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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사람(2345.2025.12.28)
마25:14-30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그림 화, 용 룡, 점 점, 눈동자 정)이라는 고사성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용을 그린 뒤 마지막에 눈동자를 찍는다는 말로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잘 마무리하여 완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점을 잘 찍으라는 것입니다. 실수든, 다툼이든, 이별이든 일의 끝이든, 생의 마지막이든, 한 해의 마무리이든 끝을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2025년도 마지막 주일에 서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회개하고 가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그 잣대로 내 자신을 살피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시다. 섭섭한 감정입니다. 이로 인해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렸다면 넓히시길 바랍니다. 섭섭한 감정에는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특별하게 대우를 해 주지 않아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증상이 너무 지나치면 ‘섭섭병’이 됩니다. 이 병은 서로를 힘들게 하고 가족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을 잃게 만듭니다. 지나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후회와 부끄러움의 웃음을 짓게 할 것입니다.
분노를 회개해야 합니다. 잠29:11절‘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인간은 감정이 있으므로 누구든지 분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다 드러내고 살 것이냐 아니면 다스려 억제할 것일까입니다. 잠16:32절‘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노를 더디 내는 자는 힘 센 용사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진정한 힘이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자는 패자라는 말씀입니다. 잠29:22절‘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자주 화를 내면 싸움만 하게 되고 죄를 지을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분노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방해가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의 분노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회개하고 가셔야 합니다.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천사장이 교만하여 마귀가 되었습니다.(사14:14)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도 교만하여 타락했습니다.(창3:5)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의 문을 통해 들어오고, 사단과 심판은 교만의 문을 통해 들어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비우고 낮아지는 겸손과 아버지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는 온유를 배우고 품고 닮아가야 합니다. 교만은 나를 마귀 닮게 하고 겸손은 나를 예수님 닮게 합니다.
지나친 욕심을 회개합시다. 어느 날 하늘의 천사가 세 사람을 찾아와 소원을 물었습니다. 천사가 첫 번째 사람에게 소원을 물었더니 자기는 별처럼 빛나고 싶다고 하여 Star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왕이 되고 싶다고 하여 King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욕심이 많아 자기는 스타도 왕도 모두 되고 싶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스타킹(stocking)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과욕은 일과 나를 다 망치게 합니다. 지나친 욕심은 사람을 잃게 합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도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흩어 사람을 모으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정직하지 못함을 회개합시다. 검은 거짓말이든 하얀 거짓말이든 거짓말을 많이 하거나 말이 다르면 하나님도, 사람도 싫어하고 멀리합니다. 나만 똑똑하다 착각 속에서 거짓말을 해도 모든 사람을 다 속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속이겠습니까? 말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거짓말의 아비는 마귀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 거짓이 결코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내 말과 모습이 마귀를 닮아가면 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조금씩이라도 하나님을 닮아가시면서 마지막을 잘 결산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25장에 나타난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이 사실에 대해 자세히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각각의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맡기고, 한 사람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랜후에 그 주인이 돌아와 그 종들을 불러 결산 하게 되었습니다. 종들은 그 주인의 부름을 받고 주인 앞에 나아와 그동안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그 주인 앞에 결산 하게 되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당회와 구역회를 앞두고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에게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 신앙결산서에 하나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믿음의 수입을 얼마나 되십니까? 여러분의 영적 신앙결산서에 이웃과 더불어 나누며 살아온 아름다운 사랑의 지출은 얼마나 되십니까? 여러분의 영적 신앙결산서에 지금까지 바라온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잔액은 얼마나 되십니까? 2025년도 상주감리교회도 결산을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배후 당회로 모이면서 금년도 결산을 하고 새해에 예산을 짜고 새해를 맞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감하는 날이 있으며 하나님 앞에 서서 결산하는 날이 반드시 우리 앞에 다가온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합니다. 히9: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그렇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까지만 살다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고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날은 우리 인생의 심판의 날이요, 결산의 날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하며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잘못 사용한 것도 꾸중을 들어야 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에도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달란트 비유는 말합니다. 우리 각 사람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외모는 물론 재능, 건강 등, 각각 다른 점이 참 많습니다. 꽃들이 각각 그 모양과 향기가 다르고, 새들의 목소리가 새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인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재능을 주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에 맞게 일하도록 각자에게 맞게 일을 맡기십니다. 능력이 많은 자에게는 큰일을 맡겨 주시고, 능력이 적은 자에게는 적은 일을 맡겨 주십니다. 그런데 능력이 크든 적든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에 다 소중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맡겨 주셨고, 필요한 분량만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달란트를 맡겨놓고 타국에 갔던 주인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돌아왔습니다. 그날은 종들에게는 결산의 날이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맡긴 달란트에 대한 결산을 요구했습니다. 두 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의 두 배를 남기게 되었고 주인에게 크게 칭찬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돌려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이 먼저 그 주인 앞에 자랑스럽게 나왔습니다. 그 주인앞에 자랑스럽게 자기가 그동안 열심히 주인을 위해 일한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저에게 주셨는데 주인님이 떠나시고 나서 열심히 일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그때 그 주인이 대답 하였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댓가입니다.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입니다. 이번에는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이 그 주인 앞에 나왔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두달란트를 맡기시고 떠나셨는데 열심히 일을 하여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그 주인이 두달란트 받았던 종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은 다섯달란트와 두달란트 가졌던 사람처럼 떳떳하게 당당하게 보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년에 잘할께요가 아니라 지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입니다. 그 다음에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그 주인앞에 부끄러운 듯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주인 앞에 자기의 한달란트를 보이며 말하였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심지 않은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 두었었습니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화가나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네가 알았느냐 그렇다면 마땅히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 주었다가 내가 돌아 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그에게서 그 한달란트를 빼앗아 열달란트 가진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왕 신앙생활 하면서 악하고 게으른 신앙생활 하지 말라고 부지런히 신앙생활 하셔서 책망 받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1.세 종류의 종들이 등장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달란트를 통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을 기준으로 나누어 주며 잘 관리하라고 하였습니다. 세 명의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주인의 부탁을 받은 세 명의 종은 각자의 방식으로 주인의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두 명은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더 만이 남기기 위해 바로 장사하며 열심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 대한 오해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합니다. 주인이 가진 절대적인 기준을 생각한다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중심적인 이해를 하였습니다. 순종이 결여된 이기심은 악하고 게으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일을 대할 때에 주인 되신 주님의 본심을 바르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순종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재능에 따라서 맡겼다는 것입니다. 능히 다섯 달란트를 감당할 만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달란트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과를 보아도 많이 받았던 종은 많이 남겼지만 적게 받았던 종은 그것도 감당치를 못했습니다. 주인은 그 사람의 능력을 잘 알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서 적게도 많이도 맡겼던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받은 것만큼만 충성을 하면 됩니다. 여기에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에게 주인이 열 달란트를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 종도 한 달란트만 더 남겼더라면 충성된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눅12:48‘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했습니다.
2.착하고 충성된 종은 누구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충성이란 말은 ‘신용할 수 있는’,‘신뢰할 수 있는’이란 뜻입니다. 종에 대한 신용도는 주인으로부터 위탁받은 물건이나 돈을 어떻게 성실하게 사용하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종들 중에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과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열심과 지혜를 다하여 장사를 한 결과 갑절로 이익을 남겼습니다. 주인은 그 종들의 이와 같은 행함을 보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똑같은 말로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두 달란트를 남긴 종도 자기의 역량껏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는 결과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물량적인 것만 보고 그 삶의 업적을 평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평가 기준이 다릅니다. 다섯 달란트를 능히 감당할 사람과 두 달란트를 감당할 사람, 그리고 한 달란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평가 기준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만약 두 달란트나 세 달란트를 남겼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하셨을 것입니다. 반대로 한 달란트를 맡긴 종에게 열 달란트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그 받은 것만큼만 충성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에게도 똑같이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주어진 달란트대로 일하시면 됩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시험을 보면 50점도 못 받는 아이에게 ‘너는 왜 1등을 하지 못하느냐’,‘100점을 왜 못 받느냐’고 다그친다고 해서 그 아이가 1등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50점을 받은 아이는 그 다음 시험에서 10점만 더 올려도 대단한 결과입니다. 바로 그것을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공부잘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1개만 틀려도 고민하고 화가나서 밥도 잘안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부못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몇개 틀렸냐고 하면 웃으면서 잘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고민일도 하지않고 밥은 잘 먹습니다. 그러다가 다음시험에 몇 개만 더 맞아도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전4:2절‘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일에도 충성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충성된 사람입니다. 눅16: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무슨 직분을 맡았던지 간에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것이며 더 큰 직분도 맡겨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일하는 성도에게 직분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충성하는 성도에게 더 큰 직분을 주십니다.
충성된 종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본문 21절‘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아무런 대가없이 충성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적은 것을 충성하면 큰 것으로, 많은 것으로, 칭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후9: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했습니다.
3.악하고 게으른 종은 누구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용납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성경 속에서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은 계속 기회를 주시는 분이세요. 실패해도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주시고 또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우리 안에 어떠한지를 점검하길 원합니다. 만약에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같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가지고 계신 분들 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믿음과 두려움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믿음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우리 안에 두려움은 점점 몰아내질 수 있는 것입니다.
2025년도 한 해가 빨리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2026년도 한 해를 맞이합니다. 또 새로운 해는 어떤 일을 내가 맞이하게 될지 예측 불허의 삶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우리 안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안 가본 길을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 길은 모험의 길입니다. 하지만 믿음은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주님의 인도함을 따라 가는 그 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걷는 사람들의 그 말씀들을 우리에게 하시면서 끊임없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의 하나님 됨이니라’했습니다. 이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잘했다 칭찬받고 새해에도 잘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주인의 이 판정은 무엇입니까? 26절에 보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내가 알았느냐 악한 것, 게으른 것을 악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려워서 뭔가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 그는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점점 게을러지는 단계까지 가고 만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의 마음속에 혹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혹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있지 않은지를 점검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대는 우리를 점점 게으르게 만드는 상황들이 참 많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점점 편리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는 집에서만 딱 앉아 있어도 모든 걸 다 할 수 있습니다. 먹을 걸 주문하면 배달 옵니다. 또 인터넷으로 구입만 해도 그냥 다 살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직접 사는 것보다 더 싸게 더 좋은 것들을, 신선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시대이죠.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점점 더 게을러지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데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게으름 나태는 ‘죄’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는 영적인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태 가운데 우리 안에 무관심이라는게 드러나게 되는데요. 우리 안에 냉담한 마음을 만들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점점 무정한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라고 하는 그런 말들을 가끔 듣게 되죠. 묻지마 폭행, 왜 이런 증상들이 일어날까요? 타인들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관심이 없습니다. 누군가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면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게 우리인데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없어져 버리다 보니까 이제는 다른 사람의 그 아픔에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관심이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안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우리 현대인들에게 발견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속에 주인의 평가를 보십시오. 악하고 게으른 종, 악하고 게으른 종, 게으른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부지런해야 가능합니다. 사랑도 자꾸만 해야 합니다. 사랑할 때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게으름을 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각자가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십시오. 혹여나 내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내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파묻어버리고 잊지는 않았는지, 반면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을 보면 받자마자 바로 가서 그곳으로 장사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겼다는 것이죠. 주인이 자신들에게 달란트를 맡긴 목적을 이해하고 그 주인의 뜻을 이행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주인이 어떤 책망을 했습니까? 니가 그렇게 생각했냐? 만약에 내가 그런 생각이었다면 내 돈을 치료하는 자에게 맡겼다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다. 내가 너한테 맡긴 건 그런 이유가 아닌 것을 왜 모르니? 그걸 왜 땅에 묻어놓고 그냥 놔뒀니?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장 적은 액수를 맡은 종이 책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책임감이 무거워서라도 열심히 일하고 적게 받은 사람은 그 책임이 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들보다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이 있습니다. 이 평범한 사람들로 인하여 사회도 국가도 교회도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을 가져다가 묻어두었습니다. 자기가 받은 것을 경하게 여기고 예사롭게 여겨 묻어둔 것입니다. 유리하게 사용하지 못할 바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런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어떤 작은 재능일지라도 개발하고 노력하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전혀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고 남이 많이 가진 것만 바라보면서 원망과 불평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적게 가졌으면 그 가진 것만큼만 노력을 하면 됩니다. 최소한의 기본 변리라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님께 대한 성도의 기본자세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책망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가진 직분을 소중하게 생각하십시오. 빼앗기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직분을 소홀하게 경하게 생각하였다가 결국 장자의 직분만이 아니고 축복까지 빼앗겼습니다. 가롯유다는 제자의 직분을 배신하였다가 목숨까지 빼앗겼습니다. 계3:11‘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무익한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해만 입히는 사람이 있고,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남에게 유익을 줄지언정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고, 또 남에게 해나 입히는 그런 무익한 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겼습니다. 그곳은 지옥입니다. 음부의 고통을 말합니다. 영원히 끝없는 고통입니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그곳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는 충성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이 시간 주님 앞에 설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수 있는가? 어두움에 쫓겨날 수밖에 없는 악하고 게으른 종은 아닌가? 아직은 시간이 있습니다. 오늘부터라도 아니 이 시간부터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충성을 하시기 바랍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하시기 바랍니다. 직분을 빼앗기면 반드시 어두움에 쫓겨납니다. 그곳은 멸망입니다. 지옥입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하는 곳입니다. 누가 이런 곳에 갑니까? 직분을 빼앗긴 자가 갑니다. 왜 직분을 빼앗깁니까? 충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된 삶을 산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상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인생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앞에 나아가 결산을 날을 맞게 될 때 그동안 주를 위해 힘쓰고 애쓰며 헌신된 삶을 살던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아름다운 상급들이 주어집니다. 성경에는 하늘의 상급에 대해 여러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11:6‘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시다’, 히11:26‘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시는 이를 바랐음이라’, 계11:18‘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다’, 계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이 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전도하고, 예배드리고, 헌신하고, 예물을 드리고, 봉사하고, 사랑을 베풀고, 자신의 집과 전토를 드리고, 자신의 생명을 드린 모든 일에 대해 결산의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일한대로 다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 역시‘하늘의 부름의 상을 좇아 나가노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내게 맞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주님을 위해 열심히 전도하며 열심히 헌신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예물을 드릴 때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알아주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상급은 바로 결산의 날 우리가 하나님앞에 설 때 명명백백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치 않은 자에게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않고 주인의 일을 게을리 했다가 주인께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받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난 사실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때 아무리 땅을 치고 후회해 보아도 이미 끝난 일인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결산의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 앞에서 후회하지 않을 인생과 신앙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각각 그의 재능대로 사명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주셨는가를 잘 깨달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여러분에게 주신 달란트를 잘 활용하여 최선을 다해 헌신된 삶을 살아야합니다.
세상의 삶에도 결산의 날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결산의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름받아 나아가게 될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우리의 인생의 삶속에서 주를 위해 산 모든 일과 우리가 받았던 달란트의 사명들을 모두 결산 하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상과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세상에 썩어지는 상급보다 하늘의 보화와 하늘의 썩어지지 않는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의 상급을 좇아 열심히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축복된 삶인 것입니다. 다가오는 해에는 우리가 그동안 주를 위해 하지 못했던 일들을 열심히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늘에도 많은 상급을 쌓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것 작은 것 하나라도 주면 더 풍성해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28절에 보십시오. 한 달란트를 빼앗아 10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줘라. 이게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갈수록 더 확장되고 풍성해지는 거예요. 또 무릇 있는 자는 바다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안에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 안에 복음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세상 가운데 여러 가지 재난과 환란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그 사람들에게 전해줄 무언가가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때 살리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받은 고통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는 고통의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음에 내가 많은 것을 너에게 맡겨줄 것이다.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제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잠시 내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이제 한 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냥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해가 그냥 거듭되는 것이 아니라 이 한 해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새해를 맞이하면서 내가 새해에는 무엇을 시작할지, 이제 내 안에 있는 두려움들을 이겨내고 내가 무엇을 하여 어떤 것으로 남기는 인생이 될지 기대하며 새해를 맞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바로 가서 장사하였던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들처럼 이제 2026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 모두가 받은 것을 바로 가서 사용하여 정말 많은 결실을 맺어서 풍성한 열매와 결실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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