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36번째 세계 100대 영화로 선정이 되어 있던 것은 존 포드 감독의 추적자(The Searchers 1956)입니다. 하지만 인디언을 인간 취급하지 않은 이 영화를 세계 100대 영화로 선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에서 같은 감독의 <황야의 결투>로 교체하여 올립니다. 인디언에 대한 증오심이 남달랐던 존 포드 감독은 <황야의 결투>에서도 그냥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1946) : 고전적인 서부영화의 낭만성
존 포드(John Ford) 감독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하게 된 존 포드는 공백기를 가진다. 그 후 1946년에 내놓은 영화가 바로 <황야의 결투>이다. 번안 제목이 의미하듯 후반부에 OK목장에서의 결투신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결투는 싱거운 느낌이고 오히려 와이어트(헨리 폰다)와 클레멘타인(케이시 다운즈)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요컨대, ‘서정적 서부극’답게 로맨스가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50년대 소위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리는 수정주의 서부극 이전에 보여준 서부의 낭만이 깃든 작품이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882년이다. 1850년대에서 1890년대의 한정된 시기를 다루는 서부극에 정확히 부합한다. 또한 이 영화는 툼스톤(Tomb Stone)이란 지명과 OK목장이 등장하고, 존 포드가 선호하는 모뉴먼트 계곡도 예외 없이 나온다. 귀에 익은 지명과 눈에 선한 배경은 이 시기의 존 포드가 서부극의 전형성을 고수하고 있는 하나의 예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어프 형제는 소를 몰고 서부로 가던 중 툼스톤이란 마을 어귀에 도착하게 되고, 동생이 말을 지키며 캠프에 머무는 동안 툼스톤에 들르게 된다. 묘비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툼스톤은 치안이 불안하고 인디언에 의해 총기 난동까지 벌어지는 등 결코 평화로운 마을의 정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전직 보안관 출신인 와이어트는 인디언의 난동을 맨주먹으로 제압하고 툼스톤의 보안관 제의까지 받게 된다. 이를 거절하고 캠프로 돌아와 보니 동생은 죽어 있고 소는 온데간데없다. 소를 찾고 동생에 대한 복수를 위해 와이어트는 다시 툼스톤으로 돌아가 보안관직을 수락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여기서 툼스톤의 불안한 치안을 묘사하고 한 명의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해 등장시킨 악의 존재가 인디언인 점에 주목하자. 실제로 어트 형제의 소를 훔친 클랜튼만으로도 악의 존재라는 필요조건은 갖추고 있고 동시에 와이어트가 영웅이 될 토대는 마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클랜튼은 권위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건국 초기의 청교도적 정신이 퇴락한 상황을 보여주려는 듯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며 툼스톤의 골칫거리로 묘사된다. 따라서 에피소드에 불과한 인디언의 난동은 필요가 없는 장면이다. 결국 1940년대 존 포드가 지닌 보수성은 인디언의 존재를 빼놓지 않은 셈이다.
툼스톤의 실세이자 의사이기도 한, 닥 홀리데이(빅터 마추어)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캐릭터이지만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살짝 비껴난 채 묘사된다. 악당을 찾는데 단서를 제공하는 술집여자 치와와(린다 다넬)나 와이어트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클레멘타인은 모두 닥 홀리데이를 사랑하는 여인들로 나온다. 지병이 있는 닥은 옛 서부의 쇠퇴를 상징하듯 총잡이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는커녕 밭은기침과 이면의 우수만을 짙게 드리운다.
결국 서부의 새로운 주인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가운데 그 혼란을 평정한 영웅적 개척민, 와이어트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와이어트와 클레멘타인이 헤어지는 엔딩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과거와의 단절 후 재회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렇듯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는 사랑과 희망과 정의가 공존하는 신세계요, 그것은 미국의 미래를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ㅡLian
My Darling Clementine(황야의 결투)
첫댓글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서부 영화가 대인기 였지요.....전 많이 볼 기회가 없었는데....공부가 되네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