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13권
37. 문법품(聞法品)
그때에 보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문수사리(文殊師利)였다.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위의(威儀)를 거두고는 앞에 나아가 부처님 계신 데 이르자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법을 듣고서[聞法]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성취한다고 이르나이까?
들음이 만약 공(空)과 같다면 공하여서 듣는 바가 없고, 또한 선악(善惡)의 여러 가지 법에 상모(相貌)가 없으면 법은 형상이 없나이다.
어떤 것을 세존이시여, 본말의 공혜[本末空慧]를 받아 지니고 외운다고 말하나이까?”
그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계시면서 답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저 ‘법을 듣는다’ 함은 언교(言敎)가 있어야 곧 법을 듣게 되는 것입니까, 언교가 없어도 법을 들을 수 있나이까?”
그때에 세존께서 잠자코 답하지 않으셨다.
문수사리가 세 번째 부처님께 아뢰었다.
“법이 나고 멸함이 있나이까, 법이 나고 멸함이 없나이까? 온갖 여러 부처님께서 굴리시는 법륜은 굴림이 있나이까, 굴림이 없나이까?”
그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모두 법륜을 굴리지만, 또한 굴림이 있기도 하고 굴림이 없기도 하느니라.
그대의 지금 묻는 바는 굴림 있음을 묻는 것인가, 굴림 없음을 묻는 것인가?”
그때에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물은 바는 또한 굴림 있음을 묻기고 하고 굴림 없음을 묻기도 한 것입니다.”
“족성자여, 여러 부처님의 바른 법은 또한 굴림 있음도 아니요 굴림 없음도 아니니라.”
“어떤 것이 또한 굴림 있음도 아니요 굴림 없음도 아니옵나이까?”
“온갖 법은 공(空)과 같다. 그런 까닭에 굴림 있음도 없고, 그런 까닭에 굴림 없음도 없느니라.”
“오늘 여래는 굴림 있음이 되나이까, 굴림 없음이 되나이까?
이 여러 보살의 대중은 법을 듣는 것입니까, 듣지 않는 것입니까?”
“족성자여, 일체 모든 법은 청정하고, 여기 모인 보살도 또한 다시 청정하다.
이런 까닭으로 또한 굴림이 있지 않기도 하고 굴림이 없지 않기도 하느니라.”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굴림이 없다고 하옵나이까?”
“중생은 굴림이 없으며, 본말의 공혜[本末空慧]는 굴림이 있고, 온갖 모인 대중의 나의 몸과 너는 모두 굴림이 없다고 이르며, 본말의 공혜는 곧 굴림이 있다고 이르느니라.”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어떤 것을 굴림이 없다고 하나이까?”
“끊음이 있으면 굴림이 없고, 끊음이 없으면 굴림이 있다.
나고 멸함은 굴림이 없고, 나고 멸함이 없음은 굴림이 있다고 이르느니라.”
“어떤 것이 굴림 있음이며, 어떤 것이 굴림 없음이옵나이까?”
“변제(邊際)의 속박과 집착이 있으면 굴림 없다고 이르고,
변제의 속박과 집착이 없으면 굴림 있다고 이르느니라.”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굴림이 없다고 하시나이까?”
“온갖 세간에서 불타오르는 법을 보면 굴림 없다고 이르고,
온갖 세간에서 불타오르는 법을 보지 않으면 굴림 있다고 이르느니라.”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굴림이 없다고 하시나이까?”
“깨끗하고 한량없는 복으로 중생을 복되게 하는 것을 굴림 없다고 이르고,
깨끗하고 한량없는 복을 보지 않고 중생을 복되게 하는 것을 굴림 있는 것이라 이르느니라.”
“어떤 것을 굴림이 있다고 하며, 굴림이 없다고 하시나이까?”
“한량없는 중생의 근본을 깨끗이 하여 일체지(一切智)를 이루는 것을 굴림 없다고 이르고,
온갖 한량없는 중생을 깨끗이 함을 보지 않는 것을 굴림 있다고 이르느니라.”
“어찌하여서 굴림 있다, 굴림 없다 하시나이까?”
“또한 굴림 있지 않기도 하고 굴림 없지 않기도 하니, 그런 까닭에 굴림 있다, 굴림 없다고 이르느니라.”
이렇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굴림 있음과 굴림 없음을 설하실 때에
8천 비구와 3천 비구니가 본말의 공혜(空慧)를 얻어서 마음이 불퇴전하는 지위를 이루었고,
다시 수없는 중생이 이 일찍이 없던 법문을 듣고서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의 뜻을 발하였는데,
‘장차 미래에 다 부처를 이루어서 명호가 똑같으며, 용맹하게 정진함이 나와 다름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