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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주나라에서는 시체를 묻을 때, 흡사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처럼 팔과 다리를 꺾어 구부린 상태로 묻었습니다. 이러한 장례법을 굴장(屈葬)이라고 하는데, 굴장을 하여 태아의 모양을 흉내 냄으로써 내세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매장법은 우리나라나 일본의 신석기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주검 시(尸)자는 이와 같이 구부려 있는 시체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하지만 엉거주춤하게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 죽은 사람
▶ 시(屍:尸:) : 주검 시, [주검 시(尸)] + 죽을 사(死)
▶ 병(屛:屏:) : 병풍 병, 주검 시(尸) + [아우를 병(幷)]
▶ 쇄(刷:刷:) : 인쇄할 쇄, 칼 도(刂) + [닦을 쇄(㕞)]
시체(屍體), 시신(屍身)에 들어가는 주검 시(屍)자는 주검 시(尸)자의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죽을 사(死)자를 추가한 글자입니다. 부관참시(剖棺斬屍)는 '관(棺)을 쪼개어(剖) 꺼낸 시신(屍)을 베다(斬)'는 뜻으로, 옛날에 죽은 뒤에라도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내리던 형벌입니다.
병풍 병(屛)자는 원래 '죽은 시신(尸)을 가리다'는 뜻인데, 이후 '가리다→숨기다→(가리는) 병풍'이란 뜻이 생겼습니다. 병풍(屛風)의 원래 뜻은 '바람(風)을 가리다(屛)'는 뜻입니다. 금일월병(金日月屛)은 '금(金)으로 해(日)와 달(月)을 그린 병풍(屛)'으로, 임금님이 앉는 자리에 친 병풍입니다.
인쇄할 쇄(刷)자에 들어가는 닦을 쇄(㕞)자는 '손(又)에 수건(巾)을 들고 시신(尸)을 깨끗이 닦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쇄할 쇄(刷)자는 원래 '대나무 죽간에 칼(刂)로 글을 새긴 자리를 깨끗이 닦다'는 뜻으로, 이후 '인쇄(印刷)하다'는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쇄신(刷新)은 '새로워지게(新) 닦다(刷)'는 뜻으로, '나쁜 폐단이나 묵은 것을 없애고 새롭게 하다'는 뜻입니다.
- 산 사람
▶ 미(尾:尾:) : 꼬리 미, 주검 시(尸) + 털 모(毛)
▶ 뇨(尿:尿:) : 오줌 뇨, 주검 시(尸) + 물 수(水)
▶ 척(尺:尺:) : 자 척, 주검 시(尸) + 삐침 별(丿)
▶ 위(尉:尉:) : 벼슬이름 위, 마디 촌(寸) + 주검 시(尸) + 두 이(二) + 작을 소(小)
▶ 리(履:履:) : 밟을 리, 주검 시(尸) + 돌아올 복(復)
▶ 전(展:展:) : 펼 전, 주검 시(尸) + 옷 의(衣)
꼬리 미(尾)자는 엉거주춤 서 있는 사람(尸)의 엉덩이 부분에 털(毛)이 나있는 모습입니다. 토템(totem, 동식물 숭배 사상)은 원시 사회의 공통적인 풍습인데 고대 중국에도 있었습니다. 이런 풍습으로 동물에게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는 꼬리를 털로 만들어 달고 다녔습니다. 남의 뒤를 밟는 미행(尾行)은 '꼬리(尾)를 따라 가다(行)'는 뜻입니다. 어미(語尾)는 '말(語)의 꼬리(尾)'로, 어간(語幹)에 붙어 변하는 부분입니다. '먹다, 먹니, 먹고'에서 '먹~'은 어간이고, '~다, ~니, ~고' 등이 어미입니다.
오줌 뇨(尿)자는 엉거주춤 서 있는 사람(尸)의 엉덩이 부분에서 오줌(水)이 나오는 모습입니다. 분뇨(糞尿)는 '똥(糞)과 오줌(尿)'입니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글자이지만, 오줌 뇨(尿)자와 비슷한 똥 시(屎)자는 엉거주춤 서 있는 사람(尸)의 엉덩이 부분에서 똥(米)이 나오는 모습입니다. '쌀(米)이 똥으로 변하다'는 뜻에서 똥을 쌀 미(米)자로 표현하였습니다.
자 척(尺)자는 사람(尸)의 무릎 부분을 표시(마지막 획)하여, 종아리의 길이를 나타내었습니다. 이후 길이를 재는 자라는 뜻도 생겼습니다. 1척은 약 30cm로, 1자라고 부릅니다. 축척(縮尺)은 '축소한(縮) 자(尺)'라는 뜻으로, 지도의 한쪽 구석에 그려 놓은 조그마한 자로, 지도상의 실제 거리를 표시한 자입니다. '무척 보고 싶다'의 무척(無尺)은 '자(尺)로 잴 수 없을(無) 정도로 크다'는 뜻입니다.
[사진] 지도의 축척(縮尺)
벼슬이름 위(尉)자는 사람(尸)에게 불(火→小)로 달군 연장(二)을 손(寸)으로 잡고, 사람 몸에 난 종기를 지지는 모습입니다. 종기를 치료해 주고 위로해 준다고 해서 원래 의미는 '위로(慰勞)하다'는 뜻이었으나, 벼슬 이름으로 사용되자 나중에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마음 심(心)자를 붙여 위로할 위(慰)자가 되었습니다. 대위(大尉), 중위(中尉), 소위(小尉)는 군대의 벼슬 이름입니다.
밟을 리(履)자는 글자의 모양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최종적으로 '사람(尸)이 땅을 밟으며 돌아오다(復)'는 뜻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밟다→신→(신을) 신다'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은 '얇은(薄) 얼음(氷)을 밟는(履) 것과 같이(如) 하라'이란 뜻으로, 처세에 극히 조심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는 '참외(瓜) 밭(田)에 신(履)을 들여놓지(納) 말라(不)'는 뜻으로, 참외 밭에서 신을 고쳐 신으면 혹시 남이 볼 때 참외를 도둑질하는 것으로 오해하니, '오해받기 쉬운 행동은 삼가하라'는 뜻입니다.
펼 전(展)자는 '누운 사람(尸) 옆에 옷(衣)이 펼쳐져 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잠을 자기 위해 옷을 벗어 놓은 듯합니다. 전개도(展開圖)는 '열어서(開) 펼친(展) 그림(圖)'이고, 전성(展性)은 '누르면 펼쳐지는(展) 성질(性)'로, 두드리거나 누르면 얇게 퍼지는 금속의 성질입니다. 전성은 금, 은, 동이 뛰어납니다. 참고로 ‘끌어당기면 늘어나는(延) 성질(性)'은 연성(延性)이라고 합니다.
- 집으로 사용되는 경우
▶ 옥(屋:屋:) : 집 옥, 주검 시(尸) + 이를 지(至)
▶ 층(層:层:) : 층 층, 주검 시(尸) + [거듭 증(曾)→층]
▶ 루(屢:屡:) : 여러 루, 주검 시(尸) + [포갤 루(婁)]
▶ 거(居:居:) : 살 거, 주검 시(尸) + [예 고(古)→거]
▶ 굴(屈:屈:) : 굽힐 굴, 주검 시(尸) + [날 출(出)→굴]
▶ 루(漏:漏:) : 샐 루, 물 수(氵) + [샐 루(屚)]
▶ 국(局:局:) : 판 국, 주검 시(尸) + 글귀 구(句)
집 엄(广)자와 비슷하게 생긴 주검 시(尸)자는 사람이 사는 집의 모습을 뜻하기도 하는데, 집 옥(屋), (집에) 살 거(居), (집의) 층 층(層), (집이) 샐 루(漏)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주검 시(尸)자가 집의 뜻으로 사용되는 글자에 대해 알아봅시다.
집 옥(屋)자는 '어디를 가더라도 마지막에 이르는(至) 곳이 집(尸)이다'는 뜻입니다. 또 지붕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옥외(屋外)는 '집(屋)의 바깥(外)'이지만, 옥상(屋上)은 '지붕(屋) 위(上)'입니다.
옛 중국 사람들은 황토고원 절벽에 동굴을 뚫고 계단으로 올라가 살았습니다. 층 층(層)자는 '집(尸)이 거듭하여(曾) 겹쳐져 있는 것이 층(層)이다'는 뜻입니다. 또 '여러 층(層)의 집에 들어갈 때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계단(階段)이나 층계(層階)라는 뜻도 생겼습니다. 성층권(成層圈)은 '층(層)을 이루는(成) 지구 둘레(圈)'로, 대류권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아지고 대류권이 끝나는 고도 약 10~15km부터는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온도가 달라지면서 대기가 층을 이루고 있다는 뜻으로 성층권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에는 오존이 자외선을 흡수하는 오존층이 있습니다.
[사진] 황토고원 절벽에 여러 층(層)으로 만들어진 동굴집과 층계(層階)
여러 루(屢)자는 '집(尸)이 여러 개 포개어져(婁) 있다'는 뜻입니다. 누차(屢次)는 '여러(屢) 차례(次)'입니다.
살 거(居)자는 '집(尸)에 오래(古) 동안 살다'는 뜻입니다. 거주(居住), 주거(住居), 별거(別居), 동거(同居) 등에 사용됩니다.
옛날의 동굴이나 움막집은 입구가 좁았습니다. 굽힐 굴(屈)자는 '이런 집(尸)에서 나올(出) 때 몸을 굽히다'는 뜻입니다. 백절불굴(百折不屈)은 '백(百) 번 꺾여도(折) 굽히지(屈) 않는다(不)'는 뜻입니다.
샐 루(漏)자에 들어가는 루(屚)자는 '집(尸)에 '비(雨)가 새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물 수(氵)자가 추가되었습니다. 누락(漏落), 누수(漏水), 누전(漏電) 등에 사용됩니다.
판 국(局)자는 정확한 어원이 알려지지 않은 글자인데, (장기나 바둑의) 판, 마을이나 관청, 방, 구분(區分), 구획(區劃) 등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結局), 국면(局面), 국부(局部), 국장(局長), 당국(當局), 대국(對局), 약국(藥局), 종국(終局) 등에 사용됩니다. 박문국(博文局)은 '글(文)을 널리(博) 배포하는 관청(局)'이라는 뜻으로, 개화기 때 신문, 잡지 등을 발행하는 관청으로 설립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를 발간하였습니다.
몸 기(己)
꿇어앉아 있는 사람
몸 기(己)자가 어떤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은 상체를 구부리고 꿇어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인 인(儿), 비(匕), 대(大), 립(立), 시(尸), 절(卩), 자(子), 여(女), 노(老/耂) 등의 상형문자를 보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의 팔입니다. 하지만 몸 기(己)자에는 사람의 팔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모습은 아닌 것으로 추측됩니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명은 기(己)자가 끈이나 새끼줄을 꼬아 놓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문자가 탄생되기 전에는 끈이나 새끼줄에 매듭을 만들어 문자를 대신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문자를 '끈(繩)을 묶어(結) 만든 문자(文字)'라는 뜻으로 결승문자(結繩文字)라고 하며, 고대 중국과 남아메리카 지방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중국의 결승이 어떤 것인지는 오늘날에 와서는 알 수 없으나, 고대 남아메리카의 결승문자는 아직도 남아 있고, 페루의 키푸(quipu)가 대표적입니다. 기(己)자에 실 사(糸)자를 더하면 벼리 기(紀)자가 되는데, 벼리 기(紀)자는 '적다, 기록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 말씀 언(言)자를 추가하면 '말(言)을 기록하다'는 뜻의 기록할 기(記)자가 됩니다. 이런 글자로 미루어 보면, 기(己)자가 결승(結繩)을 위한 끈이나 새끼줄의 상형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진] 페루의 결승문자(結繩文字)인 키푸(quipu)
어쨌든 나중에는 몸 기(己)자가 꿇어앉아 있는 사람의 몸이란 뜻을 가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자기(自己)라는 뜻도 가지게 됩니다. 이기주의(利己主義)는 ‘자기(己) 자신의 이익(利)만을 추구하는 주의(主義)’로, 남을 위하는 이타주의(利他主義)의 반대입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자기(己)의 욕심을 이기고(克) 예(禮)로 되돌아온다(復)’는 뜻으로,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른다는 의미로, 공자의 논어(論語)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몸 기(己)자는 10개의 천간(天干) 중 6번째 천간으로도 사용됩니다. 기해박해(己亥迫害)는 ‘기해(己亥)년에 일어난 박해(迫害)’로, 1839년(헌종 5년)에 일어난 제2차 천주교 박해사건입니다.(1차 박해는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입니다.) 기묘사화(己卯士禍)는 ‘기묘(己卯)년에 일어난 선비(士)들의 재앙(禍)’으로, 조선 중종 14년(1519년)인 기묘(己卯)년에 일어난 사화(士禍)입니다.
몸 기(己)자는 소리글자로도 사용되는데, 기록할 기(記), 벼리 기(紀), 꺼릴 기(忌), 일어날 기(起), 고칠 개(改)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여기에서는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글자를 살펴보겠습니다.
- 꿇어앉아 있는 사람
▶ 개(改:改:) : 고칠 개, 칠 복(攵) + [몸 기(己)→개]
▶ 기(起:起:) : 일어날 기, 달릴 주(走) + [몸 기(己)]
▶ 배(配:配:) : 짝 배, 닭 유(酉) + [몸 기(己)→배]
▶ 비(妃:妃:) : 왕비 비, 여자 녀(女) + [몸 기(己)→비]
▶ 선(選:选:) : 가릴 선, 갈 착(辶) + [괘이름/뽑을 손(巽)→선]
고칠 개(改)자는 '꿇어앉아 있는 사람(己)을 매로 때려서(攵) 잘못된 것을 고치다'는 뜻입니다. 개정(改正)은 '고쳐서(改) 바르게(正) 하다'는 뜻입니다.
일어날 기(起)자는 '꿇어앉아 있는 사람(己)이 가기(走) 위해 일어나다'는 뜻입니다. 기중도설(起重圖說)은 '무거운(重) 물건을 일으켜(起) 세우는 방법을 그림(圖)으로 설명한(說) 책'으로, 조선 시대의 실학자 정약용이 1792년에 지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擧重機)의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
짝 배(配)자는 술(酉) 옆에 사람이 꿇어않아 있는 사람(己)의 모습입니다. 닭 유(酉)자는 술병의 상형으로, 술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옛날에 결혼식을 할 때 술(酉)을 나누어 마시면서 짝을 맞이하는 데에서 '(술을) 나누다, 짝짓다'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분배(分配), 배정(配定)에서는 '나누다', 배우자(配偶者), 배필(配匹)에서는 '짝짓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왕비 비(妃)자는 원래 '남자 앞에 꿇어앉아 있는(己) 여자(女)가 아내이다'는 뜻입니다. 이후 왕의 아내인 왕비(王妃)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비빈(妃嬪)은 '왕비(妃)와 궁녀(嬪)'입니다.
가릴 선(選)자에 들어가는 뽑을 손(巽)자는 제단(共) 위에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뽑혀진 두 명의 사람이 꿇어앉아 있는 모습(巳巳)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나중에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뽑혀서 제단으로 가다'는 뜻으로 갈 착(辶)자가 추가되어 가릴 선(選)자가 되었습니다. 선별(選別), 선택(選擇), 선출(選出) 등에 사용됩니다.
- 몸 기(己)자와 닮은 글자
▶ 사(巳:巳:) : 뱀 사, 뱃속에 있는 태아의 모습
▶ 이(已:已:) : 이미 이, 알 수 없음
▶ 파(巴:巴:) : 땅이름/꼬리 파, 방울뱀의 모습
☞ 뱀 사(巳)
부수가 몸 기(己)자이면서 몸 기(己)자와 비슷하게 생긴 글자들을 살펴봅시다.
뱀 사(巳)자는 뱃속에 있는 태아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뱀 사(巳)자는 간지(干支)로 사용되면서 열두 동물의 하나인 뱀과 짝이 되어 뱀 사(巳)자가 되었을 뿐, 뱀의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뱀 사(巳)자가 들어가는 쌀 포(包)자는 불룩한 배(勹) 속에 싸여있는 아기(巳)가 있는 모습에서, '싸다'는 뜻이 생겼습니다.
이미 이(已)자는 몸 기(己)나 뱀 사(巳)자를 조금 변형하여 '이미'라는 추상적인 뜻을 가진 글자로 만들었다고 짐작됩니다. '이왕에 만났으니~'의 이왕(已往)은 '이미(已) 가버리다(往)'는 뜻으로, 지금보다 이전을 말합니다.
땅이름/꼬리 파(巴)자는 방울뱀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로, 뱀이나 꼬리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다른 글자의 안에서는 꿇어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사용됩니다. 아래에 나오는 글자는 그러한 예입니다.
- 땅이름 파(巴)자가 들어가는 글자
▶ 색(色:色:) : 빛 색, 사람 인(人) + 땅이름 파(巴)
▶ 염(艶:艳:) : 고울 염, 빛 색(色) + 풍년 풍(豊)
▶ 읍(邑:邑:) : 둘러싸일 위(囗) + 꼬리 파(巴)
☞ 빛 색(色)
빛 색(色)자는 쪼그리고 있는 사람(巴) 위에 한 사람(人)이 올라탄 형상입니다. 색정(色情), 색마(色馬), 색골(色骨), 색욕(色慾)이란 단어를 연상해보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빛 색(色)자는 원래 '색정(色情)으로 흥분하여 변한 안색(顔色: 얼굴빛)'이란 뜻을 가졌습니다. 이후 '색정(色情)→안색(顔色)→기색(氣色)→색채(色彩)→화장(化粧)하다→미색(美色)'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호색한(好色漢)은 '색(好)을 좋아하는(好) 놈(漢)'입니다. 색목인(色目人)은 '눈(目)동자에 색(色)이 있는 사람(人)'으로, 중국 원나라 때에 유럽이나 서아시아, 중부아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을 통틀어 이르던 말입니다. 외국인들의 눈동자 색이 동양인과 다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國)를 기울일(傾) 만한 미색(美色)'이란 뜻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색(色)자는 부수자인데, 부수로 사용된 글자로는 고울 염(艶)자가 있습니다. '얼굴에 색기(色氣)가 풍부(豊富)하면 곱다'는 뜻으로 만든 글자로 짐작됩니다. 요염(妖艶)은 '요사하고(妖) 곱다(艶)'는 뜻으로, 요즘 말로 '섹시(sexy)하다'는 뜻입니다. 염문(艶聞)은 '고운(艶) 소문(聞)'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연애나 정사(情事)에 관한 소문을 말합니다.
☞ 고을 읍(邑)
고을 읍(邑)자는 지역을 나타내는 동그라미(○)나 네모(口) 아래에 꿇어앉아 있는 사람의 상형인 꼬리 파(巴)자가 들어 있습니다. '울타리로(口) 둘러싸인 곳에 사람(巴)들이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읍사(井邑詞)〉는 '우물(井)이 있는 고을(邑)의 노래(詞)'라는 뜻으로, 통일신라 경덕왕 이후 현재까지 노래가사가 전해지는 유일한 백제 가요입니다. 전라도 정읍(井邑)에 살고 있는 한 여인이 행상을 떠나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달이 높이 솟아 남편의 머리 위를 비춰주어 진창에 빠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내용입니다.
병부 절(卩/㔾)
꿇어앉아 있는 사람
병부 절(卩)자의 '병부'의 뜻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병부(兵符)는 '병사(兵)를 동원하는 부적(符)'이란 뜻으로, 지름 7cm, 두께 1cm 가량의 둥글납작하고 곱게 다듬은 마패처럼 생긴 나무쪽입니다. 이 나무쪽에는 글자를 쓴 후 한가운데를 쪼개어, 반쪽의 오른쪽은 지방관이 왼쪽은 왕이 보관하였다가, 군대를 동원해야 할 경우, 왕의 편지와 함께 병부를 지방에 보내면 지방관이 두 쪽을 맞추어 보고 맞으면 군대를 동원하였습니다. 쪼개진 병부(兵符)를 합(合)쳐서 보는 것을 부합(符合)이라고 합니다. '이론과 현실이 부합하다' 혹은 '교육 이념에 부합하다'고 할 때의 부합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병부 절(卩)자는 이러한 병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꿇어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다만 글자의 모양이 병부의 반쪽 모습처럼 생겼다고 해서 병부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병부 절(卩)자는 액(厄)자 아래에 있는 글자와 같이 쓰기도 합니다.
- 꿇어앉아 복종하는 사람
▶ 령(令:令:) : 하여금 령, 모을 집(亼)+ 병부 절(卩)
▶ 명(命:命:) : 목숨/명령할 명, 모을 집(亼) + 입 구(口) + 병부 절(卩)
▶ 각(却:却:) : 물리칠 각, 병부 절(卩) + [갈 거(去)→각]
▶ 보(報:报:) : 알릴/갚을 보, 다행 행(幸) + 병부 절(卩) + 또 우(又)
▶ 복(服:服:) : 옷/복종할 복, 병부 절(卩) + 또 우(又) + [무릇 범(凡→月)→복]
☞ 하여금 령(令)
하여금 령(令)자는 지붕(亼) 아래에서 무릎을 꿇어앉아 있는 사람(卩)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즉 누군가의 명령(命令)을 듣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후 '명령하다→부리다→하여금→(명령하는) 우두머리→벼슬→법령(法令)'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조령모개(朝令暮改)는 '아침(朝)에 명령(令)을 내렸다가, 저녁(暮)에 다시 고치다(改)'는 뜻으로, 법령을 자꾸 고쳐서 갈피 잡기가 어려움을 이르는 말입니다.
☞ 목숨 명(命)
하여금 령(令)자와 비슷한 글자로 목숨 명(命)자가 있습니다. 목숨 명(命)자는 '지붕(亼) 아래에서 꿇어앉아 있는 사람(卩)에게 누군가가 입(口)으로 명령(命令)하다'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명령을 하는 사람이 명령의 받는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목숨'이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지천명(知天命)은 '하늘(天)의 명령(命)을 아는(知) 나이'로, 쉰 살을 이르는 말입니다.
옛날에 높은 사람 앞에서 물러 날 때에는 등을 보이지 않고, 항상 뒷걸음으로 물러났습니다. 중국의 옛 문화를 물려받은 일본의 어떤 고급 식당이나 요정에 가보면 지금도 종업원이 방에서 나갈 때 꿇어앉은 채 뒷걸음질로 나갑니다. 문화는 항상 물려준 나라보다 물려받은 나라에 더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물리칠 각(却)자는 원래 '꿇어앉은(卩) 채로 뒷걸음질로 물러가다(去)'는 뜻입니다. 이후 '물러나다→피하다→물리치다'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기각(棄却)은 '물리쳐(却) 버리다(棄)'는 뜻으로, 법원이 소송 이유가 없거나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무효를 선고하는 일입니다.
☞ 알릴/갚을 보(報)
알릴/갚을 보(報)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꿇어앉아 있는 사람(卩)에게 수갑(幸)을 채우는 손(又)이 있는 모습입니다. 아마도 재판을 받는 모습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재판하다→(재판 결과를) 알리다→(벌로 죄를) 갚다'는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홍보(弘報)는 '널리(弘) 알리다(報)'는 뜻이고, 음덕양보(陰德陽報)는 '그늘(陰)에서 쌓은 덕(德)을 밝은 볕(陽)에서 갚다(報)'는 뜻으로, 남 모르게 덕을 쌓은 사람은 반드시 뒤에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 옷/복종할 복(服)
옷/복종할 복(服)자는 원래 '손(又)으로 사람을 꿇어앉혀(卩) 복종시키다'는 뜻입니다. 이후 '복종하다→(멍에를) 매다→(몸에) 매달다→입다→옷' 등의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의복(衣服), 교복(校服), 군복(軍服), 양복(洋服)에서는 옷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복종(服從), 굴복(屈服), 복역(服役)에서는 '복종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꿇어앉아 있는 사람
▶ 앙(仰:仰:) : 우러를 앙, 사람 인(亻) + [오를 앙(卬)]
▶ 인(印:印:) : 도장 인, 고슴도치머리 계(彐) + 병부 절(卩)
▶ 권(卷:卷:) : 책 권, 쌀 미(米) + 손맞잡을 공(廾) + 병부 절(㔾)
▶ 범(犯:犯:) : 범할 범, 개 견(犭) + [병부 절(㔾)→범]
▶ 어(御:御:) : 어거할/임금 어, 걸을 척(彳) + [낮 오(午)→어] + 그칠 지(止) + 병부 절(卩)
우러를 앙(仰)자에 들어가는 오를 앙(卬)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오른 쪽에 끓어앉아 있는 사람(卩)이 왼쪽에 서 있는 사람(亻)을 올려 보고 있는 모습으로 '우러러보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원래의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람 인(亻)자를 더하여 우러를 앙(仰)자가 생겼습니다. 앙각(仰角)은 '우러러(仰) 올려 보는 각(角)'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에 있는 목표물을 올려다 볼 때, 시선과 지평선이 이루는 각도입니다. 대포를 위로 향하였을 때에, 포신(砲身)과 수평면이 이루는 각도도 앙각이라고 합니다.
☞ 도장 인(印)
도장 인(印)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손(彐를 뒤집은 모양)으로 꿇어앉아 있는 사람(卩)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후 '누르다→찍다→(머리에 찍힌) 인상(印象)→(종이에 찍은) 도장'이란 뜻이 생겼습니다. 인상파(印象派)는 '형상(象)에 대하여 머리에 찍히는(印)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파(派)'로,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활동한 미술 유파입니다. 인상파는 대상에게서 받은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인상파 이전에는 바다를 항상 파랗게 표현하였지만, 인상파에서는 해가 떨어지는 바다는 붉은색으로, 안개가 끼면 회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 책 권(卷)
책 권(卷)자의 윗부분은 '두 손(廾)으로 밥(米)을 둥글게 말다'는 뜻이고, 아랫부분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는 사람의 모양에서 '굽히다, 말다'라는 뜻이 나왔습니다. 이후 '말다→두루마리→책'이란 뜻이 생겼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책은 대나무 죽간(竹簡)으로 만들어 두루마리처럼 말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말다'는 원래의 뜻을 살리기 위해 손 수(扌)자가 붙어 말 권(捲)자가 되었습니다.
범죄(犯罪), 범인(犯人) 등에 들어가는 범할 범(犯)자는 짐승(犭) 앞에 쪼그리고 있는 사람(卩)의 모습으로, '짐승(犭)이 사람(卩)을 침범(侵犯)하다'는 뜻입니다. 범칙금(犯則金)은 '규칙(則)을 범하는(犯) 사람에게 물리는 돈(金)'으로, 쓰레기 방치, 자연 훼손, 담배꽁초 버리기, 도로 무단횡단 등의 경범죄를 지은 사람에게 물리는 벌금입니다.
☞ 어거할 어(御)
어거할 어(御)자에서 어거(馭車)는 '말이나 수레를 바른 길로 나아가게 제어(制御)하다'는 뜻입니다. 어(御)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수레에 쪼그리고 앉은 마부(卩)가 말을 부리며 길(彳)을 가다(止)'는 뜻입니다. 이후 '마부→어거하다→(임금이) 나들이하다→다스리다→거느리다'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용(龍)이 날아서(飛) 하늘(天)로 나들이하는(御) 내용의 노래(歌)'라는 뜻으로, 조선 세종 때 정인지 등이 지은 노래의 하나이며,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입니다. '임금(龍)이 뛰어나(飛) 천하(天)를 다스리다(御)'는 뜻도 됩니다.
- 쪼그리고 있는 사람
▶ 액(厄:厄:) : 재앙 액, 기슭 엄(厂) + 병부 절(㔾)
▶ 위(危:危:) : 위태할 위, 사람 인(人) + 기슭 엄(厂) + 병부 절(㔾)
▶ 즉(卽:即:) : 곧 즉, 향내날 형(皀) + 병부 절(卩)
재앙 액(厄)이란 글자는 절벽(厂)에서 굴러 떨어져 다쳐서 쪼그리고 있는 사람(卩)의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재앙입니다.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글자 중에서, 절벽(厂) 위에 사람(人)이 서 있는 모습의 '첨(厃)'자가 있습니다. 이 글자는 '(절벽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위태하다'와 '(절벽 위에 서 있는 사람을) 우러러보다'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두 가지 뜻을 구분하기 위해 위태할 위(危)자가 생겼는데, 첨(厃)자에 재앙 액(厄)자처럼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진 사람(卩)의 모습을 추가하였습니다.
☞ 곧 즉(卽)
즉각(卽刻), 즉결(卽決), 즉석(卽席), 즉심(卽審) 등에 들어가는 곧 즉(卽)자는 꿇어앉은 사람(卩)이 밥(皀)을 곧 먹으려 하는 모습에서 '곧'이란 뜻이 생겼습니다. 향내날 형(皀)자는 밥그릇의 상형인 먹을 식(食)자에서 뚜껑을 열어 놓은 모습니다.
- 꿇어앉아 있는 사람
▶ 집(執:执:) : 잡을 집, 다행 행(幸) + 알 환(丸)
▶ 예(藝:艺:芸) : 재주 예, 풀 초(艹) + [심을 예(埶)] + 이를 운(云)
꿇어앉아 있거나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는데, 꿇어앉아 있는 모습의 글자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 잡을 집(執)
잡을 집(執)자는 꿇어앉아 있는 사람(丸)의 두 손에 수갑(幸)을 채운 형상으로, 죄인을 잡아 놓은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알 환(丸)자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꿇어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집정관(執政官)은 '정권(政權)을 잡고(執) 있는 관리(官)'로, 고대 로마 공화정 때에, 행정과 군사를 맡아보던 장관입니다. 고대 로마의 삼두정치(三頭政治)에서는 3명의 집정관이 로마를 다스렸습니다.
☞ 심을 예(埶)
재주 예(藝)자에 들어가는 심을 예(埶)자는 땅(土) 위에 나무(圥)를 심는 사람(丸)의 모습입니다. 나중에 풀도 심는다는 의미에서 풀 초(艹)자가 추가되었고, 꿇어앉아 있는 사람의 다리가 운(云)자로 변했습니다. '나무나 풀을 심어 키우는 사람이 재주가 있다'는 의미로 재주라는 뜻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