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여관
이병일
나의 피난처는 라부여관,
그런데 레바논의 백향목이 왜 생각날까
익힌 것은 깊고 잊힌 것은 춥겠지,
욕심은 나를 깨우고 잠들게 하고
핏줄보다 돈이 이끄는 대로
적과 싸우게 하고
총, 칼, 활이 내 관자놀이를 겨누게 한다
고흐, 까마귀 울음으로 칼을 갈아
귓등을 긋고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왜 피에서 해바라기 냄새가 나는지
왜 피로 죄와 믿음을 씻으려 하는지
오늘 수염으로 가득한 나의 얼굴은
까마귀가 되었다가
사이프러스와 밀밭이 되었다가
다시 새 피 얻을 몸으로 되돌아온다
왜 죄는 눈꺼풀이 없을까
나의 탄식소리로 말미암아
인중에 괸 침묵도 일렁거릴 것만 같다
격리와 고립은 한몸 같은데
얼음구멍같이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찔끔, 코피가 흘러나온다
라부여관, 신기하게도 죽음보다
고백을 듣는 방이 많았다
나는 종교도 없이 신앙심을 갖고 싶었다
캄캄한 것이 꾸물꾸물 밝아진다
이병일
전북 진안 출생. 2007년 《문학수첩》 시 신인상,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으로 등단.
시집 『옆구리의 발견』 『아흔아홉 개의 빛을 가진』 『나무는 나무를』 『처음 가는 마음』
카페 게시글
-시 시조 평론분과
라부여관 이병일
이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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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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