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하기 3일 전, 평소처럼 노들야학에서 장애인 진료를 하고 있던 중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부터 악몽같은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시설에서 살다 처음으로 자립생활을 준비하던 송국현 아저씨가, 불이 났는데 대피하지 못해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의 ‘장애인 독립진료소’ 담당자로 일한지 불과 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송국현 아저씨는 언어장애 3급, 지체장애 5급으로 중복장애 3급 판정을 받아 활동보조 서비스 지원 대상자(장애등급 2급 이상)에서 탈락하여 이의신청을 낸 상태였습니다.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활동가들은 울먹이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체험홈은 화재가 나면 자동으로 문이 열려요. 화재가 난지 얼마 안 되어 문 열린 방에서 연기가 나는 걸 보고 집 주인이 안에 사람 있냐고 물어보았대요. 그런데 송국현 동지는 언어장애 때문에 말을 다 알아듣지만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결국 집주인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고, 자리를 떠버린 거죠. 동지가 걸을 수라도 있었다면, 아니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는데… 구조요청조차 하지 못하고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받던 몇 달 전이었더라면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었어요.”
여기. 사람이. 있다.
2009년 용산 참사 이후로 5년 만에 다시 이 말이 이토록 가슴을 짓누를 줄 몰랐습니다. 저에게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복지 논쟁이, 누군가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라는 끔찍한 현실과 또다시 대면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집 앞에서 해명을 기다리며 노숙농성을 하고 세월호 분향소가 있는 시청광장 옆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분향소를 세웠지만, 누구의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철수해야 했습니다. 전 국민이 함께 애도해주던 세월호 분향소 바로 뒤, 그늘진 곳의 자그마한 분향소가 얼마나 쓸쓸해 보이던지요.
광화문 광장 아래, 광화문 역사 안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은 벌써 4번째 추운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송국현 아저씨처럼 ‘생존’을 위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동안 죽어간 분들의 영정만 해도 10분 넘게 놓여있습니다. 2012년 화재로 죽음을 맞이한 박지우, 지훈 남매, 2014년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사이 산소호흡기가 빠져 돌아가신 오지석씨, 2013년 병원비가 없어 복통을 참다가 맹장염으로 돌아가셨던 김준혁씨 등.
준혁씨의 경우, 사후에야 고인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포기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병원 문턱에도 오지 못하게 하는 장애인 빈곤, 의료접근성 문제가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 버린 것입니다. 저는 한국사회의 냉혹한 복지 현실 앞에서 희생된 분들을 보며 의료인으로서 분노와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3년도 기준, 지난 1년 간 장애나 건강을 위해 수술이나 치료 목적으로 병의원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장애인의 22.1%가 응답했으며, 주된 원인은 경제적 부담(57.3%)이었습니다. 전체 장애인의 16.1%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며, 전체 장애인의 46.2%가 월 150만원 미만의 소득 상태에 머물러있습니다. 비장애인 가구의 경우 월평균 소득(324만원) 중 3.4%(11만원)을 의료비에 지출하지만, 장애인 가구의 경우 평균 소득(115만원) 중 20.7%(24만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2)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로 인한 추가 소요비용 중 35%가 의료비, 65%가 의료비를 포함한 돌봄, 간병비, 장애인 보조기구, 재활기관 이용 등의 건강 관리와 관련된 비용이 차지합니다. 2005년도에는 무려 60%가량을 모두 의료비가 차지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장애인 연금, 장애 수당 등 각종 급여 수준은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조차 보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2014년도 예산 중 장애인 의료비 지원 항목을 기존보다 180억 7200만 원이나 줄어든 240억 8800만 원으로 책정했습니다.(3)
병원비 뿐 만 아니라 병원까지 오는 데도 많은 제약이 있어서, 추가 비용 중 교통비도 15% 가까이 차지합니다. 장애인 콜택시는 값이 싸지만 가장 많은 서울이 400대 정도로 매우 부족하여, 수 시간 전에 예약해도 예약 시간보다 2-3시간 차이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장애인 콜택시 제도마저도 2014년도에 민영화 시도가 있었으나 장애인들의 반발로 무산되었습니다.
UN 협약은 안중에도 없는 한국사회
UN은 건강권에 대해 ‘성취 가능한 최상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만인의 권리’로 정의하고, 장애인 건강권에 대해서는 『장애인권리협약 25조』를 통해 ‘장애로 인해 차별 없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할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 자체에서 기인하는 건강불평등이 사회적 차별로 인해 확대 재생산 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신체활동이 저조한 장애인들은 높은 만성 질환율(76%)을 보이고 있으며, 대개 만성질환은 연령이 증가하면서 발생하는데 장애인의 경우 조기에 발병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그래서 성인 초기(19-44세) 해당하는 장애인의 만성 질환율은 42.9%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외래 이용횟수가 0.39-0.86배 낮고, 입원 횟수는 1.04-2.23배까지 높은데, 이는 치료할 수 있는 질병도 제때 병원을 방문하지 못해 병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4)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적시에 예방, 관리, 치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주치의 제도와 연계된 공공의료기관 확충 등의 의료공공성 강화 정책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공의료기관이 5% 밖에 되지 않고 사설 의료기관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편의시설 적정 설치율은 의원급 57.2%, 병원급 61%에 불과하고 중증장애인을 진료할 수 있는 장비와 치과장비를 갖춘 곳은 전국에 3곳 뿐입니다. 2013년도에 이미 있던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마저 폐업시키는 과정에서, 경상남도에서 유일하게 있던 장애인 치과와 장애인 산부인과마저 사라졌습니다.
장애인의 90%는 후천적으로 장애가 발생한 사람이며, 이는 누구나, 언제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장애인 빈곤과 건강권 문제는 단순히 사회적 약자에게 시혜적, 선별적 복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어떻게 건강권을 보장할 것인가’라는 보편 복지의 개념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5)
그런데도 정부는 안 그래도 취약한 복지를 확대하기는커녕, 그나마 있는 의료분야의 공공성마저 심각하게 훼손하는 의료민영화 법안을 ‘서비스발전기본법,’ ‘규제기요틴’ 등의 이름으로 추진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보건복지부가 최초로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승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영리병원 사업을 벌이는 중국 녹지그룹은 부동산 투기기업인데다가 실제 이 병원의 운영주체는 국내 성형외과 의료진임이 밝혀졌는데도 정부는 승인을 강행했습니다.
이렇게 기업과 자본에게만 이득을 주는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병원, 영리자회사, 원격 의료, 메디텔 등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의료선진화’로 포장하여 추진하는 국가에서, 생존조차 위협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 사회적 약자들은 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요? 그간 장애인 독립진료소에서 환자들에게 ‘병원 가기 눈치 보인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한 만큼, 그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UN 세계 인권 선언이 너무나도 공허하게 들리는 사람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무겁다 못해 괴로운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를 맞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장의 영정이 더 이상 늘지 않도록, 시민들의 힘이 기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2016년 새해에는 광화문 농성장에 들러서 장애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어떨까요? 왜 그들이 비장애인라면 죽지 않을 문제로 죽어갈 수 밖에 없었는지 말입니다.
(1) ‘장애인 독립 진료소’는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노들 장애인 야학,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 3단체가 공동 운영하고 있으며, 2주에 한번씩 5년째 한방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각종 물리사회적 제약에서 장애인들이 ‘독립’하여 살기 위한 바람을 담았다. 진료소의 첫 출발은 부패한 석암재단의 장애인 탈시설 투쟁에 한의사들이 연대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장애인들이 자립하여 지역사회에 정착하여 노들야학의 학생이 되면서 진료소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2) 병원 가기 두려운 장애인에게, ‘의료민영화’를 묻다 - 故김준혁 활동가의 죽음을 통해 본 장애인 의료 현실(비마이너, 2013)
(3)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년도보다 생활비가 더 든 장애인가구는 72%나 되는데, 세부내역을 보면 의료이용, 장애보조기구, 요양간병비로 전부 의료관련 비용이다. 또한 장애인의 70.0%가 자신의 장애상태와 관련이 있거나 장애 외의 다양한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72.4%가 정기적 진료를 받고 있어 의료수요 역시 매우 높다. 하지만 18.9%가 최근 1년간 본인이 병의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험이 있었고, 가지 못한 이유로는 경제적인 이유가 58.7%에 달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4) ‘장애인 건강권을 위해 넘어야 할 장벽’(한국 장총, 장애인 정책정보지 2011)
(5) ‘장애인 건강권을 위해 넘어야 할 장벽’(한국 장총, 장애인 정책정보지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