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 제6권
4.5. 선위(善位)의 심소의 양상(2)
[근(勤)심소]
‘근(勤)심소’49)는 정진을 말한다.
선품을 닦고 악품을 끊는 일에 대해서 용맹스럽고 굳세게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게으름을 다스려서 착한 일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용맹스럽다는 것은 정진하는 것을 나타내어 모든 잡염법을 가려낸다.
굳세다는 것은 지극히 순수한 것을 나타내어 청정 무구성을 가려낸다.
곧 정진은 오직 착한 성품에만 포함됨을 나타낸다.
이것의 양상의 차이는 대략 다섯 종류가 있으니 곧 맹렬함을 일으키는 것[被甲]50)ㆍ가행51)ㆍ낮추지 않음[無下]52)ㆍ물러나지 않음[無退]53)ㆍ만족하지 않음[無足]54)이다.
경전에서 말씀한, 세력이 있음[有勢]ㆍ정진함[有勤]ㆍ용감함[有勇]ㆍ견고하고 용맹함[堅猛]ㆍ선의 멍에55)를 버리지 않음[不捨善軛]이니, 순차적으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다섯의 차이를 말하면 초발심ㆍ자분(自分)ㆍ승진(勝進)ㆍ자분행(自分行) 중의 세 가지 품류로서 다르기 때문이다.56)
혹은 초발심ㆍ오랜 기간[長時:삼대겁]ㆍ무간(無間:일체시)ㆍ은중함[慇重]ㆍ무여(無餘:6바라밀)의 수행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혹은 자량도 등의 다섯 가지 도[五道]57)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2승의 구경도에서는 대보리를 기뻐하기 때문이고,
부처님의 구경도에서는 남을 이롭고 즐겁게 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58)
혹은 두 가지59) 가행ㆍ무간ㆍ해탈ㆍ승진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안(安)심소]
‘안(安)심소’60)는 경안(輕安)을 말한다.
추중(麤重)을 멀리 여의고 몸과 마음을 고르고 화창하게 해서 자재함[堪任]을 체성으로 삼는다.
혼침을 다스려서 신체[所依身]를 전환함을 업으로 한다.
이것이 선정을 장애하는 법을 조복시키고 없애서, 의지처(신체)로 하여금 바뀌어 평안하고 적절하게 하기 때문이다.
[불방일심소]
‘불방일심소’61)는 근(勤)과 세 가지 선근으로 하여금, 단멸하고 닦아야 할 것에 대해서 방지하고 닦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방일을 다스리고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의 착한 일을 원만히 이루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곧 네 가지 법62)이 단멸하고 닦아야 할 것에 대해서 능히 방지하고 닦는 것을 불방일이라고 이름하고, 별도로 자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체상이 없기 때문이고, 악한 일을 방지하고 착한 일을 닦는 중에서 네 가지 능력에서 떠나서는 별도의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신(信)ㆍ참(慚) 심소 등도 역시 이러한 능력이 있지만, 그 네 가지에 비해서 세력이 미약하고, 선근에 두루 책려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불방일)의 의지처가 아니다.
[문] 어째서 방지하고 닦는 것이 이것의 체상과 작용이 아닌가?63)
[문] 방지하고 닦는 것이라고 말하면, 정진 및 세 가지 선근과 무엇이 다른가?64)
[답] 그것은 모름지기 이것(불방일)을 기다려서 비로소 작용이 있게 된다고 말한다.65)
이것(불방일)도 다시 다른 것을 기다려야 하고 그러면 문득 끝없이 소급하는 과실이 있게 된다.66)
근(勤)심소는 오직 착한 심왕을 두루 책려하고 근(根)67)은 다만 선법의 의지처이다.
어째서 그것68)이 방지하고 닦는 작용이 있다고 말하는가?69)
[문] 그대가 주장하는 방지하고 닦는 작용의 그 체상은 어떠한 것인가?70)
만약 널리 (모든 선심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 무탐심소 등이다.
만약 두루 책려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근(勤)심소와 다르지 않다.
악을 그치고 선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 전체적으로 네 가지 법이다.
산란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 등지(等持)심소이어야 한다.
다 같이 대상을 취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촉(觸)심소와 무엇이 다른가?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 염(念)심소이어야 한다.
이와 같이 불방일 심소의 작용을 분석해보면, 무탐심소 등에서 떠나서는 마침내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불방일심소는 반드시 별도의 자체가 없다.
[행사(行捨)심소]
무엇이 ‘행사(行捨)심소’71)인가?
근(勤)ㆍ세 가지 선근이 심왕으로 하여금 평등하고 적정하며 작용[功用]이 없이 머물게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도거(掉擧)를 다스려서 고요히 머물게 함을 업으로 삼는다.
네 가지 법이 심왕에서 도거 등의 장애를 멀리 여의어서 고요히 머물게 하는 것을 행사(行捨)라고 이름한다.
평등하고 적정하며 작용이 없이 머물게 한다는 것은, 처음ㆍ중간ㆍ나중의 지위에서 행사심소의 차이를 판별한 것이다.
불방일이 먼저 잡염을 제거함에 의해서, 행사 심소가 다시 심왕을 적정히 머물게 한다.
이것은 별도의 자체가 없다.
불방일처럼 그 네 가지 법72)에서 떠나서 별도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능히 적정하게 하는 것은 네 가지 법이기 때문이다. 적정하게 된 것은 심왕 등이기 때문이다.
[불해(不害)심소]
무엇이 ‘불해(不害)심소’73)인가?
모든 유정에 대해서 손해와 괴로움을 주지 않는 무진(無瞋)심소를 체성으로 삼는다.
해롭게 하는 것을 다스리고 연민히 여겨 고통을 없애주고자 함을 업으로 삼는다.
곧 무진(無瞋)심소가 유정에 대해서 손해나 괴로움을 주지 않는 것을, 가정적으로 불해(不害)심소라고 이름한다.
무진심소는 생물의 목숨을 끊는 진(瞋)심소에 정반대이고,
불해심소는 생물을 괴롭히고 손해 입히는 해(害)심소에 정반대이다.74)
무진심소는 약을 주는 것이고,
불해심소는 고통을 없애준다.
이것을 이 두 가지의 두드러진 양상의 차이라고 한다.
참다운 이치로써 말하면,
무진심소는 참으로 자체가 있고,
불해심소는 그것의 일부에 의지해서 가립한다.
자(慈)와 비(悲)의 두 양상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유정을 이롭고 즐겁게 하는 데, 그 두 가지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75)
불해심소가 곧 무진심소는 아니다. 별도로 자체가 있으니, 어질고 착함의 체성이라고 한다.
[논주 문] 이것의 체상은 어떠한가?
[외인 답] 손해나 괴로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무진심소도 역시 그러해야 한다.76)
어째서 별도로 자성이 있다고 말하는가?
유정에게 손해나 괴로움을 주지 않는 자비와 어질고 착한 것이 무진심소이기 때문이다.
49)
근(勤, vīrya)심소는 ‘정진’의 심리작용으로서, 용맹스럽게 선행을 닦고 악행을 끊게 한다. 해태(懈怠)심소를 다스린다.
50)
피갑(被甲)은 맹렬하고 날카롭게 즐거운 욕구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세력이 있는 것[有勢]이라고 이름한다. 갑옷[甲]을 입고[被] 군대가 진(陣)을 친 곳에 들어갈 때 두려워하지 않고 큰 위세가 있는 것과 같음을 일컫는다.
51)
가행(加行)은 견고하고 용감한 방편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정진하는 것[有勤]으로 이름한다. 마음을 견고하게 해서 스스로 책려(策勵)하는 것을 일컫는다.
52)
낮추지 않음[無下]은 증득해야 할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고, 역시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용감한 것[有勇]으로 이름한다.
53)
물러나지 않음[無退]이란 추위나 배고픔 등의 고통을 능히 인내로써 받아들이고, 열등한 선(善)에 대해서 혐오(嫌惡)나 만족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음 단계의 뛰어난 공덕 등을 기쁘게 구하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견고하고 용맹한 것[堅猛]으로 이름한다.
54)
만족하지 않음[無足]은 이후에 점차 4성제를 관찰함[諦觀] 등 뛰어난 도(道)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선(善)의 멍에를 버리지 않는 것[不捨善軛]으로 이름한다.
55)
소[牛]에게 멍에를 씌움으로써 소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고 능히 나아가게 한다. 선법(善法)도 역시 그러해서 수행자에게 멍에를 지워 선품(善品)에서 벗어나지 않고 열반에 나아가게 하므로 이렇게 표현한다.
56)
다섯 가지 중에서 맹렬함을 일으키는 것[被甲ㆍ有勢]은 발심이고, 나머지 넷은 수행인데, 이 수행은 다시 자분(自分)과 승진(勝進)으로 나뉜다. 자분은 가행(加行. 有勤:下品), 낮추지 않음[無下. 有勇:中品], 물러나지 않음[無退. 堅猛:上品]의 3품이고, 만족하지 않음[無足. 不捨善]은 승진에 해당된다.
57)
자량도(資糧道)ㆍ가행도(加行道)ㆍ견도ㆍ수도ㆍ무학도이다.
58)
3승(乘)의 무학(無學)도 증과(證果)를 원만히 이루었는데, 어째서 만족하지 않는 것[無足]이나 선의 멍에를 버리지 않는 것[不捨善軛]이라고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2승(乘)의 구경도(究竟道:無學)는 마음을 대승으로 회향하여 대보리를 기뻐하기 때문이고, 모든 부처님의 구경도에서는 영원히 미래세가 다하도록 유정을 이롭게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모두 만족하지 않음이나 선의 멍에를 버리지 않는다고 이름할 수 있다고 말한다.
59)
가깝고[近] 먼 것[遠]을 말한다.
60)
안(安, prasrabdhi)심소는 ‘경안(輕安)’, 즉 번뇌를 멀리하고[輕] 몸과 마음을 편안히 조절하는[安]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이것은 욕계의 산심위(散心位)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색계ㆍ무색계의 정위(定位)에서만 생기(生起)한다.
61)
불방일(不放逸, apramāda)심소는 방일함을 없애는 심리작용, 즉 정진ㆍ무탐ㆍ 무진ㆍ무치의 심소력으로 번뇌를 끊고 선행을 닦음에 있어서 선법을 획득하고 보존하게 하는 능력의 심소이다.
62)
근(動)심소와 세 가지 선근[三善根]의 심소를 말한다.
63)
외인의 질문이다.
64)
논주가 반대로 질문한다.
65)
외인의 답변이다.
66)
논주의 논파이다.
67)
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무치(無癡)의 3근(根)이다.
68)
정진과 세 가지 선근의 심소를 가리킨다.
69)
외인이 비판하여 묻는다.
70)
논주의 반대질문이다.
71)
행사(行捨, upekṣā)심소는 마음의 ‘평정’을 이루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여기서 ‘사(捨)’는 혼침이나 들뜸[掉擧]이 아닌 평정상태를 말한다. ‘행사(行捨)’란 5온(蘊) 중에 수온(受蘊)이 아닌 행온(行蘊)에 포함되는 사(捨)라는 뜻이다.
72)
근(勤)심소와 세 가지 선근의 심소를 가리킨다.
73)
불해(不害, ahiṃsā)심소는 타자(他者)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심리작용이며, 이것은 무진(無瞋)심소에 의해 생기한다.
74)
무진(無瞋)ㆍ불해(不害) 심소를 별도로 건립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
75)
설일체유부의 견해이다.
76)
논주의 논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