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여름 뜰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 뜰이여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이 있다 굴곡이 있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
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잊어버리고
젖 먹는 아이와 같이 이지러진 얼굴로
여름 뜰이여
너의 광대한 손(手)을 본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억만의 소리가 비 오듯 내리는 여름 뜰을 보면서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 있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인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 있다
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 뜰이여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을 꺾기 위하여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고마한 동물이라도 있다면
여름 뜰이여
나는 너에게 희생할 것을 준비하고 있노라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 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
여름 뜰을 밟아서도 아니 될 것이다
묵연히 묵연히
그러나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다
(1956)
이 시는 독재가 자유를 억압하는 우리나라의 상황 속에서 독재세력에 속지 않고 독재세력을 타도하려는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의 눈만이 혼자서 우리나라의 유구함과 역사적 굴곡을 본다. 우리나라가 현재 무엇 때문에 부자유하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는지만 사념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언어가 시에로 통한다. 그래서 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잊어버리고 이지러진 얼굴로 황금빛이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억만의 소리를 비 오듯 내리는 여름 뜰을 본다.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서 사념에 잠겨 있다.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황금빛으로 위장한 독재세력을 꺾기 위한 조그마한 징조가 보이면 나는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할 것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독재세력이 만든 질서와 시와 통하는 무질서와의 사이에 어느 쪽도 택하지 않고 사는 나의 생활은 시체나 다름없다. 그러나 나는 자유가 억압된 우리나라를 흘겨보지 않고 자유를 억압하는 실체이면서 황금빛으로 속이는 세력을 똑바로 볼 것이다. 독재세력에 속아 그들이 만든 질서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묵연히 묵연히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독제세력을 꺽으려는 징조가 보일 때까지 속지 않고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이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목 <여름 뜰>은 상징적으로 쓰인 것이다. ‘여름 뜰’은 시간이 개입된 사물이다. 그러므로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할 수 없는 것인데 이러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여름 뜰’이 실제의 뜰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 뜰이여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이 있다 굴곡이 있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
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잊어버리고
젖 먹는 아이와 같이 이지러진 얼굴로
여름 뜰이여
너의 광대한 손(手)을 본다
여름 뜰이여.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너의 주름살과 굴곡이 있다. 모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 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잊어버리고 젖 먹는 아이와 같이 이지러진 얼굴로 너의 광대한 손(手)을 본다.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는 누가 누구에게 묻는 것일까? 이 시에서 화자도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생활을 피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화자가 ‘여름 뜰’에게 묻는 물음으로 보는 것이다.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에서 ‘주름살’은 얼굴에 있는 것으로 고생을 심하게 했거나 연륜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하여 ‘여름 뜰’의 원관념을 추정해 보면 우리나라의 당시 상황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오래되었기에 의인화 하면 ‘주름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시를 쓸 때는 이승만 독재로 인하여 자유와 언론이 제약된 고생이 심한 상황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둘 중에 전자에 가까운 의미로 본다. 이는 ‘굴곡이 있다’는 구절이 뒷받침한다. ‘굴곡’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잘되거나 잘 안되거나 하는 일이 번갈아 나타나는 변동’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여름 뜰’은 당시의 사회상황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는 ‘언어’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시’는 ‘자유’를 추구하는 말인데 현재 상황은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 억만의 소리가 비 오듯 내리’(2연 1행)는 억압되어 있는 상황이다. 화자는 ‘일 순간 전’에는 ‘대담성’ 있게 말을 했으나 ‘나는 바로 일순간 전’에 ‘여름 뜰’의 ‘주름살’과 ‘굴곡’을 보게 되면서 ‘대담성을 잊어버’린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게 되면서 ‘자유’를 획득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젖 먹는 아이와 같이’는 순수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지러진 얼굴’은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있을 때 짓는 얼굴이다. 화자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인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 있다 / 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일 것이다’(2연 4, 5행)라고 하여 ‘이지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원인을 밝히고 있다. ‘너의 광대한 손(手)’은 ‘뜰’의 빈터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으로 본다. ‘손’에는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3연4행)이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 억만의 소리가 비 오듯 내리’(2연 1, 2행)고 있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억만의 소리가 비 오듯 내리는 여름 뜰을 보면서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 있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인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 있다
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 뜰이여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을 꺾기 위하여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고마한 동물이라도 있다면
여름 뜰이여
나는 너에게 희생할 것을 준비하고 있노라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억만의 소리가 비 오듯 내리는 여름 뜰을 보면서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 있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인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마저 섞여 있다. 그 사념의 내용은 여름 뜰이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을 꺾기 위하여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고마한 동물이라도 있다면 나는 너에게 희생할 것을 준비하고 있노라.
화자는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이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억만의 소리‘를 ’비 오듯‘ ‘여름 뜰’에게 말하는 것으로 본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는 말은 ‘꺾’어야 하는 것이므로 ‘자유’를 억압하는 부정적인 말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여름 뜰’이 ‘부자유한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고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화자는 ‘여름 뜰을 보면서 /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 있’다. 이렇게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화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지러진 얼굴’로 있는 것이다. 이 ‘나의 표정에는 무엇인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 있’어서 짓는 표정이다. ‘섞여 있’는 것은 화자의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이다. 이 ‘사념’은 ‘여름 뜰’이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로 보인다. 이 ‘무엇’은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이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억만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억압하는 ‘황금빛을 꺾기 위’한 행동이 전혀 없는 ‘여름 뜰’이다. ‘황금빛’만 있는 ‘여름 들’이다.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고마한 동물’은 ‘여름 뜰’이 ‘황금빛’의 억압을 거부하고 ‘부자유한 생활’을 청산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존재이다. ‘여름 뜰’이 ‘자유스로운 생활’을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줄 때를 기다리면서 화자는 ‘여름 뜰’에게 ‘희생할 것을 준비하고 있’다.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 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
여름 뜰을 밟아서도 아니 될 것이다
묵연히 묵연히
그러나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다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다. 시체나 다름없다. 나는 여름 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 똑바로 볼 것이다. 여름 뜰을 밟지도 않을 것이다. 묵연히 앉아서 여름 뜰을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다.
‘질서’는 ‘황금빛’이 만든 ‘여름 뜰’의 세계이다. ‘무질서’는 ‘여름 뜰’의 ‘질서’와 반대되는 ‘시’의 세계이다.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곳이다. 화자는 지금 ‘대담성을 잊어버리고’ ‘여름 뜰’을 보기만 한다.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움직이지 않는 생활이다. ‘합리와 비합리 사이’의 세계이다.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와 ‘합리와 비합리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념’을 하고 있기에 ‘섧지가 않’는 것이다. 설움은 어느 한 곳에 속할 때에 다른 쪽과 비교하면서 생기는 감정이다. 화자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기에 설움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움직이지 않는 사념’을 하고 있기에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시체나 다름없’으나 화자는 ‘여름 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고 한다. ‘흘겨’본다는 것은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어 못마땅하게 노려보’는 것이다. ‘여름 뜰’은 ‘흘겨’볼 대상이 아니다. ‘못마땅하게 노려’볼 것은 ‘황금빛’이다. 그래서 ‘여름 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봐야할 대상인 ‘황금빛’을 똑바로 보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속지 않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 뜰을 밟아서도 아니 될 것이다’는 현재 ‘자유’가 억압 당하고 있는 ‘여름 뜰을 밟’는다는 것은 ‘황금빛’이 만든 ‘질서’에 합류한다는 것이다. 시대적으로 보면 이는 당시에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독재의 질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이기에 화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보고 있다. ‘시’를 택하는 ‘대담성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독재의 질서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사이’에 ‘묵연히 묵연히’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려면서 ‘여름 뜰’에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라고 결심하는 것이다. ‘속지 않’는다는 ‘여름 뜰’이 속이는 것은 아니다. 속이는 것은 ‘황금빛’이다. 이 ‘황금빛’을 수식하는 것은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이다. 이를 ‘꺽’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이 ‘황금빛’은 ‘익어’간다.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황금빛’은 가을의 빛이다. ‘여름 뜰’의 빛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황금빛’은 ‘여름 뜰’이 ‘황금’처럼 보이게 속이는 빛이 것이다. 독재세력이 ‘자유’가 없는 ‘여름 뜰’을 ‘황금’처럼 보이게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황금빛’에 속아서 ‘여름 뜰을 밟아서도 아니 될 것이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20210427화후0421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