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베아트리체
천오백구십구년 구월 열하루, 로마의 새벽녘
산탄젤로 다리위에 세워진 단두대
밤새워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고
새벽을 여는 이슬위에 초조한 입술을 닫고 있었다
스무 둘을 마감하는 恨의 인생
새벽안개 속으로 피가 퍼질 때
혼란하게 엉킨 내 육체는
검은 불빛에 쌓여 보이지 않고
다리위에 두 동간 난 맥박만 뛰고 있었다
성남 파도에 둘러싸인 밤이여 악마여
당신은 어둠에서만 번성하는 동물처럼
잠들지 않고 열심히 밤을 유린하였다
당신의 손이 어두운 공간을 더듬으며
축 늘어진 정자가 스며들었다
킬킬거리는 칼날 같은 당신의 웃음
짭짤해진 그 폭풍우에 표류하는 불쌍한 내 영혼이여
중세풍 폐허 위에 세운 첸치(Cenci)의 궁전
하루 종일 울어도 조용한 통곡의 벽
비극적인 창문들이 늘 흐느끼는 공허를 바라보았다
두 가지 성(性, 城)의 굴레
계절마다 성욕이 타올라 누덕누덕 찢긴 폐허
목마른 갈증으로 희망의 빛이 필요했고
초록 나무로 덮인 에덴동산을 만들어
평화가 침대에 적시길 얼마나 기도했던가
밤마다 에워싸는 검은 얼굴
당신이 점령한 검은 고통들
은밀한 독약으로 프란체스코 첸치, 당신을 영원히 증오한다.
소알城에 소돔과 고모라처럼
첸치(Cenci)城에 아우성치는 깃발
정복자는 소금 기둥이 되고
불에 부서진 소금의 잔해들
남은 자는 고뇌를 풀고 살라
산탄젤로 다리위에 누워 있는 너
머리에 쓰고 있는 하얀 두건
너무 아름다운 눈동자
하늘을 올려다보는 간절한 절규
너의 얼굴에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
짧은 일생은 가시에 찔린 상처
구천을 떠돌아 찢긴 심장소리
더 이상 어두운 밤을 떠돌지 않고
여명의 붉은 빛으로 아침이 올 때까지
피 묻은 긴 터널에 갇히어 모두 눈을 감았다
비운의 절세 미녀
너를 보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