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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9-16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성경본문 : 아모스2:9-16
9.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지 아니하였느냐
1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11.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나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14.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
15. 활을 가진 자도 설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피할 수 없고
16. 용사 중에 굳센 자는 그 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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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박기완목사
오늘은 아모스서에 나타난 말씀을 살펴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한 선지자로 잘 알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라면 아모스는 '공의의 선지자'입니다.
아모스는 본래 선지자도 아니요, 선지자의 자손도 아닙니다. 가축을 돌보는 목자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는 말씀을 들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았습니다(암7:15).
본문이 기록된 시대는 유다의 웃시야왕(B.C. 790-739) 과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B.C. 793-753) 때의 일입니다.
아모스는 유다 출신이었지만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언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가장 큰 번영을 누렸던 시기인데, 여로보암 2세는 의도적으로 이방의 우상숭배를 조장했습니다(왕하14:24-25).
그는 여호와의 제사 제도는 폐지하지 않았지만 우상숭배의 여러 가지 요소와 혼합시켰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숭배할 때.... 다시 말씀드리면 종교가 타락하면 사회가 타락하고 도덕이 타락하고... 모든 것이 다 타락하였습니다. 종교의 타락은 모든 것의 멸망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는 간음과 살인, 강도 등 사회악이 도처에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가진 자와 힘있는 자들은 약자들을 착취한 재물로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온갖 죄악을 저지르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의 말씀을 선포한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금까지 어떻게 돌보셨는가에 관한 내용이 9∼11절에 기록되고 있고,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저버렸는가에 관한 내용이 12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또한 13절에는 이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이.... 그리고 14∼16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의 결과가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먼저 9절을 보면, "내가"라는 대명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12절에 나오는 "너희가" 라는 대명사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여러 가지의 특혜를 베풀었는데도 너희는 오히려 내 은혜를 저버리고 내 뜻에 거역하는 짓을 하였도다!"
'내가' 라는 말과 '너희가' 라는 인칭대명사를 강조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은혜가 무엇이었습니까?
9절 말씀에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그곳에는 원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통틀어서 본문은 '아모리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한국에도 여러 지방의 사람들이 삽니다. 경기도 사람, 충청도 사람,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그런데 한꺼번에 통틀어서 한국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와같이 가나안 땅에는 헷 족속, 르바임 족속, 여부스 족속 등 일곱 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통틀어서 대표적으로 아모리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멸하신 이유는 10절 하반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려고 아모리 사람을 멸하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아모리 사람의 모습이 어떠한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라고 했습니다.
백향목은 키가 약 20m 정도 되는 아주 높이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아파트 한 층의 높이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파트 한 층의 높이는 2미터가 좀 넘고 3미터는 안됩니다.
아파트 한 층의 높이를 3미터로 치더라도 20미터면 7층 정도 되는 높이입니다. 그러니까 백향목은 굉장히 큰 나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아모리 사람들이 이렇게 백향목처럼 크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키는 아마 골리앗처럼 컸나 봅니다.
또한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데, 잎이 무성하고 그 재질이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노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겔27:5∼6).
그러므로 아모리 사람의 키가 엄청나게 크고, 힘이 무척이나 세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인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을 파병해서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온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열 사람이 뭐라고 보고했습니까?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우리는 스스로 메뚜기와 같다" 고 했습니다(민13:32∼33).
이런 말씀을 살펴보더라도 아모리 사람들은 정말 키가 크고 대단히 강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모리 사람들이 아무리 키가 크고 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다고 했습니까?
9절 말씀에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지 아니하였느냐"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저들을 완전히 멸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 라고 말씀한 것은 나무의 꼭대기에서부터 밑바닥까지, 즉 나무 전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법을 일명 메리스무스(merismus)라고 합니다.
이러한 표현 기법은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양극단만을 들어서 전체를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이스라엘 전체를 표현할 때 흔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말합니다. 단과 브엘세바... 두 지명을 이야기했지만 북쪽에 있는 단과 남쪽에 있는 브엘세바를 가르키므로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땅들...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성경에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 정수리까지' 라는 말씀이 가끔 나오는데, 이는 우리 몸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신28:35, 욥2:7).
암9:1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둥 머리'는 건물의 윗 부분이고, '문지방'은 건물의 아래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건물 전체가 흔들리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메리스무스적인 표현들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족속들이 엄청나게 강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셨다..." 는 말씀은 그들 모두를 완전히 진멸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여기에 보면, 역사적으로 세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첫째로, 출애굽 사건이 나옵니다.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두번째로, 광야에서 인도하신 내용입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세번째로, 가나안 정복이 나타납니다.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이 세가지 사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하면서도 전혀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신기하게도 40년 동안을 지내면서도 몸의 옷이 낡지 않았고, 발의 신도 해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10절에 보면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라고 했습니다.
10절에 나타나는 중요한 세 가지 사건..., 즉 출애굽 사건, 광야 생활, 그리고 가나안 정복은 구약 시대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신26:5-1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앙고백을 할 때 언제나 이 세 가지 사실을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속해서 영적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저들에게 두 종류의 지도자를 주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와 '나시르 사람'입니다.
11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계속적으로 지도하시기 위해서 선지자와 나시르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은 12절에 나타난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언한다는 말은 무엇을 미리 이야기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에 '나시르 사람' 이라는 것은 헌신된 자,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나실인' 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의 나시르 인은 3년, 혹은 7년과 같이 기간을 정해서 헌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는 종신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시르 사람의 세 가지 특징은 첫째로, 독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머리를 깎지 않았고, 셋째는 시체와 같이 부정한 것에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비록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살고 있었지만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신성함을 지키면서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민6:1∼8).
그러나 12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러나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나시르 사람은 구별된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포도주와 같은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시르 사람들에게 포도주와 같은 독주를 마시도록 강요를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들은 선지자에게 예언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입니다.
나시르 사람에게는 포도주와 족주를 마시게 하고 선지자에게는 예언을 하지 못하도록 했으니... 얼마나 엄청난 잘못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삼상2:30절 말씀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고 했는데... 참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그 은혜와 복을 헛되이 여기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큰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4∼16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의 결과가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여기서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라고 하는 것은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을 가르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벌이 그만큼 무겁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땅 위를 혹독하게 짓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벌이 그만큼 가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벌이 너무나도 혹독하기 때문에... 14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벌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피할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여기서 "누른다"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쪼갠다, 가른다" 는 뜻이 있습니다.
곡식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보드라운 흙 위로, 또는 진흙 위로 지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땅이 바퀴자국에 의해서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셔서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그 땅을 쪼개시겠다는 것입니다.
땅을 쪼개는 것은 지진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서에 보면 지진을 묘사하고 있는 말이 여러 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암1:1절, 6:11, 8:8, 9:1, 9:5절..... 등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진을 보내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13절에 보면, "내가" 라고 하는 말씀이 아주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기 위해서 지진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자기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보응으로써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지진을 내린 결과로.... 아무도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14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그마치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그 정도만 설명하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7이라는 완전수로서 더욱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어 있습니다.
14절 끝 부분에 보면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 라고 했습니다. 15절에서는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라고 했고, "말타는 자도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자기의 생명을 건질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망할 수도 없으며" "힘을 낼 수도 없으며" "설 수 없으며" 라는 강한 말씀들을 반복해서 사용하므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그 어떤 피난처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혹독한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역시 일곱 가지로 묘사한 것을 보게 됩니다.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 강한 자 용사 활을 가진 자 발이 빠른 자 말타는 자 용사 중에 굳센 자...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외의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학대하던 이스라엘의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자기들의 행동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다시 한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는 말씀으로 이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아모스서의 총 주제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종국에 가서는 반드시 악인은 심판을 받고 의인은 구원과 상급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ex) 옛날 중국에서 조조가 나라를 다스릴 때의 일입니다.
군인들이 봄철이면 술을 먹고 말을 탄 채 보리밭과 밀밭에 뛰어 들어 전쟁놀이를 하는 통에 농사를 망가뜨리는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농부들은 크게 낙심을 하고 농사를 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조조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술을 먹고 말을 탄 채 밀밭이나 보리밭에 들어가는 군인은 극형에 처하겠다" 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 엄명을 어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조조 자신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술에 취해 말을 타고 오는데, 그만 이 말이 습관적으로 보리밭으로 뛰어 들어가 밭을 망가뜨리고 만 것입니다.
뒤늦게 술이 깨어 이 사실을 안 조조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사형틀에 자신의 목을 얹고 "당장 내 목을 치라!" 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와 백성들은 크게 놀라 극구 말렸고, 간신히 재가를 얻어 조조 대신 말의 목을 치는 것으로 문제를 수습했습니다.
이런 조조의 솔선수범하는 자세에 감동을 받은 군인들은 이후에 다시는 술에 취해 밀밭이나 보리밭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공의를 몸소 실천해 보였던 이 고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공의가 이 사회에 실현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면 사회에 나가 공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 가야 합니다. 이런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와 예배는 그 가치를 잃고 맙니다.
우리의 눈에는 악인들은 계속 번창하는 것 같고 창성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기 때문에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또한 의인이 고난을 받고 억울함을 받는 것 같지만...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의인을 구원하시므로.... 그의 영광은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다 살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까?....
9-11절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들을 애굽땅 종되었던 곳에서 구원해 주시고, 40년 광야 길에서 보호해 주시며, 약속의 가나안 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한 선지자와 나시르 사람을 세워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악을 행하므로 엄청난 심판을 자초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교훈삼아 주께서 베푸신 은혜와 축복의 사실들을 기억하고... 주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삶,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권속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