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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 문학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주)천우미디어그룹
선우미애의 다므기 여행(12회)
*다므기: ‘더불어, 함께’의 옛말
선우미애
월간『한맥문학』등단. 중앙일보시조백일장, 금호문화시조백일장, 신사임당주부백일장, 새한국문학상, 동포문학상, 국제펜문학 강원펜문학번역작품상, 춘천여성문학상, 노천명문학상 수상. 춘천여성문학회 사무국장, 강원한국수필문학회·국제펜클럽 강원지부 이사. 강원문인협회, 춘천문인협회, 춘천여성문학회, 강원여성문학회, 국제펜클럽 강원지부, 강원한국수필문학회 회원. 춘천여성문학회·강원한국 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시집『자연을 닮은 그대는』『섬 같은 사람』『까닭 없이 그대가 그리운 날에는』『산다는 것은』(전자 출판) 『봉선화 소녀』 anotherworld123@hanmail.net
인생은 여행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뭉클뭉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때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르륵 눈물처럼 남아 있는 여행도 있고, 때로는 인생의 그 어디쯤에서 머물러 미소처럼 떠오르는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또한, 진정으로 남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는 시간들도 온다. 그래서 나는 낯선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떠나 낯선 곳으로부터 오는 적당한 객창감을 즐기는 것 또한 여행의 매력이다.
여행도 병이라 했던가? 그러나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걷지도 못하고 여행을 하기에 힘에 부치지 못할 때가 있나니, 권력이 있거나 없거나 돈이 많거나 없거나 그 누구에게도 올 것이고 보면, 몸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또 하나의 큰 행운이다.
여행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느끼게 하고 자연스럽게 감동을 주고 잃어가는 마음을 찾아가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늘 여행을 꿈꾸고, 또 다른 곳을 향해 떠나는 일을 상상하며 살아간다.
봄빛이 창살 가득 들어오는 기분이다. 잠깐의 시간들이지만 내가 여행한 곳들을 순서대로 실을 계획이다. 저절로 오는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여행지를 소개하며 그 마음 따라 함께 공유하고픈 마음에서이다.
생이 짧다는데 그 안에 있는 여행은 또한 얼마나 짧은 것이겠는가? 그 속의 일부를 보고서는 전체를 바라보고 온 듯 쓰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단지, 우리는 산을 다 보지 않고도 산을 이야기할 수 있듯이 여행을 인생에 넣어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인생 또한 여행이기 때문이다.
제주 여행
—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그 울림
여행에는 힘이 있다. 그것은 시들어 가는 영혼을 살려내는 마력의 힘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바쁨을 달고 사는 문명의 삶에서 다시 삶을 느리게 갈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여행을 하는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꿈을 그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다른 세상을 동경하며 본능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여행 떠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즐거워하는 것은 여행을 함으로써 내 삶의 표정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 고개 한 고개 여행의 굽이를 돌아올 때마다 폐부 깊숙이 박혀 있던 찌든 고난이 비늘처럼 떨어져 간다. 여행을 하다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울음을 만날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론 가쁜 숨을 잊어버릴 만큼의 황홀함도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또다시 나를 낮추고 삶을 바라보곤 한다. 이런 여행의 눈을 뜬 나는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삶의 수많은 사연들을 밀쳐놓고 가벼운 짐 하나 들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처음에는 여행 가방을 싸는 것도 복잡했었다. 가방에 넣어야 할 옷이며 화장품, 세면도구 등 모든 것들이 가방의 부피를 넓혀가며 짐이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행할 때 최대한 부피를 줄이는 노하우가 생겼다. 인물 사진보다는 배경 사진을 찍게 되니 화장품은 썬크림 정도만 챙기면 되고, 머리는 흔한 고무줄 하나 질끈 묶고 모자를 쓰면 그만인 셈이다. 어디를 가든지 여행기 쓸 때 필요한 사진 두어 장 찍고 나면, 그 다음엔 눈에다 가슴에다 꼭 박히도록 담아두는 게 여행을 실감 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작은 짐을 메고 제주에 도착했다. 이곳 제주의 숨결은 한국의 정서와는 조금 다른 이국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낭만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게 딱 떨어지는 매력적인 곳이다.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내가 묵어야 하는 곳은 제주시 조천리(朝天里)에 있는 예쁜 펜션이다. 이곳은 한라산 북쪽 해안에 접하고 있으며, 약 800년 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예부터 민족적 자긍심이 강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항일 운동을 활발히 한 곳이다. 펜션에 도착하자 바다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해안으로 낮은 암석이 바다 위에 그림처럼 놓여 있어 정감을 더해주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들어오는 겨울 바다의 풍경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그대로가 시(詩)였다. 해안으로 둘러진 낮고 검은 암석(현무암)이 바다에 떠다니고 있었다. 끝내 닿지 못할 그리움을 안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예쁘고 정갈하게 꾸며놓은 펜션은 여주인의 인상과도 같았다. 웃음으로 밝게 느껴오는 친절함은 실핏줄에서 느껴오는 끈끈한 살빛 체온 같았다.
그렇게 제주 바다에서 해넘이를 바라보며 펜션의 밤은 깊어갔다. 어둠의 색이 진해질수록 하얀 파도 소리는 요란을 떨었다. 하지만 겨울 냉기의 바람마저 따뜻하게 들려오는 것은 아마도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슴 한 짐 털어낼 수 있는 시간을 바다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생각하며 밤을 보냈다.
파도가 창문을 흔들며 아침잠을 깨웠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에 아침을 잘 먹지 않던 나는 여행을 할 때면 쉽게 배가 고파온다. 아마도 여행에서부터 느끼는 감정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파도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느긋한 아침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쫓고 쫓기는 서두름이 아닌 느림의 시간을 누렸다. 생각해보니, 세파에 지친 나의 지난 영혼은 얼마나 뒤엉킴이었던가!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도 서로를 헐뜯고, 한 치의 용서도 없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썩은 양심에 시달려온 시간들의 갖은 사연들을 내려놓았다.
아침나절의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해안가를 따라 걸어나오니 연북정(戀北亭)에 대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연북정은 조선시대의 정자로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북정은 과거에 이곳으로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북쪽의 임금을 그리며 기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충신이 임금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나는 정자에 앉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그 시절을 보냈을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검은 돌담마다 염증처럼 녹이 낀 이끼가 세월의 풍상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들 또한 모질게 겪은 삶의 고통과 억울함이 어찌 없었을까를 생각해보니 어딘가 씁쓸한 기운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인생이라는 것은 잔잔한 수평선 위에 떠 있는 돛배만은 아니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에 대한 흠모가 얼마나 깊었으면 연북정(戀北亭)이라 하였을까?
멀리 돛을 내리고 마냥 한가롭게 누워 있는 작은 배가 보였다. 그곳에 바닷바람 한 자락 불어 지나가니 소금기가 와락 그리움처럼 온몸에 젖어들었다.
오후의 일정은 어디라고 정해진 곳 없이 차를 타고 나왔다. 어디를 가든 자연을 음미할 수 있는 산과 고즈넉한 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제주의 바람 따라 차를 멈춘 곳은‘제주4·3평화공원’이었다. 제주 4·3 사건의 발단은 8·15 광복 이후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선거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기념관을 구경하는 내내 그때 당시의 끔찍한 장면들과 영상들로 인해 다리가 후들거렸다. 제주 전역으로 펼쳐진 유혈 사태의 진상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제주도민들과 군정경찰서 및 서북청년단 사이에서의 갈등이 엄청난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그야말로 초토화의 참상이 이루어졌었다. 마을이 불타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는 피난민이 많아졌고, 추운 겨울 한라산으로 숨어 다니다 잡히면 그대로 사살되었던 현장들이 사진으로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양손을 배에 움켜쥐고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임산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나의 낯빛이 아연실색으로 변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다랑쉬 동굴 학살의 장면을 볼 때는 끝내 고개가 절로 흔들어지며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리기 시작했다. 4·3 사건 비극의 흔적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이로 인해 제주 전역에 행정 기능이 마비되는 심각한 치안 불안 상태가 지속되었다. 어쩔 수 없이 목숨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일본으로 나라를 떠나야 했던 이들의 처절했던 심정을 생각하니 온몸으로 소름이 울퉁불퉁 돋아났다. 이들의 영혼들을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막막하고 혼돈스러웠다. 인간의 잔혹함은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해보니 구역질이 나왔다.
2001년 4·3 사건로 인한 민간인 학살과 제주도민의 처절했던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위한 평화공원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국가 권력에 의해 대규모의 희생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분들의 영혼이 얼마나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영원히 좁혀지지 못하는 관계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관에서 밖으로 나오니 어둠이 내리고 있다. 뼈를 훑어 내리는 바람까지 을씨년스럽게 불고 있었다. 이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위령탑으로 걸어갔다.
4·3평화공원에 날은 저물어가고 나는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고개를 넘어왔다. 바람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이들의 고된 슬픔을 단 한 뼘의 크기만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말이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 이야기도 아니고 내 나라, 내 민족의 이야기가 아닌가! 내 나라가 주었던 참혹한 역사적인 현실에 무한한 잡념이 나를 괴롭혔다. 유난히 추운 겨울 날씨에 내 몸은 얼어만 갔다. 그러나 내 심장은 요동을 치며 무언가 모를 두려움에 쿵쾅거리고 있었다. 삶이란 게 무섭고 지긋지긋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를 붙들고 절망적인 슬픔을 하소연할 수 있단 말인가! 이분들의 영혼을 다 달래드릴 수는 없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편안히 잠들 수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둑한 저녁 평화공원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생각의 깊이가 점점 더 침잠해가고 있었다. 붉은 공허가 밀물처럼 밀려와 나의 뇌를 흔들고 갔다. 빛과 어둠이 자연스럽게 교차되어가는 시간이다. 빛이 어둠으로 인해 서서히 빠져나가는 순간을 만나기 위해 해넘이의 바닷가를 향해 서둘러 차의 노선을 바꿨다. 제주도 일몰의 명소로 알려진 섬, 차귀도로 갔다. 차귀도는 옛날에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30여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무인도이다. 나보다 먼저 일몰의 사진을 찍기 위해 삼각대를 세우고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서인지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쓸쓸해 보이는 섬이었다. 어둔 구름이 바다 위로 자리 잡고 있던 탓으로 태양의 밑 부분이 수평선으로 닿는 것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섬은 어두워져 갔다.
차를 돌려 용수해안도로를 빠져나오다 국내에서 가장 작은 교회를 만났다. 이곳은 제주도 한경면 용수리에 위치한 곳으로 올레길 13코스를 지나는 골목에 아주 작게 자리하고 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순례자의 교회는 항상 문이 열려 있었다. 교회는 지나는 사람들 누구나 들어와 내면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오롯이 혼자 들어가 손을 모을 수 있는 장소였다.
나는 잘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며 손을 모았다. 점점 화려하고 커져만 가는 교회의 현실에서 이곳의 좁은 공간은 나에게 믿음의 공간을 확장시켜 주는 영혼의 쉼터 같았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마음이 찡해져져 와 눈물이 났다.
그날 손을 모으고 기도했던 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다시 기도를 한다. 얼룩무늬로 물든 나의 인생의 길 위에서 만났던 교회가 눈에 아른거린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순간순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겸손을 배우게 되고, 삶의 체온을 느끼곤 한다. 어쩌면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의 턱을 넘나들게 하는 게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삶에 대해 슬프면서도 따뜻한 반성이 있게 하고, 인생을 바라보며 고뇌가 어린 간절한 기도를 하게도 한다. 이번 제주 여행길은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울림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 번 4·3 사건 비극으로 떠나간 사람들의 영혼을 기억해본다.
첫댓글 선우시인님, 다므기여행 잘했습니다. 정말 제가 그곳에 함께 있는 느낌이 듭니다. 누군가 그랬어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공부가 여행이라고요. 언젠가 함께 좋은 곳으로 여행 떠나보면 어떨까요? ^^
좋습니다. 교수님
봄싹 오른 어느 날, 한번 뭉쳐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