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캡 노즈 오른 쉰두 살의 가정주부 이애숙씨

[피플] 엘캡 노즈 오른 쉰두 살의 가정주부 이애숙씨(월간 산)
사진:요세미티 엘캡 '노즈'제22피치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애숙씨
[피플] 엘캡 노즈 오른 쉰두 살의 가정주부 이애숙씨 (조선일보사 월간 산)
“남편 등산학교 뒷바라지 하다가 암벽 중독됐어요” ‘글쎄요. 남편 잘 만난 덕이라고 해야겠지요.
언제 제가 그런 등반해볼 수 있겠어요?” 이애숙씨(52)는 남편 김용기씨(56ㆍ김용기등산학교 교장)와 더불어 최근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대 암봉인 엘캐피탄의 노즈 루트를 1박2일만에 올랐다.
이씨는 10년 전만 해도 거벽등반은 커녕 등산하다가 바위만 나타나면 쩔쩔 매던 ‘둔한 아줌마’였다.
그러나 뛰어난 바위꾼인 남편 김용기씨를 따라다니다가 차차 암벽등반을 익혔고, 수직 1,500m의 대암벽 등반도 해낸 것이다. 김용기씨는 3년 전 바로 노즈 루트를 오르다가 제10피치에서 추락, 발목골절상을 입고 포기한 바 있다.
이번 등반은 그 설욕전인 셈으로, 김용기씨는 아내 이애숙씨 외에 윤길수, 김홍례씨 4명으로 등반팀을 꾸려 나갔다.
김 대장이 등반해 오르면 나머지 세 사람은 신속한 등반을 위해 주마링으로 올랐다. 그러므로 이애숙씨가 진정한 노즈 등반을 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1,500m 거벽을 15kg의 배낭을 메고 주마링으로 오른다는 일 자체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이애숙씨가 주마링만 익혀서 등반에 따라나선 것도 물론 아니다. 이애숙씨는 자연암장에서 5.11+급 루트를 오르는 실력파다.
남편 김용기씨와 마찬가지로 전북 태생인 이애숙씨는 두 아들도 성장한 뒤인 마흔두 살에야 암벽을 시작했다. 부군 김용기씨의 전국암장순례에 동행하며 뒷바라지를 하다가 한두 번 암벽등반도 해보며 맛을 들였다. “그런데 아팠던 몸이 싹 나은 거에요.
제가 혈액순환이 안 되어 손발이 저리고 저혈압으로 어지럽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바위를 해보니까 손발저림증도 없어지고 잠도 잘 오고 그런 거예요. 혈압도 싸악 정상으로 돌아왔구요.
에어로빅 해도 별 효과가 없었는데 말이죠. 아마 암벽 안 했으면 벌써 북망산 갔을 거구만요.” 5년여 간은 후등자로 늘 남편 뒤를 따라 오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암벽이 자신만만해 보이기 시작했다. 2001년쯤으로 이애숙씨는 기억한다.
“취나드A 왼쪽 벗길이었는데, 가만 보니까 선등할 수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해보겠다고 했더니, 그간은 절대 못하게 하던 양반이 한 번 해보라고 그러더라고요.
” 그 후 거룡길도, 이어 인수봉과 선인봉의 거의 모든 루트를 하나씩 선등으로 섭렵해 나아갔다. 4년여 전부터는 김용기등산학교에서 어엿한 강사로 5~6명 수강자들을 이끌고 선등에 나서곤 한다.
남편 김용기씨는 이렇게 말한다. “등산학교 보조강사로 매주 세 번은 꼬박꼬박 바위를 했으니까 사실 엄청나게 훈련한 셈이죠. 설악산 적벽도 수시로 했고. 그러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체중도 10kg 정도 빠졌지요,
아마. 저 사람 좀 보세요. 처녀처럼 날씬하잖습니까? 인수, 선인에서 저 사람만큼 날아다니는 여성 클라이머,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걸요.” 김용기씨는 설악산 토왕빙벽대회를 3연패한 빙벽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런 남편을 따라 오르며 이애숙씨의 빙벽 솜씨 또한 일취월장했다. 에델바이스배 대회를 비롯해 토왕빙폭대회, 매바위대회, 청송대회 등에서 여성부 2, 3위를 연속 기록했다.
토왕폭은 벌써 5년 전 김홍례씨(김용기등산학교 여성강사)와 단둘이 교대로 선등하며 가볍게 올랐다.
조선일보사 월간산 안중국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