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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바른 관계냐 부당거래냐?>의 줄거리:
선민이 누구냐? 오늘 본문에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땅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자로 말씀하십니다. 즉 제사장입니다. 오늘날 만인이 제사장인 시대에 선민 모두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양쪽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이 때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맺는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면 예외 없이 그 관계는 부당거래가 됩니다. 삶의 실제 내용인 이 관계들이 모조리 부당거래로 변질이 되어 버린 아담 타락의 저주를 벗어나는 길을 살펴봅니다.
바른 관계냐? 부당거래냐?
(출39:1~43)
1.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성소에서 섬길 때 입을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해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2. 그는 또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을 만들었으되
3.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에 섞어 정교하게 짜고
4. 에봇에는 어깨받이를 만들어 그 두 끝에 달아 서로 연결되게 하고
5. 에봇 위에 에봇을 매는 띠를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붙여 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6. 그들은 또 호마노를 깎아 금 테에 물려 도장을 새김 같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그것에 새겨
7. 에봇 어깨받이에 달아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기념하는 보석을 삼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바른 관계냐? 부당거래냐?>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바른 관계냐? 부당거래냐?’
“부당거래”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유명한 영화라서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습니다마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꼭 잡아야만 하고 잡을 것이라는 결심을 대 국민선언에서 발표할 정도로 아주 지독한 연쇄살인범이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경찰들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게 되고 첫 번째 용의자였던 자가 살해를 당하게 되면서 그가 연쇄살인마가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자 경찰들이 당황하고 경찰수뇌부에서 고민을 하다가 가짜 연쇄살인범을 만들어내서 대통령과 나라의 윗분들과 국민들을 거짓으로 안심시키려고 하는데 여기에 베테랑 형사가 발탁이 되는데 이 베테랑 형사는 거짓으로 범인을 잡는다는 계획을 다 알고 경찰대학을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승진에 늘 문제가 있었던 열등감이 연결되면서 거짓 연쇄살인범을 잡음으로써 승진의 기회로 삼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이 일에 가담하게 되고 조폭 출신의 건설회사의 사장과 결탁을 해서 거짓 살인범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잡는데 거짓 살인범이 타락한 검사의 스폰서여서 검사와 형사 간의 갈등이 생기고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고 거짓된 검찰은 장인이 검찰의 수뇌부로 있기 때문에 또 거짓으로 덮어주면서 유야무야돼 버립니다. 이 내용을 보면 사람이 정말 더럽고 악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영화의 메시지가 그것을 전달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70억 인구 중에서 나를 선택하셨고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선택받은 선민이 도대체 누구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로 표현 할 수 있는데 오늘 본문과 연관되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땅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땅에 있는 사람과도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이 관계가 부당거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담이후 타락의 상태에서 인간에 대한 관계가 내가 자식을 대할 때도 부자지간의 관계가 아니라 부당거래가 되고, 부부가 관계를 맺고 살아도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부당거래가 되고, 인간의 모든 관계가 부당거래가 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부당거래로 꽉 찬 삶의 내용을 바꾸어서 바른 관계로 가득 찬 그런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사장이 돼야 된다는 것인데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예수님 때 대제사장은 자신이 부당거래를 자행합니다. 그런 부당거래를 자행한 제사장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습대로의 제사장이 되지 않으면 부당거래로 가득 찬 삶을 벗어날 수가 없고 부당거래라고 하는 영화의 내용이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우리의 삶 역시도 부당거래로 지속된 삶을 살다가 끝나버리고 말 것이고 부당거래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불행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사장의 옷이 만들어졌다”라는 얘깁니다. 성막이 다 만들어지고 마지막으로 제사장의 옷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고 맨 마지막 부분에는 이제까지 만들어진 모든 것들을 모세가 다 점검을 하는 것으로 성막제작이 끝이 납니다. ‘제사장의 옷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전달해주는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만인제사장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구약에서부터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옷은 우리의 신분과 위치를 말합니다. ‘옷을 벗었다’는 것은 사표를 내거나 은퇴할 때 옷을 벗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신분과 지위,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신분과 지위에 사명과 의무까지 곁들여서 말씀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먼저 제사장의 옷은 굉장히 화려하고 구성이 섬세합니다. 먼저 고운 베로 짠 속옷을 입고 그 위에 파란 색의 겉옷을 입고 그 위에 갖가지 색과 금실로 섞어 짠 에봇을 입습니다. 에봇의 어깨위에는 견대가 달립니다. 견장이 달리고 가슴에는 흉패가 달립니다. 견대위에는 호마노 보석으로 좌우에 새겨서 열두 지파의 이름을 여섯 개씩 좌우에 새겨 넣고 흉패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을 열두 보석으로 세 명씩 네 줄로 다 금테에 물렸습니다. 머리에는 관을 쓰게 되고 이렇게 화려하고 정교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옷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옷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야곱이 열두 아들 중에서 요셉을 편애할 때 채색 옷을 입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편애를 말합니다.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편애인데 편애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사랑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으로 그 누구도 하나님에 대해서 공정성과 불공정성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는 황송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보면 자기 스스로 옷을 입지 못하는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들의 옷차림을 보면 부모의 마음이 다 표현돼 있어요. 요새 얼마나 잘 입힙니까? 그렇게 입혀서 나가면 얼마나 예쁜지 완전히 인형 같아요. 그리고 애완견을 보면 미장원에 가서 털을 예쁘게 깎고 예쁜 옷을 입힙니다.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다 표현이 되는데 제사장의 옷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눅12:7절에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특별히 깊이 세심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머리털을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개수를 다 아신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오장육부의 상태를 몰라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고 우리 상황을 모르시는 게 없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살아 계시면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나?’라는 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참새보다 더 귀해서 현실적으로 주시는 구체적인 사랑의 내용이 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이 땅에서의 삶의 환경이 돈이 없거나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식이 말썽이거나 건강이 좋지 않거나 시부모님이 괴롭힌다든지 하는 열악한 상황이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덜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요. 옆집의 김 집사님은 하는 사업마다 다 잘돼요. 그런데 나는 손대는 것마다 되는 일이 없어요. 같이 교회를 다녀도 김 집사는 하나님이 더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고 그 집 아들들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쑥쑥 들어가고 우리 아들은 전문대학에 겨우 들어갔어요. 그러면 그 집을 더 많이 축복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당거래로 바뀌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직전에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요한복음 17장에서 다 밝히십니다. (5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 /(24절)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창세전에’라고 하는 말은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주님이 가지셨던 그 영광스러움을 그대로 옮겨서 나를 믿는 자들에게도 다 적용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13절에 “내가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가지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는데 그 주님의 기쁨은 16절에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기쁨을 누리시는데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에 의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갖게 되는데,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아버지! 사업 잘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자식들이 잘되게 해주세요.’라고 하면 부당거래로 깊이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이고, 이 관계가 올바르게 되려고 하면 ‘주님께서 이 땅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지기 전의 창세전에 가지셨던 그 기쁨을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라는 말은 주님은 세상에 속한 기쁨을 갖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늘에서 하나님과 주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갖고 계신 일치와 그 기쁨과 만족을 나도 주님을 믿음으로써 주님의 자리에서서 그대로 받게 해달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당거래가 돼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열악할 때 부당거래가 아닌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열악한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기 전에 열악한 상황이 내 마음에 어떠한 염려나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 만큼 하늘로 충만하기 위해서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제사장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갖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만인제사장시대의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상번제를 드리는데 주님의 십자가로 세상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서 죽고 내 마음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주님이 하늘에서 누리시는 그 기쁨을 주님을 붙잡고 연합함으로 나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올바르게 진행되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될 때 이 세상의 열악함은 걱정거리로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 상태가 되면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게 올바른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면 하나님의 화려하고 섬세하게 계획하신 제사장의 옷이 뜻하는 바는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누리시던 그 기쁨을 우리도 누리게 하시겠다는 사랑이 화려한 옷으로 표현된 것이고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세상에 대해서 죽으므로 나는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주심으로써 관계가 올바르게 성립될 때 나타나는 것이 사람관계의 일로 바로 견대와 흉패로 표현됩니다.
견대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쓰는 것은 어깨관계를 말하고 가슴의 흉패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쓰는 것은 제사장이 열두 지파를 관계하는데 어깨관계, 가슴관계로 어깨로 사랑하고 가슴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어떻게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사람들을 어깨로 사랑하고 가슴으로 사랑할 수가 있느냐? 이 가능성의 근거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은 하나님 사랑으로 인한 하나님께서 당신을 주심으로 누릴 수 있으므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깨사랑은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부당거래가 되지 않고 올바른 관계가 되었으면 하나님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자가 사람에 대해서 갖는 관계는 의무적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예요. 의무적이라는 얘기는 오직 그 사람과 나와 만나고 있는 동안에 그 사람의 필요만이 이슈가 된다는 뜻이에요. 이게 어깨사랑이고 의무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내를 만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당거래가 아니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갖게 되고 주님이 창세전에 누렸던 그 기쁨을 갖는 사람은 오직 아내가 이슈가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고 사장님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고 부장님을 대할 때도 친구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이슈가 되는 것인데 그게 어깨사랑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어깨에 짊어져야 된다는 것인데 그 어깨에 짊어지는 것이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면 내가 짊어지는 게 아니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신 것입니다. 의무만 가지고는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의무도 내 마음에는 하나님으로 충만함으로 내게 주어진 열악한 환경조차도 근심거리, 걱정거리가 안 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의무적인 사랑이 어려운 게 아니지요. 내 코가 석자일 때 타인에 대한 의무적 사랑이 어렵지만 내가 충만할 때는 어려운 게 아닙니다.
가슴의 흉패로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사랑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늘을 가진 자가 하늘을 못 가진 자를 바라볼 때 하늘과 땅 차이에서 오는 격차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자비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을 가진 자가 됐을 때 하늘을 갖지 못한 자를 볼 때 그 격차와 낙차만큼의 긍휼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긍휼히 여김이 전혀 없다고 하면 낙차가 없고 내가 하늘에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날마다 상번제를 드립니다. 상번제는 드리는 제사장이나 상번제를 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모두에게 자기의 제사입니다. 날마다 상번제를 드리면서 본인이 죽고 마음을 하나님께 보내드리는 게 제사장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으로 충만해서 마음이 하늘로 충만하게 될 때 열두 지파 사람들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게 가슴사랑이에요. 우리가 바로 그렇게 사랑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시고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 분의 기쁨이 우리에게 옮겨지는 것이 신앙과 복음의 이유이고 내용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자꾸 세상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이것이 부당거래입니다. 이런 부당거래가 끝이 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 관계일 때 우리는 사실 이 땅에서 필요한 게 없어요. 살려두시는 이유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제사장의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가진 자로 낙차를 느끼면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의무적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오직 그들의 문제만을 이슈로 삼으라는 것이지요. 내가 지금 사업이 안 될 때 사업을 타개해 나가는 제사장이 된 선민의 모습은 상번제로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면서 사업의 걱정거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하늘로 충만해지면 사업과 상관없이 그 사업과 연관된 사람들을 걱정합니다. 내 사업이 잘돼서 이익을 빨리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 사업과 연관돼 있고 나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생각하게 되는데 하늘을 가진 자로 하늘을 가지지 못한 자를 보는 것입니다. 옆집 자식은 명품 신발을 신고 다니는데 내 자식은 싸구려 신발을 신고 다니니 나도 비싼 신발을 사줘야 되겠다고 하는 이런 긍휼이 아니라 내 자식에게도 하늘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행동하다 보면 그 사업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것이라면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 사업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다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생기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 땅에서 생기는 결정적이고 아주 중요한 문제들을 졸(卒)로 알아버립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부당거래가 아닌 올바른 관계로 추진되면 내 상황이 이슈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이슈가 되고 그들의 필요가 이슈가 돼서 그들에게 적응하고 그들에게 맞추어서 살아갈 때 내가 주려고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하늘과 땅의 격차에서 생기는 긍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똑같이 하늘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면 내게 주어진 환경의 문제는 눈 녹듯이 다 없어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만인제사장이라는 것은 이미 제사장이 되었다는 게 아니라 제사장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누가 진짜 제사장입니까? 상번제를 드리는 사람으로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자가 제사장입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님의 마음은 예배당 건축에 활활 살아있든지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한 것에 온 마음이 다 가있는데 나는 맨날 내 삶에서 상번제를 십자가로 생활화하고 있다면 누가 제사장입니까? 예배당 건축에 마음이 가있는 목사님은 제사장이 아직 돼 있지 않습니다. 만인제사장시대에 살고 있지만 제사장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하나님과 부당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삶에서 중요한 문제들 사업을 하고 있지만 목사님이 예배당 건축을 하고 있는 것에 마음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사업에 대해서 불을 꺼버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활활 타오릅니다. 그러면 목사님이 제사장이 아니고 그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상번제를 드리는 자로 마음을 하나님께만 드리는 자가 제사장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엊그제도 보니 십자가 복음 방송의 카페에 어떤 분이 글을 올리셨어요. 안양에 사시는 분이신데 십자가 복음을 듣다 보니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나 교인들의 신앙상태가 너무 맞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옮기고 싶은데 안양 근처에 십자가 복음 내용과 같은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의 교회는 없느냐는 것인데 제가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안양에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런 교회가 있는지 몰라서 답을 드리지 못했거니와 또 답을 못한 이유는 이제 십자가 복음 방송을 들으시고 세상에 대해서 죽자는 말씀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린다는 것은 그분을 하나님이 제사장 옷을 입히는 선민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사랑해서 특별히 채색 옷을 입히듯이 그렇게 편애하시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선택받아서 하늘로 충만해진 제사장이 그 교회를 떠나고 나면 십자가 생활화를 하지 못하는 아직도 만인제사장시대에 제사장이 되지 못하고 있는 목사님으로부터 장로님, 교인들을 위해서는 누가 제사장 노릇을 하겠습니까? 십자가 생활화라고 하는 복음의 핵심이 삶 속에서 표현되지 못하는 그 교회 안에 있는 나에게 십자가를 생활화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말씀을 전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교회 사람들을 어깨로 가슴으로 사랑하라는 얘깁니다. 오직 성령 충만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내 자식보다 보이는 내 배우자보다 더 확실한 현실로 우선적으로 내 마음에 들어와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성령 충만의 결과인데, 그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가득 차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 상번제를 드리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성령 충만 받아서 이 땅에서 잘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건강하고 사업 잘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당거래를 하는 사람들에게 제사장은 이제 하나님 충만으로 하늘 충만을 모르는 사람들을 떠나라는 얘기가 아니라, 하늘 충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사장 노릇을 하라는 것이지요. 어깨로 사랑하고 가슴으로 사랑하라는 얘깁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십자가 생활화로 하늘 충만입니다. 그 하늘 충만을 누가 알려주겠습니까? 십자가는 다 압니다. 생활화를 모르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알려드려야지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 복음 방송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 방송자체는 조직이 될 필요도 없고 조직이 커질 필요도 없습니다. 조직이 없으니 크고 작다는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속한 교회에서 제사장 노릇하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고 정교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옷을 입히셔야만 마음이 놓이실 정도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제사장들입니다. 그 제사장들이 하는 일이 날마다 상번제를 아침저녁으로 드리면서 나를 죽이고 하늘로 충만하게 됩니다. 하늘로 충만한 상태에서 가족과 교인뿐 아니라 TV를 보면서 만나게 되는 배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도 어깨사랑 가슴사랑을 하세요. 저렇게 스타가 돼서 많은 사람이 시청하는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지만 저 사람이 과연 하늘을 아는가? 십자가 생활화를 통하여 오늘의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 충만을 아는 자인가? 그 스타를 부러워하고 예쁘고 잘생겼다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 제사장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이유는 TV에서 만나든 길에서 만나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제사장으로서 어깨사랑으로 기도하고 가슴사랑으로 기도의 내용을 채우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하늘과 땅의 낙차 이것이 저에게도 없어질 수 있도록 하늘 충만을 내용으로 담아서 의무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내용이 되다 보면 우리의 직장, 우리의 사업, 우리의 가정의 모든 문제는 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나가시는 하나님의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옷을 입히셔야만 직성이 풀리실 만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그런 선민들로 그 사랑에 근거해서 이웃을 향한 의무사랑, 가슴사랑으로 삶의 내용을 채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십자가 주님과 연합하는 상번제가 일상화됨을 통하여 하늘 충만하고 땅을 향해 어깨사랑, 가슴사랑으로 삶의 내용을 채우는 바른 제사장이 되므로 모든 부당거래를 내 삶에서 이웃의 삶에서 척결해 나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