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이나 권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말한다. 근대 한국의 3대 파락호는『양반동네 소동기』저자 윤학준은 흥선 대원군 이하응(李昰應), 형평사(衡平社) 운동의 투사였던 김남수(金南洙 광산 김씨),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댄 김용환(金龍煥, 학봉의 13대 종손)을 거론했다.
흥선대원군은 조선 말기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의해 이씨 왕족이 견제를 당하자 일부러 파락호 행세를 하며 시장통에서 상인들과 어울려 놀며 난봉꾼 행세를 했다. 이를 통해 안동김씨의 눈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고, 기회를 노리다가, 결국 철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왕으로 세우고, 대원군이 되어 조선 후기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김용환은 일제강점기 안동시에 현재 시가 200억원이 넘는 저택과 논밭을 가진 큰 부자였으나,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온갖 노름판 을 전전하며 전 재산을 노름으로 날린 것처럼 행세하면서, 실제로는 그 돈을 만주에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하였다. 1995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아래 내용은 영남일보 24년6월28일자 기자칼럼에서 일부 옮겨온 글임을 밝혀둡니다.(참고)
파락호(破落戶) 김용환. 파락호란 놀고먹는 건달, 난봉꾼을 가리킨다. 일제 강점기 안동 명문가 의성김씨 종손이었던 김용환은 흥선대원군 이하응, 형평사 운동의 주역 김남수와 함께 조선 3대 파락호라 불렸다. 노름판에는 꼭 끼었던 그가 팔아먹은 땅만 18만평. 현 시가로 수백억 원 된다고 한다. 학봉 김성일의 13대손이었지만 학봉 종택마저 세 번이나 날려 먹었다. 시집간 외동딸에게 장롱을 사라며 시댁에서 준 돈까지 탕진했다. 인척들은 "집안 말아먹을 종손"이라 손가락질했다. 도박판에선 불량배들에게 죽도록 맞고는 판돈 전부를 빼앗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천상 개망나니였다.반전이 있다. 그가 탕진한 돈이 고스란히 보내진 곳이 있었다. 바로 만주 독립군. 1946년, 임종할 무렵 독립군 하중환이 "이제 사실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나"라고 하자 김용환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눈을 감았다. 일경의 감시를 피해 노름꾼으로 위장하고 파락호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것도 모자라 진실을 끝까지 묻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군자금을 조달하는 의용단 서기, 사후 드러난 그의 정체다. 노름판 돈을 가져간 도박꾼, 불량배들은 변장한 독립군이었다. 멸시를 받으며 죽는 순간까지 난봉꾼이라 불리기를 마다하지 않은 그의 처절한 고독이 경이롭다.그의 할아버지 김흥락의 제자 가운데 독립운동으로 훈장 받은 사람만 60명 나왔다. 안동의 의성김씨 문중에서 106명, 이 중 학봉 직계가 11명. 대구 경북은 독립운동사에 가장 많은 유공자를 배출한 곳이지만 안동은 그중 우뚝하다. 독립유공자 수가 전국 평균의 10배, 시·군 단위로는 유일하게 300명이 넘는다. 8월 안동에서 공연될 '실경 뮤지컬 왕의 나라 시즌3'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김용환 등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지 않다. 광복 후 50년이 지나서야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변요한 분)이 그를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이 반짝 회자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