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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갑자
1918년
단기서는 펑국장이 임기만료되자 조곤과 연합하여 1920년까지 막후 실권자가 됨.
장작림은 만주 3성을 차지 군벌이 됨.
8월 11일 - 제1차 세계 대전 : 아미앵 전투 종료.
8월 16일 - 일본, 조선에 대한 곡류수용령 공포.
10월 28일 - 체코슬로바키아가 세워짐.
10월 30일 - 오스만 제국, 연합국에 항복.
11월 3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연합국에 항복.11월 9일 - 빌헬름 2세, 혁명으로 퇴위.
11월 10일 -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 네덜란드로 망명. 독일 제2제국 붕괴.제1차 세계 대전 종결
미국 군수산업 위주 자본가들 성립.미국을 리더
60년후 한국에선 지속되는 고도성장으로 민간경제는 크게 나아졌는데 반해 물가고와 심각한 생필품품귀현상이 발생하고 부가가치세 신설로 불만이 많아져 12월에 총선에서 부가세철폐를 내세운 신민당에 민주공화당이 참패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입지가 크게 악화되는 일이 벌어졌다.
1558년 펠리페2세 즉위 스페인 최전성기의 통치자로서, 대표적인 절대군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여왕 즉위 ‘처녀 여왕(The Virgin Queen)’이라 불렸고, 그녀를 마지막으로 튜더 왕가는 단절되었다.
백년전쟁이 끝난 뒤 거의 백년 동안 잉글랜드의 지배를 더 받았던 칼레는 1558년(잉글랜드:메리 1세, 프랑스:앙리2세) 기즈(Guise)공 프랑수아가 이끄는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로써 잉글랜드가 영구히 프랑스 내 영토를 상실하였다.
60년전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였다.
50년전 포르투갈과 이슬람 함대 간의 디우 해전이 벌어졌고, 포르투갈이 승리하여 인도 무역권을 확립하였다.
40년전 보나 스포르차가 폴란드의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 런던 조약이 맺어져 서유럽에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10년후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발발하였다.
20년후 모로코 vs 포르투갈의 크사르 엘케바르 전투에서 두 지휘관 군주들이 사망하였다
30년후 프랜시스 드레이크, 해적당을 이끌고 카리브 연안의 스페인 상선 / 도시들을 습격하였고, 파나마 지협을 통과하는 금,은 수송대를 약탈하였으며 마젤란 햐협을 거쳐 산티아고까지 습격하였다.
칼레 해전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이끄는 잉글랜드 (영국) 함대가 이베리아 연합 (스페인) 아르마다를 화공으로 격파하였다
40년후 - 제2차 울산성 전투가 일어났다.
- 사천성 전투가 일어났다.
-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임진왜란이 끝났다.
50년후 선조사망.
60년후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제2차 프라하 창문투척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써 30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1198년 고려 신종 최충헌(崔忠獻)형제가 명종을 폐하고 왕으로 추대하여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으며 1198년,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을 두었고 관서(關西) 민가의 안대(安碓)를 금지하였다. 같은 해 만적의 난이 일어남
60년전 독일의 왕 콘라트 3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헝가리 왕국이 보스니아를 정복하였다.
금나라와 남송 당국이 일단 화의에 합의하였다.
50년전 잉글랜드 - 플랑드르의 십자군이 알제리의 오랑을 함락하였다.
무와히드 왕조가 세비야를 점령하였다.
40년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제 2차 론칼리아 제국 의회를 열어 북 이탈리아의 자치 도시 (코뮌) 들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 회수를 주장하였다.
프랑스 공주 마가렛이 출생 후 바로 잉글랜드에서 3살인 헨리 왕자와 약혼하였다. 벡셍 지방이 지참금으로 와서 앙주 - 플랜태저넷 왕조의 강역이 확대된다
30년전 잉글랜드의 왕자 리처드가 아키텐 공작이 되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 수즈달 공국이 독립하였다.
로마 코뮌이 이웃 도시 알바노를 점령하였다.
20년전 니케포루스 3세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멜리히슈타트 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왕 루돌프를 패배시켰다.
- 키에티가 노르만족에게 점령당하였다
송나라의 철강산업이 연간 12만 5천 톤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은 19세기에 달성)
런던탑 건설이 시작되었다.
10년후 서하 북부지방을 유린한 몽골제국군이 철수하였다.
칭기즈칸이 금나라 황제의 조서를 거부하였다.
오이라트가 몽골 제국에 복속하였다.
수부타이의 몽골 제국군이 메르키트 부족의 잔당을 평정하였다.
사미원이 금과의 화의를 이끈 공으로 남송의 재상으로 승진하였다.
20년후 무칼리의 몽골군이 태원과 평양을 함락하였다.
남송 군대가 수주를 공격해 온 금나라 군대를 격퇴하고, 반격을 가하여 사주를 점령하였다.
몽골의 장수 카치운이 몽골군 1만과 동진군 2만명을 이끌고 고려로 진군, 강동성 포위전에 참가하였다.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이 호라즘 왕조의 무함마드 샤에게 사신을 보내 무역과 복종을 요구하였다.
3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 콘라트 4세가 예루살렘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 프리드리히 2세가 이끄는 6차 십자군이 브린디시 항을 출발하였다.
40년후 시트 강 전투에서 몽골 제국군이 블라디미르-수즈달 군대를 격파하였다.
몽골군이 야로슬라블을 함락시켰다.
몽골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소실되었다
50년후 몽고장수 수부타이 사망,주희 제자가 근사록주해..잉글랜드의 수사 로저 베이컨이 화약을 제조하였다.
60년후 훌라구의 몽골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하여 무차별적인 살인과 강간, 약탈을 자행하였고 지혜의 집이 소실되었다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파 조가 멸망하였다.
베트남의 쩐 왕조가 몽골 제국에 복속하였다.
최의의 죽음으로 최씨정권이 몰락하였다.
킵차크 한국군이 리투아니아를 공격하였다.
1차 제노바 - 베네치아 전쟁 발발, 아코 해전
838년 민애왕 등극,장보고의 반대편이 되어 1년만에 사망
흥덕왕이 자식이 없이 죽자 사촌인 김제륭(후에 희강왕)과 그를 지지하는 김명 등이 아버지 김균정과 왕위 다툼을 하게 된 것. 여기에서 패하면서 아버지 김균정은 살해당하고 자신과 김주원계의 김양은 청해진으로 도망가 장보고에 의탁하였다
신무왕은 김명이 희강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자 청해진 소속 군대와 김주원계인 김양의 도움을 받아 청해진(지금의 완도군) 반란을 일으켰고 수도 서라벌로 진격, 대구 등지에서 정부군을 격파하고 결국 839년 1월 23일에 민애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지 얼마 안되어 종기로 죽고 말았다.이어 오른 문성왕
60년전 코르도바 토후국을 공격하기 위한 원정에서 돌아오던 프랑크 왕국군이 바스크족의 기습에 당하였고 이 전쟁 도중 군사지도자 롤랑이 전사하였다. (론소보 전투, 후에 롤랑의 노래의 배경이 됨)
50년전 이드리스 이븐 압달라가 이드리스 1세로 즉위하며 모로코 일대에 이드리시 왕조를 세웠다.
독서삼품과가 시행되었다.
아바르족이 바이에른의 공작 타실로 3세와 동맹을 맺고 동프랑크 지역을 공격하였다.
40년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 알폰소 2세가 프랑크 왕국의 지원을 받아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던 리스본을 일시적으로 정복하였다.
카롤루스 대제의 아들 샤를 2세가 이끄는 프랑크군이 코르시카과 사르데냐를 점령하였다.
30년전 프랑크 왕국 군대가 카탈루냐의 토르토사를 공격하나 후우마이야 왕조 수비대의 항전으로 실패하였다.
이드리시 왕조의 이드리스 2세가 장성하여 볼루빌리스를 떠나 페스에 입성, 친정을 시작하였다
10년후 바이킹 습격자들이 아키텐의 수도인 보르도를 점령하였다.
사라센족이 라구사를 점령하였다.
40년후 에딩턴에서 웨식스의 왕 알프레드 대왕이 이끄는 앵글로 색슨군이 데인족 바이킹군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였다. 이후 식량 부족으로 항복을 선언한 데인족의 왕과 알프레드 대왕 사이에 웨드모어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영국의 땅 일부를 바이킹에 할애하게 되었다
50년후 진성여왕이 위홍에게 향기집삼대목을 편찬케함
60년후 샤를 3세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478년 동로마황제 제논은 이사우리아
에서 돌아와 477년 7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제위를 약 20개월 만에 회복한다.2년전 서로마 멸망
60년전 테오도리크 1세가 서고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
50년전 가이세리크가 반달족의 족장이 되었다.
아르메니아의 아르사케스 왕조가 끝나고 아르메니아가 사산조 페르시아에 병합되었다.
40년전 야즈데게르드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사산 제국이 유목 민족에 맞서 캅카스 동부 고갯길인 데르벤트에 거대한 요새를 세웠다.
20년전 눌지왕 사망.자비왕등극
10년전 서로마 제국의 황제 안테미우스가 군대를 보내 사르데냐를 탈환하고 시칠리아에서 반달족을 축출하였다.
튀니지의 캡본에서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 군대가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반달족의 함대가 로마에 상륙, 도시를 약탈하였다
10년후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이탈리아의 왕을 자칭한 오도아케르를 공격하라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제노의 명을 받고 동고트군을 이끌고 북부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카바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20년후 소보권이 남제 6대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 왕국의 수도를 파리로 정하고 가톨릭교를 국교로 삼았다.
그전에 경쟁자 지게베르트를 제거함.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동고트 왕국군을 보내어 프로방스 지역의 프랑크족을 축출하고 서고트인들의 영토였던 셉티마니아를 탈환하였다
40년후 유스티누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법흥왕은 이차돈의 순교(527년)를 거쳐 불교를 국교로 정한(528년)이후 불교정신에 의한 통치를 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삼국통일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60년후 동고트 왕국 - 부르군트 연합군이 리구리아를 공격, 약탈하였다. (~539년 3월)
백제의 성왕이 도읍지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
118년 고구려 태조왕 118년에는 예맥과 더불어 현도군과 화려성(華麗城)을 공격하였다
후한광무제이후의 평화가 약해진다.
121년 봄에는 후한이 예맥을 공격하였고, 왕은 자신의 동생 또는 서자인 수성(遂成)을 보내 막도록 하였다. 수성은 항복을 가장하여 적군을 속인 후 요지를 장악하였으며 몰래 요동군·현도군을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음력 4월에는 요동의 선비족과 더불어 요수현(遼隧縣)을 공격하여 요동태수 채풍을 살해하였다. 음력 12월에는 마한(馬韓)·예맥과 함께 현도성을 공격하여 포위하였으나, 부여왕 위구태(尉仇台)가 한나라 군과 협공을 펼쳐, 고구려군이 크게 패하였다. 122년에도 마한·예맥과 함께 현도성을 쳤으나 부여의 방해로 패배하였다.
50년전 로마 황제 네로가 자살하고 갈바가 로마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 갈사국의 도두가 나라를 들어 고구려에 투항해 멸망하였다.
40년전 로마의 아그리콜라 장군이 웨일스 북쪽에 살던 오르도비치 족을 토벌하였다.
파코루스 2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10년후
개루왕이 백제 4대 국왕이 되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이 완공되었다
20년후 -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후계자로 지목하였다
30년후 고구려의 차대왕이 태조왕의 맏아들 막근을 살해하였다
40년후 158년에 여름 5월 29일에 일식이 일어나 태사령 진수가 소황문 서황을 통해 일식이 일어난 변고의 허물이 양기에게 있다고 하자 양기는 낙양 현령에게 지시해 진수를 잡아다가 고문해 옥에서 죽게 만들었으며, 이 일로 환제가 양기에게 화를 냈다.
황제는 외척을 물리치기위해 환관을 키우니 십상시가 된다
50년후 168년에 후한(後漢)의 현도태수가 침공해 들어와 고구려 피해.
49년후 길선의 반란으로 백제와 62년평화가 깨짐.
60년후 도특약시축취 : 남흉노의 선우.사망
172년에 이릉약시축취가 죽자 선우에 즉위했고 당시에 선비족에서는 단석괴가 동, 중, 서 등 세 지역의 선비족을 통합하는 등 강성한 세력을 이루고 한나라를 여러 차례 공격했는데, 177년 6월에 한나라에서 하육을 호오환교위, 전안을 파선비중랑장, 장민을 흉노중랑장으로 임명해 세 장수에게 선비족을 공격하게 했고 한나라의 군대가 선비족을 공격하면서 전안이 운중, 하육이 고류 등으로 나아갔다.
도특약시축취는 장민과 함께 안문으로 나아가면서 세 군대가 선비족을 공격했는데, 단석괴가 삼부의 대인에게 명해서 무리들을 거느리고 나아가서 싸우게 하자 맞서 싸웠지만 패했다. 178년에 사망해 호징이 뒤를 이어 선우가 되었다.
BC 243년에 선전포고도 없이 아라토스는 코린트
를 기습공격하여 마케도니아 점령군을 퇴각시켰다.
B.C.243년에 조나라 이목은 연(燕)나라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무수(武遂), 방성(方城) 땅을 함락.
60년후 로마의 정치인 티투스 퀸티우스 플라미니우스가 비티니아에 있던 한니발 바르카 장군의 항복을 요구하였고 비티니아의 왕인 프루시아스 1세마저도 로마의 이같은 행위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한니발은 유언을 남기고 반지에 숨겨두었던 독으로 자살하였다.
스키피오도 죽는다.
BC 603년 고대 바벨론의 젊은 느부갓네살 왕은 대제국을 꿈꾸었다
BC 963년, 기자조선 사신나옴
요동 지역에는 은나라식 청동기나 토기가 거의 발견되지 않고 한국식 청동기나 토기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최근 요동 지역에서 기[箕]자가 새겨진 토기들이 대거 출토되고 있어서 기자조선이 실재했다는 설도 일리가 있다.
투탕카멘은 BC 1323년경에 죽고 나이 많은 아이(BC 1323~1319)가 그뒤를 이었다. 아이의 뒤를 이어 호렘헤브가 이집트 왕이 되었는데, 제19왕조에서는 그를 아마르나 시대 이후 최초의 정통적인 왕으로 생각했다
상원갑자가 끝날 무렵.선천역이 6년후 바뀐다
1738년 끝나는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폴란드 王位 繼承 戰爭, 1733년 ~ 1738년)은 아우구스트 2세(Augustus Ⅱ) 사후 계승권을 둘러싼 폴란드 내전(civil war)으로 서유럽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힘을 저지하려고 시도한 2개의 부르봉의 힘인 프랑스와 스페인이 폴란드 왕에게까지 손을 뻗친 주요 유럽국가의 전쟁의 불꽃이었다.
1738년 2년후 시작되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년 ~ 1748년)은 거의 모든 유럽의 강대국이 얽힌 전쟁이다. 이 전쟁은 여자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 법〉에 따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왕가를 계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각국이 개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60년전 조선에서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50년전 영국의 해적 윌리엄 댐피어가 서양인 중에선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
영국에서 명예 혁명이 시작되었다.
40년전 1698년(숙종 24)의 수교집록(受敎輯錄) 편찬
30년전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에 국력이 소모된 에스파냐가 북아프리카의 오랑을 일시적으로 포기한다
20년전 엘리제 궁전이 세워졌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가 위트레흐트 조약의 규정을 위반하는 에스파냐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하여 사국동맹을 맺었다.
베네치아와 오스만 제국의 전쟁을 종결하기 위하여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베네치아가 파사로비츠 조약을 맺었다.
10년전 덴마크 태생의 러시아 제국의 항해가 베링이 베링 해협을 항해하였다.
스코틀랜드 사람 체임버스가 체임버스백과사전을 간행하였다.
- 조선에서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였다
10년후 폼페이의 유적지가 재발굴되기 시작하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되면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이 종결.
20년후 청나라가 유목제국 준가르를 멸망시켰다.
린네가 이명법을 고안하였다.
30년후 항해사 제임스 쿡이 호주대륙을 탐사하였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편찬되었다
40년후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왕국이 미합중국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다.
-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왕국이 공식적으로 영국에게 선전포고하
60년후나폴레옹이 카이로를 점령.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나폴레옹 원정대를 수송해 온 프랑스 해군을 격파. 이로써 나폴레옹 원정대는 이집트에 발이 묶이게 된다
1378년 교황 우르바노 6세에 반대하는 추기경들이 대립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세워 교황권이 혼란에 빠지다.
위클리프는 교황의 권력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공격을 가하였다. 후에 종교 개혁 운동의 여러 원리는 모두 그의 교설 가운데서 싹텄다고 여겨지기도 하며 위클리프의 교설은 롤라드 즉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각지에 퍼졌다. 민중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라틴어로 된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여 마침내 1382년에 완성하였다. 순교자 윌리암 틴데일에게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기스문트즉위,헝가리와 보헤미아(현 체코 일대)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물려받은 마지막 룩셈부르크 왕조의 황제이다.대신 합스부르크 가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다
60년전 파우가르트 전투에서 노르만 - 잉글랜드군대가 에드워드 브루스를 전사시키며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 군을 격파하였다.
고려에서 불법점유한 토지, 노비를 원 주인에게 환원시키기 위한 관청인 찰리변위도감이 설치되었다
50년전 천순제(원)를 지지하는 다울라트 샤의 상도파와 톡 테무르를 지지하는 엘 테무르의 킵차크 군단이 주축이 된 대도파 간의 양도 전쟁이 일어났다.
- 톡 테무르가 원문종으로 즉위하였다.
일본에서 안도 씨의 난이 끝났다
필리프 6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며 발루아 왕조의 시작되었다. (백년전쟁의 단초)
40년전 최초로 함포가 사용된 해전이었다고 기록된 아르네무이덴 해전에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함대가 격돌하였다.
고묘 덴노가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쇼군 칭호를 내려 무로마치 막부가 설립되었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가 아키텐 (기엔) 과 잉글랜드의 포츠머스를 공격하였다.
30년전 세르비아 제국의 스테판 두샨이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여 그리스의 테살리아, 에피로스 지방을 점령했다.
백년 전쟁을 치르던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흑사병의 여파로 사실상 휴전하였다. (~1355년)
볼로토보 조약으로 프스코프 공화국이 노브고로드 공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20년전 프랑스의 소작농들이 자크리의 난을 일으켰고 에티엔 마르켈의 파리 포위군과 동맹하였다.
- 라구사 공화국이 설립되었다
10년후 위화도 회군이 벌어졌다.
명나라 장수 남옥이 이끄는 15만 대군이 부이르 호수에서 원평종을 습격하였다. 이후 평종은 카라코룸으로 탈출하다 투울 강 근처에서 이수데르 조리그투에게 살해당하며 쿠빌라이 계열의 원 황실은 단절된다.
1388년에서야 샤를 6세는 친정에 나섬
20년후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조선의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의 기능을 한양으로 이전하였다
30년후 - 지기스문트가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을 이끌고 보스니아를 공격하였고, 도보스 전투에서 보스니아의 왕 트브르트코 2세가 지기스문트에게 대패를 당하였다.
40년후 음력 8월 10일에 세종대왕이 왕위에 즉위하였다.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 지휘 하에 항해 연구소가 사그라스 곳 궁전에 설립되었다
50년후 서달사건으로 파면된 황희 복직하나 다시 탄핵됨.
이츠코아틀이 아즈텍 제국의 초대 황제에 즉위하여 테노치티틀란 건설을 시작하였다
278년만에 스페인에 멸망.
60년후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 옥루를 만들었다.
최치운 등이 원나라 왕여가 편찬한 무원록에 주해를 더하고 음훈을 붙인 의서인 신주무원록을 편찬하였다.
페루에서 잉카 제국이 건국된다.
1018년고려와 거란의 전쟁 귀주대첩
교황 빅토르 2세, 153대 로마 교황.
이슈트반은 처남 하인리히 2세 황제와 동맹을 맺어 폴란드의 대공 모라바와 버흐 강 사이의 땅을 향해 영토를 확장 중이던 폴란드의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에 대항했다. (출처 미상) 이슈트반은 황제의 군대에 원군을 파견했다. 1018년 바우츠 화약에서 폴란드의 대공은 점령한 영토를 모두 이슈트반에게 넘겼다
1018년, 헝가리 초대왕 이슈트반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바실리우스 2세와 동맹을 맺고 불가리아로 직접 원정을 떠났다. 이 원정에서 그는 여러 성유물들을 수집했다.
60년전 고려 전기의 학자 쌍기의 건의에 따라 최초의 과거제가 실시되었다.
50년전 고려의 대표적인 불상 중 하나인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완성되었다.
실리스트라에서 키예프 대공국군이 제1차 불가리아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전 애설레드 2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 오월이 패망하였다.
30년전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 정교를 도입했다.
알 만수르가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이끌고 자모라를 점령하고 기독교 수도원들을 파괴하였다. 이어서 그는 레온을 점령, 쑥대밭으로 만든다
10년후
크누트 대왕이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나바라 왕국의 산초 대왕이 카스티야를 정복하며, 레콘키스타 세력은 갈리시아 왕국과 나바라 왕국으로 양분된다.
베트남 리태조가 죽고 리왕조의 태종이 즉위하였다
20년후 서하 (미냑)의 이원호가 스스로 황제국임을 칭했다.
사라고사 토후국을 통치하던 투지비 가문이 쫓겨나고 후드 왕조가 세워졌다
30년후 동 아나톨리아 고원에서의 카페트로우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조지아 왕국의 연합군이 셀주크 제국군에게 패하였다.
잉글랜드를 침략한 바이킹 군대가 격퇴당하였고, 생존자들은 플랑드르로 달아났다. (잉글랜드에 대한 최후의 바이킹 침공)
잉글랜드 국왕 참회왕 에드워드가 켄트 지역의 샌드위치 기반의 함대로 도버 해협을 봉쇄하며 플랑드르 백작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40년후 - 니콜라스 2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황제/외부의 간섭 없이 독자 선출된 첫 사례)
이탈리아의 파르마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볼레스와프 2세가 폴란드의 대공으로 즉위하였다
60년후 무라비트 왕조가 세우타를 포위하였다. 도시는 해상 지원을 받으며 1083년까지 저항하게 된다.
송나라의 철강산업이 연간 12만 5천 톤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은 19세기에 달성)
런던탑 건설이 시작되었다.
658년 당군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시라무렌 거란족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력에 타격을 줬던 것 같다.
-3년전 즉위한 측천무후의 등장
60년전 고구려-수 전쟁 : 영양왕이 고구려군을 이끌고 수나라의 요서 지방을 공격하여 고구려-수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후 수문제가 수나라군 30만명을 동원하여 수륙양면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전염병과 장마, 태풍에 의한 피해 등에 의하여 고구려군에 대패한 뒤 퇴각하였다.
사산 제국이 예멘의 히미야르 왕국울 정복하였다
50년전 비잔티움 제국령 카르타고의 총독 헤라클리우스와 그의 아들이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포카스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다.
호스로 2세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보스포루스 해협까지 진출하였다.
40년전 이연이 황제로 즉위하며 당나라가 건국되었다
30년전 메디나의 무함마드와 메카의 쿠라이시족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후다이비야 협정)
서돌궐이 사산조 페르시아의 트빌리시를 약탈하였다
20년전 이슬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의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아나톨리아 지방과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였다
10년전 648년에는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다.
당태종은 감질허를 사신으로 보낼 때만 해도 까칠했지만, 그래도 신라와 적극적으로 동맹을 체결하여 나당 동맹의 기초가 이뤄졌다. 당 태종이 나당 동맹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1년전 657년 당고종이 소정방, 임아상, 소사업 등을 시켜 보낸 원정군에 서돌궐의 수도 수야브가 함락당하고 마지막 왕 사발라가한은 생포당해 장안으로 압송당해 멸망했다.
10년후 평양성 전투(668년)가 시작되었다.
- 나당연합군이 평양성을 점령하면서 고구려가 28대 705년 만에 멸망하고 여당전쟁이 마무리되었다.
콘스탄티누스 4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20년후 신라의 승려 의상이 범어사. 운암사.한천사를 창건하였다
30년후 카롤루스 마르텔 : 프랑크 왕국의 군사지도자 탄생
40년후 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유민과 말갈족들이 이해고가 이끄는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이 전사하였다. 전투 이후 발해를 건국할 기반을 닦게 된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50년후 성덕왕705~707년 대흉년
60년후 펠라기우스가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총독이던 무누자의 군대를 몰아내고 기독교 왕국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면서 아스투리아스의 초대 왕이 되었다. (코바동가 전투)
298년백제분서왕 책계왕이 한군현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오름.
신라 유례이사금이 죽자 기림이사금 즉위
낙랑.대방이 2년후 투항해왔다.
낙랑유민이 신라로 스며든 유물이 많다
60년전 연왕 공손연이 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가 이를 토벌하고 공손연을 처형하였다
50년전 중천왕이 고구려 제12대 왕이 되었다.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로마제국 천년제
40년전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의 기독교 박해로 인하여 교황 식스토 2세를 포함한 많은 수의 기독교 사제들이 순교하였다.
오나라의 권신 손침이 오의 황제 손량을 폐위시키고 손휴를 오나라 4대 황제로 옹립시켰다.
30년전
나이수스에서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로마 황제 갈리에누스가 암살당하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로마 황제가 되었다.
20년전 고이왕 백제가 미추왕신라를 공격하였다
10년후 유연이 전조의 황제로 즉위하고 연호를 영봉으로 개원하였다.
로마 제국의 황제 갈레리우스는 전,현직 황제들을 소집한 후, 그의 주도로 막센티우스의 무단 쿠데타와 발레리우스 세베루스에 대한 임의적 처형을 단죄, 그 아버지 전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재퇴임, 리키니우스의 서방 정제 취임 등을 결정하여 공포했다. 그 결과로 11월 11일 리키니우스가 취임했다.
20년후 전조 제 3대 황제인 유총이 사망하고 유찬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가 외척인 근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유요가 전조 제 5대 황제가 된다. 유요는 석륵을 조공으로 임명하여 근준을 공격하게 하였다. 근준은 패배한 뒤 얼마 안 가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하였다
30년후 석호가 후조군을 이끌고 전조를 공격하였고, 전조 제5대 황제 유요가 이에 반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요는 이 여세를 몰라 낙양을 포위하였으나 곧 석륵의 군대에 반격을 당해 크게 패배하여 포로가 된 뒤 처형당하였다. 이후 유희가 전조 6대 황제가 된다
40년후 성한의 대장군 이수가 성도를 점령한 뒤 이기를 폐위시켰다. 이기는 공도현공으로 강봉당하고 별궁에 유폐되었으며, 얼마 뒤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하였다. 이기가 죽은 뒤 이수는 직접 성한의 제 4대 왕으로 즉위했고, 스스로 황제임을 자처하며 국호를 성(成)에서 한(漢)으로 바꾸었다.
337년, 모용황은 진나라(동진)에 대한 종속적 관계를 단절하고, 연왕을 자칭하며 연나라(전연)를 건국하였다. 모용황은 단부와 대립했다. 조나라(후조)와 동맹을 맺고 338년에 단부를 협공하였다. 모용황이 혼란에 빠진 단부를 약탈하고 튀자 조나라의 석호는 전연에게 분노하여 단부를 멸망시킨 조나라는 연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49년후 성한나라는 여전히 막장이었으며 그틈을 타고 동진의 환온이 정벌하여 347년에 멸망했다
50년후 모용준이 전연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56년후 김씨내물왕이 즉위.
60년후 내물왕시조묘에 제사지내다
기원전 63년은 카이사르에게 파란 많은 해였다.음모에 빠짐
폼페이우스 셀레우쿠스 멸망시킴
bc423년 다리우스2세 지배,
조선 BC423년 日蝕이 있었음
bc783년 앗시리아 아다드-니라리 3세 사망 니네베의 나부 신전을 시작으로 각지에 신전을 건축하여 그 국위를 보였다. 그의 사후, 그의 왕자 샬만에세르 4세가 즉위
BC 1143년경 무왕은 상尙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울 당시 옥중의 기자를 석방
하트셉수트 여왕은 BC 1503년 서출인 투트모시스 3세를 대신해 섭정을 시작해서 바로 파라오에 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