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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반야바라밀경_62. 아유월치상품(阿惟越致相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꿈속에서도 나한ㆍ벽지불지를 가까이하지 아니하며,
또한 삼계를 가까이하지 아니하며,
또한 삼계를 무너뜨리지 아니하며,
또한 모든 법 보는 뜻을 일으키지 아니한다.
꿈과 같고 메아리 같고, 환(幻)과 같으며, 아지랑이와 같기 때문이다. 모든 법이 화(化)와 같음을 보므로 증득하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 보살마하살이 아유월치의 상(相)이다.
다시 수보리여, 보살이 꿈속에서 부처님을 보는데 약간 백천의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네 무리의 대중에 둘러싸여 법을 설하신다.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들으면 곧 그 속의 뜻을 안다. 하는 것이 항상 법을 여의지 아니하며, 설한 것이 법칙을 잃지 아니한다.
수보리여, 이것이 아유월치의 상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여, 보살이 꿈속에 부처님을 보는데 여래께서 허공에 뜨니, 몸에 32상과 80종호가 있으며, 신통으로 변화하고 비구승을 위하여 설법하고 변화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의 불토에 나아가서 보시를 하고 불사를 했다.
수보리여, 이것이 아유월치의 상이다.
다시 수보리여, 보살이 꿈속에서 만약 군현에 병사가 일어나 죽이며,
만약 화재를 보며,
만약 호랑이ㆍ이리ㆍ사자ㆍ독충과 모든 두려워하는 일과 근심하고 슬퍼하고 고뇌함을 보며,
만약 기아(飢餓)를 보며,
만약 부모ㆍ형제ㆍ친한 벗ㆍ선지식을 잃음을 본다면,
꿈속에서 보기를 마치고 두려워하지 않고 떨지도 않는다.
꿈을 깨고 나서 문득 생각하여 말하기를,
‘삼계에 있는 것이 모두 꿈과 같은 것이다.
나는 마땅히 정진을 하여 아유삼불을 이룰 것이며, 마땅히 삼계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할 것이다’라고 한다.
수보리여, 이것이 아유월치의 상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모든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보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룸을 알겠느냐?
수보리여, 보살이 만약 지옥과 아귀와 금수(禽獸)의 3악취(惡趣) 중에서 모든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마땅히 발원하기를,
‘나는 마땅히 아유삼불을 이룰 때에 나의 국토 중에는 3악취가 없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
왜냐하면 꿈속에서의 것과 일체 모든 법이 한 법도 둘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유월치의 상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여, 보살이 꿈속에 지옥에서 불이 타고 끓으며, 굽는 것을 보고 깨어나서 생각하며 말하기를,
‘내가 꿈에서 형상과 그 재변(災變)을 보았다’라고 한다.
만약 꿈에서 스스로 아유월치상을 보면 문득 이렇게 맹세하여 말한다.
‘내가 본 것 같은 지옥 중의 불은 곧 마땅히 멸하게 할 것이다.’
만약 불이 소멸되고 끓는 것이 차갑게 된다면 이 보살은 수기를 받았으므로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아유월치의 상이다.
만약 불이 타서 한 집에서 한 집에 이르고 한 마을[里]에서 한 마을에 이르고,.
혹은 한 집은 태우고 한 집은 태우지 않기도 하며,
혹은 한 마을은 태우고, 한 마을은 태우지 않기도 한다면,
그 중에서 불에 타게 된 것은 불에 탄 집의 사람들에 의해 법이 끊어진 결과로 모두가 법을 끊은 나머지 재앙임을 알아야 한다.
이로부터 법을 끊은 나머지 재앙이 다 끝나면 죄가 멸하고 복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아유월치의 상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마땅히 아유월치의 상과 행하는 모양을 설하겠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귀신에게 잡혔다면, 이 보살이 문득 이렇게 생각한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살펴서 수기를 내게 준 것은 지은 바 원과 행이 청정하며 더러움이 없었기 때문이니, 응당 나한ㆍ벽지불지에 떨어지지 않아야 하며,
또한 나한ㆍ벽지불의 생각도 없어야 하니, 마땅히 아유삼불을 이룰 것이며, 또한 이룬 것도 아니며 이루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가령 모든 시방의 현재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깨닫지 아니한 것이 없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응당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을 아신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귀신은 마땅히 물러갈 것이다.
만약 이 귀신이 가지 않으면 이 보살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그 기별(記莂)을 받지 못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만약 이 보살이 경을 설해 마치자 귀신이 곧 가게 되면 이 보살은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의 기별을 받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이러한 상과 행을 구족하면 이것이 아유월치의 상이다.
다시 수보리여,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는데 구화구사라를 여의며, 37품과 3해탈문을 행하지 못하며, 보살위(菩薩位)에 이르지 못하며, 보살의 삼매처를 얻지 못하며, 또한 과거에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기별을 받지 못하면,
이 보살이 이 남자와 여인에게 가서 다시 말을 하되,
‘나는 기별을 받아서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한 자이다’라고 하면,
이 귀신은 마땅히 갈 것이다.
귀신이 가지 않으면 이 보살은 경법을 설하는 것을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이때에 마왕 파순이 그곳에 가서 생각하며 말하되,
‘나는 마땅히 귀신을 가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파순의 위신(威神)이 이 귀신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때에 저 파순이 문득 귀신을 물러가게 한다면 이 보살은 파순이 귀신을 물러가게 한 줄은 알지 못하고, 귀신이 자신 때문에 물러갔다고 기뻐하면서 말하고, 곧 스스로 아만만 높아져 다른 사람을 경멸한다.
타인에게,
‘나는 이미 과거의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기별을 받은 것이다. 그 나머지 사람은 모두 기별을 받지 못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공고(貢高)함으로써 다른 이를 업신여기는 까닭에 살운연(薩云然)을 여의는 것이니,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의 지혜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 공고함 때문에 구화구사라를 잃은 것이다.
문득 2지(地)의 나한ㆍ벽지불지에 떨어져서 지극한 정성으로 서원을 세웠으므로 곧 마군의 일을 일으킨 것이다.
멀리 진정한 선지식을 여의고 마군의 그물망에 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6바라밀을 행하지 아니했으며, 구화구사라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스스로 마군의 일을 지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지 못하고,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했으며, 보살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마군의 일 때문이니, 파순이 다시 보살 처소에 와서 다른 의복을 입고 보살에게 말하되,
‘선남자야, 여래께서 이미 그대에게 수기를 주셨으니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될 것이다.
그대의 부모의 이름은 아무개이며, 그대의 형과 동생과 누이와 여동생의 이름은 아무개이며, 그대의 친구와 선지식과 친족의 이름은 아무개이다.
그대의 7세(世) 부모의 명자는 아무개이며, 그대는 어떤 나라ㆍ어떤 현(縣)ㆍ어떤 촌락에서 태어났다.
보살의 행동이 화순(和順)한 것을 보니, 그대는 전생에 또한 유연(柔軟)하였다’고 한다.
만약 재치와 명랑함이 있음을 보거나,
만약 사문의 12법(法)을 행함을 보고,
만약 말을 절도 있게 하는 것을 보면,
파순이 모양을 따라서 보살에게 말하되,
‘그대는 전생에 모두 이런 행이 있었다. 그대는 전생에 또한 이 12법을 행하였다’고 한다.
저 보살은 마군이 선세(先世)의 일을 말함을 듣고, 다시 스스로 이 행을 지어서 다시 공고(貢高)함이 배로 높아져 동학(同學)을 업신여긴다.
마군이 거듭 말을 하되,
‘과거에 여래께서 이미 그대에게 수기를 주셨다. 그대가 지은 공덕은 다시 전환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순은 혹은 비구의 형상을 하고, 혹은 부모, 혹은 가라월(迦羅越[:거사)의 형상을 하고 와서 말을 하되,
‘그대는 반드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모든 아유월치의 상과 행이 구족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유월치의 상과 행을 설하였으나, 저 보살이 이러한 상을 얻은 것이 아니라면 이 보살은 마군의 부리는 바가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명예를 들으면 스스로 공고해져서 동학(同學)의 형상을 업신여기며, 타인을 비웃으면서 다시 기억에 두지 않을 것이니, 공고함 때문이다.
이것은 마군의 일이다.
다시 수보리여, 보살이 마군의 인연에서 마땅히 마군의 일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군의 일이 여여함을 알지 못하고, 5음이 여여함을 알지 못하여, 저 보살은 마군의 일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전에 비구가 그 기별을 설함을 듣고, 이제 다시 기별하는 명자(名字)를 듣고는 속으로 환희하여,
스스로 문득 생각하여 말하되,
‘이 상을 증득하였으므로 이제 나는 결정코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것이다’고 한다.
그리고는 더욱 공고해져 타인을 업신여겨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 보살은 아유월치의 상이 없는 것이다.
곧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멀리 여의어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지혜를 잃은 것이며, 참선지식을 멀리 여의고 악한 선지식을 얻은 것이다.
이 보살은 마침내 2도지(道地)를 성취하지 못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먼 후에 다시 모든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면 지극히 오래도록 받을 것이다.
이에 마땅히 다시 참선지식을 얻으며 반야바라밀을 듣게 된다면 이와 같이 본래 명자를 받는 데 집착한 것을 후회한다. 이렇게 후회함으로써 이에 나한ㆍ벽지불을 얻은 것이다.
비유하건대, 비구가 네 가지 금하는 일을 범하고 현세에 4도(道)를 이루지 못하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저 보살은 그 죄가 네 가지 금한 일보다 무겁다. 명자를 받고 공고함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이 죄의 일은 그만두고, 이런 공고함을 범하고 명자를 받고, 거짓 호칭을 받은 그 죄는 5역죄(逆罪)보다도 허물이 크다.
수보리여, 만약 명자가 있어 생각에 집착함을 받는 자는 위급할 때 마땅히 마군의 보호를 받아 조그마한 인연을 깨닫는 것이다.
다시 수보리여, 파순이 다시 보살의 처소에 가서 멀리 여읜 것을 찬탄하고 그 공덕을 말하되,
‘그대가 행하는 바는 부처님이 칭찬한 바이니 바르고 마땅함이 이와 같다’라고 한다.
수보리여, 내가 설한 것은 보살이 멀리 여읜 그러한 법이 아니다. 만약 산 속 나무 아래 사람이 없는 곳에서 고요하게 있다고 해서 반드시 멀리 여읜 법은 아닌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이 다르게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성문ㆍ벽지불이라는 생각에서 고요하게 멀리 여의는 것이며, 산 속 나무 아래 사람이 없는 곳이라는 생각에서 고요하게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하는 것이 크게 멀리 여의는 법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마땅히 밤낮으로 행해야 한다. 이것이 보살이 고요하게 멀리 여의는 것이다.
만약 인간 사이에 있으면서 나의 고요한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비록 성(城) 곁에 있어도 산택(山澤)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만약 마군의 가르침을 받아서 곧 멀리 여의기를 그쳐 버린다면, 나한ㆍ벽지불지에 떨어져서 반야바라밀에 응하지 못하며, 살운연의 일을 구족하지 못한다.
이 생각을 행하는 자는 청정한 법이 아니며 나한ㆍ벽지불의 뜻이 섞인다.
다시 반대의 형상으로 인간에서 청정한 행을 하는 자를 비웃고 업신여긴다.
인간에서 행하는 자는 또한 나한ㆍ벽지불의 뜻에 섞이지는 아니하나 반대로 다시 업신여긴다.
또한 다시 선유무삼매(禪惟無三昧)를 얻은 자를 업신여기며, 신통을 얻은 자를 업신여긴다.
보살이 구화구사라가 없다면,
한없는 백 유순 밖에 있어 억천만 년 동안 기는 짐승과 나는 새가 이르지 못하며,
귀신과 도적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서 비록 오래 있더라도 보살의 멀리 여의는 법을 알지 못하면 이익될 것이 없다.
파순의 가르침을 받아서 멀리 여의는 것을 행하는 자는 나의 멀리 여의는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다시 멀리 여의는 법을 구족하지 못한다.
또한 다시 멀리 여의는 법 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멀리 여읜 법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이 멀리 여의는 법에서 멀어지면,
그때에 마왕 파순이 허공에서 찬탄하여 말하되,
‘착하고 착하도다. 선남자야, 이것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멀리 여의는 법이다.
네가 멀리 여의는 법을 행하였으므로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면 보살은 저 망령되이 멀리 여의는 것을 찬탄하는 말을 듣고서 곧 환희하여 잘난 체하고 참으로 멀리 여읜 자를 업신여긴다.
반대로 비방하는 말을 하니 습관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깨끗하지 못한 것이며, 혼란한 것이며, 뜻이 어지러운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것을 반대로 청정이라 말한다. 응당 공경해야 할 자는 더욱 공경하지 아니하고 공경하게 대응해야 할 자를 다시 업신여긴다.
무슨 뜻인가?
나는 모든 천(天)과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보고 권하고 도와주고 공경하기 때문이다.
내가 행하는 것은 참으로 행하는 것이다.
네가 성벽 곁에 살고 있을 때에 누군가 와서 너를 공경하고 찬탄할 것이다.
이 사람은 성 곁에 살고 있으며 보살도를 구하는 선남자ㆍ선여인에게 가서 기세 높게 말하되,
‘모든 천(天)이 와서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득도할 일이 가깝다고 하였다’ 한다.
수보리여, 기세 높은 보살 무리는 전타라(栴陀羅)[전타라는 진(晋)나라 말로 살인을 주로 하는 옥졸이라고 한다]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무리의 사람이 보살 중에 있으면 아주 큰 혼란한 병이 된다.
이것은 법상(法像)을 의지한 보살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천상과 사람 중에 큰 도적이다.
또한 다시 스님의 상(像)과 법 중에도 큰 도적이 되는 것이며,
다시 선남자ㆍ선여인 중에 큰 도적이 되는 것이다.
이런 무리의 사람은 마땅히 함께 종사할 수 없으며, 또한 마땅히 앉고, 일어서고, 말을 하며 음식을 같이 먹고, 상견(相見)하지 말아야 한다.
이 무리의 사람은 기세가 높고 완강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보살이 살운연을 버리려고 하지 않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버리려고 하지 않고, 힘 있게 아유삼불을 구하고자 하며 일체 중생을 구원하려 한다면 마땅히 이런 무리의 사람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마땅히 같이 종사하지 말고, 스스로 수행해야 한다.
같이 왕래하지도 말고 항상 마땅히 싫어하는 뜻이 있어야 한다.
세간에서 마땅히 삼계의 낙을 받지 않아야 한다.
항상 마땅히 자애(慈愛)한 마음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해야 한다. 마땅히 전도된 생각이 있는 이런 무리에게 대비의 뜻을 일으켜야 한다.
마땅히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되,
‘나로 하여금 세세생생에 이런 비법(非法)의 일이 없게 하소서’라고 해야 한다. 만약 이 뜻이 있으면 속히 멸해야 한다.
수보리여, 이 무리의 보살은 스스로 신통을 일으킴을 알아야 한다.
다시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이 지성으로 일에 힘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참선지식과 같이 종사해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이 참선지식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세존이 이 보살의 참선지식이며,
모든 보살마하살이 또한 이 보살의 참선지식이다.
모든 제자와 대중이 또한 참선지식이다.
이것이 보살의 참선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참선지식은 항상 보살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해설하며 그 일을 분별한다.
6바라밀과 37품ㆍ부처님의 18법ㆍ진제 법성과 같은 것이 보살의 참선지식이다.
6바라밀은 세다라(世多羅)이고,
6바라밀은 도(道)이며,
6바라밀은 대명(大明)이고,
6바라밀은 큰 횃불이다.
6바라밀은 큰 지혜의 광명이고,
6바라밀은 보호하는 것이며,
6바라밀은 돌아가는 것이고,
6바라밀은 아버지이며, 어머니이다.
6바라밀은 37품이며,
6바라밀은 살운연이다.
6바라밀은 사람의 모든 습관을 제거한다.
무슨 뜻인가?
수보리여, 37품은 과거ㆍ미래ㆍ현재 시방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며,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는 모두 37품 중에서 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수보리여, 보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고자 하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여 중생을 교화해야 한다.
마땅히 4사(事)로써 이익을 주어 중생을 섭수해야 하니,
첫째는 보시[施]요, 둘째는 애어[愛]요, 셋째는 이익[利]이요, 넷째는 동사[同]의 뜻이다.
이 4은(恩)의 일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나는 이 뜻을 관하므로 이 일을 설하는 것이다. 37품, 즉 이것은 보살마하살의 부모이며, 곧 집[舍]이다. 이것은 보호이며, 이것은 등불의 밝음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타인의 가르침을 따라 머물면 안 된다.
일체 중생의 여우처럼 의심하는 것을 끊고자 하며,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여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니,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보살의 행을 널리 설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보살은 응하는 것을 마땅히 배워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반야바라밀의 상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은 허공과 같은 상이다. 또한 상도 아니며, 또한 상을 짓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진정으로 인연이 있어 반야바라밀의 상을 알 수 있습니까? 이 상(相)으로 모든 법을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의 상을 알고자 하면 모든 법의 상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공적(空寂)하기 때문이며, 모든 법은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의 상은 곧 모든 법의 상이니, 공적하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법이 고요하고 모든 법이 공하다면 어떻게 모든 법에 집착도 있고 끊음도 있음을 알겠습니까?”
“공이 고요한 것은 또한 끊는 것도 아니며, 또한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공적(空寂)에는 법이 없으며, 공적에는 또한 아유삼불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어떻게 마땅히 이 뜻을 알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긴 밤 내내 나에 집착해서 행한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중생은 긴 밤 내내 나에 집착해서 행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떠하냐? 나[吾]라는 아(我)가 공적함을 알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중생이 나라는 아(我) 때문에 오래도록 생사에 있는 것을 아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중생이 나라는 아(我)에 집착하므로 오래도록 세간에서 다시 고통을 받는 것이며, 곧 집착이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나도 없으며 아도 없으며, 받을 것도 없다.
또한 오래 세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오래도록 부지런히 고를 받는 것도 아니며,
또한 집착도 아니며 문득 끊어지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5음에서 행하지 않으며, 또한 37품에서 행하지 않으며, 또한 4무애혜에서 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행할 법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법을 마땅히 행할 것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이 움직이지 못합니다. 복종시킬 자가 없으며, 아라한과 벽지불도 미칠 수 없습니다.
무슨 뜻인가?
머물 곳에 이르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살운연을 행하는 보살이 머무는 곳은 능히 이를 자가 없는 것이며, 보살이 이와 같이 하면 속히 살운연에 접근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염부제 중생이 모두 인도(人道)를 얻었으며 다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하였는데,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수명이 다하도록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이 공양한 복을 가지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하여 보시했다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의 그 복은 참으로 많은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고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가지고 사람을 가르쳐서 구족하게 그 중의 지혜를 해설해 주어 뜻이 살운연의 생각을 멀리 여의지 않고 응하게 함만 못하다.
나아가 삼천대천국토의 중생이 모두 사람이 되었는데,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모두 가르쳐서 10선지(善地)를 행하게 하고,
4선과 4등 및 4공정을 세우며,
또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ㆍ아뇩다라삼야삼보를 세우며,
이 공덕을 가지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해서 베푼다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의 공덕은 참으로 많으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고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가지고 타인에게 선시(宣示)하여 구족하게 그 중의 지혜를 해설해 주어 뜻이 살운연의 생각을 멀리 여의지 않게 하여 현성(賢聖)의 모습으로 출생하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한다.
왜냐하면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제외하고 오직 응당 이 보살마하살만이 있기 때문이며,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데 대자비를 행하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모든 중생이 사지(死地)에 나아감을 보면 곧 대비를 일으켜야 한다.
이를 행함으로써 곧 크게 보호함을 얻지만 곧 크게 기뻐하며 4등(等)을 구족했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의 큰 지혜의 광명이 된다. 큰 지혜의 밝음이라는 것은 6바라밀의 이 광명이다.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비록 도는 얻지 못했으나, 일체 중생을 위하여 구원했으므로 아뇩다라삼야삼보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므로 의복ㆍ음식ㆍ침대ㆍ의약과 일체의 진보(珍寶)를 공양받는다. 반드시 중생이 믿고 보시하는 복에 보답하면 속히 살운연에 가까워질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어리석고 망령되게 사람의 보시를 받지 않고자 하며,
중생이 가는 지름길을 제시해 주고자 하며,
소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며,
감옥에 있는 사람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며,
일체 중생의 눈이 되고자 하면,
몸으로 행하는 것은 마땅히 반야바라밀에 응해야 하며,
어떤 말을 해도 또한 마땅히 반야바라밀의 뜻에 응해야 한다.
반야바라밀에 응하게 되면, 그 밖의 다른 뜻은 또한 그 편의를 얻을 수 없다.
마땅히 방편을 지어서 주야로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며 단절이 없게 해야 한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선비가 마니보(摩尼寶)를 얻었는데, 그것을 얻은 후 뛸 듯이 기뻐하다가 다시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보배를 잃고는 크게 슬퍼하여 이 마니보 생각을 앉으나 서나 잊지 못하고 잠깐도 여의지 못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되,
‘내가 어떻게 이 큰 보배를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살운연의 생각을 여의는 것을 또한 저 사람이 큰 진보를 잃은 것과 같이 하여 앉으나 서나 잠깐 사이에도 잊지 않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의 모든 생각이 정지하는 곳이 없는 것입니까?
모두 공하고 모두 고요한 것인데 어떻게 보살이 살운연이 생각을 여의지 않는 것입니까?
또한 여의는 것을 좇거나 생각을 좇지 않는 가운데 보살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살운연을 좇지 않는 가운데 보살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모든 법은 스스로 멀리 여읜다는 것을 안다면, 법성이 항상 머무르며, 도법과 진제가 상주한다.
부처님께서 지은 것도 아니며 또한 나한ㆍ벽지불이 지은 것도 아니다.
보살이 이것을 이미 알았다면 마침내 다시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공적하기 때문이다.
또한 더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감해지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반야바라밀이 스스로 공적하다면,
어떻게 보살이 반야바라밀과 같이 아유삼불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또한 반야바라밀과 함께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증익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감해지는 것도 아니다.
진제도 또한 더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감해지는 것도 아니다.
법성은 또한 더하는 것도 아니며, 감해지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또한 하나도 아니며, 또한 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 이를 듣고 떨지도 않고 어려워하지도 않으며,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은 이미 아유월치에 머문 것이며, 반야바라밀을 행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이 공한 것임을 생각하며, 반야바라밀이 무소유임을 생각하는 것이며,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반야바라밀을 여의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을 행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공은 공을 행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5음이 반야바라밀을 행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6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을 행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나아가 4무애혜에 이르기까지 반야바라밀을 행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5음의 공이 여여한 것과 여법한 법의 법성과 4무애혜가 공하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법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이 법이 행하지 않는 것이라면 보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참으로 법에 반야바라밀을 행할 것이 있다고 보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반야바라밀이 보살이 행할 것이 있다고 보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네가 보지 못하는 법을 얻을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얻을 수 없는 법에 생멸이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의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과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수기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은 것이다.
만약 보살이 여래의 4무소외와 4무애혜를 쓰는 것을 배우고 계승하며 이 법을 익혀 행한다면 마침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지혜와 살운연의 지혜와 마하연(摩訶衍)의 지혜를 여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무소종생법인을 얻으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마침내 조금도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생하는 것이 없는 모든 법에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수기를 받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생하는 법 중에서 모든 보살이 수기를 받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또한 생함이 없는 법에서 보살이 수기를 받는 것도 아니며, 또한 생할 것이 있는 법에서 보살이 수기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모든 보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수기를 받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법에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수기를 받을 것이 있음을 보았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법에 수기를 줄 것이 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또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또한 마땅히 얻을 것이라는 것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이미 얻었다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도 모든 법에서는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보살은 또한 아유삼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내가 마땅히 아유삼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모든 법에는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도 또한 분별할 것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