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리의 성자, 방애인” (요일 3:16~18)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하는 MD사역자 여러분,
오늘 우리는 “거리의 성자, 방애인”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때로 이름도 높이 드러나지 않은 한 사람의 눈물과 헌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많은 재산을 남기지 않아도, 긴 생애를 살지 않아도,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보여 준 사람은 오랫동안 복음의 향기를 남깁니다.
일제강점기 전주에는 사람들로부터 “거리의 성자”라 불린 한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주 기전여학교 교사였던 방애인 선생입니다.
방애인 선생은 1909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개성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6년 열여덟 살의 나이로 전주 기전여학교 교사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의 아픔을 품고 기도했으며,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찾아가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1931년 전주로 돌아온 뒤에는 학생들과 함께 기전신성회를 조직하고,
교사와 학생들로 전도대를 만들어 전주 시내 곳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도는 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거리의 고아를 등에 업었고, 굶주린 걸인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으며,
사람들이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던 한센병 환자의 손을 잡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전주 시민들은 그를 “거리의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본문을 따라, 우리가 어떤 MD사역자가 되어야 하는지 세 가지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MD사역자는 고통받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33~34절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길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지나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갔습니다.
사랑은 멀리서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사람 곁으로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은 고통받는 사람을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아픔의 자리로 들어가는 사랑입니다.
방애인 선생도 교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갔습니다.
가난한 이웃이 있는 곳, 병든 사람이 있는 곳,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갔습니다.
어느 날 길가에서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앓는 한 노파를 둘러싸고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방애인 선생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노파의 두 손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노파를 구경거리로 보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한 영혼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사랑하는 MD사역자 여러분,
MD사역은 교회 안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사역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우리를 찾아오셨듯이, 우리도 고통받는 사람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낙심한 성도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책망하기 전에 먼저 찾아가야 합니다.
병든 사람이 연락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기보다 먼저 안부를 물어야 합니다.
태신자가 복음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포기하기 전에, 그 사람의 마음과 형편을 먼저 들어 주어야 합니다.
“왜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까?”라고 묻기보다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많이 힘드신 건 없으십니까?”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함께 기도해도 되겠습니까?”
MD사역은 가만히 기다리는 사역이 아닙니다.
가서, 만나고, 들어 주고, 함께하는 사역입니다.
사람의 아픔은 멀리서 판단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갈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발이 낙심한 사람에게 향하고, 우리의 손이 병든 사람에게 내밀어지고,
우리의 마음이 소외된 영혼에게 열리기를 바랍니다.
2. MD사역자는 말이 아니라 행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3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은 말로 시작할 수 있지만,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면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한다면,
그 기도는 삶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방애인 선생은 복음을 말로만 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내어 주며 복음을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1932년 전주 지역에 큰 수해가 일어났을 때 많은 이재민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대부분은 친척이나 지인의 도움을 받아 떠났지만, 의지할 곳 없는 한 가족은 추위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방애인 선생은 그 모습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했던 시계와 만년필을 팔아 그 가족이 머물 방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겨울을 나라고 보내 준 솜옷도 자신이 입지 않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길에서 보호자 없이 떠도는 아이를 만나면 등에 업고 데려와 씻기고 먹이며 따뜻하게 돌보았습니다.
방애인 선생에게 사랑은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희생이었고, 나눔이었고, 실천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랑은 남는 것을 조금 나누는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과 편안함을 기꺼이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굶주린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은 예수님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를 품는 것은 예수님을 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MD사역자 여러분,
우리에게 방애인 선생과 같은 큰 희생이 당장 요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도 작은 사랑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음식 솜씨가 있다면 외로운 사람을 식탁으로 초대하십시오.
운전할 수 있다면 병든 성도나 어르신을 병원에 모셔다드리십시오.
물질의 여유가 있다면 어려운 가정을 조용히 도우십시오.
말을 잘 들어줄 수 있다면 낙심한 사람 곁에 앉아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기도할 수 있다면 한 영혼의 이름을 붙들고 회복될 때까지 중보하십시오.
MD사역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작은 것을 통해 한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그것이 MD사역입니다.
3. MD사역자는 사랑받은 사람을 동역자로 세워야 합니다
방애인 선생은 혼자서만 거리의 사람들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전여학교 학생들로 기전신성회를 조직하여 말씀과 기도로 훈련했습니다.
방과 후에는 교사와 학생들로 전도대를 만들어 전주 시내로 나갔습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신앙을 배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거리에서 복음을 실천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방애인 선생은 학생들을 단순히 사랑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복음의 동역자가 되도록 세웠습니다.
이것이 MD사역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MD사역은 내가 모든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품고 섬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나, 다시 다른 영혼을 품고 섬기도록 세우는 사역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복음은 한 사람에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다음 사람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방애인 선생은 고아들을 돌볼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주 서문교회 배은희 목사와 기전여학교 교사들, 지역의 동역자들과 함께 모금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전주 시내의 가정들을 찾아다니며 작은 정성을 모았고,
1931년 12월 서문교회 인근에 고아원을 열었습니다.
한 사람의 긍휼이 여러 사람의 동역으로 연결되었고,
그 동역은 보호받지 못하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물질로 돕고, 어떤 사람은 현장에서 돌보고,
어떤 사람은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연결합니다.
각자의 은사와 재능이 십자가 사랑 안에서 연결될 때, 한 사람의 선한 뜻은 공동체의 사역으로 확장됩니다.
사랑하는 MD사역자 여러분,
우리가 품은 태신자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며 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제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새가족이 교회에 정착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가 또 다른 낙심자를 위로하고, 또 다른 태신자를 품는 MD사역자가 되도록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도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으로 키워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이웃을 찾아가고,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나누는 믿음의 동역자로 세워야 합니다.
MD사역의 열매는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섬김받은 사람이 섬기는 사람이 되며,
복음을 들은 사람이 다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참된 열매입니다.
말씀을 맺으며
사랑하는 MD사역자 여러분,
방애인 선생의 생애는 스물네 해로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사랑의 흔적은 한 세기를 지나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수많은 학생과 교인, 그리고 그가 돌보았던 가난한 이웃들이 눈물로 마지막 길을 함께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지식이나 지위를 기억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잡아 주었던 손을 기억했습니다.
그가 업어 주었던 고아들을 기억했습니다.
그가 함께 울어 주었던 병든 사람들을 기억했습니다.
그가 학비를 도와주고 밤새 기도해 주었던 학생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사람 위에 서기보다 발아래 엎드려 섬겼습니다.
복음을 말로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요청합니다.
첫째,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자리로 가까이 가십시오.
둘째, 말과 혀에 머무르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십시오.
셋째, 사랑받은 사람을 또 다른 영혼을 섬기는 동역자로 세우십시오.
오늘 우리 곁에도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외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질병으로 지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과 경제의 어려움으로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편견과 비난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우리가 다가가야 합니다.
거창한 말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먼저 찾아가십시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며, 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회복되어 다시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세워 주십시오.
거리에서 고아를 업고, 병든 사람의 손을 잡으며, 눈물로 한 영혼을 품었던 방애인 선생처럼,
우리도 가장 소외된 사람에게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십자가 사랑의 다리를 놓는
충성된 MD사역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함께 드리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먼저 찾아가게 하시며,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손과 발로 복음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 외로운 사람과 낙심한 사람의 손을 잡아 주게 하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사랑으로 들어 주게 하옵소서.
우리가 섬긴 한 영혼이 믿음 안에서 회복되고, 다시 다른 영혼을 품는 MD사역자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방애인 선생처럼 겸손히 섬기고 눈물로 영혼을 품으며,
거리와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충성된 사역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