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시흥문학 제 27집 특집/시흥을 읊다, 창작시
(문협회원 & 지역문인 등 10명)
1. 연의 집
이연옥
바람이 지친 지팡이로 허공을 깨우고
연이 급하게 파도를 짓습니다
둥글고 둥근 연잎들이
사공도 없이 파도를 저어 달리면
어둡고 험한 심연을 돌아봅니다
또르르 한 곳으로 모이는 어둠
바람이 붑니다
연잎 위를 구르는 물방울이
흩어진 검은 구름처럼 제자리에 모입니다
슬픔을 지우듯이
바람이 지나갑니다
나는 주저할 새도 없이
한 척의 배가 되어
지워지는 슬픔 속으로
연의 물결 속으로 떠갑니다
그 바다를 휘돌아 나오는
수많은 물방울의 배들
모여서 포구가 되고
한 채 한 채 집이 생기고
남경을 넘어오신
외롭고 쓸쓸한 발자국
관곡지를 넘어 범람하는
당신의 집
이연옥 시인/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졸업/1997년 월간 『문학공간 』신인상 /2010년 계간 『예술가 』로 작품발표 시작하였으며 시집으로 『나비의 시간 』, 『산풀향 내리면 이슬이 되고 』, 『연밭에 이는 바람 』이 있다. 제1회 시흥문학상 금상을 수상하였으며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7대 지부장과 시향문학회장을 역임했다. 현,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고문
2. 백련
최분임
비 내리는 아침
호조벌 슬하의 관곡지
자욱한 안개를 헤치자
거기, 헛것처럼 숟가락을 불러모으는
백자 밥그릇들 피어 있다
어른거리는 것들은
그리움의 수위로도 꽃이 되는 걸까
어떤 출발이
붉은 박수도 없이 뗀 첫걸음마
푸른 앞치마로 가린 채 어머니
희고 윤나는 고봉밥 한 그릇 들어 보인다
젖을 궁리가 필요 없는 꽃
거기 당신이 홀연하다
최분임 시인/ 경북 경주 출생/ 제23회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산문부문 장원
제12회 동서문학상 대상 수상/ 2017 제8회 천강문학상 대상 수상
현,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시분과 위원장/소래문학회 회원/ 동서문학회 회원
공저, 시흥문학, 소래문학 동서문학 등
3. 둔터골* 회화나무
임경묵
얼마나많은바람과햇살이회화나무푸른이파리사이를헤엄치다우물속으로사라졌을까요이끼처럼납작엎드려우물에반짝이는시간의잔해를가만헤아려봅니다참나무고갯길넘어개나리봉으로달맞이다녀온아낙들의수줍은웃음소리와들깨밭머리에도자줏빛싸리꽃피었더라며두레파작을끝낸사내들이꽹과리장구를내려놓고왁자하게등목하는소리지금도들릴것만같습니다
택지개발지구로지정된둔터골,갯바위따개비처럼산기슭에정답게모여있던집들은막다른골목일수록산에가까울수록벌써부터하나둘지워지고있습니다우물가삼거리를서성이다가문득회화나무붉은외피하나를주웠습니다오랜삶터의무늬가촘촘히새겨져있었습니다햇살에달궈진푸른이파리를식히려는것일까요후두두두소나기긋습니다나는우물쪽으로조금비켜서서,너무많은꽃을이고있는늙은그를한참바라보았습니다
* 시흥시 광석동 자연부락.
임경묵 시인/경기 안양 출생/2006년 수주문학상 대상/2008년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
/2011 대산창작기금 수혜 /2012 김만중 문학상 수상/소래문학회장 역임, 소래문학회원
/현,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이사/공저, 시흥문학, 소래문학 등
4. *매꼴마을에 들다
강현분
우체국 모퉁이 돌아
봄꽃 벙그는 툇마루에서
햇살 품고 오는 당신을 맞는다.
구불구불한 갯골 비릿한 향
삶의 끝자락을 딛고 칠면조가 빚어내는
시간을 건져 올린 당신
간밤에 내린 꽃비 인선왕후 석상(石像) 치맛자락에 고여
짭조름한 안부 가슴을 후벼 파는데
구중궁궐 매화가지에 새 한 마리 *신한첩(宸翰帖) 슬쩍 물어다놓고
황급히 손을 흔들던 그날
꾹 눌러 쓴 서신 위로 흘러내리던
애달픈 모정을 읽는다.
풍경 안쪽 닿을 수 없는 거리에
꽃잎 한 닢 무심히 가지에 떨구고
햇빛 속을 지루하게 떠돌던 바람은
더디게 오는 봄에게 은밀한 문장을 남긴다.
* 매꼴마을 –장곡동의 옛이름.
* 신한첩(宸翰帖) -〈숙휘신한첩〉을 일컫는다.〈숙휘신한첩〉에는 아버지 효종, 어머니 인선왕후
(仁宣王后), 오빠 현종, 올케 명성왕후, 조카 숙종, 질부 인현왕후 등이 쓴 편지가 실려 있다.
강현분 시인/경남 진주 출생/ 소래문학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회원
/ 시집 '시간도둑과 달팽이'(문학의 전당, 2015)
5. 월곶이 좋다
정덕현
창문마다 내린 불빛
밤바다는 은하수로 꽃밭인데
집을 나선 낭군님은
아직도 함흥차사다
오늘은 누굴 만났을까?
손목이 아프도록 정성을 쏟아부은
밥상은 둘러앉은 사람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쓰리 퍼에 창문을 나선 산책길은
네온불이 길을 밝히고
허전함 시려오는 뒤통수를
월 곶 포구는
조금이나마 빈 가슴을 달래준다
월 곶 포구는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
살고 싶은 시흥 제이의 고향
靑雲 정덕현 시인/아시아서석문학 시 등단 본지 이사/아시아서석문학 경인지부 사무국장
/한국 현대 시인협회 회원/현,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공저, 시흥문학, 시향문학/Email : luckyzang48@ hanmail.net
6. 소금창고
이지선
퇴화된 다리가 저려올 때마다
가득가득 쌓여 충만했던 추억을 끄집어냈지
그 찬란한 때가 올 수는 있을까
곡간엔 허허로운 바람만 휭휭 거리고
기다림이 지칠 쯤에
짭조롬한 미소를 지어주던 해당화
혼자만의 기다림은 아니었을 게다
순백의 알갱이로 곡간을 채워가는 환희로
저려오는 다리의 아픔도
비웃듯 맴돌던 냉기도
갯물에 묻어 버리려무나.
이지선 시인/문학세계 시 등단/한국문인협회 회원,/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회원/시향문학회원,
/시흥자치신문 칼럼위원/시집, [베낭에 꽃씨를] 외 6권 출간
7. 연잎 잔
한지혜
별들이 사라지기 전에 물에 잠긴 별들을 깨우자
물들은 잠을 자는데 소리가 나는 물의 방
너에게서 빗소리를 듣네
연잎과 꽃잎 사이 내려앉는 이슬들
잎들이 꽃잎들이 피는 소리
멀리서 보면 외로운 잎
작은 돛배 같아
물밑 진흙은 구름길 적막이 담겨있어
늘 파래
달을 여는 분청찻잔
찻잔에 이슬차를 담자
이슬 한 모금에 연향이 베어나
연을 피우자
비로 두들겨
연을 피우자
한지혜 작시, 박경애 작곡, 소프라노 박미화
한지혜 (韓智慧 ) 시인/ 1980년 월간 신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마음에 내리는 꽃비 』『차와 달의사랑노래 』『두 번째 벙커 』 『모든 입체들의 고독 』이 있다 . 2016년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sangchonje@hanmail.net
8. 은행동 소묘
어윤보
은행동에는 은행나무가 많이 산다 가난한 골목에 가을이 오면 황금빛 카펫이 부유하게도 펼쳐진다
우리 동네 은행동에는 손수레 끄는 사람도 여럿이 산다 폐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가끔씩 마주치는 반백의 아저씨는 미소를 달고 가끔씩 혼잣말을 한다 스스로 얹은 짐을 가볍게 밀고 다니는 그의 표정은 잘 마른 빨래처럼 뽀송하다 얼굴 어디엔가 바람이 드나드는 비밀통로가 있는 것일까
웃지 않고 살아가는 나에게 쓸데없이 무거운 욕망의 짐을 끌고 천천히 골목을 지나다니는 나에게 아저씨는 무어라 중얼거리며 오늘도 바람처럼 자유롭고 빠르게 생의 골목을 지나간다
우리 동네 은행동에 가을이 왔다 골목마다 쏟아지는 황금엽서를 읽으며 오늘도 행복한 사나이가 웃으며 지나갈 것이다 몇 개의 짐을 얹은 가벼운 생의 수레를 밀며
9. 연근 캐는 사람들
이동호
연 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연근을 캐고 있다.
눈부신 가을 햇볕에 머리카락이 짙게 그을린다.
고비사막의 모래를 덧입은 연蓮들이 바람결에 기웃한다.
걸음마다 연꽃을 피어올린 수고로움이 질퍽하다.
內外로 나뉜 고국을 떠나 南北으로 나뉜 이국에서도
연의 꽃과 근根은 나뉘었다.
갯벌 같은 삶에 내린 뿌리를 캐내며
소처럼 그리움을 갈아엎는다.
월미천*을 헤집던 왜가리는 시린 다리를 덥힌다.
추수가 끝난 논에 이삭이 패지 않는 벼가 푸르다.
목탄화 한 점 가을 햇살에 먹지처럼 타들어간다.
* 경기도 시흥시 물왕저수지의 수로로 호조벌을 관통하는 보통천의 다른 이름.
이동호 시인/강원 사천 출생/ 2001년 『신서정(新抒情)21』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2006년 ‘소래문학회’ 가입. 현, 소래문학회 회장
10. 월곶귀항선月串歸港船
조철형
어머니 자궁 같은 포구*로 돌아오는 배들은
거친 돛대마다 푸드덕거리는 꽃 한 송이 달고 온다
거친 파도와 싸웠던 순간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면 봄눈 녹듯 갯벌로 스며든다
먼 바다를 항해하며 눈 뜬 고기를 낚아채면서도
이 땅의 아버지들은 뱃머리에 홀로선 채
기어이 지켜내야 할 꿈이 있는 것이다
언제나 평안하길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만선의 귀항을 못하는 날 파도처럼 많아도
가슴엔 먼 바다에서 끌고 온
아름다운 바다꽃들과 해어海漁들이
돛대마다 춤을 춘다
*월곶(月串),시흥시 월곶포구, 조선시대에 해안방어체계를 수립하면서 내륙(포동쪽)으로 통하는 물길이 드나들던 길목에 해당하는 월곶에 진을 설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시흥시 문헌자료-
조철형 시인/충북제천, 충북대 중문학과 졸업/소래문학회장 역임/현, 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2011 월간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 /2012 제8회 한국농촌문학상 수상, 2013 제1회 국립공원 포토에세이 공모전[국립공원관리공단]자연사랑 상 수상 , 2014 제15회 경찰문화대전 수상 , 제3회 이해조문학상 수상 , 제10회 전국[자연사랑 생명사랑] 詩 공모전 은상 수상
시집, 그리움도 때론 푸드덕거린다"출간(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출판부, 2013)
공저: 경기문학,시흥문학,소래문학,시인정신,문학세계,시세계,고운글문학,문학과 행동 등
첫댓글 존경하는 선배님들
가슴을 어우려지게 하는 시
잘 읽었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