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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머릿속 시한폭탄>의 줄거리: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는 시한폭탄의 특성에 근거해서 일정한 조건에 도달하면 폭발하는 일이나 사건 등을 우리는 비유적으로 시한폭탄이라고 합니다. 머릿속 시한폭탄이라 불리는 뇌동맥류는 머릿속 혈관에 생긴 꽈리를 가리킵니다. 이 꽈리가 언제 터져 급성 뇌출혈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선민의 삶에 충만해야 할 평강에 대해 꽈리 모양의 시한폭탄이 있습니다. 본문 속 야곱의 삶에서 이 꽈리는 대체 언제 만들어져서 이렇게 터져버린 것일까요?
머릿속 시한폭탄
(창34:1~31)
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2.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26.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27.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28.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29.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머릿속 시한폭탄>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머릿속 시한폭탄’
머릿속 시한폭탄이라고 불리는 혈관질환이 있는데 뇌동맥류라는 질환입니다.
뇌동맥류라는 머릿속 시한폭탄이 특별히 겨울철에 많이 발발하는데, 겨울철에 날씨가 추워지면서 온몸의 혈관이 여름보다 더 수축하게 되고 혈압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혈압이 높아질 때에 뇌 속의 혈관들 중에서 혈관 벽의 약한 부분이 꽈리처럼 불쑥 튀어나오게 됩니다.
풍선 불 때를 생각하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꽈리 부분을 뇌동맥류라고 합니다.
이것이 왜 시한폭탄인가 하면, 풍선을 크게 불어놓으면 바늘 끝이나 나뭇가지의 가시 같은 것들에 조금만 닿아도 뻥하고 터지는 것처럼, 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조그만 압력이 가해지거나 힘이 주어지면 터져버립니다.
이렇게 꽈리모양으로 되어있던 상태에서 뇌출혈이 될 경우에 병원으로 도착하기 전에 20%는 사망하고, 병원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이미 50%이상은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이므로 치료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서도 50%는 치료 중에 사망하거나 중증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야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뇌동맥류가 무섭죠.
이렇게 머릿속의 혈관이 부불어서 꽈리모양으로 생기는 뇌동맥류가 머릿속 시한폭탄인데,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에서 악당들이 주인공인 톰 크루즈의 코를 통해서 머릿속에 폭탄을 넣는 장면이 나옵니다. 뇌동맥류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중증 장애를 가져다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의 삶에서 평강을 죽이거나 중증 장애를 일으키는 꽈리가 있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평강인데 이 평강을 깨는 것입니다.
문제는 뇌동맥류가 급성뇌출혈로 되기 전까지 꽈리모양으로 있을 때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도 평강을 깨는 시한폭탄 같은 꽈리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증상을 모르고 있다가 평강이 깨뜨려지면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시한폭탄인 이 뇌동맥류와 같은 꽈리는 도대체 언제 만들어지고 언제 터지는 것이냐?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행복과 기쁨과 만족과 감사 대신에 걱정, 근심, 두려움, 염려, 질투, 미움 등의 감정에 휩싸여있으면서 사건이 터지고 평강이 깨진다면 그것이 시한폭탄으로 있었던 꽈리가 터진 것인데, 분명히 그 꽈리가 만들어진 이유가 있고 터지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앞부분에서 읽었던 것처럼 레아가 야곱에게 디나라는 딸을 낳아줍니다.
아들들 중에 있던 딸이니 굉장히 예뻤고 귀하게 컸을 것 같아요.
얍복 강에서 하나님의 사자와의 씨름과 에서와의 만남, 그 다음 숙곳에 이르러서 6~7년이든지, 10년이든지 평안가운데 머물고 있다가 세겜으로 옮겼을 때에, 디나가 세겜 성에 있는 여자들이 궁금해서 나들이를 나갔다가 세겜 성의 추장인 세겜에게 강제추행을 당하게 됩니다.
세겜이 강제추행을 했으나 디나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게 되어서, 디나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말로 위로하고, 야곱을 찾아가서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자기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11절에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결혼을 할 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나 자기가 잘못을 했고 디나가 사랑스럽고 좋으니까 그렇게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는데 사무엘하 13장에 보면 다윗의 아들들에게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데, 첫째 아들이 암논이고 셋째 아들이 압살롬입니다. 서로 배가 다른 형제인데 압살롬의 동생 중에 다말이 있었는데 이 암논이 배다른 오빠로서 다말을 좋아해서 결국 강제추행을 한 뒤에 다말을 내쫓을 때에 다말이 뭐라고 하느냐?
16절에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라고 합니다.
다말로서는 강제추행을 막으려고 했어요.
13절에 “나를 원하면 아버지 다윗에게 이야기해서 나를 달라고 하고 이렇게 하지 말라”고 애원을 함에도 불구하고 강제추행을 했습니다. 그랬으면 이제 자기의 아내로 맞아들여야 하는데, 15절에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라고 합니다.
이 암논과 비교하면 세겜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요.
젊은이의 욕정에 끌려서 하지 말아야 될 짓을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디나를 위로하고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느끼면서 야곱의 가족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이용해서 디나의 오빠들이 할례를 요구합니다.
아예 속임수였는데 야곱은 옆에서 아들들이 하는 소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할례를 해서 결혼을 시키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할례를 하라는 제안에 대해서 세겜이 디나를 너무 사랑하므로 자기뿐만 아니라 성안에 모든 남자들을 다 설득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포용하면 외자유치를 하는 것이고, 결국 우리 땅에서 사는 것이니 우리 것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사람들을 설득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남자라는 남자는 다 할례를 받게 했어요. 할례를 행한 뒤에 삼일 째가 제일 아프고 불편하답니다. 삼일 째에 시므온과 레위가 자기들의 장정들을 데리고 가서 남자들을 다 죽여 버리고, 나머지 형제들이 가서 죽은 시체들을 밟고 그들의 아내들이며 노약자들을 다 약탈하고 온 집의 물건들을 다 훔쳐옵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의 새 이름이면서 구약의 선민들의 집단을 향한 이름이고, 구약 교회의 초창기 멤버들입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가서 미국에서 개신교가 시작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초창기 멤버들인데, 청교도 같은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끔찍한 약탈과 잔혹한 대량 학살 행위가 나타납니다.
결국 야곱이 세겜에서 땅을 사서 본격적으로 정착된 삶을 살려다가, 거기에서 못 있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평강이 급성 뇌출혈로 마비되고 깨져버리고 맙니다.
자, 보세요.
에서와의 갈등 속에서 장자권을 탈취하여 도망갔습니다. 라반 외삼촌과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킵니다. 아내 때문에 속고 속이면서 재산 문제 때문에 갈등합니다. 그리고 도망을 가다 라반과 겨우 화해를 하고, 이제 에서를 맞닥뜨려서 완전히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가 얍복 강가에서 씨름을 한 후에 에서와 화친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숙곳에 머물렀습니다. 야곱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인생 중에 숙곳에 머무른 이 기간의 의미는, 축복을 향해 끊임없이 축복의 주도권을 쥐고 살다 한숨 돌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도권을 쥔다는 것은, 내게 필요한 축복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판단해서 정하고, 그 축복을 자기가 소원하고 그 소원하는 축복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가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주도권을 쥔 것입니다.
장자권을 산 것도 그랬고, 라헬이 내게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해서, 라헬을 위해 7년을 일하겠다며 계속해서 주도권을 쥐었습니다. 에서와 화해하고 나서 에서가 같이 가자고 할 때에도 결코 에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주도적인 판단으로 숙곳에 머물게 됐습니다.
이 숙곳에 머무는 기간을 5~10년으로 잡아봅시다. 이 기간은 정말로 축복을 쥐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던 야곱의 인생에서 한숨 돌리는 시간이었고, 한숨 돌리며 꿈을 꾼 것입니다.
무슨 꿈을 꾸었느냐? 비전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제 정착할 만한 곳을 찾아내서 내게 있는 대가족과 노비들과 재산을 근거로 축복을 더 쌓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땅까지 산 곳이 세겜이었는데, 너무나 사소한 일에서 그만 이 평강이 급성 뇌출혈을 일으키면서 완전히 깨져버리고 맙니다.
내가 당하는 것 못지않게, 이렇게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불행이죠. 나에게서 이런 괴물의 모습이 나온다는 것이.
20살이 넘었거나 못 미치는 야곱의 아들들이 어디에서 이렇게 잔혹한 학살과 약탈의 행위를 배우고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이것을 실행으로 옮길 수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폭력적인 영화를 보더라도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 옛날에 영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20대의 청년들이 이렇게까지 잔혹하고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시한폭탄이 터진 거예요.
야곱의 삶 속에서 이 시한폭탄들은 도대체 언제 만들어진 것이고, 왜 터진 것일까요?
야곱의 삶에서 뇌동맥류가 생긴 곳을 찾아봅니다.
결정적으로 꽈리가 부풀어 오른 곳은 얍복 강입니다. 축복 주도권을 놓고 하나님과 싸웠던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씨름에 임하시면서 이 땅에서 네게 일어나야 될 모든 축복의 사건들은, 네가 아무리 잘났고 아무리 생각이 치밀해도 내가 너를 위해서 준비한 축복의 계획보다 더 이상일 수가 없다는 것을 성경을 읽는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에 소중하게 여겨지는 축복을 버리면서 빈 마음에 나를 선택해서 받아들이라는 것이 씨름의 목적이었는데, 야곱이 하나님을 이겨서 끝까지 마음에서 축복을 놓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들어오실 수가 없는 상태가 되고, 자기 삶에서의 축복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리지 못합니다. 이때에 꽈리가 생긴 것이고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평강을 급성 뇌출혈로 마비시키거나 죽이는 그런 시한폭탄이 언제 생깁니까?
내게 이러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복을 그리고 필요하다는 판단을 합니다. 축복 주도권이 시작되고 그것을 소원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실천해 나갑니다. 꽈리가 생긴 것입니다.
야곱에게 생긴 이 꽈리는 사실은 본성상 장자권을 두고 에서와 갈등을 일으킬 때부터 시작해서 얍복 강가에서 완벽해진 것이죠.
이제 꽈리가 언제 터집니까?
숙곳에 머물고 있는 이 상태에서 세겜으로 옮겼을 때의 야곱의 마음 상태를 연상해보면 언제 터지는지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갈등의 시간들 에서와의 갈등, 아버지를 속인 것, 라반과의 20년간의 갈등, 다시 에서를 만나게 되는 두려움 이 모든 것이 다 극복 됐습니다.
축복 주도적으로 살고, 축복 주도적으로 뛰어 갔는데 성취가 있고 충족감이 주어지는 기간에 드디어 야곱의 마음속에서 안정감을 찾기 시작합니다. 축복 주도권을 쥐고 이 세상일이 잘 되어서 마음에 안정감을 찾는 그 순간, 그 안정감을 토대로 해서 이제부터 이 세상에서 삶을 더 멋지게 구축해봐야겠다고 세겜에 와서 땅까지 샀을 때에 터집니다.
이 땅에서 삶의 조건이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이 안정된 조건에서 이제 삶을 누리면 되겠고, 이제 삶을 더 쌓을 수 있겠고, 이제는 발전만 있겠고, 이제는 핑크빛 미래만 있겠다고 땅의 조건에 기대서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에 꽈리는 터지기 시작합니다. 평강이 깨져나가기 시작하고, 급성 뇌출혈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꽈리의 발생 자체를 막아야 해요.
내게 주어져있는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 얻으려는 생각 자체를 십자가에서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주어진 것들 조차에 대해서도 내 마음이 죽어야 해요.
그래서 주님께서 눅14:26절에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마19:29절에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소중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듯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해요.
아직 안 주신 축복들을 내가 마음에서 그리면서 쫓아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주어진 축복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미 주어진 축복이 없다고 느낄지라도 태어난 것이 축복입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마음이 없고 뜻이 없고 힘이 없습니다. 마음이 있다는 것과 뜻이 있다는 것과 힘이 있다는 것이 주어진 것이고 축복입니다. 그래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거예요.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신6: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네가 건축하지 않은 집에서 네가 모으지 않은 것들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이런 것들을 내가 꿈이나 꾸고 소원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계신다니까요.
그러므로 내가 축복주도권을 쥔다는 것이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내게 해악인가 하면, 꽈리가 생기고 시한폭탄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한폭탄이 생긴 상태에서 열심히 추구하고 주도권을 쥐어서 축복이 내 품 안에 들어왔고 안정된 조건이 형성이 됩니다. 그 안정된 조건 때문에 마음이 기쁨을 느끼고 이제부터는 핑크빛 미래만 남았다고 하는 순간에 꽈리가 여기저기서 속수무책으로 터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사라가 바로 왕의 궁궐 안까지 들어갔어요. 아브라함이 보내서 제 발로 들어갔는데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그런데 디나가 나들이를 나간 사건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궁궐 안으로 들여보낸 것에 비하면 너무 사소하고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왜 하나님은 디나를 지켜주시지 않았을까요?
야곱이 축복 주도권을 쥐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하실 수 있는 자리를 빼앗기신 것입니다. 씨름에서 하나님을 이겼으니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내가 준 모든 축복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는 것이고, 그러려면 축복에 대해서 죽고 나를 받아들이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라고 하신 것이었어요.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니 궁궐 안에 들어간 사라까지 지켜주십니다. 그런데 디나는 나들이를 나갔다가 강제추행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겜의 강제추행을 막으시고, 야곱에게 와서 결혼을 요구하고 야곱의 아들들의 요구대로 이방족속과는 결혼할 수가 없으니 할례를 하자고 해서 좋게 결혼 할 수도 있었고, 그래서 세겜 족속도 히브리인의 하나님인 여호와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왜냐하면 복의 근원이 돼야 되기 때문에.
그런데 이게 뭡니까?
아들들 속에서 모든 괴물이 다 터져 나옵니다. 시한폭탄이에요. 아들 하나하나가 다 야곱의 평강을 깨는 시한폭탄이고, 그런 사건을 몰고 온 디나도 꽈리입니다. 다 꽈리예요.
하나님이 못 지켜주십니다. 왜냐하면 주도권을 빼앗았으니까.
그럼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을 어떻게 하시느냐?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무효화 된 것은 아니에요. 야곱 전체의 인생을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까지 끌고 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삶 안에서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자기가 통치하므로 이렇게 됩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아요.
오늘 영화 이야기를 또 한 번 해봅시다. ‘놈, 놈, 놈’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기차가 달려가고 있는데 이상한 놈, 나쁜 놈, 좋은 놈, 세 놈이 싸웁니다. 그런데도 기차는 달려갑니다.
마찬가지로 선민 됨이 무효화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야곱의 삶 전체를 기차처럼 한 곳으로 몰고 가시고 있지만, 그 야곱의 삶 안에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자기가 주도적으로 내 삶을 이끌어 가겠다고 마음먹고 있기 때문에 그 야곱의 주도권에 맡겨졌을 때에 바로 꽈리가 생긴 것이고, 터져나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수 있는 위치에 계실 수 있도록 자유의지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를 가지고 모셔 들이지를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셨습니다. 결국 야곱 인생의 마지막은 아브라함이 영광의 하나님을 보고 출발했던 인생의 출발점으로 향해가고 있는 것이고 그리로 끌고 가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자리까지.
그러나 그곳까지 가는 동안 숙곳에서의 삼일천하와 같았던 짧은 평안의 기간이 다였고, 이제부터 야곱의 집안에는 근원적인 샬롬이 사라져버린 채, 형제들에게 팔려가서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총리 가 된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야곱 집안의 근원적인 평강이 깨져버린 거예요. 마치 급성 뇌출혈로 평생 중증 장애를 앓고 살아야 되는 불행이 닥친 경우처럼, 그렇게 야곱의 생애 자체가 평강의 중증 장애가 주어지게 된 것이죠.
이 시한폭탄인 꽈리가 언제 생기고, 언제 터집니까?
우리는 생래적으로 축복을 향해 갈 수 밖에 없어요.
생래적이라는 것은 원죄가 있고 죄적 성향이 있어서, 이 세상의 축복을 하나님보다 먼저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나의 소원이 생길 때마다 그게 꽈리가 생기는 것임을 우리가 알고 그 꽈리가 생기기 전에 끊임없이 십자가로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삶의 조건이 안정적으로 되었습니까? 이 삶의 조건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평강을 이루고 있다면 깜짝 놀라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평강의 근거는 땅의 조건이 아니라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에 닿아서 하늘을 근거로 평강을 누리게 하는 사건이 역시 십자가입니다.
땅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세상에 대해 죽어서 마음이 하늘에 있을 때에, 이 세상에서의 축복 주도권을 하나님께서 가지시고 아브라함을 주도적으로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이끌어 가셨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삶의 평강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뇌동맥류와 같은 우리 삶의 평강에 치명적인 꽈리가 생기지 않기 위해 모든 축복 주도권을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게 하시고, 삶의 조건이 아무리 안정되게 주어질지라도 그것에 마음에 근거를 두고 평강을 누리는, 꽈리가 터질 수밖에 없는 일들을 막으며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