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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성전으로 돌아오신 여호와(1-12)
성전은 하나님 보좌의 처소요, 하나님의 발을 두는 처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월적인 존재시기에 성전에 매여 있지 않으시나,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성전에 거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떠난 예배당은 하나님의 전이 아닙니다. 성도가 사모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입니다.
1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3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6성전에서 내게 하는 말을 내가 듣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더라 7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8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망시켰거니와 9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 10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11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12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1-12)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을 봅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왜 성전을 떠나셨던 것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에스겔 10:18-19,11:23-25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의 파괴보다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을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이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성전을 돌아오신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 환상의 장소 동문(1)
여호와께서 자신의 집인 성전을 심판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 동쪽 산으로 떠나셨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셨던 경로로 다시 돌아오십니다. 동문을 통해 성전 지대 밖으로 나간 에스겔은 동쪽으로부터 와서 바깥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엎드립니다(1).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심판하시고 성전 동문을 통해(10:19) 성읍 동쪽 산으로(11:23) 떠나셨던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날 때 밟으셨던 길을 그대로 되밟으며 돌아오십니다.
(2) 돌아오는 여호와의 영광(2-5)
여호와의 영광이 ‘많은 물 소리’처럼(참조. 1:24) 성전으로 들어오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났습니다(2). 그발 강가에서 압도적인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졌던(1:28) 에스겔은 그 영광 앞에 압도되어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집니다(3). 세 개의 대환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성전으로 들어가신 후에(4) 한 ‘영’(루아흐)이 에스겔을 들어 올려 안뜰로 데려가고(2:2; 3:12; 8:3; 11:1,24), 에스겔은 ‘성전’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 찬 것을 봅니다(5; 참조. 출애굽기 40:34-38; 열왕기상 8:10-11). 이스라엘과 관계를 끊고 떠나신 여호와께서 다시 당신의 백성의 하나님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패와 불의가 초래하였던 심판과 저주의 시대가 끝나고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구원과 축복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3) 경고와 약속의 말씀(6-9)
새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가신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성소의 정결과 관련한 가르침을 주십니다(6-9). 제의적 정결이 요청되는 이유는 성전이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7a)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지성소에 있는 두 그룹의 편 날개가 보좌를, 그 아래 놓인 언약궤가 발판을 상징했습니다. 성전이 여호와의 보좌와 발판이 되면서 지성소의 거룩함이 성전 전체로 확대됩니다. 성전에 여호와께서 거하시기에 부정하게 하는 모든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정결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다윗 왕조가 건축한 왕궁의 부속 건물이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문지방을 ‘내’ 문지방 옆에 두고 ‘자기들의’ 문설주를 ‘내 문설주 옆에 두어 나'와 '자기들 사이에 담 하나만 두었다”(8a). 태생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왕의 정치적-세속적 결정과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또 왕들의 묘지가 왕궁의 부속지 다윗 성에 마련됐기에(7b; 열왕기상 2:10;11:43) 성전의 거룩함이 부정을 타기 쉬웠습니다. 왕궁의 ‘음행’과 ‘가증한 일’이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기에 성전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진노하여 그들을 멸망시켜버리셨습니다(8b). ‘내가 그들 가운데 영원히 살리라’(9; 37:26, 28)는 여호와의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새 성전에서 멀리 치워버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힐 수 있는 것은, 왕궁뿐만 아니라 제의적 윤리적으로 가증한 것까지 모두 멀리해야 합니다.
(4) 성전 환상의 결부(10-12)
두 가지 목적에서 에스겔은 ‘성전의 구조와 배치와 나가는 곳과 들어오는 곳’ 그리고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구조와 그 모든 율법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10-13). 먼저는 회고적으로, 이스라엘이 성전을 더럽힌 자신들의 죄악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왕정시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자신들의 죄를 수치스럽게 보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다음은 미래적으로,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않고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새 성전에 영원히 거하실 수 있도록 에스겔이 전해주는 ‘성전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성전의 법’은 43:13-46:24까지도 포함합니다.
번제단의 형태(13-17)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회복된 성전에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시기 위해서는 그들이 영적 음란과 부정함에서 떠나야 합니다. 제사를 드릴 때 가장 중요한 장소는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은 죄 사함을 받는 곳으로, 나의 죄를 대신할 희생 제물을 올려놓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제사에 하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13제단의 크기는 이러하니라 한 자는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것이라 제단 밑받침의 높이는 한 척이요 그 사방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며 그 가로 둘린 턱의 너비는 한 뼘이니 이는 제단 밑받침이요 14이 땅에 닿은 밑받침 면에서 아래층의 높이는 두 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며 이 아래층 면에서 이 층의 높이는 네 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며 15그 번제단 위층의 높이는 네 척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에서 솟은 뿔이 넷이며 16그 번제하는 바닥의 길이는 열두 척이요 너비도 열두 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17그 아래층의 길이는 열네 척이요 너비는 열네 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그 밑받침에 둘린 턱의 너비는 반 척이며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니라 그 층계는 동쪽을 향하게 할지니라(13-17)
본문에서는 제단의 크기와 구조에 대해 설명합니다. 제단은 길이와 너비가 정해져 있으며, 각 부분의 치수와 재료가 상세히 나열됩니다. 또한 제단의 꼭대기와 그 주위에 대한 규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제단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중요한 장소임을 강조합니다.
(1) 제단 주변의 도랑(13)
제단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기술됩니다. 새 성전의 제단은 솔로몬 성전의 제단과 달리 삼 층으로 된 제단이었습니다. 제단의 아랫부분에서 윗부분으로 옮겨가면서 기술합니다. 제단 둘레에는 사방으로 도랑이 있었는데, 깊이와 너비가 각각 한 암마였고, 도랑의 가장자리에는 돌아가면서 턱이 있었는데 너비가 한 뼘(반 암마)이었습니다.
(2) 제단 각 층의 높이(14-15)
도랑과 그 턱은 제물의 피가 안뜰로 흐르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땅바닥에 있는 도랑을 기준으로 제단 아래층의 높이는 두 암마였고, 길이와 너비는 각각 열여섯 암마였습니다. 중간층은 높이가 네 암마, 길이와 너비가 각각 열네 암마였습니다.
(3) 제단 각 층의 길이와 너비(16-17a)
위층은 번제단의 화덕으로, 높이가 네 암마, 길이와 너비가 각각 열두 암마였고, 그 모서리에 뿔이 네 개 솟아있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두 암마씩 크기가 짧아지면서, 아래층과 중간층에 사방으로 폭이 한 암마의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번제단의 전체 높이는 도랑을 기준으로 열 암마(대략 5m), 지표면을 기준으로 아홉 암마(대략 4.5m)로, 올라가는 계단이 제단 동편에 있었습니다. 계단이 동편에 나 있었기에 제사장은 성소(의 여호와)를 바라보며 번제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4) 제단의 층계(17b)
8:16에서 에스겔은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스물다섯 명의 제사장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태양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번제단의 구조를 통해 여호와께 등을 보이고 제사를 드리는 일이 처음부터 불가능해집니다.
번제단의 봉헌(18-27)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나올 때, 무엇을 받으려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받으려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예배는 얼마나 받았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자신을 온전히 드렸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드리셨던 것처럼, 당신도 얼마나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1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는 이러하니라 19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를 주어 속죄제물을 삼되 20네가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방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21그 속죄제물의 수송아지를 가져다가 성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지며 22다음 날에는 흠 없는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삼아 드려서 그 제단을 정결하게 하기를 수송아지로 정결하게 함과 같이 하고 23정결하게 하기를 마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24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25칠 일 동안은 매일 염소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물을 삼고 또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갖출 것이며 26이같이 칠 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하게 하며 드릴 것이요 27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8-27)
성전으로 돌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드릴 제사에 대해 순서를 설명합니다. 성전 제의는 제단을 중심으로 수행됩니다.
(1) 도입부(18)
‘놋 같이 빛난 사람’이 여호와를 대신하여 제단의 규례에 관한 여호와의 가르침을 에스겔에게 전달해주는 것 같습니다(18). 제단 봉헌은 첫째 날의 제사와 그 다음 날부터 이레 동안 계속되는 제사로 나뉩니다.
(2) 첫째 날(21)
19-21절은 첫째 날에 관한 가르침으로, 그 과정을 세 단계로 기술합니다. 먼저 에스겔은 속죄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를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내어주어야 합니다(19). 레위 제사장들은 아마도 안뜰로 들어가는 북쪽 대문 현관에 있는 상(40:39)에서 제물을 잡았을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에스겔이 직접 수행합니다. 에스겔은 (아마도 제사장들이 잡은 속죄제물의) 피를 모아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방 가장자리’에 발라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속죄해야 합니다(20). 아직 사용하지도 않은, 따라서 부정해지지도 않은 제단을 왜 정화하고 속죄하는지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에스겔은 수송아지의 잔해를 ‘성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으로 가져가 불살라야 합니다(21). 여호와께서 성전으로 돌아오셨기에 성전은 거룩한 곳이 됐습니다.
(3) 둘째 날(22-24)
22-24절은 둘째 날에 관한 말씀입니다. 첫째 날처럼 제단을 정결하게 해야 하는데, 속죄제물로 수송아지 대신 ‘흠 없는 숫염소’가 드려집니다. 수송아지의 피를 발라 제단을 정결하게 했던 것처럼 숫염소의 피로 제단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20). 첫째 날과 달리 둘째 날의 예식은 속죄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결예식을 마친 후에 ‘흠 없는 수송아지’와 ‘흠 없는 숫양’으로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23). 둘째 날부터는 속죄제와 번제가 함께 드려집니다. 에스겔이 수송이지와 숫양을 여호와 앞에 바치면 제사장들은 그 위에 소금을 뿌리고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려야 합니다(24).
(4) 칠 일의 예식(25-26)
레위기 2:13에 의하면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쳐야 합니다. 둘째 날의 예식은 이레 동안 계속됩니다. 이레 동안 매일 속죄제물로 염소를 드려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수송아지와 숫양을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25-26).
(5) 제사를 기쁘게 받으실 여호와(27)
첫째 날과 그 다음 날부터 이레 동안 진행된 제단의 봉헌예식이 여호와의 가르침과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27). ‘제 팔일’은 둘째 날부터 시작하는 이레 동안의 예식이 끝난 다음 날입니다. 속죄제와 번제를 이레 동안 드린 후에 제단이 여호와에 의해 받아들여집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봉헌된 제단에서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께서는 이들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새 성전에 임하는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다시 거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성전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상징으로, 백성에게 경외심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규례를 통해 그들의 예배가 거룩하고 진실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시는 은혜를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적 부흥의 기초가 되며, 믿는 자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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