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으로의 주거 문화가 대종을 이루며, 층간소음 분쟁이 끊임없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우리 고유의 인정미 넘치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 사라져가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사소한 시비의 발단으로 뜻하지 않은 살인사건까지 벌리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런 소식에 익숙해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조차 하다. 가장 가까운 공간에서 살며 친해야할 사람들이 서로 원수 대하듯 하며 불편한 관계로 살아야 한다면 이는 생지옥과도 같은 불행한 일이다.
아파트 층간소음 분쟁은 윗층 부주의 탓_1
신도시에 입주하여 처음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된지도 벌써 20년을 훌쩍 넘었다. 그때에도 층간소음문제는 심심찮게 얘깃거리가 되어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사회적인 골칫거리로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에 분양 받아 살았던 집에서는 가끔 아이들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청소기를 돌릴 때면 약간의 모터소리인 듯 들려오기도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역시 처음 이사 와서는 위층에 아이 둘이 있는 젊은 부부가 살았다. 당시만 하여도 이사 떡을 서로 나눠먹으며 통성명도 하고 살았으니 이웃에 대한 배려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살다보니 쿵쿵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승강기에서 만나면 "안녕하세요?"하며 귀엽게 인사했고, 무엇보다 밤늦은 시각에는 조용하여 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위층에서 한낮에 쿵쿵거리는 소리가 마치 축구장을 방불케 하며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대로 모른척하면 안 될 것 같아 인터폰을 하였더니 자기네는 아이들이 없다며 엊그제 새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그러냐며 인사도 나눌 겸 찾아가 뵙고 싶다 말하자 주인은 마지못해 그러라는 눈치였다.
마침 일요일, 집에는 오십대의 아버지와 중고생으로 보이는 딸 둘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작은 방의 문을 열고 빼 끔이 내다보는 것이었다. 옳거니, 범인은 너희들이었구나! 싶었지만 뛰고 놀만한 아이들이 없다고 하였으니 증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따지러 간 것도 아니었다. 주인과 거실에 앉아 가족관계며, 직장 등 서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한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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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에도 어찌된 일인지 시도 때도 없이 위층 거실을 오가며 쿵쿵거렸고, 어쩔 때는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갑자기 천장이 무너져 내려앉을 것처럼 쿵하는 소리가 머리를 덮쳐 와 멍하게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랄 뿐만 아니라 가슴이 벌렁거리는 가운데 정신적인 피해는 말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위층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고, 인터폰연락을 하여보지만 그럴 아이들이 없다며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들은 거실에서뿐만 아니었다. 잠을 자다가 위에서 쿵! 하는 소리에 깨어보면 한밤중, 아마도 침대에서 내려 뛰는 소리가 아니었을까싶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터폰은 더 이상 받지도 않은 채 무시되었고, 그렇다고 묵인하며 참아내기에는 큰 그릇이 못되었다. 공자님이나 맹자님도 아마 이쯤 되면 가만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그 집의 위층에 올라가서 양해를 구하고, 어디 맛 좀 보라며 보복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들은 쿵쿵 소리뿐만 아니었다. 이른 새벽부터 텔레비전소리가 잠을 깨우는가 하면, 발코니 창가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어찌나 앙칼지게 들려오는지 괴롭힘도 가지가지였다. 가만히 상상해보면 여자 아이들이 그렇듯 쿵쿵거리며 마치 공을 차고 놀듯 하는 것은 개와함께 장난치며 놀았던 것이 아닐까싶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찾아가 얘기하려고 하면 오리발만 내밀며 반성이나 고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두세 번 찾아가 귀찮게 했다는 이유였다. 그 집 가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술에 취해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며 난리를 부리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두고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하지 않았을까싶었다. 아내의 만류로 꼼짝하지 않은 채 숨죽이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그 집 식구들에 의해 철수하고 말았지만 그 긴장감은 피를 말리게 하였다. 만약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나가 맞서 싸움을 벌인다면 그 뒷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아파트층간소음문제를 놓고 서로 이해와 양보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하기 좋은 말로 남의 일이어야 말처럼 쉽지, 직접 피해 당사자가 되고 보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아래층에 대한 배려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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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집안에서 걸을 때는 항상 앞 꼼치로 걷는 주의력을 심어준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층간소음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사를 갈까 생각하며 고민하던 중 다행히 하늘이 도우셨는지도 모른다. 원수 보듯 하며 지내야만 했던 위층에 마침내 사다리가 올라가고 쿵쾅거리며 이삿짐이 내려지는 날, 그 기분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어떤 악동들이 들어온다 해도 그들보다는 좋을 것 같았고, 그동안의 피해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새로 들어온 그 집에는 노인 내외만 살고 있어 절간처럼 조용했다.
여생을 함께 하며 이사 갈 염려도 없으며, 우리 집은 덕분에 지옥에서 낙원이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아파트 이웃을 만나는 것은 복불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층 사람을 잘 만나면 천국 같고, 잘 못 만나면 지옥 같으니 말이다. 이런 층간소음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정부에서는 건물법을 강화한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모두가 좋은 곳으로만 이사 갈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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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희망은 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거실에서 지금까지 운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맨손체조와 나비춤 뜀뛰기를 비롯하여 달리기도 한다. 마음껏 달리고 달려보지만 아래층에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유치원과 초등학생인 손자들이 오면 이들에게도 시범을 보이며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교육 훈련도 철저히 하고 있다. 아파트층간소음문제는 절대적으로 위층에서의 아래층에 대한 배려의 노력부족 탓이다. 하이힐을 신은 기분으로 사푼사푼 뛰고 달려보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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