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1-20
경건한 왕 요시야-2 / 한서노회
1,좋은 모본을 따라 살았다.
2,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했다.
3,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다.
4,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저 옛날 알렉산더가 실패한 헬레니즘보다도 더 위대하게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또 씨저가 정복해 보지 못한 로마의 구석구석을 그리고 나폴레옹이나 전쟁영웅 히틀러도 다스려 보지 못한 인간 세계는 물론 인간의 심성까지도 질서 있게 지배하고 있다.
바로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경건한 신앙을 가진 왕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 한다.
1,좋은 모본을 따라 살았다.
우리들의 옛 조상들은 한결같이 집안에 가훈을 두기를 좋아 했다.
이는 그 가훈을 따라 후손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은 본을 따라 산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나 학생이 스승에게 주먹질을 그것도 대잦에 학내에서 저지르질 안나....
어제만해도 그렇다 병원 원장(신영우 신경과 강남구 압구정동)이란 사람 이 폭력배들과 어울려 히로뽕 파티를 벌렸다니 ...
세상이 외이렇게 되어지는지 ... 그것도 이렇게 빨리...
그래서 어떤 때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 보면서 정신 나간 미친 사람처럼 저 것이 동쪽으로 다시 뒤돌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의아해 할 때가 있다.
요시야 왕이 살던 때도 요즘 보다는 좀 덜했을런지는 몰라도 매우 부패하고 악한 시대였음은 틀림없다.
그러한 시대에 시대 상황에 물들지 않고 경건하게 살았던 사람이 요시야 왕이었다.
2절에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다.
불과 8세에 왕이된 요시야가 그의 아비 아몬의 신들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가 섬기던 신들을 배척했다.
왜냐하면 요사야의 아버지가 섬기던 그 신이 또 할아버지 므낫세가 섬기던 그 신들이 섬기는 저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것들임을 요시야는 알았던 것이다.
또 요시야는 그의 증조 할아버지인 히스기야의 삶도 본 받지 않았다.
히스기야도 경건하게 살려는 흔적을 남기기는 했었느나 그 역시 신앙의 완정한 본은 아니였던 것이다.
그래서 실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진실되이 살았던 사람을 찾았고 또 그런 사람처럼 되기를 원했다.
그가 바로 다윗왕이었다.
다윗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많이 닮은 사람이다.
요시야는 그의 삶의 목표를 다윗에게 두었고 또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열심을 다했던 사람이다.
우리들도 이 요시야 왕을 본받아야 하겠다.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 되자.
2,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했다.
8절"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엿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이 말은 언제 잃어 버렸는지는 모르지만 잃어 버렸던 율법책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로써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마치 캄캄한 동굴속을 헤메다가 태양을 만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그 잃어버린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는가?
율법책을 발견하게 된 동기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했다.
하나님의 성전이 요아스 이래로 약 250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왕하12;)
그 누구 한 사람 성전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요시야왕이 등극을 하면서 성전 수리작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성전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이 곧 다윗의 길이었고 축복의 길이었다.
3-7절...
그러나 율법책이 발견된 것은 요시야가 왕이 된지 18년이 되던 해였다.
4절의 말씀을 다시 본자.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 곧 문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수하여"
왕이 된 후로 18년이 되기까지 성전을 수리하기 위하여 은을 계속해서 모아 온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은 성전 수리를 위하여 은을 모을 때 요시야가 얼마나 슬기로웠는가를 함께 볼 수 있다.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하였다.
그렇게 세밀한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발견한 것이 율법책이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하고 지나가야 할 문제는 요시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기 전에는 율법책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므낫세나 아몬의 때에 나라 안에 우상으로 가득찰 수 박에 없었던 것은 아마도 율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국가도 마찬가지 단체도 마찬가지 가정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차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멸망인 것이다.
그래서 요시야는 이 율법책을 발견하고 나서 왕의 옷을 찢으면서 회개를 했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어떠한가?
우리들은 집집에 율법책을 식구대 수대로 가지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여러분은 성경책을 가지고 살고 있는 기쁨을 진정으로 느끼면서 살고 있는지?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수리하다가 이런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3,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다
11절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13절 상반절에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
요시야는 율법책을 발견하자마자 곧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물었다.
이 율법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무었을 말씀하시는지를 알게 해 달라고 물었던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서 각 시대를 따라 말씀을 하시고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24;45절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뇨?" 라고 물었던 것이다.
13절하반절엔 "...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함으로 여호와게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고 했다.
요시야는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는 순간에 그의 옷을 찢었었다.
왜냐하면 요시야의 마음엔 여호와의 말씀이 곧 여화와였기 때문이다.
말씀을 대하는 순간 말씀을 듣는 순간 요시야는 여호와를 직접 대면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요시야의 믿음이었다.
스데반을 죽인 사울이 다메섹을 지날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그때 땅바닥에 쓰러진 사울이 하늘을 향하여 물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물었다.
마찬가지로 요시야가 율법책을 보는 순간 율법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요시야 왕은 하나님을 향하여 "주여 내가 무었을 하리이까?"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아니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시는 말씀을 듣는다.
19-20절
"내가 이곳과 거민에게 대하여 빈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네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4,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살아다.
왕하23;1,2.에보면 요시야 왕은 장로들과 선지자와 제사장들과 백성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준다.
얼마나 아름다운 왕이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의 책이 주어진 이유가 무었이라고 생각하시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이다.
나를 향한 이 시대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인 것이다.
듣고 깨닫기 위한 것이다.
깨닫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을 정리한다.
요시야 왕이 다윗의 모든 길로 행했다고 했다.
다윗이 여호아의 율법을 즐거워했던 것처럼 요시야도 그랬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사랑했던 것처럼 요시야도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했던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후대에 전하며 살기를 원했던 것처럼 요시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면서 살았다.
다윗이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요시야 왕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도 되지 말고 듣고 깨달은 말씀을 따라서 다윗처럼 요시야 처럼 살 수 있어서 이들이 받았던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축복 속에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 멘 !!!!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