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hterine of Aragon 캐서린 아라곤 - 헨리 8세의 1 왕비 (1485~1536)
아라곤과 카스티야 왕국의 카톨릭 공동왕으로 불리는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막내딸로 태어나 헨리 7세의 장남인 아서와 첫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허약한 아서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고 하필 그 때 어머니인 이사벨라 여왕이 죽어 그녀는 스페인으로 돌아가지도 못 하고 냉혹한 아버지와 시아버지가 그녀의 지참금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냉대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
교섭은 그녀가 아서의 동생인 어린 헨리와 재혼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고 헨리는 그녀를 책임지겠다는 로맨틱한 생각으로 결혼에 동의한다. 결혼 생활 초기에 헨리와 캐서린은 서로를 사랑했고 나름대로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결혼 생활 동안 열번이 넘게 임신했지만 캐서린이 낳은 아이는 2남 4녀, 그것도 모두 유산 아니면 사산, 일찍 죽어 버렸다. 건강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딸인 메리 공주 하나 뿐이었고 이는 헨리 8세를 불안과 고뇌에 빠지게 한다.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형수와의 결혼'을 했기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산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옛날 헨리 2세의 딸인 마틸다가 왕위에 오르는 것 때문에 나라가 둘로 갈라져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던 영국의 과거와 메리가 외국의 왕족과 결혼하면 영국의 왕관이 메리의 남편에게 넘어갈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이 때 나타난 여인이 앤 불린이었다. 그녀에게 흠뻑 빠진 헨리는 마침내 캐서린과 이혼을 선언하고 앤과 결혼할 것을 결심하는데 이에 캐서린과 왕비를 존경하는 모든 백성들, 교황청과 왕비의 친정 스페인 왕실 등에서 거센 반대가 쏟아진다. 유럽 최강국인 스페인 출신의 왕비, 그리고 그 왕위에 앉아있는 그녀의 조카 카를로스 5세와 교황을 거스르기 골치 아파진 헨리 8세는 마침내 영국의 국교를 바꿔 카톨릭과 교황의 세력에서 분리시켜 영국만의 국교를 만들고 자신을 그 국교의 수장으로 하는 '수장령'을 발표해 버린다.
자신이 국교의 수장이 되어 교황의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 헨리는 캐서린을 내쫓고 앤과 결혼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해 9월,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태어나지만 아들을 얻기 위해 앤과 결혼했던 헨리에게는 좌절만을 안겼을 뿐이다.
끝까지 자신이 정당한 왕비라고 주장하며 캐서린은 비참한 환경에서 딸을 빼앗긴 채 죽어갔다. 그녀가 죽었을 때 헨리와 앤은 이제 전쟁의 위협이 없어졌다며 노란 옷을 입고 축배를 들었다는 것을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스페인 대사는 역겹다고 적어놓았다. 앤은 이제 노골적으로 진짜 왕비가 되었다고 즐거워하며 뻐기고 다녔다.
앤은 열등감이었는지 자격지심이었는지 캐서린과 메리 모녀에게 온갖 모욕과 비참한 생활을 가했다. 심지어 앤은 캐서린의 어머니 이사벨라 여왕이 만들어준 그녀의 유아세례복(캐서린과 메리가 그 세례복을 입고 세례받음) 캐서린에게서 빼앗아 자기 딸 엘리자베스에게 입히려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며 다시 없이 정숙하고 도덕적인 여성이며 사랑받았던 이 왕비는 죽어서 영광을 누리는데 훗날 조지 5세의 왕비 테크의 메리는 그녀의 무덤에 왕비의 상징을 장식해주고 스페인 대사와 모든 영국민이 보는 앞에서 추모비를 세워 영국과 식민지 전체의 여왕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긴 세월 동안 그녀의 무덤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의 무덤에 꽃이 시들지 않게 늘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블러디 메리로 불리는 여왕 메리 1세는 이 캐서린의 딸이다.
첫댓글 원숭이를 키우셨나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