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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장을 만났다. 왕립 마에스트란사 투우장(Plaza de Toros de la Real Maestranza de Caballería de Sevilla)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투우장이다.
마드리드에 있는 라스 벤타스 투우장과 바르셀로나 투우장과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투우장이다. 1761년에 지어 지금까지도 투우 경기가 열리는 웅장한 왕실 투우장에 투우 예술 박물관이 있다.
근대 투우가 시작된 곳으로, 완전한 원형 상태가 아닌 살짝 반원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투우 경기는 매년 3월 말 또는 4월 초에 있는 세마나산타(Semana Santa)를 시작으로 10월 12일 건국기념일에 끝이 난다.
축제 기간에는 매일 경기가 있다. 경기가 없을 때는 투어로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다. 투우 경기는 바르셀로나에서 아내와 한 번 본 기억이 있다. 잔인하다는 생각과 좀 지겹게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우장 앞에는 유명한 투우사 쿠로 로메로(Glorieta Curro Romero)의 동상이 있다. 그 앞에는 말 탄 여인상(Monumento a María de las Mercedes)이 있다.
동상은 시칠리아 왕국의 공주이자 바르셀로나의 백작부인이자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어머니인 스페인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를 상징한다. 스페인 공주는 1910년 12월 23일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드리드에 살다가 그의 아버지가 지방의 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세비야로 이사했다고 한다. 길 건너편에는 위대한 투우사 마놀로 바스케스(Manolo Vázquez)를 기리는 멋진 기념물도 있다.
페페 루이스 바스케스(Pepe Luis Vázquez)로 더 잘 알려진 호세 루이스 바스케스 가르세스는 산 베르나르도(San Bernardo)의 투우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가장 진정한 세비야 투우사 중 한 명이자 20세기 투우 분야에서 가장 멋진 인물 중 한 명으로 간주된다.
조각품에서 우리는 한 손에는 레이피어, 다른 한 손에는 물레타를 들고 황소를 이끄는 젊은 투우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옆에 카르멘(Monumento a Carmen La Cigarrera)의 동상도 있다.
조각가 Sebastián Rojas가 만든 실물 크기의 청동 조각품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가 그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에서 불멸의 존재로 만든 시가 소녀 카르멘(Carmen)을 볼 수 있다.
투우장과 같은 분위기인 성당(Capilla de los Toreros Plaza de la Maestranza)이 바로 옆에 있다. 강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사벨 2세 다리 Puente de Isabel II (Puente de Triana)를 바라본다.
이사벨 2세 여왕 시절인 1852년에 개통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철교란다. 타일장식이 예쁘다. 강변에는 커다란 기념물(Monumento a la Tolerancia)도 있다.
과달키비르 강둑을 따라 걷다 보면 트리아나 다리 옆에 아메리카 인디언을 옹호한 세비야 수사인 프레이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 돌 조각상이 있다.
중앙의 바르톨로메오와 스페인 정복자와 일부 원주민을 표현한 부조벽화다. 현재 기물 파손으로 인해 울타리가 쳐져 있다. 다리 건너편에는 시장 건물과 예쁜 교회 건물도 보인다.
우리는 아르마스 버스터미널(Estación de Autobuses “Plaza de Armas”)로 들어갔다. 내일 찾아갈 포르투갈 라고스를 가는 버스표를 예약했다. 아침10시에 출발하는 알사는 170유로로 비싸다.
12시 35분에 출발하는 플릭스 버스를 76유로에 구입했다.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진 궁전(Semi-circular colonnade)를 만났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작은 반원형 광장이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구성하는 건물을 통해 들어갔다.
내부에서는 건축물과 장식을 감상할 수 있다. 건축가 Joaquín Barquín이 1967년에 디자인하고 José Palomar가 아케이드의 꽃 프레스코화로 장식한 반원형 열주인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 광장은 1254년 기독교 왕 알폰소 10, 현명한 왕에 의해 설립된 세비야 대학의 기원이며 라틴어와 아랍어에 대한 연구로 이름을 알렸다. 14~15세기에는 대성당의 수행자들을 위한 학교인 산 미구엘(Estudio de San Miguel), 세이스(현재까지도 대성당에서 의식적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소년들의 합창단)와 대성당의 성직자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나중에 교구 소신학교가 되었다.
하얀색에 금장 장식이 멋진 건물 1층은 둥글게 회랑이 이루어져 있다. 둥근 광장 가운데는 분수대가 벽 정원과 함께 있다. 동판의 인물상도 보인다. 기둥에는 Plaza del Cabildo,이라는 글씨도 보인다.
일요일에는 장터가 열리는 곳이다. 길게 이어지는 회랑 기둥 복도로 나온다. 바로 건너편에 세비야 대성당이다. 세비야 대성당(Sevilla Cathedral)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란다.
12세기에 지어진 모스크를 개조한 대성당이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르네상스 양식),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네오르네상스 양식)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고딕 양식 성당 중에서는 세비야 대성당이 가장 크다. “그 어떤 다른 성당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크게 지어 이 성당이 마무리되면 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무조건 톨레도 대성당보다 크게 지어야 한다며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15세기부터 짓기 시작해 105년 이 걸려 완공된 성당으로 세비야 관광의 핵심이다. 폭 116m, 안길이 76m의 사원이다.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입구의 문을 팔로스 문이라고 한다. 성당 지하에는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안장되어 있다.
세비야를 이슬람으로부터 되찾은 영웅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스페인 중세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있다. 안치실 앞에는 무리요의 그림<성모수태>가 있다. 고야와 수르바란의 그림도 있다.
콜럼버스의 묘(Sepulcro de Colón)는 스페인 정부가 콜럼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여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그의 유언을 지켜 주기 위해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4명의 왕들이 그의 무덤을 짊어지게 했다고 한다.
앞에 있는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들은 고개를 들고 있고, 뒤에 있는 나바라, 아라곤 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것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했던 왕은 고개를 들도록, 반대했던 왕은 고개를 숙이도록 한 것이란다.
그리고 오른쪽 레온 왕의 창살 아래에는 그라나다를 뜻하는 석류가 꽂혀 있는데 국토 회복 운동으로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들이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문장이 해당 왕국을 의미한다.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이 유난히 반짝이는데, 이것은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속설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황금빛 중앙 제단(Capilla Mayor)은 1480년부터 1560년까지 무려 80년 동안 제작된 높이 27m, 폭 18m 크기의 화려한 장식은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국토회복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가톨릭 왕조 안에 사는 이슬람인들을 '무데하르(mudéjar)'라고 칭했고, 이들의 예술을 무데하르 양식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