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경 70달러짜리 호텔, 오페라하우스의 내부전경, 이날 이후로 두번다시 구경하지 못한 풍경이다.
프놈펜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나서 여행자들이 몰려 다닌다는 데땀거리에 숙소를 잡았다. 하루 칠십달러 짜리 호페라호텔은 가격도 문제지만 제대로 된 베트남 공기를 마시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이십달러 안팍의 숙소에 이국적 정취도 물씬거린다니 첫날부터 데땀이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오페라는 동포빌리지가 가까이 있다는게 별로 였다. 해외여행 수칙 제 일조, 가능하면 자국민이 없는 곳으로 돌아 댕겨라? - 간밤에 자국민 연인들의 도움을 받아 놓고도 이런 소리를 한다. 말도 한마디 안 통하는 베트남 기사의 픽업 덕분에 어딘지도 모를 호텔에 도착한 뒤에 (호텔 예약은 동행의 현지 한국인 지인이 해 놓았는데 그는 밤이 늦었다며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 시장기가 돌아서 쌀국수라도 한 그릇 말아먹고 자자는데 일행이 합의하고 기껏 찾아나선 곳이 24시간 편의점이었다. (사진속의 편의점은 아님)
그 편의점 앞에는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낸 단군혈통의 동족 청년 예닐곱이서 사이공 사이다와 과자 봉지 몇 개를 앞에 두고서 아주 한국적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이곳이 한인밀집구역이라는 것과 이 시간에 문 연 국수집 술집은 없고 영업하는 데는 여기밖에 없다는 귀중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아니 영업하는 곳이 있기는 한데 거기는 오늘 도착한 여행자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알리바바의 형제'들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거였다.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일행은 시차적응 문제도 있고 하니 그냥 편의점 테라스에서 가베얍게 목이나 축이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호기롭게 '칸비니언스 스토어'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장을 본 것이 컵라면 두 개, 사이공 삐어 네 캔, 햄 깡통 하나. 다 합해보니 육만 동이란다. 아니 요거이 육만원어치나 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란다. 뒤에 동그라미 하나 지우고 절반으로 탁 꺽어 버리면 대략 한국머니하고 비율이 맞는 가격이란다. 그러면 요거이 삼천원어치? 우와 횡재해부렀네, 오늘 밤 이슥토록 마셔불자고, 맥주 한병에 그랑께 오백원이란 이야그이구마이.. 근데 누가 베트남돈 갖고 기신가? 아니 여기돈은 환전 안 해 왔는디. 그려 그럼 딸러로 내자고, 아 딸러야 받겄지, 그럼 딸러로는 얼마내는겨 ? 한 삼십달러 주믄 되나? 그러고 있는데 당황한 여린 알바는 안된다는 소리만 하면서(그것도 베트남말이라서 대충 짐작만 할 뿐으로) 대략 난감의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뭐든지 들이대면 안되는게 없다는 걸 몸소 체득하고 살아가는 반도의 대책없는 중년 셋은 ‘어떻게 우겨보면 안될까?’ 하면서 계산기로 환율계산까지 해주면서 ‘딸라로 받으면 안되겠니’ 해보는데도 그 사이공의 알바소녀는 ‘똥’만 받는다면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이런 된장, 고추장, 십이지장. 이건 뭐 딸라의 본국하고 싸워 이긴 자존심이라는건가? 우린 쫀심이 있어서 패전국의 돈은 일상에서 통용하지 않는다는건가하는 오바스러운 생각도 얼핏 스쳐간 듯하다. 결국 베트남에서의 첫 밤을 쓰린 빈속이나 달래면서 자야하다니 하고 낙망을 하면서도 환전 한 푼 안해 온 ‘똥’ 베짱들 탓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 때 유리문 열리는 것과 동시에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 ‘자기야 뭐 마실래?’ 순간반사로 고개가 돌아가는 동시에 모국어가 그렇게 아름다운 운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반가운 모국어의 출현에 체면이고 뭐고 생각도 않고 그 여인 앞으로 잽싸게 나섰다. ‘아 저 사정이 이러저러해서 이리되었는데 그러니까 그게 이렇게든지 저렇게든지 어떻게 도와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그 젊은 연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뜨거운 동포애와 순발력을 발휘하여 꼼꼼하게도 계산기로 환율 찍어보고 하더니 대신해서그 귀한 ‘똥’으로 결재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이 아름다운 동포애라니, 이래서 외국나가면 다 애국자 되고 또...그런걸까. 연인들이 핼멧을 쓰고는 타고 온 오토바이에 사이좋게 몸을 싣고 떠나는 걸 지켜보면서, 베트남에서는 천사들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건 아닐까 하는 시답잖은 생각도 잠깐 든 것 같았다. 아뭏든 그 동포 천사 덕분에 비로소 알딸딸해져서 행복한 첫 밤을 보낼 수 잇게 된 것이다.
오늘의 교훈- 각설하고 그래도 곤란한 경우를 만났을 때는 동포가 제일이다. 그 동포가 언제라도 출동해 주는 것은 아니니 다만 곤란한 일 만들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고 조심할 일이다. |
출처: 길에서 자라는 아이들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물밥
첫댓글 ㅎㅎ 편의점 알바소녀 멋져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