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누구나 여행 계획 하나쯤은 세우기 시작하는 계절이 왔다. 대학생들에게 방학엔 어떤 계획이 있냐고 물으면 ‘여행’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이맘때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짜릿한 일탈을 즐기는 꿈을 꾸곤 한다. 당신도 올 여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한번쯤 여행 관련 책이나 블로그 포스팅을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여행 작가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자유로운 영혼, 투철한 도전정신, 튼튼한 체력?
여기, 당신의 예상을 깨는 특별한 여행 작가가 있다. ‘휠체어 여행 전문가’ 전윤선 작가님으로부터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여행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휠체어 여행 전문가’란 직업이 생소한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사실 제가 휠체어를 타게 된 건, 그러니까 장애를 가지게 된 건 10년 전 쯤 부터였어요. 저는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근디스트로피라고, 온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희귀 근육병을 앓게 되면서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게 되었거든요. 그 전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었는데 장애가 생기고 나선 많은 제약들이 따랐죠. 그것때문에 여행을 망설이시는 분들도 많았구요. 그래서 그 때부터 그런 분들을 위해 내가 먼저 여행지를 다녀와 글을 집필함으로써 다른 장애인분들도 여행을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방법을 몰랐을 뿐이지 장애인들도 다들 여행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거든요.
수동휠체어나 목발, 승용차를 이용해서 여행하시는 다른 장애인 여행 전문가들과 달리 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대중수단만을 이용해서 여행하기 때문에 ‘휠체어 여행 전문가’라고 부르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유일한 휠체어 여행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출처 http://cafe.naver.com/gwcil/228
장애를 가지게 된 후에 떠나는 첫 여행은 어디셨어요?
첫 여행이 바로 인도여행이었어요. 사실 전부터 인도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장애인들이 여행을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시대였어요. 더욱이 인도는 훨씬 더 환경이 열악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환경 운동하는 친구들이 두 달 동안 인도로 공정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더라구요. 그 길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가겠다고 그래버렸어요. (웃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인도는 비장애인들도 여행하기 힘든 곳인데, 정말 고생하셨겠어요. 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인도를 다녀오신 후로 변한 점이 있을까요?
인도는 워낙 시설이 열악해서 계단 턱이 30~50cm인 건 기본이라 가는 곳마다 동료들이 휠체어를 들어줘야만 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화장실 문제였는데, 인도는 위생관념이 없는 나라라 제대로 된 화장실은 찾아볼 수 조차 없고, 그냥 바지만 내리면 화장실인 셈이라 화장실을 가지 않고 참기 위해 여행하는 내내 물을 못 먹었어요. 2주 동안 타르 사막을 횡단할 때는 휠체어는 굴러가지 않으니깐 낙타를 타고 이동했는데, 낙타에서 내리면 그냥 모래바닥에서 기어 다닐 수밖에 없었고, 볼일은 모래를 파서 해결했어요. 물론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구요.
그렇게 인도를 다녀오고 나니깐 정말 많은 게 변했더라구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휠체어타고 여행하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는데, ‘우리나라는 환경이 참 좋은 거였구나, 여행 못 할 이유가 없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거든요. 그 후로 길이 없어서 여행을 못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길을 만들어서 여행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출처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휠체어 배낭여행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계시면서 장애인분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시기도 하시잖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어느 날, 여행 작가 일만으로는 이 사회가 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장애인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회 시스템, 사람들의 인식 등을 바꾸기 위해서 인권운동도 하고 방송, 기관지, 여행 잡지같은 곳에 글을 기고했는데, 특히나 장애인 전문 언론사 ‘에이블 뉴스’에 기고하기 시작한 후로는 더 많은 장애인분들이 여긴 어떻게 가냐며 문의해주시더라구요. 그 후로 실시간으로 장애인들과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여행을 가고자 하는 분들과 같이 여행을 다니게 됐는데, 정말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구요.
여행을 다니시면서 잘못된 장애편의시설이 있다면 신고를 통해 바로잡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장애인 여행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호주,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 다녀오면서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2005년도에 일본 도쿄를 갔는데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마음대로 타고 다니는 거예요. 엘리베이터가 모두 마련되어 있고, 휠체어로 가지 못하는 곳이 없더라구요. 그 때,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어야 하는구나.’하고 느꼈죠. 장애인들이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선진국들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예전에 지하철에 리프트만 있던 시절에는 매일같이 ‘오늘은 내가 이 리프트를 타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리프트가 중간에 멈춰서 공중에 매달렸던 적은 부지기수고, 리프트에서 추락해서 사망하거나 더 큰 장애를 앓게 되는 동료들도 있었어요. 동료 장애인들과 ‘저승으로 인도하는 리프트’라고까지 부르기도 했었죠. 지금은 리프트가 없어지고 엘리베이터가 생기는 추세라서 훨씬 안전해졌지만 그래도 늘 구멍은 존재해요. 엘리베이터가 불길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화재가 나면 가장 먼저 차단이 되는데, 우리는 계단으로는 이동할 수 없으니깐 꼼짝 못하게 되는거죠. 선진국 같은 경우에는 엘리베이터 뿐만 아니라 경사형 대피로를 따로 만들어 놓더라구요. 우리나라도 그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출처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여행하시면서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신 것 같은데, 여행이 그만두고 싶어질 때는 없으셨어요?
식당이나 숙박시설에서 쫓겨나고 그랬을 때는 여행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내가 더 많이 여행 다녀서 장애가 있건 없건 본질은 같다는 걸 알려주고 말테다.’, ‘다음엔 여기 꼭 먹어줄게’하는 오기가 들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여행을 하는 원동력이 됐달까. (웃음) 사실 처음 가는 여행지는 늘 막혀 있고, 어딜 가나 배리어(장애물)는 다 존재해요. 턱이 하나든 두 개든 가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오히려 그 날의 여행지에 대한 감상을 결정하는 건 시설보다는 사람들이예요. ‘식당 주인, 숙박업체 주인, 주위 관광객들이 어땠냐’ 하는 것들에 의해서 ‘그 날 여행은 어땠다’ 하는 것들이 많이 좌지우지 되는 편이예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는 건 늘 시선의 중심에 서있어야 하는 일이거든요. 그냥 길을 가고 있으면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데도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불편하죠. 호주에선 길을 다니더라도 아무도 저를 쳐다보지 않거든요. 대신 도움을 청할 땐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도와주려고 하죠. 장애인들이 보장구를 이용해 이동하는 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호주의 장애인분들께선 청하기 전에 먼저 도움을 주겠다고 묻는 건 배려가 아니라 폭력일 수 있다고 얘기하시더라구요. 동감하는 부분이예요.
2005년 정도에 휠체어를 타고 정동진으로 기차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기차에 휠체어를 실을 수 있을 거란 생각뿐만 아니라 그런 법령조차도 없었어요. 정동진에 딱 도착하니깐 사람들이 ‘어머, 어떻게 왔어요?’라고 신기해하면서 모여들더라구요.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했겠죠. 근데 그 당시가 장애에 대한 생각이 호의적이지 않던 때라 ‘뭐 얻어먹으려고 온 거 아냐?’하는 사람도 정말 많았어요. 식당에 들어가려는데 턱도 턱이지만은 어떤 사람은 소금을 뿌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천원 주면서 가지고 나가라고도 하더라구요. 호객행위 하던 사람들도 죄다 반말로 ‘어떻게 왔어?’하는 반응뿐이지, 제가 거기에 손님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업자들은 아무도 없었죠.
그런 시선들을 완화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했나요?
인도가 호주랑 비슷하게도 장애인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거기는 천지가 다 장애인이거든요. (웃음) 확실히 눈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더라구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장애인들을 볼 수 있는 장소가 한정적이잖아요. 그래서 한때 동료들과 함께 버스타기 운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늘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고 길거리를 다니면 더 이상 특별하게 쳐다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확실히 옛날에 비해서 인식 개선이 많이 이루어졌어요. 2012년에 다시 정동진에 갔었는데 호객행위 하던 사람들이 자기네 가게엔 턱도 없고 휠체어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면서 서로 오라고 하더라구요. 물론 비장애인들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아직도 사람 많은 주말에는 여행을 피하고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인식 개선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인식의 변화는 혁명보다도 어렵다고 하는데, 그런 점에선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죠.
출처 문화일보
후천적으로 생긴 장애라 장애가 있다는 걸 아셨을 때 굉장히 절망적이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제가 앓고 있는 근디스트로피라는 질병은 아주 서서히 진행되는 병이라 처음에는 장애라고 인식하지도 못하고 희귀 질환이라 처음에는 병명도 안 나왔어요. 그런데 점점 걷기 힘들어지면서 버스도 못타고 계단도 못 오르고 앉으면 다시 일어설 수도 없게 되더라구요. 그때서야 전문 병원으로 가니 희귀 근육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거죠. 그 때 의사 선생님이 전혀 방법도 없고 이 병은 진행성 질환이라 나중엔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게 될 거라고, 눈 깜빡이는 것도 안 될 거라고 그러셨어요. 앞으로 살 날이 5년 정도밖에 안 남았으니 그냥 좋은 거나 먹고 남은 인생 편하게 보내다 가시라고 하시더라구요. 게다가 유전병이라는 소식은 더 절망적이었죠.
치료도 안 되고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없었으니 그저 앓다가 실제로 한강 물에 뛰어들까 해서 한강다리로 향했던 적도 있어요. 난간을 올라가려는데 그 때 이미 장애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 힘이 없어서 넘지도 못하겠더라구요. ‘아, 이젠 죽는 것도 내 의지로 할 수 없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다가 한 편으로는, 어차피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는 건데 남은 시간을 절망적으로 보낼 바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원 없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고민하다가 제가 여행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고 그 때부터 여행을 하게 되면서 극복하게 된 거죠.
작가님에게 여행이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사실 여행지를 선정할 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조건이 ‘내가 이 곳을 갈 수 있나, 없나’예요. 아직도 가지 못하는 곳들이 정말 많고, 눈앞에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여행은 이렇게 매 순간 내가 가진 장애를 확인시키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시간이에요. 장애가 생긴 뒤로 못 가게 된 곳 중에 하나가 통영이었는데 KTX가 마산까지 연장운행 되고 그 즘에 경남에 있는 택시가 경남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조례가 제정되면서 다녀올 수 있게 됐거든요. 제가 다녀온 뒤로 많은 장애인분들도 가실 수 있게 되셨구요. 그럴 때의 성취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여행하면서 더 건강해진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여행 자체가 치유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 번은 한 장애인분과 바다로 같이 여행을 갔었는데, 함께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 분께서 사실 죽을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왔던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정말 깜짝 놀랐죠. 근데 여행을 다녀와서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셨다고, 고맙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때 다시 여행이 가지고 있는 힘을 느낄 수 있었죠.
출처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SK SUNNY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의 문화 향유권 보장을 위해 오디오 투어 가이드를 제작하고 있는데요, 써니들에게도 한 말씀 전해주세요!
여행을 같이 갔었던 한 기자분께서는 시각장애인이 여행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셨대요. 그래서 한 시각장애인에게 여행지에 와서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눈으로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시각장애인분들과 함께 여행할 때는 ‘발아래 단추만한 민들레꽃이 있는데, 한 번 만져보실래요?’라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드리려고 노력해요. 그럼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 스토리텔링 할 때 장애인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연결시킨다면 더 좋아하실 거예요. 그런 노력들이 많이 이루어진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요즘엔 여행을 안가는 대학생이 없을 정도인데, 대학생들이 여행으로 얻어왔으면 좋겠다 하시는 게 있을까요?
여행에서 얻어올 건 정말 많고 각기 다르겠지만, 자신의 문화와 생각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타인의 문화와 생각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대학생들에게 공정여행을 추천해주고 싶은데, 자신의 삶만 보던 것에서 벗어나 세상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느끼는 여행을 한 번 쯤은 경험해봤으면 합니다. 어항 속에 병든 물고기를 그냥 두면 어항 속 물은 썩고 말지만 함께 노력해서 아픈 물고기를 치료하면 어항 속 물은 다시 맑아질 수 있거든요. 여행의 목적도 중요하겠지만 여행하는 과정에서 지구촌 사람들은 공동체 운명이라는 명제를, 우리도 그 어항 속의 물고기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왔으면 해요.
우리가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똑같이 여행을 가고 싶어 하지만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길잡이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저 나눔은 일상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발자취가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지 닿을 수 있게 되는 그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길 바라며 그들의 달팽이 여행을 응원한다.
첫댓글 '근디스트로피' 란 그 녀석 요즘은 어떻습니까?
잘 읽었습니다 하루빨리 선진국을 따라 좋은 환경이 돼었으면 합니다ㅎㅎ
전선생님앞이로도
선구자적 삶의궤적을 많이
보여주세요
앞에서 이정표가되어주세요
항상건강 하시구요
그러셨군요!
누구나 장애는 힘이 들고 세상이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었을때 찿아 오신 분이 예수님이였습니다.
전윤선씨처럼 휠체어로 여행을 하면서 장애를 즐기는 또는 이기면서 장애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메신저가 되어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셨다라고 생각합니다.
휠체어에 날개를 단 윤선님...!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