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수첩에 담겨 있는 행복(박연미)
어느 날 집안 정리를 하다 우연히 중학교 2학년인 첫째 아이의 수첩을 발견하였다.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나눠준 것이었는데 학습을 계획하고 반성할 수 있는 스터디플랜 수첩이었다. 수첩을 몇 장 넘기다가 ‘존경하는 사람’란에 적혀 있는 부분을 읽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거기엔 당당하게 ‘아빠’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엄마’라고 기대했던 내 마음은 사실 조금 섭섭했다. 하지만 나 또한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는 터라 공감할 수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아빠를 존경한다는 것은 아내 입장에서도 큰 기쁨이다.
어느 덧 결혼 15년차다. 그동안 아이들에게나 나에게나 남편은 정말 자상한 아버지였고 따뜻한 남편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아이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배려한다. 절대 강압적이지 않고 가급적 인격적인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이야기, 친구들과의 이야기, 각종 고민거리들도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성교육도 아빠가 잘 해결해 준다. 서로 대화하며 성에 대한 궁금증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 아들의 얼굴은 다소 붉어지지만, 속으론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이것을 보고 있는 나도 행복하고 무척이나 든든하다.
초등학교 6학년 인성이, 중학교 2학년인 지성이는 아빠가 멀리 강의하러 가는 날이면 졸려도 자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아빠를 기다린다. 아빠가 뭐 사올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아이들은 끝까지 참지 못하고 중간에 아빠에게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낸다.
‘아빠, 어디야? 어디까지 왔어? 뭐 먹을 것 샀어?’
아빠는 귀찮겠지만 그래도 부드럽게 반응해준다. 드디어 자동차가 주차하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달려 나간다. 들어올 때는 함박웃음과 함께 먹을거리가 가슴에 한 가득이다. 무사히 도착했음에 감사하며 야식과 함께 많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리고 가끔 세차를 하러 갈 때도 아이들은 찰떡처럼 달라 붙는다. 남편은 큰 아이가 키가 커서 세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며 행복해한다. 아빠가 어딜 가든 시간이 허락된다면 함께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다. 친구 같은 아빠, 친구 같은 남편, 오늘도 행복한 만남이 이어진다.
첫댓글 이미 제작이 들어간 다음에 온 글이라 책자에 실리지는 못해서 정말 아쉬운 글입니다. 진작에 이런 글이 나왔어야 하는 건데, 한 편의 글이 나와 가족과 이웃에게 훈훈함을 준다면 좋은 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