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약속
겨울을 재촉하듯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린다. 옷자락을 잡고 총총 걸음에 집으로 향한다. 조각보만큼 걸려 있던 햇살이 그립다. 겨울은 갖가지 시련을 안겨 준 고통의 시간이다.
뇌 시술을 받기 위해 그가 입원 한 지 이틀째다. 병실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상상으로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침상을 오르락내리락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한다. 며칠 전 갑작스럽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두통이 있단다. 망치로 내리치듯 고통이었다. 서둘러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의사의 진단은 별 이상이 없단다. 그러나 정작 그는 괴로움으로 시름이 크다. 환자가 괴로워 하고 있어 원하는바 정밀 진단을 요청했다. 자기공명촬영이 이어지고 작은 뇌동맥류가 발견되었다.
같은 입원실을 쓰는 환자들이 ‘꽈리가 일찍 발견되어 다행이라는 말부터 뇌출혈로 이어져 목숨을 잃은 사례까지’ 여러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다잡지 못하게 하였다. 그를 안심시키고 시술을 기다린다. 어쩌면 영영 보지 못할뻔 하였다. 뇌혈관이 부풀어 올라 꽈리 모양을 이루었다. 다행히도 오 미리미터 안팎이어서 코일 색전술이 결정되었다. 늘어진 혈관에 백금을 채운다. 몸 바깥에 치장할 보석도 모자라는데 보이지 않는 곳까지 금이라니. 클립 결찰술보다 안심인가? 허벅지 대동맥으로 기기를 넣어 진행하는 시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경과가 좋아 일주일 입원 후 퇴원을 하여 일상 생활에 적응을 하였다.
식단은 염분이 적게 들어간 채소와 과일이 채운다. 혈압약을 포함하여 약이 몇 개인지 모를 정도로 한 움큼이다.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적절한 관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곳곳에 열린 창문을 닫는다. 옷차림이 달라졌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처음 본 번호로 전화가 왔다. 사는 근처 약국인데 ‘같이 병원에 가야한다고 그리고 꼭 지금 진료를 받아야 한단다.’ 약간의 의식이 떨어지고 한쪽 팔 다리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하단다. 일전에 119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원거리 센터에서 출동하고 교통 혼잡으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비상등을 켜고 직접 승용차를 몰아 진료를 받아 온 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병원에 도착하여 간단한 문진을 하고 난 의사는 같은 말만 계속한다. 젊은데 아직 젊은데, “선생님! 어떻게 조치를 해 주십시오.” 잠깐이지만 며칠이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
혈액 용해제가 투여되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제 기다림의 연속이다. 면회도 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중환자 대기실 소파에 웅크려 밤을 맞는다. 새벽 시간 중환자실 창 너머를 관찰한다. 아! 움직이는구나. 천정을 보고 누워 있던 자세가 벽을 보고 있다. 이젠 됐다. 고맙습니다. 긴긴 혼자만의 시간이 지나 몸을 뒤척이는 그를 보고 기도를 한다.
담당 의사는 최악의 경우 요양원을 가야 할 지도 모른단다. 가만히 지켜 본다. 스스로 인지하고 근육 활동 하는 날을 기대한다.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영영 얼굴을 못 볼뻔 하였다. 그대여 짧지 않은 인연으로 삼십 년을 인생의 반려자로 살아 오면서 챙기지 못한 행복은 이제부터 누려보자. 시간을 함께 하자. 차츰 회복되어가는 그대의 모습에 응원하고 사랑을 보태고 싶습니다. 진아! 전원 주택의 그네를 타면서 맑은 하늘과, 푸르른 잔디밭에 같이 딩굴어 보자.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