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2 : 메시지를 잃어버린 환상
오래전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미국인 의사 말로 모건이 쓴 르포 에세이다. 자연치료법을 전공한 말로 모건은 호주 정부의 초청을 받아 의료활동을 하던 중 원주민 청년을 만났다. 청년과의 인연으로 ‘참사람 부족(오스틀로이드)’과 사막 횡단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겪었던 경험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무탄트 메시지’는 픽션같은 몽롱함이 있다. 도무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원주민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앞에서 자칭 문명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무탄트’는 참사람 부족이 문명인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를 말한다. 참사람 부족에게 문명인은 ‘본질을 상실한 돌연변이’다. 본래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일부이며 동물, 생물, 강과 바위, 공기와 연대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지만 인간들에게는 교만함과 탐욕밖에는 없다. 참사람 부족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볼 때 ‘무탄트’는 함께 사는 법을 상실한 불쌍한 존재다. 만물의 이질적 요소이며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땅을 파헤치고, 강을 더럽히고, 나무와 생명들을 살륙하는 도무지 공존할 수 없는 생명체다.
영화 ‘아바타1’에서 ‘참사람 부족’을 다시 만났다. 우주와 자연과 모든 생명체가 서로 교감하며 더불어 사는 영혼 가득한 판도라 행성은 참사람 부족의 가치관과 닮아 있었다. 영화를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와 에이리언 시리즈, 그리고 불후의 명작 ‘타이타닉’을 연출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서는 공상과학영화 이상의 메시지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오래도록 여운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이면에 담긴 철학과 메시지가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아바타1은 카메론 감독의 철학이 어디까지 진보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탐욕이 얼마나 죄악되며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킬 것인지도 보여주었다. 지구를 파멸시키고 생존과 또 다른 탐욕을 채우기 위해 우주로 나선 지구인들의 모습은 19세기 제국주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간이 자연과 다른 생명체와 어떻게 살아야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지도 보여주었다. ‘아바타2:물의 길’에 대한 기대감은 전작이 가져다준 철학적 울림과 개연성 있는 서사, 화려한 볼거리 때문이다.
방학을 맞은 둘째가 집으로 돌아왔다. 군대를 다녀온 아들 녀석이라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버려두었는데 빈둥거리기만 할 뿐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낌새를 보여주지 않았다. 며칠 전 아들 녀석에게 아바타2를 함께 보자고 제안했다. 인문학도인 나와 과학도인 아들의 취향을 만족시킬만한 영화라고 판단되었다. 조조할인을 받아 집 근처 CGV 영화관을 찾았다. 아들을 배려해서 오랜만에 팝콘과 콜라를 산 뒤 입장했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관객은 많지 않았다. 런닝타임 192분이나 되는 장편영화였지만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청소년기에는 영화가 끝나면 박수를 쳤던 기억이 있다. 좋은 영화에 대한 헌사인지 아니면 좀처럼 볼 수 없는 영화를 봤다는 자찬이었는지는 모른다. ‘아바타2:물의 길’을 보고 나서는 좀처럼 박수를 칠 수 없었다. 13년 전, 아바타 1편을 보고 난 뒤 의자에 앉아 긴 여운을 즐겼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아바타2는 우선 철학과 서사가 빈약했다. 과거 공상과학영화에서 보여줬던 우주인들의 침입에 대한 지구인들의 저항을 뛰어 넘는 스토리가 없었다. 빈약한 스토리의 빈공간은 화려한 볼거리로 채워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돈을 많이 쏟아부었구나’, ‘미술감독이 수고 많았다’는 생각을 했다. ‘관객들이 2편을 보고 나서는 더이상 3편을 기대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들과 점심을 먹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먹었던 ‘낙곱새’가 맛있었다며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아들과 먹었던 ‘낙곱새’는 제법 맛있었다. 요즘 젊은층의 미각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것만큼은 서로의 간극을 좁혀주는 음식이라고 생각되었다. 우주과학 관련 영화들이 이제는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고 있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공상’이라는 단어도 사라졌다. 과거 우주인들의 침입에 벌벌 떨며 그들의 침략에서 어떻게 지구를 지켜낼 것인가를 고민하던 지구인들이 이제는 우주를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정복’이라는 방식은 대단히 야만적이고 약탈적이다. ‘우리’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상대적 ‘약자를 침략하고 수탈하는 것’이 정복이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은 ‘재화의 공정한 분배와 소비, 부(富)의 재편성을 통한 상생’을 주장했다. 그가 꿈꿨던 이상은 ‘원시 소공동체’였다. 자연과 모든 생명체가 상생하고,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차별과 불평등 없는 사회공동체를 희구했다.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의 삶에는 김종철의 이상이 살아 있었다. 아니 판도라 행성에 살고 있는 모든 부족과 생명체의 삶이 그랬다. 최소한 아바타 1편은 그렇게 살고 있는 나비족의 삶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폭력을 부끄럽게 했지만 2편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소득주도성장’의 가치, 평등하고 상생하는 아바타 1편의 세상이 그립다.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