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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깐 이렇게 교외로 나가 봤더니,
어제 이제 새벽녘에 아주 그 밤중에만 해도
막 그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좀 한참 있었거든요?
그러더니만 어제 낮에 보니까 오늘도 그런 것 같은데요,
어제 낮에 보니까 아주 그냥 전형적인 그 청명한 가을하늘인데
아주 구름이 그냥 이렇게, 그 어디 만화 같은 데서 보듯이
아름다운 구름들이 두둥실 떠가고 구름의 그림자들이 저 멀리 산 밑으로
그림자가 이렇게 같이 떠가는 모습들이 아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어제 바람이 또 아주 살랑살랑 조금 차다 느껴질 정도로 좀 이렇게 불었었거든요.
제가 이쪽으로 아주 바람 부는 거를 너~무 좋아하는데
바람 불고 또 요렇게 요즘처럼 좀 싸늘한 바람이 싸악~ 불어오는
이때의 그 느낌을 느끼면 그 느낌이 너무 좋지 않습니까? 저는 그 느낌을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런 느낌을 가만히 이렇게 온 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보면 아 정말 너무나도 뭐랄까,
좀 풍요로운 것 같은 아주 짠한 그런 어떤 진한, 그런 어떤 그 행복감, 이런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가을에 바람 부는데 이 바람을 온 몸으로 한번 충분히 느껴보고 접촉해 보고
온 몸으로 한 번 만져보고 그리고 저 아름다운 구름과 파아란 하늘,
이런 것들을 한 번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렇게 이제 가을이 되다 보니까 이제 조금 더 있으면
그 설악산은 지금 보니까 단풍이 한창 이제 잔뜩 들었다고,
그래서 신문에 보니까 설악산으로 주말에 한 4만 여명의 단풍객들이 다녀갔다, 이런 기사가 났던데요.
여기도 이제 단풍이 오고 단풍이 오고나면 이제 또 단풍이 다 떨어지겠죠.
이 단풍들이 보면은 한 해 동안, 올 한 해 동안에 그.....
(그냥 들리죠? 그냥도 아마 너무 조용해서 잘 들릴 것 같은데
요거를요? 저기 저 친구를 주면 여기 건전지를 넣어오면 되거든요?
예. 건전지만.. 또 되네~? ㅎㅎ )
그래서요.
이렇게 봄 때부터 숲에 이제 풀들이 막...ㅎ ??했다가
이제 봄에 아주 풀이, 초록이 이렇게 막 우거지기 시작했다가 여름동안 한창 그......
여름에 한창 이제 그 단풍이, 아니 풀들이 아주 우거져 있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을, 단풍으로서 아주 그 아름다운 모습을 피우다가...
(아, 밧데리가 다 됐네?)
떨어진단 말입니다.
이 단풍들은 아름답게 그냥 활짝 핀 다음에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나면 스스로 그 아름다움을 떨굴 줄 알쟎아요?
그 아름다움이 그렇게 오래 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정말 그 단풍이, 너~무나도 아름다움에 그냥 푹~ 빠져가지고
제가 어릴 적 중학생, 고등학생 때만 해도 어쩌면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단풍구경 간다는 거를 별로 잘 이해가 조금 안 됐었던 때도 있었어요.
‘단풍을 굳이 구경을 가나? 뭐 어디나 단풍이 있는데?’ 별 생각이 없었을 때가 있었는데,
아 어느 날인가 그냥 자연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그러면서 단풍이 피었을 때 산에 올라가 보니까
아~ 이거는 뭐 전혀 다른, 또 다른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펼쳐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서 너~무 아쉬운 거예요. 막 단풍이 이게 이제 진다는 게~.
얼마 안 있다가 핀지가 얼마 안 됐는데 얼마 안 있다가 바로 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 참 이게 아쉽고 가슴이 아프고, 그래서 그것을 참, 야~ 이걸 조금 더 두고두고 볼 수 없을까?
또 이렇게 저녁 때 그 아주 아름답게 낙조가 떨어질 때가 되면
그것을 바라보면서 정말 막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떨어지는 게 너~무 아쉬운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또 가만히 이렇게 세상을 살펴보니까
아 세상은 가을에 낙엽이 떨어질 때만 그 때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 신기하게도, 신기하게도, 낙엽이 다 떨어져서 겨울에 아무 것도 없는,
정말 아주 앙상한 가지만 피우고 있는 그 아주 참 볼품없이 그렇게 서 있는 숲의,
겨울 숲, 겨울 숲의 어떤, 아 뭐랄까.. 겨울 숲에서의 명상이랄까요?
겨울 숲의 어떤 그 아름다움, 정말 호젓한 텅 빈 아름다움, 그런 것들에 또 매료가 되고 나면
또 이 겨울, 겨울이 되면 또 너무나도 가슴이 설렙니다.
겨울 숲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요?
또 다른 아주 짠~한, 그 아주 기쁨이 막 그냥 샘에 고이듯이 고이거든요?
특히 또 눈이라도 한번 딱 오고나면, 눈 오고 난 다음에 숲으로 들어가면요?
아 이거는 천상세계가 따로 없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요.
근데 이게 겨울만 아름다운가?
봄에, 이 봄꽃이 피어날 때의 숲 속 풍경이란
아~ 이건 겨우내 기다리던 마음 때문에 더욱 그런지 몰라도 너무나도 또 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여름에 또 아주 오색도 아니고 아무 것도, 오직 초록으로 그냥 찐~하게 물들어 있는
그러다 비라도 한 방울 맞고 나면 막 더욱더 진하면서 팔랑팔랑 거리는
나뭇잎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 나름대로의 또 아름다움이 있단 말이죠.
그러고 나서부턴 이제 가을단풍이
필 때는 피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지더라도, 아 지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질 때 이렇게 떨어지는 아름다움이 또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다 지고 나서도, 다 지고 나서도, 아 비로소 이제
호젓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우리가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구나.
이렇게 우리가 느낄 수 있단 말이죠.
어, 그렇게 우리가 느끼게 되면
사계절이 그냥 온통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고
계절도 마찬가지지만, 또 날씨도 어떤 날씨가 아름답지 않은 날씨가 없습니다.
날씨도 참 그 햇볕 쨍할 때는 이 햇볕 쨍하는 청명한 날씨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비가 오는 날씨는 또 이 비가 오는 그, 아주 그 한 잔, 차 한 잔 마시고 싶고
차 한 잔 마시면서 아주 그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감상을 하고 싶은,
아주 또 이렇게 맑은 그 샘이 고인단 말이죠.
또 거칠 것 없이 그냥 폭풍우와 비바람이 몰아칠 때나
아주 그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어둑어둑한 날씨?
그것도 왠지 모를, 왠지 모를, 묘~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이게 그저 그런 날씨? 가만히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보면 그저 그런 날씨가 없어요.
좋은 날씨를 꿈꾸지만 좋은 날씨랄 게 없고 그저 그런 날씨랄 게 없고
모든 날씨, 모든 계절은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걸 보구서 이제 이 자연도 이렇게 이제
단풍을 활~짝 폈다가 다음 달 즈음 되면 단풍을 다 떨굴 텐데요.
이렇게 숲도 피울 줄 알면, 아름다움을 최대한 피워낼 때 그럴 때, 절정에서 떨어집니다.
어 봄에 꽃 중에도 그 동백을 아시쟎아요.
동백도 그냥 탁~ 피었을 때 이게 한잎 두잎 뚝뚝, 똑똑똑 떨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그 육중한 꽃잎 덩어리를 그냥 툭, 툭, 떨궈 버린단 말이죠.
어 이렇게 낙엽들이 정말 가장 아름다움을 빛낼 때
잠시 그것을 빛내고, 잠시도 빛내지 못한 채 그냥 뚝뚝 떨어진단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단풍이 떨어진 다음의
호젓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떨어짐의 아쉬움을 느끼지 않듯이,
그들도 그렇게 최고로 빛나는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만
가장 빛날 때 원 없이 떠난단 말입니다. 떨군단 말이예요.
사실은, 우리 사람들에게도요? 우리 사람들은,
우리 모든 존재는 파장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을 많이 했쟎아요?
인간의 존재도 마찬가집니다. 몸도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음도 마찬가지고
항상 이 파장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그 반복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잘나가고 뭔가 화려한 시절, 잘나가는 시절, 돈도 많고, 남들의 인정도 받고,
어디 가도 '야~ 저 사람 그냥 훨훨 나는구나' 싶은 그런 시절, 그런 시절이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그런 화려하게 잘나가는 시절이 있을 때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화려하고 잘나가는 시절이 있을 때
잠시 멈출 줄도 알아야 되는데 잠시 멈추는 방법을 전~혀 배우질 못했어요.
우리는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고 또 늙어 죽을 때까지 항상 학교에서 배운 것은 그겁니다.
항상 1등이 되어야 하고 1인자가 돼야 하고 앞을 보고 달려가야 하고
보다 더 부자가 되어야 하고 보다 더 앞서나가야 된다라는 것을 항상 배우다 보니까
뭔가 화려할 때, 꽃을 만발했을 때, 아주 그 단풍이 아주 오색으로 아름다울 때,
그 아주 짠한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멈추는 방법은 전혀 배우질 못한 채
그냥 앞으로 나가는 것만 알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사실은요?
우리가 너무 잘나간다 싶을 때, 이 너무 잘나간다 싶을 때 조심하라 하쟎아요?
너무 잘나간다 싶을 때, 잠시 멈출 줄도 알아야 되고 좀 비워낼 줄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못 그러냐면,
잘나간다 싶을 때는 잘나가는데 그 상황에서는 잘나간다고 느끼질 않아요.
아직도 부족하지, 과거에는 요정도면 잘나간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렇게 잘나가는 상황이 되고나면 그것은 남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잘나가는 게 아닙니다.
남들이나, 남들도 다 그만큼 사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더 많은 걸, 더 많은 것을 끊임없이 꿈꾼단 말입니다.
그러다가 또 더 화려해지고 더 빛을 그냥 뿜어내게 될 때, 그럴 때,
'야, 이제는 조금 멈출 때도 되었구나' 이럴 줄도 알아야 되는데
우린 그걸 모른단 말입니다. 멈추는 법을 전혀 배우질 못했다..
‘멈춘다’라는 것이 ‘일하다가 모든 그 직장을 포기해라’, 이런 얘기 아닙니다.
그 일은 고스란히 하고도 마음만 비울 수 있어요.
그 일을 고스란히 하더라도 마음만 비우게 되면,
훨씬 우리 몸과 마음에 가해오는 어떤 스트레스나 가해오는 부담감 같은 것들은 훨씬 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삶에 그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삶의 운율에,
이 삶의 순환에 나라는 존재를 좀 이렇게 맞춰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뭔가 화려하게 꽃피울 때도 있어야 되지만 그 꽃을 떨굴 때도 있어야 되고
뭔가 앞으로 진력해서 나아가야 하는 때도 있지만 잠시 멈출 때도 있어야 되고
또 너무 집착이나 미련을 갖지 않게 되면
그것이 잠시 주춤하게 되더라도 거기 휘청거리지 않을 수 있는 지혜가 생겨난단 말이죠.
어 그래서요? 우리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 이 수행하는 사람들,
혹은 인류의 수많은 성인의 반열에 오른 수많은 분들, 우리가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느끼기에 정말 막 ‘야 잘나간다 잘나간다’ 하는 그 순간조차 어때요?
부처님의 생애를 공부해 보면 그렇거든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딱 얻고 나자마자 35살의 아주 젊은 청년이었단 말입니다.
깨달음을 얻고 나자마자, 처음엔 5명에서 한 30명 정도로, 이렇게 이제 수행자가 교단이 늘어납니다.
처음에는 다섯 명의 비구로 처음 시작을 했다가, 한 30명의 청년들을,
그 야사와 야사 친구들을 교화해서 이제 출가교단이 생기고 그러면서 점점점 늘어난단 말이예요.
그러다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부처님 초기 교단에, 그 35세 되신 젊으신 부처님이었는데
그 당시 인도 전역에서 가장 큰 나라의, 가장 큰 도시의 마갈다 국에 가가지고요?
그 곳에 전국에서 모여든 엄청난, 그야말로 지혜로운 성인군자들,
온갖 사문들, 이런 사람들이 막 다 모였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훌륭하고 가장 존경을 많이 받고
또 가장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어떤 사문의 단체가
이제 가섭 3형제라는 단체였습니다. 한 천여 명의 수행자를 거느리고 있었어요.
근데 가섭존자 3형제 가운데 그 첫 번째 가섭이,
나이도 상당히 많고 아주 지긋한 분이고 그랬단 말입니다.
근데 부처님이, 서른다섯 되신 분이 그 곳에 가서 그 가섭 3형제를 교화하고
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전부 다 불교로 집단적으로 교화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로 개종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것이 소문이 돌기 시작해서
그 때부터 급격하게 교세가, 쉽게 말해서 확장이 되게 됩니다.
그 얘기를 듣고 마갈다국의 빔비사라 왕도 와서 부처님께 귀의를 하고
나중에는 칙령을 내려서 그 나라 전역의 모든 마을들에게 될 수 있다면, 가능하다면,
여건이 허락한다면 부처님을 모셔서 법문을 듣도록 모든 국민들에게 시켜주고
또 그게 어렵다면 부처님의 거룩하신 제자분들을 모셔서 법을 듣도록 하라,
이런 어떤 칙령까지 하다 보니까 그냥 어마어마한 교세확장이 순식간에 됐단 말입니다.
근데 이제 그것이 이제 그 이웃나라, 이웃나라,
그 당시 인도에 큰 4개국이 있었고 또 작은 나라로는 16개국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아주 큰 나라들 전부다가 나중에는 부처님을 믿게 되고 모든 임금들이 믿게 되고
아주 그 엄청난 부유한 상공업자들도 불교를 믿게 되면서
사찰도 많이 지어지게 되고 아주 엄청난 교세확장이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그렇게 겉으로 봤을 때 화려한 교세확장을 가져 왔지만
부처님의 삶은 어땠을까요, 삶은? 부처님의 삶은 똑~같았습니다.
처음 출가했을 당시나 나중에 화려했었을 당시나 소박하게, 삶은 언제나 소박했다.
언제나 하루에 한 번 일정식의 탁발을 하셨을 뿐이고
언제나, 부잣집만 다니는 것이 아니니까 항상 일곱 집을 탁발하면 그걸로 끝인 겁니다.
그러니까 잘 사는 집, 못 사는 집, 불교를 믿는 집, 안 믿는 집 할 것 없이
그냥 일곱 집을 갔다가, 받으면 받는 대로 드시고 못 받으면 못 받는 대로 그렇게 그냥 사셨단 말이죠.
옷도 그렇다고 해서 막 거창한 옷을 막 몇 벌씩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아무리 그 화려한 빛을 뿜어낼 때라 하더라도
그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소박하고 어떤 청빈한 가난의 정신,
이것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셨단 말입니다.
그럴 때는 그것이 바로,
매 순간순간 멈추는 삶이고, 매 순간순간 그칠 줄 아는 삶입니다.
나아가지만 그 사람은 나아가면서 동시에 그치고 있는 겁니다.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멈춤의 삶을 항상 지니고 있는 겁니다.
달려가지만 멈추고 있는 겁니다.
달려도 달린 것이 아니고 멈추더라도 멈춘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은 멈춤이라는 것을 배우지 못한 채 그냥 달려가기만 하고
그 달려가는, 우리가 달려가는 공통의 목적들이 보통 보면
부유함, 경제력, 좋은 집, 좋은 차, 이런 어떤 물질적 풍요로움,
이런 걸 향해서 대부분 많이 달려간단 말이죠.
그런데 수많은 인류의 성인들이 모두 다 삶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가난하고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공통적으로 살았거든요.
어떤 인류의 정말 훌륭하신 성인을 보십시오.
정말 우리가 봤을 때 '야 저 사람은 참 훌륭하다.' 내지는
종교적으로도, 종교인들 가운데도 아주 큰 절, 큰 교회, 큰 어떤
종교단체를 건립해서 아주 어마어마한 교세를 확장한 분들 계시거든요.
근데 그 교세자체를 가지고 그 분이 성인이라고 얘기 안하거든요.
그렇게 큰, 그 저 종교 어떤 건물을 짓고 살면서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유재산과 개인의 집이 으리으리하고
타고 다니는 차가 으리으리하고 그런 종교인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이제 그것을 저는 무조건적으로 그것이 나쁘다 좋다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도 나쁘다 좋다라고 우리가 사실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그렇게나마 우리가 배우는 관점에서, 수행해나가고
닦아나가는 관점에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은 뭐냐면요?
그 인류의 성인들이 그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 분들은 충분히 가난과 소박의 정신, 작은 것으로도 충분한 행복,
우리가 천만 원, 억, 십억, 조,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그 분들은 물질이 없이도 충분히 느끼는, 누리는 것은 우리보다 더 깊이 느끼고 깊이 누렸단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우리는 풍요로워지는 것을 꿈꾼단 말이예요? 그런데 풍요로워지는 것은,
결코 외부적인 물질과는 전혀 무관한 겁니다. 전~혀 무관한 겁니다.
우리는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서, 많은 물질적인 소유를 얻고자 하는,
어떤 그 한 길로만 달리고 있단 말입니다.
근데 그 풍요로움이라는 것은 내 안에서 느끼는,
‘느끼는 감각’이지, 그것은 ‘보다 많으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만끽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정말 풍요로움을 느끼는 데는 많은 게 필요할까요?
정말 풍요로움을 느끼는 데는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뿐더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많은 것에서는 그 짠한 행복감을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풍요로움을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 고맙고 감사한 아주 짠하고 감사한 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부유해질수록 오히려 우리에게 풍요로움은 박탈당하기 쉬워요.
부유해지는데 풍요로움을 박탈당한다, 그 말입니다.
아주 그냥 저 쉬운 예를 들어보면요,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면,
우리 인제 그 신병교육 때, 우리 저 신병들이 이렇게 법회 보러 온단 말입니다.
근데 요즘에는 좀 덜한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이제 군에 와가지고
이제 군승으로 와서 있었을 때 1사단, 파주 1사단에 있었습니다.
근데 1사단에 있을 때 이제 신병교육 때 법회를 제가 가서 하는데
한 100명에서 200명, 250명까지 이렇게 법회를 나왔거든요?
근데 그 때는 너~무 돈이 없어서 정말, 정말 법당에 너~무 돈이 없었습니다.
너무 돈이 없는데, 지금은 한번 법회 오쟎아요. 일 주일에.
그런데 그 때 돈이 너~무 없는데 일주일에 법회를 3번을 봤어요.
신병교육 때 3번을 봤습니다. 수요일 저녁, 일요일 오전, 일요일 오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정말 신기한 노릇입니다. 어떻게 그 초코파이 다 댔는지..
이렇게 200명이 초코파이 하나만 줘도 이거는 감당이 안 되는, 전~혀 감당이 안 됐었습니다.
그 때는 초코파이 2개를 줄 수가 없었어요. 돈이 없어서.
음료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막 큰~ 뭔가 초파일 쯤 끝나가지고 뭔가 이제 좀 된다 싶을 때,
그 때 이제 겨우 요구르트 하나 정도 더 줄 수 있었습니다.
그 4개에 5개 달린 요구르트, 이렇게 4줄에 천 원 하는 거 있쟎아요?
오사 이십, 스무 개에 천 원 하는 거. 그거 해서 하나씩 주면,
얘네들은 맨날 초코파이 하나만 주다가 그 요구르트 하나 더 주쟎아요?
막, "부처님 만세~~~!!!" ㅎㅎㅎ "스님 만세~~~!!!" ㅎㅎㅎ 이러면서 막 그냥,
저를 막 그냥 막, 아주 얼마나 그냥 그 엄청난 그 환대를 받으면서 막 입장을 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래서 뭐 특별한 먹을 것이 있쟎아요? 누가 이렇게 보시를 해 준다.
이 특별한 먹을 게 있으면, 제가 빵을 보시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처음에 딱,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아이들이 탁~ 긴장하고 있습니다.
들어갈 때 제가 빵을 한 손에 딱! 들고 이렇게 탁~ 아주 그냥,
그 날은 얼마나 제가 아주 그 뿌듯한 마음으로 걸어 들어간단 말입니다.
문이 탁! 열리고 제 손에 탁~ 들리는 것이 있으면서 들어가면,
박수가 끊이지 않고 막 기립박수를 그 어떤 제가, ㅎㅎㅎ 뭐 그 어떤 제가,
이 서울에 큰 절에 있을 때도 그 많은 신도님들 사이에 아무리 저 감동 있는 뭐 설법을 했어도
제가 또 어릴 때 이렇게 무슨 음악 이렇게 좋아하고 해서, 우리가 쪼마낳게 이렇게 공연을 한번 했었을 때
아무리 뭐 좋은 걸 해도, 그래도 기립박수가 나온 적이 없는데
단지 요구르트 하나 가지고 초코파이 하나 주다가 두개 줬다고
어마어마한 환대를 받고 그러면서.. 와~ 정말 참 아주 그 행복했었단 말이죠?
근데 어쨌거나 아이들이 한 2백 명씩 왔단 말입니다.
근데 어느 날, 7명이 왔습니다. 분명 2백 명이 와야 되는 타임인데, 7명이 왔어요.
“야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뭔 일이냐?” 이렇게 물어봤더니,
“오늘이 교회에 세례 하는 날이다.”
“야, 너희는 불잔데 불자랑 교회 세례랑 뭔 상관이냐?” 그랬더니
“교회에 세례는 그냥 세례가 아니다. 오늘 하는 세례는
서울에서 큰~ 교회에서 어마어마한 위문품을 가져오는데다가,
서울에 교회에 여대생들이, 이게 한 한 뼘, 두 뼘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 찬양을 한다.”
그 얘길 듣고 "야 그러냐? 너희들은 왜 안 갔냐~?"
얘네들 데리고 저도 같이 구경 가고 싶더라구요. (ㅎㅎㅎ)
“너희들은 왜 안 갔냐?” 이랬더니, "저희는, 배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ㅎㅎㅎ)
그래서 딴 사람들이 안가고 싶어 하는 애들이 있긴 있었지만 그 유혹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가 그 7명한테 "야~ 너희들.. 내 차에 타라..!"
그 7명을 법회 딱 끝나고 일곱을 데리고 피엑스 데리고 갔습니다.
피엑스에서 “먹고 싶은 거 맘껏 먹어라!” (ㅎㅎㅎ)
“내가 일곱, 내 언제, 내 평생 이래 보겠느냐? 7명 왔으니까 가능하다. 2백 명 오면 이건 불가능하다.”
너~무 고마워서, 제가 눈~물 나도록 고맙더라고요. 정말 이 친구들한테.
눈~물 나도록 고마워서 그래 줬습니다.
근데 그 다음 주에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인제 그 때 이제 비로소 실체를, 실상을 깨달은 겁니다.
아~ 얘들이 200명이 나는 다 독실한 불자인 줄 알았어요? (ㅎㅎㅎ)
‘아~ 그게 아니구나. 이거 내가 착각했었구나.’
아 이 친구들은 그야말로 초코파이교 신자고, (ㅎㅎㅎ)
제가 그걸 안 것이 그 다음에 제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서울에 제가 잘 아는 신도님 중에 한 분,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차 저차 얘길 하고서, 아~ 이거 내가 그 당시 젊은 혈기에,
“제가 분통이 터져 안 되겠습니다. 이번 우리 수계법회 가는데 한 번 위문을 좀 와 주십시오.”
그래 그 분이 제과점에, 아주 비싼 제과점 빵을, 막 이만한 박스로 가져오시면서
당신이 이제 어떻게 또 구해가지고 음료수까지. 그 때 처음으로 캔콜라를 제가 줘 봤습니다.
그걸 가지고 인제 와서요? 거기 있는 그 2백 명 모인 아이들한테 원~없이 줘 봤습니다.
정말 그 때, 너~무나도 원 없이 줘 봤습니다. 그때의 그 환호성은요?
이건 귀고막이 찢어져도 정말 한이 없을 정도로 어머어마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 주에 큰일 날 일이 벌어졌습니다.
법당에요? 근 500명 가까이가 온 겁니다. (ㅎㅎㅎ) 400명이 넘게 왔어요.
그래가지고 아니 이 목사님한테 연락이 온 겁니다. ㅎㅎ
“법당에서 도대체 뭔 짓을 하셨길래~ (ㅎㅎㅎ)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저도 물론 한 번 그.. 했기 때문에 할 말은 없습니다만~” 아 그 비법을 좀 알자고 연락이 왔어요.
“뭐, 여대생이 왔습니까?”
“여대생도 안 왔는데 이렇게 어마어마했다.” ㅎㅎㅎ
그걸 보구 제가 아.. 역시...
그러니까 그 왔던 500명 가운데는 이게 불교신자겠습니까? ㅎㅎ 그냥 그래 온 겁니다~?
그러니 그 친구들한테 이거 분명합니다, 이게. 딱 그 전방은.
지금 여기 후방은 좀 덜해요. 전방은 민간인을 구경을 못합니다. 주로.
그러다보니까 이게 먹을 거에 더 좌우됩니다. 그래서요?
초코파이 하나 줄 때와 두 개 줄 때 인원수가 그 다음 주에 확 차이가 납니다. (ㅎㅎㅎ)
두개 주다가요, 정말 3개를 딱 주쟎아요? 아이들이 생각을 좀 잘 못합니다. 단순해요.
그래서 두 개 주다가 3개를 딱 주면, 그날 신이 나가지고 3개 줬단 말입니다.
근데 그것도 모르고 그 다음 주에 엄청 많이 와요. 또 3개 줄줄 알고.
그 다음, 그 날 딱 3개 줬으면 대충 이렇게 머리를 써서,
‘야 다음 주에는, 야 법당은 이제 한 번 했으니까 이제 좀 다른 데를 가야 되겠구나’
이게 대충 좀 머리를 굴려야 되는데 너무 순수해서, 머리 굴릴 줄을 모릅니다.
햄버거를 한번 어쩌다 딱 주쟎아요. 그러면 햄버거 주는 건 연례행사거든요.
근데 그것도 모르고 햄버거 한 번 줬다고 그 다음 주에 어마어마하게 나옵니다. (ㅎㅎ)
근데 이거에 따라 인원수가 차이가 난단 말이예요?
그래서 초코파이를 정말 많이 주면 얘네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반응이 일어납니다. 정말.
얘네들은 진~심으로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 신병이었던 친구 하나를 제가 군종병으로 뽑아가지고 법당에 데려다 놨습니다.
우리 법당에 딱 가면, 전방에 어떠냐 하면 법당에 딱 가면,
이걸 다량으로 사야지만 초코파이는 강력하게 싸지거든요.
그래서 법당 창고를 딱 열면요, 초코파이가 박스로 50여 박스가 있습니다. 창고 전체가 초코파입니다.
얘가 처음에 야금야금 그냥 초코파이를 박스째로 갖다놓고서
그냥 그거 하루 종일 뜯어먹더라구요? 한 2, 3일을.. 이등병이니까.
한 2, 3일을 뜯어먹더니만 그 다음부터 한 일주일 지나고 나니까
초코파이 전~혀 안 먹는 거예요. 손도 안대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야 너 초코파이 이제 안 먹냐?" 이랬더니 “아이, 이제 쳐다도 보기 싫다”고...
군종병들 치고 초코파이 먹는 거 봤습니까? 여러분, 혹시? 군종병이 초코파이 먹는 거 봤습니까?
군종병은요? 어지간히 배고파야 초코파이 안 먹습니다.
저는요, 저는 초코파이가 쌓여 있쟎아요?
저는 아마 제가 초코파이 먹는 건 연례, 진짜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입니다.
저는 초코파이 어지간해서, 어지간히 배고파서 안 먹습니다.
하도 많이 쌓여 있으니까 보기만 해도 질려요. 물론 요즘에 이제 그 파이계의,
우린 초코파이, 맨날 왜 이렇게 우리는 이게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우리가 줄 수 있는 게 항상 초코파이밖에 없을까? 엄청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별에 별 걸 다 시도해 봤어요. 최고 좋은 건 초코파이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거 초코파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구나’를 깨달았는데,
물론 이제 우리 관음사는 요즘에 그 아주 혜성처럼 등장한 파이계의 강자,
그래서 요즘에 뭡니까? 그 가나 파이!! (ㅎㅎㅎ)
여러분들 저 전방에 가면 구경도 못합니다. 이제 그런 것도 먹고 하는데.
우리 저 군종병들은 이게 초코파이 하도 많으니까 먹지 않는단 말입니다.
결코 안 먹어요. 왜 안 먹겠습니까? 많으면 안 먹습니다.
이 친구들도, 여기 군에 있을 때는 먹지만요?
휴가 딱 나가는 순간, 매점, 저기 저 수퍼 들어가서 초코파이부터 사먹겠습니까?
초코파이 거들떠도 안 봅니다. 절대 거들떠도 안 봅니다.
많으면 그것에 대한 감사함을 전~혀 못 느낍니다. 많으면 전~혀 고맙지가 않습니다.
뭐 누군가가 뭔가를 막 욕심이 많고 집착이 많으면
굳이 먹지 말라고 먹지 말라고 기를 쓰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것은 마음속에 또 다른 집착을 불러옵니다.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면 어느 정도 먹다가 이제 안 먹습니다.
제가 옛날에, 그 어릴 때 저는 뭐 콜라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요.
어쩌다 콜라 한 번씩 먹었는데, 어딘가에서 이렇게 공부했던 게 뭐냐면,
콜라를 먹으면 중독이 되는데 그게 아주 심각하다는 얘기를 듣고
그러니까 괜히 콜라가 더 땡기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 참 먹으면,
또 그 전에는 콜라에 별로 집착도 없었고 콜라를 별로 그냥 있음 먹고 없음 안 먹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 얘길 듣고 나니까, 이 콜라 먹으면 중독된다는 그 생각이 있고 나니까
괜히 콜라가 더 먹고 싶, 콜라가 막 더 고픈 거예요.
그래가지고 확 큰 맘 먹고 콜라 한 번 먹고 말아야지 하고 콜라 한 번 딱 먹었는데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먹지 말라고 하니까~ 중독된다고 하니까~
그런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콜라를 한 이틀을 그냥 두세 개를 막 먹어봤거든요.
근데 이게 별로 맛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죠.
그러니까 오히려 먹지 말라, 먹지 말라 하면 더 오히려 그럴 수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실은요? 아까 이 지금 제가 초코파이 비유를 들었지만,
모든 게 마찬가지입니다. 작고 소박했을 때, 그 때, 거기에 대한 풍요로움을 느낍니다.
초코파이 하나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완전하게 누릴 수 있어요.
제가 그 때 그 말씀을 드렸는데,
경기도 가평에 어떤 이십대, 삼십대가 주를 이루는 그 이제 대안마을이죠.
그러니까 뭐라 그러죠? 그 무슨 마을이라 그러죠? 귀농하는 마을입니다.
근데 그 마을에 갔더니, 이 사람들이 돈을 벌지 못하니까
그냥 자급자족을 하고 사는 겁니다. 자급자족을 하고 살다 보니까,
잠깐 이제, 제가 가서 잠깐 앉아서 그 마을 사람들이 함께 논, 이렇게 벼를 베고 있었어요.
근데 가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둥그렇게 앉아가지고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 둥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조차, 거기 있는 모든 농부들이요?
자기 그냥 앉아 있는데 그 벼를 베고 나면, 베고 나니까 그 벼가 있었으니 그 밑에 뭐 있어봐야 뭐가 있겠어요.
내가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논두렁 옆에도 보면은 그냥 잡초밖에 없죠.
근데 계속해서 뭔가를 뜯는 겁니다.
계속해서 뭔가 하나씩 하나씩 뜯는데 보니까, 그냥 모든 풀을 다 뜯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좀 이따가 잠시 쉬는 시간인데
옆에 앉아가지고 막 이렇게 하나하나 뜯는 데 보니까
그냥 뭐 필요한 약초나 나물을 뜯는 게 아니고, 모든 풀을 그냥 다 뜯습니다.
그래서 “그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거냐? 그 뭐할려 그러냐?” 그랬더니,
“먹을려 그런다.” “이거를 도대체 뭘, 어떻게 먹냐? 이거 뭐냐?” 이렇게 물어봤더니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하나하나 이것은 무슨 풀이고 이거는 어디에 좋은 거고
이건 어떤 약초고 이건 나물로 해먹으면 맛있고 이건 어떻게 해 먹으면 맛있고, 얘길하는데요?
정말 우리가 먹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먹지 못할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분들은요? 그 어떤 것도,
이 산에 들에, 산에 한번만 쓱~ 들어갔다 나오면
가을 끝날 때까지 산에 씩~ 들어갔다만 나오면 밥 먹기 전에~
한 10분만, 5분만 들어갔다 나오면, 그 날 점심 먹을 것이 밥만 있으면 그냥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 필수품은 된장입니다. 된장, 쌈장입니다.
그러니까 그 마을에는 된장, 쌈장만 있으면, 고추장만 있으면, 그냥 다 되는 겁니다.
아니면 턱턱턱 이렇게 무쳐가지고 그냥 먹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요?
우리가 봤을 때는 정말 잡초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소중한 나물이고 너무나도 소중한 반찬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도시 사람들 어때요? 우리는 그 반찬 뜯어다 주면 먹습니까?
아마도 여러분들은 선택적으로 아는 것,
여름, 봄에는 냉이, 달래 같은 건 요즘에 있지도 않고
뭐 냉이나 이렇게 뭐뭐 몇 가지, 민들레나 이런 몇몇 가지밖에 모르쟎아요?
그거만 먹는단 말입니다. 근데 그것도 어때요? 사다 먹고, 돈 주고 사다 먹고.
그리고 그것도 누가 많이 뜯었다고 이렇게 갖다 주면,
먹어야지~ 하고 냉장고 넣어놨다가 또 안 드신단 말이예요. 고마운 거를 잘 모릅니다.
왜냐면 언제든, ‘야 그거 마트 가 천원만 주면은 막 엄청 사먹을 수 있는데
그걸 뭐하러 그렇게 돈 들여서 시간 들여 가지고 낭비해서 나가가지고 그걸 뜯냐?’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돈이 있으면 절대 그걸 뜯을 생각을 못해요. 돈이 있으면. 돈 주고 쉽게 살 수 있으니까..
돈 있으면 모든 게 쉬워집니다. 작은 것에서 감사함을 누릴 준비가 안 됩니다.
근데 돈이 없을 때는 모든 것에서 우리가 아~주 깨어나게 되고 모든 것이 감사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은요? 그러니까 한 번씩 아파트를 간답니다.
한 번씩 그 마을 공동체에서 쓰는 트럭이 하나 있어요.
그 트럭을 타고 거기 있는 그 공동체 이루는 사람들이요?
트럭을 타고 아파트에 한 번씩 갑니다. 언제 가냐면, 아파트에 이렇게 뭐
플라스틱이나 뭐, 이렇게 저기 뭐 한 번씩 가면은 아파트에서 내놓은 것들 있쟎아요.
못 쓴다고 내 놓는 것들, 그걸 주우러 갑니다. 아파트 관리소장만 잘 이렇게 알아가지고~
필요한 거, 이렇게 뭐 좀 농, 이사 가는 사람들 막 놔두고 가쟎아요?
그런 것 있으면 전화 달라고. 그러면 우르르 가가지고 막 끌고 오면요?
그걸 가지고 온갖 재활용을 다 해서 씁니다. 그러면서 야~ 이 귀한 걸 버린다고..
당신들이 저기 저 압구정동 같은 데 한번 큰~ 아파트촌에 한번 가면요?
어마어마하답니다. 정말 자신들은 어마어마한 보물을, 막 보배를 캐가지고 온답니다.
이건 백화점이 따로 없대요. 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남들은 쉽게 쉽게 버리는 것을 그 사람들은 너무나도 감사하고 찐하게
너무나도 풍요로운 마음으로써 그것을 쓰면서 너무나도 행복해 하거든요.
근데 돈이 있으면 그게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돈이 있으니까 언제든 사면 된다, 이 생각 때문에.
언제든지 사면 되는데 그게 뭐가 행복하겠어요? 돈이 다 해 줄 건데.
그렇기 때문에 정말 우리가 돈으로 쉽게 쉽게 사는 건 어떻습니까?
거기에서 풍요로움을 못 느끼고, 거기에서 감사함을 못 느낍니다.
전혀 그것이 우리를 기쁘게 하지도 않고 아주 그 참 소박한 그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요, 그 이제 태권도를, 학교 끝나면 태권도를 좀 배우고 이랬었는데
제 동생이, 제 동생이 이제 태권도 학원에 가면, 자기 이렇게 운동복 넣어놓는 신발장이 이렇게 있습니다.
근데 어느 날 이제 갔는데요?
저희는 그때까지만 해도 바나나라는 거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바나나라는 말만 들었었어요. 그런데 바나나가 어떠냐? 이러면
"아이 뭐," 아버님께서 제가 "바나나 맛은 어때요?" 물어봤더니
일부러 안 사줄라고, 그게 또 비싸기도 했었고 귀했었는데
"야 그거 맛도 없어. 그거 그 뭔, 코, 코 같애. 코 맛나~" 이러면서 그 얘기 했던 게 기억이 나요.
그래서 이제 맛이 없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아, 딴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그게 또 맛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나나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상탠데, 제 동생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태권도를 학교 끝나고 제 동생이 이제 낮반 하고 먼저 가고,
저는 이제 저녁반을 하고 가야 되는데, 태권도 하러 딱 갔는데,
제 문은 저밖에, 열쇠가 저밖에 없으니까 못 여니까 거기 종이쪽지 요렇게 넣어놨습니다.
그래 딱 보니까 종이쪽지가 있어 딱 읽어봤더니 제 동생이,
“형, 나 오늘 바나나 먹었다?”
남들이, 누가 먹던 바나나를 조금 줘가지고 맛을 봤다는 거예요.
근데 내 태어나 처음 먹어봤는데 아빠 한 말은 다르다. 그러면서 이게 맛있더라. 하면서,
내가 쪼금밖에 받은 게 없어서 내가 뭐 많이 받은 게 아니고 쪼금밖에 받은 게 없어서,
내가 많이는 안 남겼고 내가 반 먹고 반을 남겨놨으니까 어디 있느냐 하면 하고 막 약도를 그려서 막 해 놨어요.
그래 봤더니, 우리 태권도 도장 옆으로 가면
뒷뜰로 가면 그 이게 집 지을려고 막 하는 공터 같은 게 있었습니다.
공터가, 공터 옆에 보면 블럭 같은 거나 이렇게 막 쌓아두는 이런 게 있었어요.
근데 그 블럭 쌓아두는 곳 저 밑에 블럭을 몇 개를 들춘 다음에
밑에다가 이렇게, 비닐봉지에 이렇게 싸가지고 비닐봉지에다가 탁 넣어놓은 겁니다.
그거를 찾으려고 그 ㅎㅎ 어디 좀 약도를 제대로 그려놓던가.
그걸 안 찾을 수는 없고 왜냐면 그걸 찾, 이게 운동 끝나고 나면 배가 너무 고프거든요.
너무 고픈 차에, 내가 일부러 시작할 때는 바로 못 가고 끝나고 이제 배도 고픈 차에,
이걸 먹겠다고 이제 가서 막 그거를 다~ 뒤지면서 진짜 엄청 고생해서 뒤졌더니,
친구들이 뭐하냐고. “아이, 아무것도 아니다”. (ㅎㅎ) 빨리 가라 빨리 가라 해서
“뭐 도와줄게 도와줄게” “아이, 필요 없다 필요 없다 가라” 해서 다 보낸 다음에
겨우겨우 해서 겨우 그 검은 비닐봉지 찾았습니다. 나중에 보니까요?
검은 비닐봉지 안으로 이게 흙이 들어가 가지고 (ㅎㅎ) 바나나 막 흙이 다 묻은 거예요.
그래서 입으로 넣어가지고 이렇게 입으로 쭉쭉쭉 해서 흙을 탁 뱉은 다음에
이제 그거를 (ㅎㅎㅎ) 진짜 거짓말 안 하구요?
요~만큼 있어요, 요~만큼. (ㅎㅎㅎ) 그러니까 손가락 한마디.
그런데 그것이 정말 지금까지도 그 짠~하고 그 고마움, 동생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그 바나나에 대한 정말, 정말 야~ 그 맛,
그 맛과 정말 그 짠한 행복감, 그걸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바나나, 그 작은 거 한마디, 내가 내 인생에 먹어 본 최고의 바나나였거든요.
그걸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법당에 바나나가, 바나나 시즌에는 바나나가 너무 많이 올라옵니다.
지금은 저희 바나나 잘 안 먹죠. 바나나 잘 안 먹습니다.
지금은 그 먹어도 그 맛이 절대 나지가 않습니다.
또 제 어릴 때, 우리는 인제 어릴 때 여러분 다 그러셨을 텐데,
운동화 사면, 운동화를 절대 저는 아마 어릴 때 이게 신발이 두 개가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어요.
항상 하나, 하나고 그 신발 다 써야 또 다른 신발을 쓰쟎아요?
근데 제가 이렇게 신발이 잘~ 빵꾸가 잘 났습니다.
근데 이제 신발을 어지간히 빵꾸가 나지 않고서는,
빵꾸가 뻥! 나가지고 보기 싫지 않고서는 그냥 항상 그냥 신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빵꾸가 났는데 어딘지 모르는 거 있쟎아요?
바닥이 빵꾸가 났는데, 비는 새는 데, 옛날 신발은 비도 다 새쟎아요.
근데 뭔지 모르게, 이게 나는 신발이, 비가 안 새는 신발이라는 걸 처음에 경험했을 때
정말 정말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발이 비가 안 샐 수 있구나.
근데 이제 그 신발을 다 떨어졌을 때
어머님이 이제 탁 데려나가 가지고 신발 하나 탁~ 사주면
정말 그 참 얼마 되지도 않는 그 신발을 사가지고
정말 개선, 진짜 장군이 된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막 그냥 이렇게 오고..
그리고 또 신발 메이커 집이라고는 들어가 본 적이 없고, 그냥 시장에 가면 막,
프로스팍!스, (ㅎㅎ) 뭐 아삭!스, 뭐 퓨~메, 이런 거 있습니다. ㅎㅎㅎ 하여튼 뭐 이~상한 그 메이커들.
그래 그런 걸 사가지고 탁~ 신으면 그것이 정말 그렇게 기쁘고...
하루는 저희 아버지가요?
아버지가 우리 어릴 때, 한 번씩 아버님이 월급 좀 많이 받으실 때는
월급날 시장에서 이렇게 3천원 주고, 2천원, 3천원 주고
통닭 한 마리를 사가지고, 이걸 잘라가지고 직접 튀겨주는 게 있었어요.
그걸 소금에 찍어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는데, 한 번씩 그걸 튀겨먹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게 아주 그렇게 맛있었는데, 우리가 너~무 행복했었었거든요.
근데 어느 날 아버님께서 요만한 그 은박지에다가요, 정말 쪼~끔, 이렇게 정말 쪼끔,
한 세 개? 한 세 조각 정도? 두세 조각 정도를 이렇게 뭘 싸가지고 오셨어요.
“그게 뭐냐” 그랬더니 어디를 이렇게 갔더니 거기서 그 때 뭐냐면,
페리카나 치킨이 이제 막 나오기, 나오구서 좀 이렇게 좀 시간이 됐었습니다.
근데 페리카나 치킨을 그 때까지 저는 말만 들었지 먹어보진 못했었어요.
그런데 아버님한테 페리카나 치킨이라는 게 새로 나왔다는데
이게 먹다가 우리 그 아버님이 주신 거 먹다가 “그런 건 무슨 맛일까요?” 그랬더니
아버님 하시는 말씀이 "아, 그거는~ 돈 많~은 부자들이나 먹는 거야.
아, 그거는 우리 같은 사람이 먹으라고 하는 게 아니고 그거는 한마리가 말이 한 마리지 쬐끔밖에 안 되고
그건 비싸기도 엄청 비싸고 그거는 부자들이 먹은 거야." 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 이제 어딜 가서 그걸 드신 거예요.
근데 우리가 그 했던 얘기가 생각이 나가지고 우리 인원수대로 하나씩 ㅎㅎ
조금씩 먹으래서 몰래몰래 해가지고 이렇게 싸가지고 온 겁니다.
그걸 하나 뜯으면서요? 야~ 이거는 정말, 이건 뭐,
초코파이계의 뭐 혜성처럼 등장한 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통닭계의 정말 신화! (ㅎㅎ) 와~ 정말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양념통닭이라는 것이.
아~ 정말 깜짝 놀랬습니다. 그 때 그게 그렇게 맛있었단 말이죠.
근데 이제 나중에는, 그 양념통닭을 실컷 먹을 수 있었을 때는 그 맛이 결코 되지가 않는다.
제가 이거 그 운동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항상 이게 차비만 딱 줘요.
그럼 차비가 50원, 60원 했었거든요, 버스?
그러면 그 버스비를 딱 가지고 있는데 어떨 때는 백원 이래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집에서, 운동하는 데서 집까지 걸어가려면 한 40분이 걸리거든요?
버스타면 바로 가서 밥을 먹을 수 있쟎아요?
근데 버스 타면요, 바로 버스타고 가서 밥을 먹으면 더 배가 좋쟎, 든든하쟎아요.
그런데 이제 운동하고 내려와서 이렇게 시장 쪽으로 가다 보면요?
거기 이렇게 그 떡볶이하고, 그 당시 우리 고향에는 빨간 오뎅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오뎅 이렇게 막 떡볶이랑 같이 버무려주는.. 근데 그거를요?
학생들, 초등학생들을 위해서 이렇게 쪼만한 컵에다가 백 원어치를 줬어요. 백 원어치를~.
아, 이 백 원어치를 먹고 싶어 죽겠는데, 서성거리다가 요만큼 가다가 다시 와서 먹을까?
가다가, 먹을까? 왜냐면, 그걸 사먹으면 이제 걸어가야 되니까.. 걸어가더라도 내가 먹을까?!?
온~갖 분별하다가 까짓껏 야 “백 원어치 주세요” 해가지고 그걸 신나게 먹고
국물 더 달라 그래가지고 막 그, 그 매운 국물을 끝까지 막 그냥 탁~ 넣고~ 그 오뎅국물 주쟎아요.
거기 앉아가지고요? 겨울에 그 오뎅국물을 계속 리필을 담고 있는 겁니다. (ㅎㅎ)
ㅎㅎ 그러니까 그 주인 아주머님이 ㅎㅎ "야~ 좀 가라~!" (ㅎㅎ)
이럴 때까지 막 먹었었던 그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게 참 너무나도 맛있고 너무나 행복했었단 말이죠.
근데 이렇게 정말 우리가 나이가 들고
정말 우리가 돈을 벌고 우리가 마음껏 살 수 있고 마음껏 쓸 수 있고
이럴 때 그것에, 그 때의 그 행복감, 그 때의 그 짠한 것들을 못 느낍니다.
그 때 우리, 저기 우리, 산에 가가지고
이렇게 산딸기, 여러분 산딸기뿐 아니라 뱀딸기 있쟎아요?
뱀딸기 사실 맛대가리 하나도 없고 못 먹쟎아요.
근데 그 때는 뱀딸기도 다 따먹고~ 그러면서 그것도 맛있다고 막 따먹었었거든요?
그리고 막 뱀딸기랑 뭐 진짜 이거는 먹기가 좀 애매한 것들도 먹고, 꽈리도 먹었습니다, 저는.
이건 뭐 별로 이렇게, 이건 굳이 먹어도 되지 않는 건데도
그냥 그 따먹는 그 즐거움에 그냥 함께 따먹고 이렇게 했는데,
지금에 와서 어디어디를 산에 가서 이렇게 뭔가 따 먹고 그러는 사람이 어딨어요~.
제가 저기 안나푸르나에 갈 때 한 4천, 3천고지 가까이 가는데
거기에 산딸기가 있더라구요. 신기하게 그 옆에, 그 고지에 산딸기 엄청 많더라구요?
그런데 이 여행자들이 그렇게 많이 지나가쟎아요?
이 여행자들이 거의가 이제 그 저 외국인들, 유럽인들이나 뭐 한국인, 일본인 이런 사람들이쟎아요?
근데 그 많은 여행자들이 지나가는데 아~무도 안 따 먹은 겁니다. 이 산딸기를~.
그래 ‘신기하다~ 이 맛있는 걸 왜 안 따먹나’ 해서 막 따먹고 있으니까
옆에 와가지고 “그 뭐하냐?” 그래서 “아, 이거 산딸기 따 먹는다” 이랬더니
“아 그게 여기 지금 이게 한국 거랑 같은지 어떻게 아느냐~? 이게 독이 들었는지 어떻게 아느냐?”
뭐 하면서 막 온갖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럴 수 있겠다” 하고 보냈어요.
그리고 이제 또 따먹었죠. 안 그러면 걔가 가다가 다 따 먹을까봐~. (ㅎㅎㅎ)
그러니까 아~무도 안 먹어요. 따 먹을 줄을 모르는 겁니다. 따 먹을 줄을 몰라요.
여러분 제가 지리산 갈 때, 이래 걸어, 설악산에 특히 많은데 설악산에 이렇게 갈 때요?
산에서 이렇게 밥을 해 먹쟎아요? 된장을 일부러 싸가지고 갑니다. 여름철에.
가면은 거기 곰취나 일반 또 다른 취가 많거든요. 취뿐 아니라 뭐 다양한 것들,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 눈에 들어오는 건 몇몇 가지가 있는데, 몇몇 가지를 이렇게 따다가
이렇게 그냥 쓱쓱쓱 해가지고 쌈장에 찍어먹고 그랬었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어떤 그 기쁨들을 전혀 못 누립니다.
제가 GOP 다닐 때, 여러분 GOP는요? 어~마어마합니다.
GOP, 이렇게 철책선 안에 들어가서 그 저기 저 매복하고 이렇게 이걸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제가 따라 들어가 봤었어요. 인제 야.. 아이들 격려해 준다고 같이 가서.
같이 가가지고 이렇게 인제 같이 도는데, 한 바퀴 그 비무장지대 안에 도는 거죠~?
한 바퀴를 이렇게 도는데 와~ 제가 배웠던, 모든 정말 어마어마한
정말 그 약초의, 요즘에는 이것은 구경도 할 수 없다 하는 것들 있쟎아요?
그런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겁니다, 정말.
와~ 정말 그것을 보는데도, 그 다니는 사람들은 물론 딸 수도 없을뿐더러,
인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도 또 모르는 경우가 많더란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것들을~ 그 어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 옛날 같으면 먹을 게 없었을 때,
돈이 없었을 때는 배우란 얘기 안 해도 저절로 배우게 돼요. 저절로 그런 것들을 보게 됩니다.
또 저절로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의 변화를 몸소, 경험하게 됩니다.
봄에, 여름에, 가을에, 뭐가 산 속에, 숲 속에 나는지를 다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허투르게 보지 않는단 말이죠.
그래서 아주 짠한 그 풍요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제는 그 돈이 다 있, 돈으로 모든 걸 할 수 있으니까, 그 부족한 데서 오는 즐거움을 못 느낍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감사드립니다..감사드립니다.._()()()_
와~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여유가 있길래 한번 해볼까 하다가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머리가 너무 아파 도저히 1장을 못 넘기겠더라구요. 법우님 대단하십니다. ^^
감사합니다~ 천수심무애안법우님^^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