촌 한량의 택견도 총본산이었는데, '문밖 택견'과 '문안 택견'의 두 종류가 있었다.

문밖 택견은 휙 뛰면서 발을 차되 주로 상체를 차는데 실력이 여간하지 않고서는 실수하기가 쉽다. 문안 택견은 무릎 아래만 차는데 실수를 적게 하고 방어에 안전하다.

택견은 어깨와 어깨에서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되며, 옆으로 비스듬히 비껴서서 대련을 한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비껴서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고 서서 배우는데, 가르치는 선생은 팔짱을 낀 채로 서서 줄로 양팔을 몸통에 묶고 발만 가지고 가르친다. 제자가 좀 나아지면 선생은 한쪽 팔은 풀고 한쪽 팔은 묶은 채로 가르치며, 선생이 두 팔을 모두 풀고 가르칠 만하면 제자의 실력이 향상된 것이다.

이렇게 입문 자격이 갖춰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정식 훈련이 벌어진다. 즉 선생은 한가운데 서 있고 비슷한 실력의 제자 네 명이 직사각형꼴로 각 방향에 1명씩 선생을 둘러싼 형태를 취한다. 이런 상태에서 선생 한 사람이 네 방향의 네 사람을 상대하며 실제 훈련을 가르치는 것이고, 이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택견 입문자의 실제 급수가 선생에 의해 매겨진다. 독특한 교육 체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좀 고급의 단계를 얻은 사람끼리 서로 대련할 때 비로소 어깨를 서로 비스듬히 비껴 마주 댄 모양으로 임하는 것이다.

손은 부드럽게 팔랑팔랑 날리기만 하는데 체술의 고단자로서 점혈법을 터득한 사람은 급소타에 사용한다. 택견 자체에는 점혈법이 없다. 체술에서 쓰는 급소타의 부위는 주로 얼굴의 코와 눈 주위를 겨냥한다. 그러나 금혈('인중'같은 치명적인 급소로서의 혈)들을 쳐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런 곳을 아끼지 않고 치는 행위를 체술에서는 제일 악덕(惡德)으로 여기는 것이다.

무릎치기

제기차기 등의 연습을 통해 단련된 하체를 사용하여, 주로 허벅지 등의 살 많은 부위에다 전신을 휙 돌리며 무릎으로 질러 대는 방법이다. 무릎손상이 있기 쉬우니 연습에 주의를 요한다.

도약

뛰어오르기를 말한다. 옛날에는 땅재주꾼이라 해서 한번 휙 솟아서 용틀임한다고 하여, 공중에서 세 바퀴 회전한 후에 착지하는 정도는 보통들 했었다. 이것 역시 점진적으로 낮게 뛰기 시작해서 자꾸 높여나가는 방법이다. 현대의 체조와 같다. 또한 뛰는 법 뿐만 아니라, 떨어지는 낙법도 배운다. 보통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끈을 그네처럼 해서 만들어 놓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매달려 가며 끈을 바꿔 타는데 이것이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서로 옮겨타면서 상대편과 격투하여 공중에서 상대방의 끈을 빼앗고 자신이 매달려 타는 훈련도 한다.

난간치기

난간치기란 기와집 추녀에 붙어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기왓장을 붙드는 손의 모양이, 기와가 두꺼우니 손가락을 굽혀 잡을 수는 없고 결국 ㄱ 자로 잡게 된다. 즉 손가락들의 힘만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한 손으로 잡고 계속 다른 손으로 떼어가며 옮긴다.

구한말 고종 황제 때에 무과 급제하여 일개 부장(요즘의 선임하사격)이었던 '권제비'라는 사람은 고종 앞에서 상투 끝에 명주 세 필을 갖다 걸고 그것들이 땅에 끌리지 않을 정도로 빨리 뛰었다고 하여 고종이 '너는 사람이 아니라 제비'라고 그런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그과 바로 난간치기의 명수였다.

건청군 앞 연못의 경회루보다 약간 작은 정자 2층의 누마루에서 휙 올라가 기왓장을 붙들고 순식간에 24바퀴를 도는 난간치기 시범을 보인 그는 고종의 특별 명령으로 졸지에 종6품 선전관으로 승진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지압

점혈법에서 손가락(다섯손가락 모두 사용) 누르는 방법을 말한다. 이 법은 원래 비?개 교수가 원칙이며, 스승과 제자간에 일대일로 전수한다.

혈을 알기 전에 제자리 누르는 연습을 하는데, 이 연습은 원근법에 준하여 실행한다. 즉 처음엔 눈뜨고 3칸 밖 정도에서 짚단으로 만든 혈 자리를 서서히 찔러보고(혈 자리를 고정시킨 상태), 그 다음에는 움직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혈 자리를 뛰어가서 찌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악법

이것은 지압법 습득 후 상대방에 밀착해서 대련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상대가 긴장하기 전에 혈 자리 부위가 무력해지도록 날쌔게 잡는 것을 요점으로 한다.

배법, 추법

일명 밀쳐내기인데 주로 팔꿈치를 사용하여 뒤의 권법처럼 순간 타법으로 연습한다. 팔꿈치를 옆으로 직선이 되도록 친다. 역시 연습에 따라 모래 자루의 무게를 가중시킬 수 있다.

인법

이것은 주로 팔목의 끌어당기는 힘을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서 보통 상대를 정해 놓고 매일같이 팔목 씨름을 행한다. 한참 하다 보면 당사자들은 자신의 팔목 힘이 늘었는지 모르나, 제3자와 해보면 월등히 향상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모래 자루에 손잡이를 만들어 팔목으로 끌어당기는 방법도 행한다.

소법

글자대로 쓸어버리기인데, 양손을 편 상태로 양팔을 약간 하체쪽으로 경사지게 휘젓는 방법이다. 실전에서 자신을 에워싼 무리들을 뚫고 나갈때 사용한다. 앞의 배법이나 추법 훈련에서 모래 자루 500근 이상 1000근 정도의 연습 실력이면 실행 가능한 방법이다.

팔굽혀 펴기

요즘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축법

발로 차는 법인데, 모래 자루를 사용하되 차는 부분은 발바닥의 앞부분을 사용한다. 허리 높이로 차는 식과 발이 최대한 올라가는 높이만큼 자루를 높여서 차는 식으로 높낮이를 두어 연습한다.

권법

체술의 권법은 모래 자루를 매달아 놓고 연습한다. 요령은 박치기와 똑같다. 순간적 타격을 생명으로 삼는 일종의 기합술(氣合術)로서 주먹이 자루 표면에 닿는 순간에 온몸의 기력(氣力)을 집중시켜 치고 빠진다. 치기 전에 손을 편 상태로 자루에 근접하면서 손을 오므려서 네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로 표면을 살짝 치는 형세를 취한다. 모래 자루의 무게는 100근 부터 연습하여 200근, 300근씩으로 보통 1000근까지 늘려나간다.

격지타(隔紙打)

글자 그대로 목표물 바로 앞에 종이 한 장을 끼우고 타격을 가해도 종이가 찢어지거나 하지 않고, 목표물은 심한 충격을 받는 타법을 말한다.

격지타의 방법에는 집게손가락 하나를 사용하는 법과 주먹을 쥔 상태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불쑥 앞으로 내서 쓰는 법, 보통 주먹으로 가격하는 법, 또는 둘째, 셋째손가락을 쓰는 법 등이 있는데, 보통 주먹을 쓰는 법 외의 손가락들을 사용하는 법들은 특정 혈을 겨냥하고 쓰는 것이므로 상당히 치명적인 수가 많다.

이 격지타를 구사할 정도의 실력은 체술의 고단자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며, 타격을 받은 상대방은 아무 상처도 안 나고 멍도 안 드는데 고꾸라져서 힘을 못쓸 정도가 된다. 약 1년 이상의 전공 수련을 요한다.

격타(隔打)

이것은 가격하려는 목표물에 직접 접촉하지 않고서 타격을 그대로 주는 방법으로서 준비 체술의 신체 민속법 가운데 초보자가 실행하기는 어려운 분야이다. 각종 신체 민속법에 숙달한 실력으로도 장기간 집중 수련을 통한 고단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수배(手背)치기

이것 역시 손등을 사용하여 타격을 가하는 법으로서, 역시 모래 자루를 통해 연습한다. 치는 역량(力量)을 가중(加重)하여 100근에서 1000근 이상 늘릴 수 있는데, 능숙한 사람의 경우 도끼보다 더 센 타격을 상대에게 줄 수 있다. 보통으로 얼굴을 가격하면 피가 나고, 되게 치면 속으로 멍이 들어 곪게 될 정도인데, 한 대의 가격으로 쓰러져 버린다.

족배(足背)치기

발등을 사용하는 법인데, 발차기 중 가장 힘든 경우에 속한다. 방향은 몸이 옆으로 빠지면서 무릎 아래로 겨냥하여 찬다.

손치기

앞의 손등치기(手背)와 비슷하나 가격에 사용하는 범위가 손가락 부분까지인 것이 다르다.

허리 굴신법

허리를 유연하게 해주며 힘을 기르는 운동으로서, 선 자세에서 다리를 모으고 두 팔을 앞으로 내리며 바닥을 향하는 법과, 누운 자세에서 두 팔을 뒤로 세우고 머리를 젖히며 두 다리는 안쪽으로 접어 세운 상태로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법, 다시 선 자세에서 양팔을 허리에 짚고 뒤로 젖히는 등의 세가지 방법이 대표적이며, 이 외에 많은 응용법들이 있다.

어깨치기

어깨 부위의 민첩한 놀림과 근력 배양을 목표로 하는 방법으로 역시 모래 자루를 이용하여 연습한다. 온몸의 힘을 어깨로 돌려 부딪치는 훈련을 500근 이상까지 가능해야 실전에 응용할 수 있다.

둔고법

엉덩이를 단단히 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여자, 그것도 엉덩이가 아주 발달된 사람에게 적당한 운동이다. 연습 자세는 모래 자루를 앞에 놓고 엉덩이를 앞세운 뒷걸음으로 주춤주춤 들어오면서 순간적으로 엉덩이를 제 힘껏 들이밀며 목표물을 가격하는 것이다. 보통 전봇대를 들이받으면 전선줄이 흔들흔들할 정도까지는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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